소설리스트

31화 (32/218)

Level 5. 메인 퀘스트 : 아빠 함락 (03)

나는 해사하게 웃으며 손을 휙휙 흔들었다.

“아줌마 안냥!”

동시에 한쪽 눈을 감았다.

즉, 윙크!

……는 실패했다.

아직 한쪽 눈만 감는 게 어려웠던 것이다.

덕분에 윙크를 하려고 했는데, 양쪽 눈을 동시에 감았다 떠 버렸다.

주변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허윽! 너무 귀여우셔!”

“윙크 어려우시죠, 우쭈쭈쭈.”

이게 뭔 망신이래.

나는 마력으로 눈 주변 근육을 살짝 강화했다. 그리고 다시 시도했다.

깜빡.

효과는 훌륭했다!

나는 성공적으로 2회 차 인생의 첫 번째 윙크를 해냈다.

주변에서 다시 신음과 감탄이 울렸지만 무시했다.

다음 순간, 내가 기다리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스킬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A급)> 적용 가능 대상입니다.]

[적용하시겠습니까?]

“…….”

스킬 이름이 왜 다 이따구야? 꼭 한쪽 눈에 안대를 써야 할 거 같잖아.

실제로 안대를 쓰면 이 스킬 발동이 훨씬 쉬워지긴 할 거다.

왜냐면…….

[*스킬 발동 조건 : 한쪽 눈으로만 대상을 응시할 것]

어쨌건 나는 오케이를 했다.

[대상의 정보를 분석 중입니다…. 분석 완료.]

[이름: 폴카 다브네스.]

[지위: 다브네스 후작 부인, 황후궁 부시녀장.]

[특성: 야심가(6lv), 계략가(2lv), 이기주의(7lv)…….]

‘오, 쩐다.’

이건 전생에도 극소수의 헌터만이 가지고 있던 희귀 스킬이다.

탐지 계열의 고위 스킬을 가진 이들도 대부분 타인의 시스템 정보를 볼 수 없었다.

딱 ‘한 명’을 제외하고.

타인의 정보는 물론 생각까지 엿볼 수 있는 스킬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거기에 유일한 미래 예지의 능력까지.

그가 전 인류를 통틀어 단 한 명뿐인 대현자라는 희귀 직업을 얻은 것은 당연했다.

그에 대해 떠올리자 절로 싱숭생숭해졌다.

“나를 믿고 기다려 줘, 서나야.”

분노가 치솟으려는 걸 애써 눌렀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이건 A급 스킬이다. 내가 알기로 ‘그 녀석’의 스킬은 원래 S급이었다.

그래서 타인의 생각도 읽을 수 있었고.

반면 지금 내가 얻은 스킬은 A급에 생각을 읽는 능력은 없었다.

어쨌건 좋은 스킬임은 분명하니까, 잘 써먹으면 그만이다.

그나저나 이 여자 정보가 마음에 걸렸다.

특성이 하나같이 불길한 것들인데?

그때 내 눈을 확 잡아끄는 부분이 있었다.

[협력자 : 말린다 다브네스(신뢰), 하스토트 벨론드(불신), 루도비카 벨론드(불신)…….]

많이 들은 이름이다.

벨론드 대공 부부.

즉, 콩나물 대가리의 부모.

절로 입가가 끌려 올라가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상하다 싶었다.

특히나 황자궁 내부의 상황이 지나칠 정도로 엉망인 건 특히.

아무리 엄마가 없고 아빠가 손을 놓고 있어도.

핵심 중간 관리자 중 누군가가 벨론드 대공과 내통하고 있어야 가능한 상황이다.

시종장 할배를 봤을 때도 이런 의심을 조금 가지고 살피긴 했었는데.

그 범인이 바로 여기 있었다!

입가에 절로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잡았다, 요놈!’

***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짐짓 갸륵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폐하께 조찬을 가져가던 차였습니다.”

루퍼스리안의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그게 황후궁 부시녀장이 할 일은 아닐 텐데?”

“저는 황후 폐하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으니까요.”

다브네스 후작 부인의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모두가 얼굴을 찌푸렸다.

저건 일개 부시녀장이 입에 담을 만한 말이 아니었다.

마치, 자신이 내궁의 관리자라도 된다는 듯한 태도지 않은가.

그리고 황후가 직접 임명한 중간 관리자라 해도 도를 넘는 발언이었다.

내궁의 주인은 단 한 명, 황후 뿐이었으므로.

루퍼스리안의 입에서 냉랭한 말이 나온 것도 당연했다.

“표현이 틀렸군. 황후 폐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게 아니라, 황후 폐하의 시녀장 일을 임시로 맡고 있을 뿐이지.”

주인과 종의 차이는 명백하니까.

소년의 멸시하는 시선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루퍼스리안의 파란 눈동자는 더없이 차가웠다.

다브네스 후작 부인이 잠시 모멸감에 몸을 떠는 사이.

황자의 품에 안겨 있던 아기 황녀가 갑자기 움직였다.

“리샤?”

아기는 포르륵 날아오르더니, 다브네스 후작 부인의 앞에 있는 트롤리로 다가갔다.

“이고 압빠 맘마야?”

“아, 네…에.”

다브네스 후작 부인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이렇게 어린 아기가 이 정도로 강한 마력을?’

그녀 역시 미약하지만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이였기에, 아나트리샤가 내뿜는 강력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태양석이 빛나는 것도 보았고, 궁 내부에 도는 황녀의 마력에 대한 소문도 들었다.

과장된 것이라 여겼건만 아니었다.

‘오히려 소문이 축소되어 있어.’

어깨가 짓눌리는 듯한 압력.

황후를 그대로 닮은 커다란 청보라색 눈동자가 후작 부인과 트롤리를 번갈아 가며 보다가, 씩, 웃는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때.

“얍.”

아기 황녀의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트롤리에 씌워져 있던 은제 뚜껑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안에 있는 간단한 음식들이 드러났다.

따듯한 양파 수프와 반숙으로 익힌 수란과 베이컨을 얹은 에그 베네딕트. 연어 카르파쵸. 그리고 진하게 우린 차. 모범적인 루스템 제국식 아침 식사였다.

온기가 달아나지 않도록 작은 화로를 함께 넣어 둔 세심함이 돋보인다, 라고 후작 부인 스스로 생각했다.

아기 황녀가 물었다.

“아줌마가 만든 고야?”

“예, 황녀 전하.”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친절한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그러나 황녀의 전혀 예상 못 한 대답에 그녀의 따스한 미소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아빠, 부짱해.”

“네?”

아기 황녀는 두 팔을 한껏 들어 올렸다.

“압빠 이-롷게 쿤데.”

그리고 두 손을 합쳐서 조막만 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요마큼 머그묜 배거플고 가타.”

아기는 순진한 눈을 울먹거리며 다시 말했다. 강조하듯.

“아빠, 부쨩해.”

***

“리샤두 요마큼 머그묜 배고플고야.”

‘이 코딱지만 한 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아나트리샤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는 전생의 기억으로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아빠가 얼마나 잘 먹는지 알아? 나랑 오빠가 잘 먹는 것도 아빠를 닮아서라고!’

물론 엄마도 잘 드셨다. 사실 S급 헌터들은 다 잘 먹었다.

아나트리샤는 이 식사를 가져가는 게 기드온(우명 삼촌)이나 시종장이었다면 태클을 걸지 않았을 거다.

두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 여자는 아니다.

‘황후궁 부시녀장이면 황후궁에 있어야지, 왜 여기 있어?’

게다가 아나트리샤가 새로 얻은 스킬이 알려 준 다브네스 후작 부인의 정보가 결정적이다.

부정적인 특성이랑 특기들이 줄줄이.

특히, 벨론드 대공 일파의 협력자라고 대놓고 써 있었다.

(불신) 이라고 되어 있는 건 뭔지 모르겠지만. 자기들끼리도 서로 못 믿는 건가?

어쨌든.

‘아빠 밥에 독이라도 넣었을지 누가 알아!’

굴욕적인 표정을 하던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곧 표정을 가다듬었다.

“황녀 전하께서 아직 어리셔서 잘 모르시는 거랍니다.”

이 말에 루퍼스리안은 물론 황녀궁 시녀들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감히, 리샤를!’

‘저 여자가 우리 황녀님을 무시했겠다?!’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몰리는 살기에 후작 부인은 멈칫했다.

하지만 그녀도 만만치는 않았다. 애써 말을 끝까지 쥐어짜 냈다.

“폐…하께서는 근래에 식사량이 많이 줄어드셨답니다. 황녀님이나 황자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다브네스 후작 부인에게 반론한 건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걸 왜 후작 부인께서 챙기고 계신 겁니까?”

주변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그곳에 선 이는 외알 안경을 낀 회색 머리의 노인이었다.

“시죵쟝 하부지!”

바로 본궁의 시종장 웨인 백작.

회색 석상 같던 시종장의 표정이 황녀와 눈이 마주치자 녹아내렸다.

“어이쿠, 우리 아기 황녀님 아니십니까. 폐하를 뵈러 오셨나요?”

“웅! 어빠도 와써!”

포륵 날아간 아나트리샤는 제 오빠의 품에 다시 안겼다.

다브네스 후작 부인을 보고 불쾌하게 일그러졌던 루퍼스리안의 얼굴도 부드럽게 풀어졌다.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평정을 되찾아 반격에 나섰다.

“시종장께서도, 다른 황족분들도 폐하의 건강을 살피지 못하니, 제가 황후 폐하를 대신해서라도 챙기려는 것뿐이랍니다. 폐하의 안위는 곧 제국의 안위니까요.”

그녀는 한 번에 시종장을 비롯한 본궁의 궁인들과, 황자 황녀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너희들이 황제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으니 내가 나선 것 아니냐.’

이 소리.

아나트리샤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하부지.”

“네, 황녀 전하.”

“고기마니 맘마 해놔써?”

그러자 시종장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나트리샤는 오빠를 끌고 오기 전, 엘제를 통해 본궁 시종장에게 부탁을 전해 두었던 것이다.

“아빠 맘마. 고기 마니. 아주 마니마니.”

“하명하신 대로 따랐습니다, 황녀님.”

시종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트롤리를 끌고 오는 본궁 시종 부대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다브네스 후작 부인이 끌고 온 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였다.

시종장은 지극히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시종장의 저런 태도를,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과거에 본 적 있었다.

“명을 받듭니다, 황후 폐하.”

황제의 명령만을 따르는 시종장이 저렇게 예의를 다하는 상대는 하나뿐이었다.

과거 그녀가 모시던 주인.

즉, 이젤리아 황후.

아기의 청보라색 눈동자가 보석보다 반짝였다.

그 어머니를 빼닮은 눈빛.

다브네스 후작 부인의 얼굴에 열패감이 떠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