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6. 메인 퀘스트 : 다시 친해지기 바라 (05)
***
“우와악! 이거 놔!”
뛰어 봤자 벼룩, 아니, 오빠였다.
아무리 오빠가 S급에 해당하는 마력을 갖고 있어도 겨우 일곱 살배기다.
성인 S급 능력자에겐 도망가는 오빠를 잡아채서 옆구리에 끼고 끌고 가는 건 어린애 손목 비틀기만큼 쉬운 일이었다.
나는 헤벌쭉 웃으며 아빠에게 말했다.
“요오기요!”
한적해 보이는 방을 골라서 가리키자, 아빠는 우리를 안고 그 방으로 들어갔다.
탁.
문이 닫히고 아빠는 발버둥 치던 오빠를 겨우 놓아주었다.
“이익!”
오빠는 다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꿍! 데굴데굴…….
다시 창문을 깨고 도망치려던 오빠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아빠가 결계를 넓혀서 방 전체를 감쌌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빠는 결계 벽에 머리를 찧고 그대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바버.”
내가 한숨을 쉬자, 오빠는 발딱 일어나서 외쳤다.
“리샤! 이게 무슨 짓이야!”
내가 자기를 배신하기라도 한 것처럼 바락바락 대들고 있었다.
나는 헤벌쭉 웃었다. 그리고 오빠가 아까 했던 열정적인 고백을 그대로 읊어 주었다.
“낭 리샤만 이쑤면 츙부네!”
(난 리샤만 있으면 충분해!)
그러자 오빠의 얼굴이 홍시보다 빨갛게 익어 버렸다.
“우아악!”
나는 조가비 같은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후후후 웃었다.
“욕시 ‘리샤 미어.’눈 징싱이 아니어떤 고야.”
(역시 ‘리샤 미워.’는 진심이 아니었던 거야.)
그러자 고통스러워하던 오빠는 바락 외쳤다.
“아냐! 아니라고!”
“……징짜?”
이번에는 표정을 샥 바꿨다.
조금 전 아빠가 유리창을 살해하고 오빠를 산 채로 잡아 오도록 만든 필살기를, 다시 한 번.
촉촉해진 눈을 들어 오빠를 보면서 시무룩하니 물었다.
“징짜야? 어빠 이제 리샤 시러?”
“……어. 그게…….”
오빠가 그대로 굳었다.
나는 크리티컬 히트를 먹였다.
“리샤누운…… 어빠 죠은데…어빠가 리샤 시러도오….”
그대로 아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열심히 아빠의 가슴팍 옷자락에 침칠하면서, 가짜로 훌쩍거렸다.
누가 봐도 우는 걸로 보이도록.
그러자 등 뒤에서 “어, 어,” 하고 더듬거리던 오빠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아냐! 리샤! 나도 리샤 좋아! 오빠가 리샤 싫어할 리가 없잖아!”
나는 아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문대며 사악한 미소를 감췄다.
‘계획대로!’
***
난데없는 격렬한 추격전이 끝나고.
겨우 오빠가 안 도망가겠다고 약속한 뒤, 내 허락하에 아빠가 결계를 풀어 주었다.
빠르게 우리를 쫓아온 궁인들이 결계 밖에서 곤란해하다가 우리 셋을 보고 안도했다.
물론 유모까지도 전부 곧 방 밖으로 쫓겨났다.
내가 “가조끼리 햘 마리 이쓰니까!”라고 일갈했기 때문이다.
엘제와 시녀들, 본궁의 시종들은 곁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나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겨우 조용한 삼자대면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
“…….”
“…….”
하지만 어색한 침묵이 응접실 안을 짓눌렀다.
나는 아빠랑 오빠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오빠는 화가 나고 상처받은 티가 팍팍 나는 표정이었고.
아빠는 미안함과 슬픔, 그리고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둘 다 먼저 입을 여는 타입이 아니라, 어색한 침묵만 열심히 쌓아올리는 중이다. 에베레스트라도 쌓아올릴 기세다.
게다가 둘 다 서로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다.
정확히는 힐끔힐끔 서로 훔쳐보는데, 매번 타이밍이 어긋나고 있었다.
‘무슨 아침 드라마도 아니고!’
그 상태로 10분.
이대론 안 되겠어. 이러다가 내가 목 막혀 죽겠어.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나섰다.
“어빠.”
내가 손을 내밀자, 오빠는 순순히 손을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압빠.”
다른 손을 내밀자, 아빠 역시 착하게 손을 내주었다.
양손에 아빠와 오빠의 손을 잡고서 나는 히죽 웃었다.
‘나한테는 비장의 한 수가 있지!’
그리고 내 양손을 겹쳤다. 당연히 저절로 두 사람의 손도 겹쳐졌다.
아빠랑 오빠 얼굴에 동시에 ‘!’가 떴다.
오빠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지만.
내가 눈을 부라리자 감히 손을 빼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턱짓을 했다.
나란히 놓여 있는 두 개의 의자를.
“요기는 압빠자리, 요기 여페는 어빠자리.”
나는 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안쟈! 듈댜! 안 안즈명 리샤가 미오할꼬야!”
털썩. 아빠는 바로 앉았다.
“…….”
잠시 무의미한 저항 후.
털썩. 오빠도 항복했다.
내가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가 띠롱띠롱 떠올랐다.
[스킬 <화해의 의자(A급)> 적용 가능 대상입니다.]
[적용하시겠습니까?]
당연히 YES지!
***
[효과 ‘친밀도 30% up’이 적용 중입니다. (15분/30분)]
[*효과가 적용되는 동안 현재의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빠랑 오빠가 서로 손잡고 옆자리에 앉아 있어야 이 효과가 유지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눈을 부라리고 두 사람이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감시했다.
사실 아빠는 저항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기뻐 보였다.
의미 없는 반항을 시도하는 중인 건 오빠뿐. 그래서 나의 감시는 오빠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어헝. 오디서 미숀 빼기얌!”
(어허. 어디서 밑손 빼기야!)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여?
내 호통에 아빠와 잡은 손을 슬쩍 빼려던 오빠는 다시 손을 집어넣었다.
“엉디 댜시 너! 댜리셔 힘 뺴!”
(엉덩이 다시 넣어! 다리에서 힘 빼!)
슬금슬금 엉덩이를 빼고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힘주는 게 다 보였다.
일일이 지적하니까 결국 다시 털썩 앉는다.
엄마가 닮게 낳아주셔서 그나마 괜찮게 생긴 얼굴을 다 구기고 있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이뿐 얼구 다 꾸겨져써! 펴!”
내 호통에 이번에는 조금 기분이 좋은지 살짝 웃는다.
곧 옆에 있는 아빠를 보고 다시 굳기는 했지만.
[효과 ‘친밀도 30% up’이 적용 중입니다.(10분/30분)]
“훔.”
친밀도 업 효과 메시지가 떠 있긴 한데.
어느 정도로 친밀도가 올라가고 있는지 바로 확인이 안 되니 짜증 났다.
‘좀 시각적으로 팍팍 보여 줄 수 없나? 그러니까…… 게임 호감도 같은 거로 말이야.’
그때였다. 시스템 메시지가 삐롱삐롱 반응했다.
[스킬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A급)> 사용 시 대상의 호감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적용하시겠습니까?]
오?
……근데 적용되는 거면 진작 알아서 적용해줘야지 말이야! 어?
내가 생각을 떠올려야 적용되다니, 시스템 주제에 게을러!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스킬을 사용했다. 즉, 아빠에게 윙크했다.
그러자 아빠는 행복하게 웃더니, 똑같이 나에게 윙크해 주었다.
옆에서 오빠가 충격받은 표정을 했다. 대충 ‘나한테만 안 해 줬어!’ 이런 느낌인 거 같다.
쫌만 기다려. 어차피 오빠도 확인해야 한다고.
[대상: 카스톨트 루스템. 정보 분석 중….]
‘기본 정보는 생략하고 호감도만 띄워!’
내 주문이 먹혔는지 바로 호감도가 떴다.
[호감도(→아나트리샤): ♥♥♥♥♥…(갱신중)]
오. 하트 개수로 표시해 주는 건가? 근데… 뭔가 이상했다.
[……♥♥♥♥♥♥♥♥♥♥♥♥♥♥♥♥♥♥♥♥♥♥♥♥♥♥♥♥♥♥♥♥♥……(갱신중)]
“웅?”
[System Error! 현재 시스템으로 추산이 불가능합니다. 임의로 표시합니다…….]
이게 뭐야? 내가 벙쪄 있는 동안 시스템이 추산을 완료했다.
[호감도(→아나트리샤): ♥ x ∞ (무한대)]
“…….”
뭐, 뭔가 오류가 아닐까.
난 오빠에게도 스킬을 써 봤다. 윙크. 그리고 기본 정보는 생략하고 호감도만 띄워서.
[호감도(→아나트리샤): ♥ x ∞ (무한대)]
“…….”
음. 흠. 크흠.
이건 기쁘지 않냐면 기쁘지 않은 건 또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다가 싶기도 하고.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그제야 떠올랐다.
아, 나에 대한 호감도가 문제가 아니잖아!
두 사람 사이의 호감도가, 특히 오빠가 아빠에게 가진 호감도가 문제지!
그걸로 띄워!
그러자 시스템이 정신을 차렸는지 재빠르게 호감도를 표시해 주었다.
일단, 아빠는.
[호감도(→루퍼스리안): ♥ x ∞ (무한대)]
그리고 오빠는.
[호감도(→카스톨트): ♥♡♡♡♡♡♡♡♡♡♡♡♡♡♡♡♡♡♡♡♡♡♡♡♡♡♡♡♡♡♡……]
뭐야? 왜 하트가 비어 있…?
그때 오빠의 아빠에 대한 호감도가 변화를 일으켰다.
아주 미미하지만.
하트 하나가 꾸물꾸물 색깔이 차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하아안참이 지나서야 ‘♥♥’ 이렇게 두 개의 하트가 되었다.
여전히 나머지는 텅 빈 하트.
그제야 난 깨달았다. 저 빈 하트의 의미를.
‘하트가 빈 거, 설마 호감도를 까먹은 거 표시인 거야?’
빈 하트 개수를 대략적으로 헤아려 보았더니.
‘33개…….’
저걸 다 채워야 옛날 아빠와 오빠의 관계가 회복되는 건가. 설마.
나는 끼익거리는 고개를 돌려 스킬 효과의 남은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4분/30분)]
스킬은 사용 횟수 제한이 있었다.
하루 한 번.
그러니까…… 저 하트를 다 채우려면 한 달이 넘게 걸린다는 소리다.
“…….”
으아악! 속 터져! 절대 못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