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5. 메인 퀘스트 : 아빠 함락 (05)
***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 얼음 같은 황제가, 1년 전부터 아예 속이 텅 빈 밀랍 인형처럼 살던 황제가, 어린 딸의 쓰담쓰담을 순순히 받고 있었다.
입가에는 정말 오랜만에 보이는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쟐 머거써여.”
그리고 다섯 대의 트롤리 부대가 싣고 온 음식 그릇들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황당하지만 분명 저 많은 양이 황제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 짧은 사이에.
시종장이 감격한 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폐하께서 정상 식사량을 회복하시다니…….”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황제의 측근은 아니었지만, 한때 황후의 측근 중 한 명이었으므로.
이젤리아 황후는 정무에 집중하느라 끼니를 거르는 남편을 위해 식사를 직접 챙기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황제는 엄청난 양을 먹어 치우곤 했다.
황제가 늘 그러는 건 아니었다.
공식적인 만찬 등의 자리에서는 딱히 일반인과 차이가 없었다.
다만 가장 믿을 수 있고 사랑하는 이들, 가족들의 앞에서는 달라졌다.
황제를 어린 시절부터 모셔 온 시종장이 언젠가 중얼거리는 걸 들은 기억이 있었다.
“부황과 모후의 앞에서도 보이지 않던 모습이신데…….”
그 모습이, 다시 재현되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볼이 통통한 아기의 눈 색은, 다브네스 후작 부인이 잘 아는 누군가를 닮아 있었다.
이젤리아 황후를 그대로 빼닮은 청보라색 눈동자.
다시금 과거의 망령이 나타난 기분이다.
그녀는 늘 저 눈빛 앞에서 위축되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황후는 자애로우면서도 엄격하기가 칼날 같은 사람이었다.
본인의 능력도, 그래서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도 높은 사람.
아마도 다브네스 후작 부인이 제국의 명문가 출신이 아니었다면 부시녀장 자리까지 오르지 못했으리라.
시녀장 자리에는 황후가 자신의 본국 하스티아에서 데려온 이를 앉혔지만, 내궁 전부를 하스티아인으로 채울 수는 없었다.
이곳은 루스템 제국.
그러니 당연히 제국인 출신의 측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등용된 이가 바로 다브네스 후작 부인이었다.
정치적인 배려로 그 자리에 올랐음에도,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황후가 만족할 만큼의 능력을 보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황후가 화를 내거나 따돌린 건 아니었다.
늘, 작게 한숨 쉬며 이렇게 말했을 뿐.
“다음에는 주의하도록.”
그때마다 그녀는 깊이 허리 숙이며 비참함에 몸을 떨어야 했다.
잔잔한 지적이 곧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견제할 가치도 없는 반푼이 주제에 능력도 모자라다니.’
하지만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이를 티 내지 않았다. 다만 인내했다.
덕분에 황후는 다브네스 후작 부인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끝까지.
마지막에는 간곡히 부탁하기까지 했다.
“아이들을 잘 부탁하네. 둘 다 너무 어려.”
‘멍청한 여자. 일이 왜 그렇게 된 건지도 알지 못하면서.’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남몰래 황후를 비웃었더랬다.
결국 이긴 건 자신이었다.
그랬다. 그랬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광경은 그때의 승리감을 비웃고 있었다.
황제는 1년이 넘도록 황후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텅 빈 인형처럼 살 정도로.
그녀가 필사적으로 곁을 맴돌아도,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귀찮은 하루살이보다도 못한 대우였다.
그리고 지금은, 백치인 줄 알고 신경도 쓰지 않았던 아기 황녀가 보란 듯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
제 모친을 그대로 닮은 청보라색 눈동자로.
***
화기애애하고 배부른 식사 시간이 끝난 뒤.
시종들은 깨끗하게 빈 그릇을 들고 즐겁게 돌아갔다.
집무실 밖을 기웃거리던 아까 그 이상한 아줌마도 얌전히 사라졌다.
그 결과, 지금 방 안에는 나와 아빠, 오빠, 그리고 시종장 할아버지, 유모만 남아 있었다.
눈치가 아주 좋은 할아버지는 아빠의 앞에 진한 커피를, 오빠에게는 밀크티를, 내 앞에는 꿀을 넣은 우유를 놔주고 사라졌다.
시종장 할아버지와 함께 유모도 끌려 나갔기에, 이제 우리 가족만이 남아 있었다.
가족 티타임!
환생 이후 처음 있는 상황이다.
“…….”
“…….”
“…….”
어색한 침묵이 우리 가족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나는 탁자에 앉은 아빠와 맞은편 가장 먼 벽에 기대 있는 오빠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그리고 일단 아빠 쪽으로 먼저 날아갔다.
“압빠.”
“…….”
아빠는 이번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환생 초기와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여 주었다.
내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시선을 피하기만 하더니, 지금은 바로 눈을 맞춰 왔다.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묻기로 했다.
“애 우리룰 피하쎄여?”
(왜 우리를 피하세요?)
“…….”
내 질문에 등 뒤에서 오빠가 작게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만해. 리샤.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어. 너만 상처받아.”
오빠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나를 안아서 데리고 가려 했다.
하지만 나는 포롱 날아올라 오빠의 손을 피했다.
그러자 오빠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
오빠 손을 피한 건 난데, 왜 아빠를 노려보지.
“압빠 대댭 드러봐야지.”
하지만 오빠는 버럭 화를 내기만 했다.
“들을 필요 없어!”
그리고 다시 내게 손을 뻗었다.
어딘지 모르게 간절한 태도였다.
“오빠랑 가자, 리샤. 응?”
하지만 나는 오빠가 바라는 대로 해 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아빠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하니까.
“어빠, 이딴…….”
(오빠 일단…….)
내가 오빠를 달래려 할 때였다.
푹 고개를 숙이고 있던 오빠가 머리를 들었다. 눈가가 빨갰다.
진심으로 상처받은 아이의 눈빛과 표정.
“너도… 너도 날 버리려는 거지…….”
물기 어린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리샤 미워!”
이렇게 외치며 오빠가 달려 나갔다.
와장창!
창문을 박살 내고 테라스로 바로 뛰어내렸다.
“어빠?”
여기 3층인데?
황당함과 걱정이 범벅이 되어 내다보는데, 다행히 오빠는 멀쩡하게 달려서 정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 하긴 지금 이미 마력 양은 S급 헌터이니 이 정도로 다칠 리가 없지.’
<궁디팡팡> 스킬의 2연속 사용과 내 노력의 대가로, 오빠는 전생에 비해 엄청나게 빠른 성장을 이미 이뤘다.
‘그게 다 누구 덕인데, 이 배은망덕한 꼬마가!’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나는 마음을 넓게 쓰기로 했다.
겨우 일곱 살짜리 어린애였다.
삐진 어린애한테 진지하게 화내서야 쓰나.
하지만……, 그래도 괘씸한 건 괘씸했다.
‘나중에 궁디팡팡… 아니, 등짝 스매싱을 날려 주겠어!’
“어빠 애 져러지?”
(오빠 왜 저러지?)
나의 혼잣말에 대답한 것은 어느새 저 멀리로 사라져 버린 반항아 호적 메이트가 아니라.
“전부 나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압빠?”
아빠는 착잡한 얼굴로 오빠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의 아우라에서 죄책감과 미안함, 슬픔이 더더욱 짙어졌다.
조금 전 내가 노력해서 키운 기쁨은 순식간에 스러졌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묻지 못한 질문을 더욱 구체적으로 꺼냈다.
“암마 때무니에여?”
(엄마 때문이에요?)
아빠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