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40/218)

Level 6. 메인 퀘스트 : 다시 친해지기 바라 (06)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1년 반 동안 아빠가 꾸준히 오빠에게 잘못해서 까먹은 호감도다. 

그걸 다시 채우려면 최소 1년은 걸리는 게 정상이긴 했다.

한 달 만에 채우는 건 차라리 빠르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거 기다리다간 내가 속 터져서 죽겠다!’

나는 목 막히는 고구마가 있으면 사이다랑 같이 갈아서 원샷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니까.

남은 스킬 제한 시간은 4분.

그 짧은 시간 안에 오빠의 하트를 전부 채워 놓는 건 무리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뭔가 진전은 시켜놔야겠어!

그래야 속이 좀 덜 터지지!

내가 속 터져 하고 궁리하는 도중에 오빠는 다시 밑손 빼기를 시전했다.

스윽.

나는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빠르게 날아가 슬쩍 빠지려는 오빠의 손을 잡아챘다.

턱!

“미숀 빼기 해지 말래찌!”

(밑손 빼기 하지 말랬지!)

오빠의 고개가 푹 수그러졌고, 나는 크게 외쳤다.

“아꺄 리샤가 함말 들어써? 몬 들어써?!”

(아까 내가 한 말 들었어, 못 들었어?!)

모기 소리 같은 오빠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들었……습니다.”

“리샤가 어빠 미어해듀 대?!”

“아니요!”

오빠의 어깨가 바짝 굳었다. 2회 차 시작한 뒤로 쭉 빠졌던 군기가 팍 들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오빠의 눈앞에서 뱅뱅 돌았다.

“구럼 어케 햬야대지?”

오빠는 고개를 다시 푹 숙였다.

“잘못했습니다…….”

“댸신 셰셰셰 시걍 시뿐 연장.”

(대신 쎄쎄쎄 시간 10분 연장.)

“리샤!”

오빠가 항의하는 듯 반항적인 눈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일단 아빠 옆에 붙어 있어야 화해를 시킬 거 아냐!’

스킬 효과가 아니라도 일단 거리가 가까워야 뭐가 될 거 아닌가.

오빠를 잡아놓았으니, 이제 아빠 차례였다.

“압빠.”

“그래. 아가.”

아빠가 부르는 내 애칭을 듣고 짜증 가득한 표정의 오빠와 달리, 아빠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비공식 전세계 남성 헌터 미모 1위를 생전에도 이후에도 꽤 오래 유지했던 아빠다웠다.

거기에 왠지 모를 가련함과 아련함, 처연함이 더해진 데다, 나와 오빠에게만 보여 주는 부드럽고 다정한 미소까지 함께하니…….

‘역시 우리 아빠. 얼굴 최고!’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감탄하고 했을 때가 아니다.

헤헤 풀어지려는 얼굴 근육을 단단하게 붙잡고 물었다.

“햘 먈 엄써여?”

나에게가 아니라 오빠에게 할 말이 없냐는 의미다. 나랑은 아까 이야기 끝났으니까.

아빠는 서글픈 미소를 띤 채, 오빠를 잠시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니. 입이 있어도 말할 자격이…….”

우아악!

고구마! 울 아빠 성격이 이렇게 고구마였다니!

결국 참지 못하고 빽 외쳤다.

“먀로 앙 하믄 마우믄 져녜지지 아나여!”

(말로 안 하면 마음은 전해지지 않아요!)

내 호통에 아빠의 파란 눈이 커졌다. 오빠랑 꼭 닮은 사파이어 빛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이건 전생에 아빠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어린 나와 오빠가 꽤 심하게 싸웠을 때.

내가 좀 실수를 해서,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오빠가 좀 진지하게 화났었다.

그때 난 더 화를 내며 아빠에게 푸념했었다.

“아니! 내가 실수 했다고 미안한 티를 팍팍 냈잖아요! 오빠도 다 알았으면서. 그러면 화 좀 풀어도 되는 거 아니에요?”

난 그때 아빠가 내 편을 들어줄 줄 알았다.

왜냐면 난 천상천하 유아독존 수준으로 귀여움 받는 막내딸이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미안해하는 마음을 가진 것만으로도, 오빠가 마음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서나야. 그건 네 잘못이야.”

“네?”

“네가 표현을 하지 않았잖니.”

“그치만… 그치만 오빠도 눈치챘을 텐데…….”

“우리 서나는 엄마랑 아빠가 서나를 사랑하는 걸 이미 알고 있지?”

“당연하죠.”

“서나가 알고 있으니까 아빠가 서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 안 하면, 서나는 기분이 어떻겠어?”

“……으음. 슬프고, 화나고…… 그냥 안 놔둘 것 같아요.”

“……응?”

아, 이 부분은 아니고.

불필요한 부분은 스킵하자.

“오빠에게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로 사과부터 해야지. 서나가 미안해하는 걸 알고 있다고 해도, 서나가 표현해 주지 않으면 서운이의 서운함은 풀리지 않아.”

아빠는 다정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해 주셨다.

“말로 하지 않으면 마음은 전해지지 않아.”

지금의 오빠도, 그때의 오빠와 같았다.

저 서운함 가득한 표정 안에는 숨겨진 기대감이 분명히 있었다.

왜 시스템이 보여 준 오빠의 호감도가 마이너스 하트 표시가 아니라 빈 하트였는지도 알겠다.

그건 서운함의 표시였던 거다. 사랑하고 존경했던 만큼, 남은 상처의 흔적.

나는 전생에 아빠에게 배운 그대로 이번에는 아빠에게 가르쳐 주었다.

아빠 옆으로 뾰롱뾰롱 날아가서 등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쟈. 쟐머타면 어떠케 해야져?”

(자아. 잘못하면 어떻게 해야죠?)

아빠는 착한 학생처럼 대답했다.

“사과.”

“자래써여. 차카다. 차카다.”

나는 아빠의 머리를 쓰담쓰담해 주었다.

그리고 마력을 실어 아빠를 오빠 방향으로 밀었다.

아빠는 아주 순한 양처럼 내 손길을 따라 오빠의 앞으로 갔다.

덕분에 의자에서 일어나 버려, <화해의 의자> 스킬이 꺼졌지만 상관없었다.

스킬 효과보다 마음을 전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오빠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진다.

아빠는 잠시 망설였다. 지금까지처럼 자신에게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어떤 표현이 나을지 고르는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빠의 입이 열렸다.

“미안하다, 루퍼스.”

“…….”

“전부 내 잘못이다. 너희의 어머니 일도……,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 너와 리샤를 방치한 건 정말로…… 어떻게 사과해야 좋을지 알 수 없을 정도구나.”

오빠의 눈가가 붉어졌다. 작은 입을 앙다무는 게 보였다.

전생 25년 + α 호적 메이트의 경험으로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저건 안 울려고 참는 얼굴이다!’

승리의 냄새가 났다.

“……사실 내겐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단다. 더는 행복해질 자격이. 그래서 너희를 피했지.”

아빠는 조금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변명으로 들릴까 봐.

“너희들이 곁에 있으면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고, 손을 뻗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최대한 조심해서 말을 고르고 있었다.

“너희가 내게 남은 행복의 전부라, 나에게 과분하다 여겼단다.”

오빠의 눈가가 더욱 새빨개졌다. 약간 촉촉해 보이는데 착각일까?

“잘못된 생각이었지. 리샤가 알려 주어서 깨달았단다. 내가 죄인이라… 너희 곁에 있을 자격이 없다 생각했는데.

“…….”

“내 생각만으로 너희에게까지 상처를 주면서, 내 잘못을 강요하고 있었다는 걸.”

아빠는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그러자 의자에 앉아 있는 오빠와 시선이 거의 비슷하게 맞았다.

“더는 같은 잘못은 하지 않으려고 한단다.”

오빠의 입술이 몇 번이나 달싹였다. 겨우 말문이 트였을 때, 오빠의 목소리는 다 쉬어 있었다.

“……용서, 해달라는 거예요?”

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떻게 감히 용서해달라고 할까.”

“그러, 면…?”

“내가 할 수 있는 걸 전부 하려고 한단다. 네가 입은 상처가 나을 수 있다면, 뭐든.”

툭툭. 아빠의 손 위로 맑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빠는 다시 한 번 반복하며 조심스레 오빠의 손을 잡았다.

“미안하다, 루퍼스.”

이번에도 몇 번을 달싹거리다가 겨우 오빠의 말이 우르르 터져 나왔다.

발음이 다 이지러지고 물기 가득한 목소리.

“내가… 펴응생 영서, 아니, 용서 안 하면…… 그러면, 크흥!”

이번에 오빠는 아빠의 손을 쳐내지 않았다.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말렴. 그래도 된다. 아빠는 그래도 싸니까.”

아빠가 조심조심 오빠를 끌어안았다.

오빠는 이번에도 아빠를 쳐내지 않았다.

다만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내가, 내가 얼마나……! 으허엉!”

오빠는 아빠의 품에 안겨서 목 놓아서 울었다.

알아듣기 힘든 발음이지만 원망하는 말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아빠는 그런 오빠를 끌어안고 조용히 다독여 주었다. 가슴팍의 옷깃이 푹 젖을 때까지.

잠시 흐뭇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도 뾰롱 하고 날아갔다. 

그래서 짤따란 두 팔로 오빠와 아빠를 함께 끌어안았다.

그러자 아빠와 오빠의 팔이 나를 마주 안아 주었다.

2회 차 인생이 시작된 지 이제 반년.

드디어 처음으로 가족이 한데 모여 끌어안을 수 있었다.

“에헤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조금 났다. 당연히 기쁨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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