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9. 서브 퀘스트 : 쪽쪽이 대소동 (03)
***
며칠 전.
시스템이 정상화되며 나는 먹튀 당할 뻔했던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콩나물 대가리를 혼내 준 것도 퀘스트로 처리되어 보상에 합산되었다.
‘당연히 줘야지! 안 그러면 패 버리려고 했어, 시스템!’
나는 시스템을 안 믿었니 어쨌니 하는 말 따윈 한 적이 없다. 암.
여하튼 그렇게 두 퀘스트의 보상이 한꺼번에 정산되었다.
[두 퀘스트의 종합 보상으로 ‘스킬 업그레이드권’을 지급합니다. 수령하시겠습니까?]
‘아싸! 이건 전생에도 얻어 본 적 없는 건데!’
어떤 스킬이든 아무런 조건 없이 등급을 올릴 수 있는 아이템.
전생에도 전 세계의 헌터들을 통틀어서 한두 명 정도만 얻었다는 엄청나게 희귀한 아이템이다.
역시 2회 차의 특권인 건가.
무지개 색으로 반짝거리는 업그레이드권을 들고 나는 히죽히죽 웃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을 하다가……, 어느 스킬에 사용할지를 결정했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스킬을 업그레이드하겠어!”
[아이템 ‘스킬 업그레이드권’의 효과로 스킬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A급)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등급 상승 : A급 → S급]
[스킬 등급이 상승하며 부가 효과가 추가됩니다.]
그 부가 효과가 뭐였는가 하면…….
[상인 D : ‘아기 황녀님의 귀여움에 대한 소문이 과장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실제에 비하면 그건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 수준이었어!’]
이런 식으로 타인의 생각을 일정 시간 동안 읽을 수 있는 거였다.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서 조금의 가식이나 거짓도 없이 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스킬 이름에 걸맞은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할까.
하지만.
[*스킬 부가 효과 ‘남의 마음이 보여’의 성공 확률은 10%입니다.]
확률이 10%라 꼭 필요할 때 발동될 거란 보장이 없으니 의미가 거의 없었다.
그 예로 지금까지 어땠느냐면.
[부가 효과 적용에 실패했습니다.]
[부가 효과 적용에 실패했습니다…실패…실패…….]
늘 매를 버는 시스템이었다. 믿기는 개뿔! 역시 패 버려야 해!
나는 침대에서 인형을 두들기며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시슈뗌! 가마난둘꼬야!”
내가 주먹 감자를 열심히 흔들었지만 시스템 놈의 반응은 익숙한 [System Error!]뿐이었다.
아무튼 지금까지 이 부가 효과가 성공한 횟수는 두세 번이 고작이다.
지난 며칠 내내 켜 놨는데 말이다.
그리고 매번 성공할 때마다 쓸데없는 것만 알려 주고 있었다.
[오빠 : ‘흥. 쪽쪽이 장인이라 하는 것들은 실력은 별 볼 일 없는 주제에 보는 눈은 있는 모양이군.’]
“흥. 쪽쪽이 장인이라는 것들은 실력은 별 볼 일 없는 주제에 보는 눈은 있는 모양이군.”
그래. 오빠 놈의 겉과 속이 투명하리만큼 같다는 사실이라든가.
‘와, 참 알고 싶었는데, 잘……, 되긴 개뿔!’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스킬 업그레이드할걸!
후회는 때늦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이 스킬 성능을 올리는 게 제일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정보를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스킬은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니까.’
전투 관련 스킬들은 시간만 있으면 전생의 수준을 회복할 수 있다. 넉넉잡아도 10년이면 충분하다.
그렇지만 몇몇 특수 스킬은 아니었다. 그래서 선택한 거였는데…….
‘이럴 거면 <궁디팡팡!> 스킬 업그레이드하게 해주든가!’
사실 처음 업그레이드하려던 게 그 스킬이었다.
하지만[해당 스킬은 업그레이드권 적용이 불가능합니다.]라는 쓸모 하나도 없는 시스템 놈의 대답만 들었다. 이미 S급이라 안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궁예>(이제 귀찮으니, 이 스킬은 그냥 궁예 스킬이라고 하겠다) 스킬을 올렸는데.
새삼스러운 분노와 함께 기이한 의문과 불안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이 스킬, ‘그놈’ 거잖아.’
내가 알기로 전생에 무수한 S급 헌터들을 다 합쳐도 이런 스킬을 가진 건 한 명뿐이었다.
‘대현자.’
그런 이명으로 불리던 남자.
“나를 믿고 기다려 줘, 서나야.”
인류를 배신한 남자의 목소리와 얼굴이 다시 떠오르려 했다. 가슴이 조여들고 숨이 가빠진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이 불길한 기억을 털어 냈다.
어차피 지나간 일일 뿐이다. 이제 그는 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 번째 생을 얻었다. 가족들과 우명 삼촌도.
어쩌면 전생에 나와 연관이 있는 이들이 더 많이 환생했을 수도 있었다.
‘그 남자’ 역시도.
만일 그렇다면, 다시 태어나 전생의 기억이 없는 그와 재회하게 된다면.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화를 낼까, 슬퍼할까, 아니면…….
그때 옆에서 오빠가 말을 걸었다.
“왜 그래, 리샤? 기분이 안 좋아?”
걱정 가득한 오빠의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
나보다 약한 주제에 동생을 구하겠다고 몸을 던졌던 때의 기억도.
‘그래. 전생에 오빠가 왜 죽었는데…….’
아빠의 따스한 손길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열은 없고, 낮잠은 아까 잤으니 졸린 건 아닐 텐데.”
불안하게 술렁거리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래. 나는 가족을 되찾았다.
이번만은 절대로 잃지 않을 것이다.
설령 누구라 하더라도 내 이 결심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방해가 된다면 누구라도 놔두지 않겠어.’
고민을 털어 내고 결론을 내리자 기분도 빠르게 풀렸다.
원래 누구 거였든 지금은 내 스킬이다.
가족을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가릴 생각은 없다.
‘스킬이 뭔 죄야! 성능만 좋으면 됐지!’
확률이 겨우 10%라는 건 단점이지만.
타인의 생각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 수 있다는 건 활용도가 무궁무진했다.
‘실제로 대현자도 이 스킬로 사람의 생각을 전부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뻥치기도 했고.’
“진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다 읽을 수 있는 거야? 그건 너무 밸런스 붕괴 아냐?”
“읽을 수 있는 건 맞아. 다는 아니지만.”
성녀조차 이 스킬 때문에 대현자에게 몇 번이나 당했을 정도니까.
‘스킬 자체는 똑같은 것 같은데, 설마 성공 확률이 10%였을 줄은…….’
새삼 그 사기꾼 놈이 생각났다.
늘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으면서, 내 앞에서만은 순진한 소년처럼 웃었던.
나는 새삼 결심했다.
혹시라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놈에게 배신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건 당연하지만.
가장 먼저 한 대 패 버릴 거다.
‘이…… 나쁜 자식!’
***
그나저나.
확률이 낮긴 해도 스킬 활용 가능성은 크다.
그러니 업그레이드권을 <궁예>스킬에 쓴 건 절대 실수가 아니다. 실수가 아니어야, 한다.
‘이건 미래를 위한 투자다. 그렇다. 그래야…… 한다.’
이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는 동안.
제한 시간이 아직 남았는지 시스템 메시지는 부지런히 주변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지금은 큰 쓸모가 없이 귀찮고 민망하기만 한 정보들.
[엘제 : ‘하아, 역시 내가 고른 이 분홍 쪽쪽이가 최고인데.’]
[모냐 : ‘폐하와 전하를 이기는 건 역시 힘들군요. 분해라. 아기님의 단장을 맡은 건 나인데!’]
[셀리나 : ‘그냥 쪽쪽이 말고 내 손가락을 물려드리면 안 될까?’]
마지막에 좀 위험한 걸 본 것 같지만, 아무것도 못 본 셈 치기로 했다.
부가 효과 제한 시간 언제 끝나나 몰라.
그때였다.
“흠. 황녀가 이렇게까지 지루해하는 걸 보니, 마음에 드는 것들이 전혀 없는 모양이군. 국외에서 장인을 찾아와야 하는가.”
[아빠 : ‘우리 애기가 처음으로 어리광을 부렸는데, 아비 된 도리로 이조차 제대로 받아주지 못하다니 슬프구나. 손가락을 문 걸 보면, 쪽쪽이가 필요한 게 틀림없는데.’]
어?
아빠가 뭔가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아빠만이 아니었다. 애매하게 흐려진 오빠의 말은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이어졌다.
“이 쪽쪽이들로 안 된다면…….”
[오빠 : ‘리샤에게 제대로 된 쪽쪽이도 주지 못하다니. 역시 난 오빠 자격이 없어! 리샤는 나를 구해 줬는데, 이 사소한 것 하나 해 주지 못하다니….’]
어어…….
전혀 예상치 못한 아빠와 오빠의 속내에 놀라 굳은 사이.
두 사람의 진심이 눈앞에 차례로 떠올랐다.
[아빠 : ‘저 어린 아기가 무리해서까지 어른스럽게 구는 게 정말로 안쓰럽구나.’]
[오빠 : ‘엄마는 내가 오빠니까 리샤를 지켜 주라고 했는데, 지금까지는 리샤가 날 지켜 주기만 했어.’]
[아빠 :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정신을 차렸다면 리샤의 아기 시절을 더욱 잘 보듬어 줄 수 있었을 텐데.’]
[오빠 : ‘뭐라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걸 해 줘야 하는데…. 해 주고 싶은데….’]
그리고 부가 효과 제한 시간이 끝나며 아빠와 오빠의 속마음을 보여 주던 메시지는 끊겼다.
하지만 나는 전부 봐 버렸다.
시스템이 번갈아 보여 준 두 사람의 마음은 결국 하나였다.
나에 대한 애정과 걱정.
미안함.
나를 위해 뭐라도 해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
즉, 가족들의 나에 대한 사랑.
따스하고 달콤한 물이 몸속으로 찰랑찰랑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가족들이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진심 어린 애정이, 정수리 위로 들이부어지는 것만 같다.
뺨이 민망함으로 따끈해지고.
절로 손끝을 꼼질거리게 되고.
가슴이 간질거려서 재채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부끄러워서 차마 말로는 못 하겠지만.
기뻤다.
이 민망하고 부끄러운 난리가 곧 아빠랑 오빠의 애정이라는 걸 확인해 버려서.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눈으로 보자, 너무너무 기뻤다.
눈물이 날 정도로.
나는 눈가가 뜨거워지는 걸 애써 삭이며, 포롱 날아올라 두 손을 뻗었다.
“아빠!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