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50/218)

Level 8. 메인 퀘스트 : 가족 사기단 (06)

***

콩나물 대가리가 자청해서 덫으로 뛰어들었을 때.

나는 환호작약했다.

대공 일가를 엮어서 싹 다 패 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나서기 전에 오빠 놈이 급발진해 버렸다.

콩나물 대가리가 오줌싸개인 걸 비웃어 주더니.

“벨론드 대공자가 후계가 되면 제국의 미래는 새카말 텐데.”

“아니, 까매지는 게 아니라 노랗게 물들려나. 노랗고, 축축하게.”

마력으로 압살해 버리기까지 했다.

아니, 물론 오빠 놈이 마력을 잃은 게 아니라는 건 잘 알려 줄 필요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콩나물 대가리를 좀 패 버리고 나서 얘기지!

나는 뚱한 눈으로 오빠 놈을 보았다.

‘이, 이 똥강아지 같은 아빠 아들놈이!’

내 표정을 보고 오빠 놈은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겨우 깨달은 듯 했다.

“리, 리샤? 화났어?”

나는 고개를 꾸닥거렸다.

“그래. 화나써.”

오빠는 진심으로 당황하고 안달복달하며 내게 바싹 붙었다.

“왜, 왜 그래. 리샤? 오빠가 멋진 모습 보여 줬잖아. 오줌싸개 놈도 쓰러뜨렸고.”

그러니까 나한테 잘 보이겠답시고 한 짓인 모양이다.

어째 아빠랑 행동 패턴이 똑같냐.

우리 욕하는 걸 듣고 분노를 참지 못해서 로낭스 후작 부인을 기절시켜 버린 아빠나.

내가 패 버려야 하는데, 멋진 모습 보여 주겠다며 가로채고 직접 패 버린 오빠 놈이나.

나는 분노를 터뜨렸다.

“내가! 내가 빼뻐리꺼연눈데!”

너무 화가 나니 혀짤배기소리가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았다.

그나마 결계 때문에 주변에 소리가 안 새서 다행이지.

오빠랑 아빠의 입가가 실룩거리는 게 보였다.

아빠랑 오빠는 나한테 혼나는 중인데도 멍청한 소리들을 해댔다.

“리샤 혀짤배기소리 너무 귀여워어…….”

“이 소리를 영원히 남기지 못하는 것이 실로 아쉽구나. 대륙 역사에 크나큰 손실이야.”

“그것에만은 저도 동의합니다.”

아니, 뭐 또 이런 거에만 죽이 맞고 있어. 이 바보 부자는.

오빠는 한술 더 떠서 헛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리샤의 귀여운 주먹은 저 노랑바지 놈에게는 너무 아까워.”

이제 콩나물 대가리의 별명은 다방면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오빠는 내 무릎 위에 턱을 올리고는 속삭였다.

“그냥 오빠를 때려 줘. 응?”

그리고 손으로 내 작은 감자 같은 주먹을 쥐더니, 제 머리를 콩콩 두드리게 했다.

“이렇게, 이렇게. 응?”

이게 때리는 거냐. 칭찬하는 거지.

사심이 마구마구 묻어나는 말이었다.

“리샤의 귀여운 주먹으로 때렸다가 노랑바지 놈 때문에 귀한 주먹이 축축해지면 어떡해.”

아, 그건 확실히 싫다…….

그러자 옆에서 아빠가 끼어들었다.

“나도 조금 전에 실수해 버렸으니, 혼내다오. 때려다오.”

아빠가 내 다른 주먹을 살짝 쥐고는 반짝거리는 눈을 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왜 때려 달라고 난리야. 갑자기 취향이 이상해지기라도 한 건가.

나는 빼앵 외쳤다.

“시러! 압빠랑 어빠 때리기 시러어!”

그러자 아빠랑 오빠의 얼굴 근육이 감동으로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우리 아가는 아빠를 너무 사랑해서 절대 때릴 수 없는 거군.”

“리샤는 오빠를 때리는 건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파서 할 수 없는 거지? 너무너무 감동이야.”

아니, 뭐라는 거야, 지금 이 사람들이.

왜 내 말을 그렇게 왜곡을…….

그런데, 뭔가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홀 안이 웅성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방금 들으셨어요? 분명히 황녀님께서 아빠, 오빠를 때릴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게다가 그 전에 분명히 황제 폐하와 황자 전하께서 때려달라고……, 하신 거 맞죠?”

“그런데 노랑바지는 누굴 말하는 겁니까? 정황상 아키러스 대공자 같은데.”

“아, 그 소문 못 들으셨어요? 사실 2년 전에 황궁에서 대공자께서 글쎄 바지에다 실수를…….”

다들 소리를 낮추어 속삭이고는 있었지만 입이 너무 많았다. 다 합치니 와글거리는 소리가 꽤 컸다.

그리고 나는 한발 늦게 이 사태를 깨닫게 된 것이다.

‘방음 결계 없었어……?’

분명히 처음에는 아빠가 옥좌 주변에 소리를 차단하는 결계를 쳤었다.

그런데 저 아래 귀족들이 떠들고 있는 걸 들어보면.

‘다, 다 들은 거야?!’

“들으셨어요? 황녀님 혀짤배기 소리 너무너무너무 귀여웠어요!”

그것까지?!

내가 원망 어린 눈으로 올려다보자, 아빠는 뿌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옥좌 아래쪽 귀족들을 내려보는 시선에는 이런 감정이 섞여 있었다.

‘다들 들었나? 내 딸의 귀여움을 잘 들었겠지! 두 귀 똑똑히 새겨라!’

나는 절망했다.

‘자랑하려고 결계 푼 거예요?!’

잠시 방심해 버렸다.

전생의 딸 바보 아빠의 기행을 기억했다면 당연히 이런 사태도 예상했어야 했다.

그런데 2회 차에서 아빠가 딸 바보로 돌아온 지 2년밖에 안 되었다 보니, 그만 깜빡해 버리고 만 것이다.

아빠가 얼마나 No답 딸 바보였는지.

그때의 아빠라면 이런 일은 백번은 하고도 남았는데! 예상했어야 했는데!

아빠 옆에서 어깨를 으쓱거리고 있는 아빠 아들놈도 문제였다.

‘오빠 놈은 또 왜 자랑스러워하는 건데!’

내가 황당해하는 사이, 귀족들 사이에서는 그간의 헛소문이 알아서 정정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황녀님이 다시 백치가 되셨다는 소문도 거짓이겠네요?”

“그렇겠죠. 도리어 나이 대에 비해 엄청나게 말씀을 잘하시는걸요?”

“그렇소. 우리 딸은 저 때 단어 몇 개만 겨우 말했단 말이오.”

“그럼 대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은 누가 낸 걸까요?”

“그러고 보니…… 대공가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먼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요?”

의심 어린 시선에 대공 일가에 붙었던 이들은 펄쩍 뛰며 부정했다.

“아니, 그냥 그런 말이 있다고 들은 것뿐이에요. 절대 안 믿었어요!”

“그, 그렇소! 저렇게 총명하고 뛰어나고 귀여우신 아기 황녀님이 백치라는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소!”

“아마 대공가에서 낸 소문이겠죠! 전 전혀 몰랐답니다!!”

놀랄 만큼 빠르고 칼 같은 손절이었다.

시스템은 여전히 먹통이라 퀘스트가 왔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자신에게 스스로 임무를 부여했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에도 나는 퀘스트를 가지고 있었다.

‘나랑 오빠에 대한 헛소문을 전부 깨트리고, 대공가에게 한 방 먹여 주려고 했는데.’

그 퀘스트는 전부 이루었……, 아니, 이루어졌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성공…… 이긴 성공인데.’

하지만 아쉬웠다.

‘내가, 내가 패 버리고 싶었는데에!’

게다가 이제 귀족들 사이에는 소문이 자자하게 나버릴 것이다.

나의 혀짤배기소리와, 아빠랑 오빠가 어떤 헛소리를 해댔는지에 대해 말이다.

왜 수치심만 내 몫인 걸까.

혹시 2회 차 인생의 제일 큰 장애물은 수치심인 걸까.

내가 잠시 허탈해하고 있는데. 눈앞에 시뻘건 것들이 우르르 떠올랐다.

[System Error! System Error! System Error! System Error! System Error! System Error! System Error! System Error…!]

경악해서 나도 모르게 외치고 말았다.

“우악! 깜따기야!”

***

벨론드 대공은 자신을 속인 홀덴 백작 영애에게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동안 나를 속인 건가? 저 꼴인 아이로? 저래서야 백치 황녀와 다를 게 없지 않아! 잘도 뻔뻔하게 나에게서 돈을 뽑아 갔군!”

그의 손이 가리킨 곳에는 지난 3년간 요람에서 인형처럼 누워 지낸 아이가 있었다.

“대, 대공 전하! 아니에요! 백치라니요! 절대 아니에요!”

홀덴 백작 영애는 필사적으로 대공에게 매달렸다.

그녀에게 현재 생활비를 주는 것도 대공이었고.

다시 수도로 불러들여 화려한 생활을 하게 해 줄 수 있는 이도 그뿐이었으므로.

그에게 버려지면 홀덴 백작 영애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정말이에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대공 전하!”

그에게 자신과 자식의 쓸모를 증명해야만 했다.

이대로는 시골에서 썩어 갈 뿐이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그때였다. 내내 인형처럼 요람에 앉아 있기만 하던 아이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창문 너머 어딘가 먼 곳을 향해 선홍빛 시선을 던진다.

지켜보는 이들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황궁이 있는 방향을 향해서였다.

아이의 시선에는 선명한 총기가 서려 있었다.

대공은 경악했다.

“뭐, 뭐야?”

“제 말이 맞죠? 틀림이 없죠! 그러니 원조를 다시……!”

홀덴 백작 영애의 환희 어린 목소리도, 대공의 경악도 무시한 채.

이름도 받지 못한 아이는 태어나 두 번째로 입을 열었다.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린 표정이 나이답지 않았다.

“아직도…… 포기를 안 한 모양이네요.”

그 표정 그대로 아기는 불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행복해하고 있도록 해요, 아직은…….”

‘안서나 씨. 그리고―.’

이제 아는 이가 없어야 할 이름을 소리 없이 입에 담고는, 아이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요람에 누워 인형처럼 지내던 때로 되돌아갔다.

***

나스카 공왕성의 가장 깊숙한 방.

제단 위에 누운 소년의 입에서 흐린 신음이 배어 나왔다.

“으, 윽…….”

소년의 눈꺼풀이 힘겹게 들어 올려졌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호박색 눈동자.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이 잠시 좁혀졌다가 다시 풀어졌다.

낮은 안도의 한숨이 핏기 없는 입술 사이로 흘렀다.

그리고. 소년의 몸을 잠식하던 심각한 마력 고갈이 기세가 덜해졌다. 아주 잠시일 뿐이지만.

소년은 다시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의식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자의로 그의 존재를 이루는 모든 것을 내놓은 것이다.

단 한 존재를 위해.

***

[…Error……, 복구 중.]

[접속 성공. 유저 확인 완료. 시스템 복구를 시작합니다.]

뭐? 진짜?

2년이나 못 보는 사이에 꽤 그리워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반가운 빨간 시스템 창이 파라락 떠올랐다.

[수령 가능한 퀘스트 완료 보상이 있습니다. 수령하시겠습니까?]

그래! 믿고 있었다구!

난 절대 먹튀라고 욕하지 않았어,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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