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6. 메인 퀘스트 : 다시 친해지기 바라 (01)
좋았어. 당연히 받아야지.
나는 얼굴을 비비는 척하면서 수령 버튼을 눌렀다.
또 보상이나 설명에 에러 메시지가 많이 떴다. 중간 과정은 다 생략하고 의미 있는 추가 보상을 바로 받았다.
이번에도 A급 스킬석.
시스템이 정신 차렸구나!
예스!
그리고 스킬석을 사용해서 스킬을 얻었을 때.
‘응? 이게 뭐야?’
난 놀라고 말았다.
[스킬 명 : <화해의 의자>(A급)]
[설명 : 사이가 틀어진 친구들은 서로 함께 시간을 보내야 화해할 수 있습니다. 사이좋게 마주 앉아 손을 잡고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스킬 발동 조건 : 곁에 앉아 서로 손을 잡아야 함]
[효과 : 30분 동안 친밀도 30% up!]
“…….”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
“리샤, 미워!”
루퍼스리안은 그 소리를 입 밖에 내자마자 후회했다.
절대 진심일 리 없었다. 그가 하나뿐인 동생을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게 가능할 리 없다.
하지만…… 삐진 건 사실이었다.
아나트리샤가 처음 “압빠하테 가쟈!”를 외칠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그들을 무시하고 버린 아빠에게 먼저 다가가려는 동생이 걱정되었다.
동생이 상처받을까 봐.
그리고 다음으로 울컥울컥 치솟는 감정은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만일 정말로 폐하가 리샤는 받아들여 주면……, 그러면…….’
다행인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가슴에서 뭔가가 울컥거리고, 눈가가 뜨끈거리는 걸 참기 힘들었다.
적어도 동생만은 아버지의 애정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다행이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기뻐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루스템의 혈통답게 조숙하다고 해도, 그는 아직 겨우 일곱 살짜리 소년이었다.
‘그럼 나는……?’
자신을 외면한 아버지가 여동생은 받아들여 준다면?
그렇다면 결국 진짜 문제는 자신에게 있었던 게 아닐까.
동생은, 리샤는 충분히 사랑받을 만했다.
그 어린 나이에 오빠를 구해 주고 아빠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였다.
누구라도 아나트리샤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나는 아니지만…….’
루퍼스리안은 어머니를 잃은 이후 가족은 자신과 여동생뿐이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당시엔 비록 말도 못 알아듣고 늘 잠만 자는 여동생이었지만, 존재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웃을 수 있었다.
황제는 지금은 원망하고 싫지만, 한때는 정말로 존경하고 사랑하던 아버지다.
그들은 아마도 모두가 감탄할 정도로 사이좋은 부녀가 될 것이다.
루퍼스리안만 거기서 밀려나 있을 뿐.
‘내가 나쁜 애라서,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애라서 그런 걸까?’
자책에 가까운 우울함에 빠진 채 루퍼스리안은 천천히 황자궁으로 돌아왔다.
기세 좋게 달려 나왔지만 달리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황자궁의 완전히 바뀐 상황이 그를 맞이했다.
분명히 루퍼스리안이 사람을 다 쫓아내 텅 빈 궁이었다.
게다가 최근에 있었던 폭주 때문에 큰 홀의 지붕이 날아가고 벽도 무너졌었다. 물론 이 손상이 겨우 며칠 사이에 회복된 건 아니다.
다만, 궁 전체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아, 황자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어서 부시종장님께 말씀을……!”
시종장에게 말해서 전부 쫓아내기 전의 황자궁 궁인들과는 아예 달랐다.
그들은 빠릿빠릿하고 절도 있는 태도로, 일을 멈추고 일렬로 늘어서 주인을 맞이했다.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시종들 사이에서 빠르게 나타난 이는 루퍼스리안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카렐만?”
“예, 전하.”
카렐만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본궁의 부시종장이?”
“폐하의 명이십니다. 황자궁의 시종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황제 휘하의 시종장과 황후 휘하의 시녀장은 황궁의 살림을 관장한다.
그리고 각 황자녀들에게는 개별 궁의 궁인들을 통솔하는 시녀장이나 시종장이 존재했다.
황자궁에는 루퍼스리안이 태어났을 때부터 모시던 시녀장이 있었지만, 약 1년 5개월 전에 급사했고.
그 뒤로 새로 온 시종장은 벌을 받고 쫓겨나 현재 공석인 상황.
이 빈자리에 황제가 본궁의 부시종장을 보냈다는 소리였다.
루퍼스리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
나는 아빠의 바짓자락을 잡고 쫑쫑쫑 걸어가면서 또 궁금하던 걸 물었다.
“압빠. 헉시 나랑 어빠 구해져써여?”
(아빠. 혹시 나랑 오빠 구해줬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폭주 때 의식을 잃고 사흘인가 나흘 만에 깨어난 오전.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몸 상태가 너무 좋았다. 회복도 지나치게 빨랐고.
오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오빠가 나보다 나이가 많고 몸도 건강하다지만, 일곱 살짜리가 마력 폭주를 겪었는데 그렇게 빨리 회복하다니.
말도 안 된다.
‘누구의 도움이 없다면 말이야.’
그리고 오빠의 마력 폭주 때 의식을 잃기 전에 어떤 광경을 봤던 것 같아서기도 했다.
쏟아지는 태양석의 빛 가운데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분명히 사람 그림자였다.
혹시 아빠가 우리에게 달려온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물어본 거다.
“그야 압빠는 리샤랑 어빠를 샤랑하니까!”
“…….”
그리고 난 내 예상이 맞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아빠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던 것이다.
이건 아빠의 버릇이었다.
“부끄러우면 꼭 귀 끝만 빨개졌단다. 귀엽지 않니?”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아빠를 추억하곤 하셨다.
아, 엄마 보고 싶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오빠 놈에게 이 말 처음 꺼냈다가, 그때 내 궁에 하루 동안 안 왔었어서 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압빠, 암마 구림 이써여? 보고시푸다.”
(아빠. 엄마 초상화 있어요? 보고 싶다.)
황후였으니까 엄마를 그린 그림 정도는 많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엄마가 없어도 흔적이라도 보고 싶었다.
‘물론 제일 큰 흔적은 나랑 오빠지만.’
하지만 내가 말을 잘못 꺼냈다는 걸, 곧 알 수 있었다.
아빠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슬픔에 잠겨 버렸던 것이다. 아빠의 아우라가 비에 젖은 수국처럼 아련해졌다.
또, 그거다.
슬픔, 그리고 죄책감.
‘역시 엄마 일이 아빠랑 오빠에게 모두 상처인 모양이네.’
당연했다.
전생에도 아빠의 이른 죽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상처였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애써 웃으며 말을 돌렸다.
“압빠! 바라포요!”
(아빠! 발 아파요!)
발이 아프다며 엄살을 부리자 아빠는 나를 폭 안아 올렸다.
그리고 황자궁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몰래 황자궁으로 따라왔다가 의외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어서 꺼지지 못해?!”
루퍼스리안이 역정을 내는 광경을.
그 분노를 받아내고 있는 이는 본궁의 부시종장 카렐만이었다. 그는 황자의 분노에도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폐하의 명이십니다. 전하.”
루퍼스리안의 대답은 신랄했다.
“지금까지 방치해 놓고서는 이제 와서? 늦게라도 마력을 각성했으니 챙기긴 해야겠다고 하셨나?”
“전하.”
카렐만은 안타까운 얼굴로 어린 황자를 설득하려 노력했다.
황자의 분노는 타당한 면이 있었다.
그동안 황자가 부친에게 얼마나 상처받아 왔는지 모르는 이는 황궁에 없었으므로.
“폐하께서는 전하를 걱정하셔서…….”
“시끄러워!”
루퍼스리안에게서 강력한 마력의 기운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제일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어서 꺼지지 못해?”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기민하게 머리를 움직였다.
‘황제가 카렐만을 황자궁으로 보냈다는 건, 후계로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는 의미일 가능성이 커.’
카렐만은 시종장 웨인 백작 다음가는 최측근이었으므로.
황녀가 태양석을 더욱 강하게 빛나게 하긴 했지만, 아직 미래는 모른다.
게다가 황자가 황녀보다 다섯 살 연상.
황위 계승 경쟁에서 이 정도 나이 차이는 상당히 유의미한 격차였다.
게다가, 조금 전 분명히 듣지 않았나.
“리샤 미워!”
동생과 황제에게 단단히 마음이 상한 듯 보였다.
한번 틈이 생기면 그걸 벌리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는 그동안 거의 버려지다시피 홀로 지내 온 황자다.
외로운 어린아이를 구슬리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특히나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황자가 틀림없이 그리워할 이를 아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녀’를 흉내 내어 황자를 손에 넣는다면…….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자신이 잘 기억하는 미소를 따라 그리며 카렐만과 황자 사이에 끼어들었다.
“부시종장. 전하께서 명령하시지 않으셨나요. 황족의 명에 복종하는 건 시종의 의무가 아닙니까. 설마, 전하를 무시하시려는 건 아니죠?”
다브네스 후작 부인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황자와 카렐만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였다.
루퍼스리안의 눈이 놀람으로 커졌다.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리운 사람이 떠오르겠지.’
루퍼스리안의 표정이 차게 굳었다. 얼음보다도 차갑게.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몰랐지만, 이는 대놓고 분노하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것보다 더한 반응이었다.
소년은 잠시 침묵하다가 차디찬 목소리로 물었다.
“왜 네가 어머니의 옷을 입고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