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7. 서브 퀘스트 : 행복한 일상 (01)
아빠와 오빠가 화해한 뒤부터는 그야말로 불행 끝 행복 시작이었다.
우선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일어났구나. 아가.”
“나도 있어. 리샤.”
눈을 뜨자마자 아빠와 오빠가 보였다.
내가 깨는 걸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빠는 나를 직접 세수시켜 주고.
“자, 흥하자. 리샤.”
“훙!”
오늘 입을 옷은 늘 그렇듯 엘제와 시녀들의 픽이었다.
나비 날개처럼 얇고 하늘거리는 옷감으로 만들어진 연하늘색 원피스.
아빠와 오빠는 여기도 끼어들고 싶어 하는 듯했다.
“재봉사들을 불러들여서…….”
“리샤의 귀여움을 더 살리려면 좀 더 솜씨 좋은 이들이…….”
하지만 두 사람의 시도는 빠르게 진압되었다.
셀리나가 고개를 숙이며 고했고.
“하스티아에서 온 선물입니다.”
내가 환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꺄륵! 이뽀!”
유모랑 시녀 언니들이 골라 준 건데 마음이 상하지 않길 바라서였다.
오빠와 아빠는 빠르게 태세를 변환했다.
“우리 아가와 아주 잘 어울리는 색이군.”
“맞습니다. 리샤의 귀여움을 더욱 배가시켜 주는군요.”
그다음으로 아빠는 직접 내 짧은 머리를 솜씨 좋게 묶어 주셨다.
아빠가 내 머리를 묶어 주겠다고 했을 때는 놀랐는데, 꽤 벼르고 오신 모양이다.
시종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커다란 비로드 상자 세 개를 열어 보였다.
휘황찬란한 보석과, 섬세한 금은세공, 각색의 공단 리본 등등. 온갖 머리 장식이 세 상자에 꽉 차 있었다.
시종장 할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황녀님이 태어나시기도 전에 미리 준비해 두셨던 겁니다. 이제야 쓸 수 있게 되었군요.”
그 말에 저항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냉큼 아빠의 무릎에 앉아 손길을 받아들였다.
오빠는 내내 옆에서 어쩐지 분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아빠가 어떻게 내 머리를 묶어주는지를 관찰하는 그 눈매가 꽤나 매서웠다.
중얼거리는 걸 듣고 있자니 머릿결을 어떤 방향으로 빗는지, 매듭의 방향까지 전부 계산하면서 기억해 두려고 하고 있었다.
“좋아. 전부 숙지했다. 다음에는 꼭 내가 하고 말겠어.”
아니, 왜 머리 묶어 주는 데에 집착하는 건데.
그 옆에서 유모와 시녀 언니들이 흐뭇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세 분이 이렇게 오붓하고 다정하시니 정말 다행입니다. 꿈만 같네요.”
“하지만…, 원래 황녀님 단장은 우리 몫이었는데…….”
“못하시기라도 하면 말릴 수라도 있을 텐데, 저리 잘하시니.”
어째 모냐는 특히 아쉬워하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옷과 내 머리 담당이 원래 모냐였지.
모냐는 아빠 옆에 붙어서 동글동글하게 모아 묶은 내 머리에 꽂을 자수정과 진주 머리핀을 추천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아빠는 내 앞에 거울을 비춰 주며 물었다.
“마음에 들면 좋겠구나.”
“쬬아여!”
나는 진심 100%를 담아서 외쳤다.
아빠가 직접 묶어 준 머리다. 싫을 수가 없었다.
객관적으로도 꽤나 근사하고 귀여운 머리였다. 잔머리도 아주 예쁘게 정리했다.
이건 꽤 놀라웠다.
‘이번에는 아빠가 황제 일 하느라 바쁠 테니까 이런 건 어설플 줄 알았는데.’
나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체고 이뽀요!”
아빠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때 불현듯 기억이 났다.
전생의 꽤 오래전 추억. 그때도 내 머리 담당은 아빠였다.
아빠는 바쁜 와중에도 심혈을 기울여 매일같이 내 머리를 땋고 묶어 주곤 하셨다.
온갖 머리끈과 리본, 핀을 방 하나에 채워 두고서 말이다.
이런 쪽의 손재주는 엄마보다 아빠가 좋았기 때문에, 아빠가 자리를 비운 티가 내 머리 스타일로 바로바로 나타날 정도였다.
아빠가 있을 때는 온갖 기기묘묘한 머리 스타일로 매일같이 바뀌는데.
엄마만 있을 때는 기본 포니테일로 통일이었으니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오빠가 혼자 연습을 하더니, 반년쯤 뒤부터 내 머리를 묶어 주었다.
오빠도 꽤나 현란한 솜씨를 자랑했는데, 그래도 아빠만은 못했다.
절로 가슴이 말랑말랑해지고 입가가 누그러지는 기억.
매일 아침마다 아빠는 내 머리를 묶어 주고는 꼭 저렇게 웃으셨다.
그리고.
“꼬마 손님. 오늘도 아빠 미용실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용 요금을 주셔야죠. 자아.”
“녜, 뽑뽀!”
아빠가 내 머리를 다 묶어 주고 뺨을 내밀면.
내가 아빠 미용실 이용 요금으로, 뽀뽀를 선사하는 것이 매일 아침의 일상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새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은 울 때가 아니라 웃을 때다.
난 환하게 웃으며 아빠의 뺨에 뽀뽀했다.
쪽!
아빠의 파란 눈이 둥그렇게 커졌다. 그리고 곧 날카로운 눈매가 부드럽게 흐무러졌다.
나는 윙크하며 속삭였다.
“자래쓰니까 샹이에여!”
그러자 오빠가 끼어들었다.
“나는?”
“어빠는 암것두 앙해자나.”
“그럴 리가.”
그러자 오빠는 황자궁 시종장 카렐만을 불렀다.
“가져와.”
겨우 하루 만에 오빠의 수족이 된 듯한 카렐만은 자그마한 상자 십여 개를 펼쳐 놓았다.
“구듀?”
각양각색의 앙증맞은 아기 구두가 상자마다 들어 있었다.
카렐만은 뿌듯한 표정으로 덧붙여 설명했다.
“어제 전하의 명을 받아 수도 곳곳을 뒤져 황녀님의 발 크기에 맞는 신발을 준비했습니다.”
뭐야, 오빠 왜 이렇게 오버해?
두 살짜리 아기한테 신발이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해?
난 나이에 비해서 작고, 마력으로 날아다니느라 많이 걷지도 않는다고.
게다가 엄청 빨리 크고 있어서 금방 못 신게 될 텐데.
내가 멍하니 보고 있자니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급하게 구한 것치고는 나쁘지 않구나.”
오빠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곧 옷과 구두, 액세서리를 제대로 만들게 해야겠지만, 그 전에 임시로 쓸 정도는 되지요.”
분명 오빠랑 아빠랑 화해한 지 겨우 하루째다. 아직도 묘한 긴장감과 서먹함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내 머리와 옷 이야기를 시작하니까 거리감이 눈 녹듯이 없어졌다.
몇 년은 이래 온 것처럼 아주 척하면 척이다.
왜 갑자기 친해졌어?
물론 그게 싫은가 하면 절대 아니지만.
그래서 이 한 몸 날려 가며 두 부자의 친해지길 바라를 장렬하게 찍은 것 아닌가.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 아니야?
내가 얼떨떨해하는 사이 오빠가 십여 개의 구두 중에 하나를 골랐다.
지금 입은 연하늘색 원피스랑 잘 어울리는 진파란색 비단 구두였다.
발볼 가운데 붙어 있는 반짝거리는 보석은 아무리 봐도 최상급 사파이어. 부속 보석도 작긴 하지만 다이아몬드 같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호화롭다.
게다가 디자인은 하얀 레이스와 리본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앙증맞은 것이었다.
지금 몸이 된 뒤로 걸치는 것마다 저 모양이다.
사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빨리 크는 수밖에.
오빠의 초이스에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고.
유모와 시녀들도 환하게 웃으며 “귀여워요!” “잘 어울려요!” 같은 소리를 주워섬겼다.
오빠는 뿌듯한 표정으로 구두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멋들어지게 꿇고는 내게 직접 구두를 신겨 주었다.
그렇게, 나는 아빠의 무릎에 앉아 오빠가 신겨 주는 구두를 신어야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꽤나 귀엽고 흐뭇한 광경일 것이다.
내 껍데기는 두 살짜리 애기니까.
하지만 문제는 알맹이는 25세 +α 라는 거지만.
‘으아악! 오글거려! 내 손발! 살려줘!’
하지만 태클을 걸 수는 없었다.
처음으로 가지는 가족들의 오붓한 시간을 내 손으로 와장창 낼 수가 없으니 별수 있나.
나는 그냥 웃었다.
‘그래. 다들 좋다니 됐다.’
***
이 예상보다 길어진 단장 시간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놀랍게도 아빠도 오빠도 아니었다.
유모 엘제였다.
어째선지 그녀는 커튼 앞에 서서 “큼. 흠”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중요한 클라이언트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영업 사원처럼 말문을 열었다.
극적인 손짓으로 커튼을 확 걷으면서.
“자, 소개하겠습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뒤에서 모냐와 셀리나가 입으로 박자를 맞춰 추임새를 넣었다.
“두구두구두구!”
“짠짠짠잔짠!”
해지 마. 넣어 둬.
짜게 식는 건 나뿐이었다. 역시 이 세계에 정상은 나 하나뿐인 건가.
커튼이 걷히며 드러난 것은 내 몸 크기에 맞춘 토르소였다. 그 토르소에 걸쳐진 것은 옷도 구두도 아니었다.
“오늘의 황녀님을 위한 머리쿵 방지 베개의 컨셉은……! 바로, 파랑새입니다!”
동글동글한 선을 가진 날개 모양 베개였다.
날개 끝으로 갈수록 그러데이션으로 색이 옅어지는 오묘한 푸른색의 날개가 달린 베개.
내가 맬 수 있도록 만들어진 끈은 반들반들한 연하늘색 공단 리본.
댕그란 파란 쿠션이 머리 뒤에 대어져 있었고, 조그마한 은색 왕관이 부리 대신 제일 위쪽에 올려져 있었다.
퀄리티 좋고 귀엽긴…… 했다.
내가 해야 하는 것만 아니면.
‘어째 갈수록 쿠션 질이 좋아진다? 그리고 왜 매일매일 바뀌는 건데?’
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황당했다.
‘아니, 왜 다들 박수 치는 거야? 오빠는 왜 쳐?’
그리고 나는 더욱 헉하고 말았다.
아빠도 내 머리 위에서 두 손을 모아 두드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빠마저!’
나는 결국 모두의 박수를 받으면서 머리쿵 베개를 매고 나서야 겨우 단장을 끝낼 수 있었다.
‘휴. 드디어 끝났네.’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끝은 오지 않았다.
아빠와 오빠는 내가 일어나는 순간부터, 삼시 세끼 식사와 놀이, 산책까지 모든 일을 함께하려 들었다.
처음엔 나도 좋았다. 겨우 되찾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수록 기쁜 건 당연하니까.
하지만 이건 좀 심했다.
왜나면…….
“압빠, 왜 봉궁에 앙가여? 어빠두.”
하루 종일 아빠랑 오빠가 내 궁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