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54/218)

Level 9. 서브 퀘스트 : 쪽쪽이 대소동 (04)

양팔이 너무 짧아서 아빠랑 오빠를 같이 끌어안는 건 실패했지만.

아빠의 망토와 오빠의 소매를 잡는 데 성공했다.

“고마어요!”

나는 최대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만은 늘 부끄러워하던 혀짤배기소리도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리구 쨔랑해여!”

지금 내 조그만 몸은 가족애와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기대했다. 곧바로 아빠랑 오빠가 날 마주 안아 주며 함께 사랑한다고 해 줄 거라고.

그렇게 평범하고 행복한 가족애를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간과하고 말았다. 이 두 남자의 주접을.

두 사람의 반응은 나의 예상을 조금 빗나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파아앗--!!

아빠랑 오빠의 몸 주변이 갑자기 마구 빛나기 시작했다. 금빛과 붉은색으로.

“웅?”

동시에 창밖에서 태양석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웅?”

두 사람의 마력이 태양석을 빛나게 할 정도로 마구마구 날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뭐, 뭐야?! 갑자기 뭔데?

두 황족이 뿜어대는 강대한 태양의 마력에 주변 사람들이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크윽!”

“수, 숨을 쉴 수가……!”

그나마 마력을 가진 사람들은 최소한이나마 스스로를 지키는 듯했지만, 여기 있는 대부분은 마력이 없는 일반인이다.

나는 재빠르게 마력장을 펼쳐 일반인들을 보호하면서 아빠의 망토를 꽉 잡아당겼다.

“아빠! 정신 차려여!”

그리고 오빠에게도 외쳤다.

“오빠! 머해!”

내 호통이 끝난 뒤. 다행히 마구 난동을 부리려던 아빠와 오빠의 마력이 순식간에 안정되기 시작했다.

아빠는 마력을 갈무리하더니 나를 안고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너무 놀라고 기뻐서 아빠가 심하게 흥분해 버렸구나.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아가.”

놀라고 기뻐서 흥분?

저 사람들 숨 막혀 죽을 뻔했는데요?

오빠도 곧 마력을 정리해 냈다.

그러고는 나를 등 뒤에서 꼭 안았다.

“너무 놀라고 행복해서 마력 폭주를 일으킬 뻔했잖아, 리샤.”

웬 마력 폭주?

‘사랑해.’ 한마디 때문에?

그리고 오빠가 세상의 어떤 꽃보다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쪽쪽이 재료를 제대로 된 걸 쓰는 게 낫겠어. 리샤, 오빠 손가락으로 쪽쪽이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열 개나 있으니까…….”

그런 말 웃으면서 하지 마!

“피료엄써!!!”

시무룩. 오빠 놈이 제 손을 내려다보면서 어깨를 늘어뜨렸다.

아니, 왜 아쉬워하는 건데?!

폭주하고 있는 건 오빠의 마력이 아니라 정신인 것 같았다. 이대로 놔둘 순 없었다.

오빠에게 낮게 속삭였다.

“다치면 주글 주 아라!”

그러자 오빠 놈은 혼났는데도 기가 죽기는커녕 해사하게 웃었다.

“역시 리샤야. 오빠가 다치는 걸 걱정해 주는구나. 알았어. 걱정하지 마!”

하지만 아직 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아빠가 이런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하자품들은 전부 돌려보내고 새로 만들어 오게 하겠다.”

안 돼! 그만! 이 소동은 여기서 끝내야겠어!

나는 뿌앵 하고 외쳤다.

“쪼쪼기 댜 죠아! 요기 인눈 쪼쪼기 댜 리샤 꼬야!”

이 말에 장인들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었다. 다들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다.

“만세!”

“황녀님이 선택해 주셨어!”

“하지만 이 정도 물건으로는 아직 부족해! 열 배, 아니 백 배는 더 나은 물건을 진상 드려야 하는데!”

이 난장판을 끝내기 위해, 나는 결국 장인들이 만들어 온 모든 쪽쪽이를 받아야 했다.

  

‘이 정도 양이면 이제 더 쪽쪽이 주겠다고 난리 안 치겠지!’ 

이 이유가 제일 컸다.

물론, 누가 진짜 손가락으로 뭘 만들어 오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것도…… 있긴 하지만.

***

그러나 이날의 내 판단은 틀렸다.

얼마 뒤부터,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까지 내 선물로 쪽쪽이들을 바쳤던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또 쪼쪼기야?”

“예, 코렌 연합에서 보내온 진상품이옵니다.”

“그리고, 이건… 북쪽 하스티아에서 온 것이고.”

“여기 남해 에소스에서 보내온 선물도 있습니다.”

당연히 전부 쪽쪽이였다.

그리고 내가 쪽쪽이를 물고 있으면, 아빠는 아주 행복한 표정을 했다.

[아빠 : ‘우리 아기가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아서 기쁘다!’]

[오빠 : ‘역시 최대한 많이 만들게 하길 잘 했어! 저렇게 좋아하다니! 크흡!’]

결국 나는 하루에도 쪽쪽이를 몇 개씩 바꿔 가며 쓰는 호화로운 생활을 강제로 누릴 수밖에 없었다.

‘크흑! 빨리, 빨리 커야지! 그래서 합법적으로(?) 탈 쪽쪽이 하고 말겠어!’

***

그러나 나의 쪽쪽이 수난은 여기서 끝나 주지 않았다.

며칠 있다가 오빠가 싱글벙글 웃으며 뭔가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리샤, 리샤. 이것 봐! 오빠가 주는 선물이야!”

“몬데?”

그리고 오빠가 내민 것은……, 투명한 유리로 만든 것처럼 생긴 쪽쪽이였다.

내 작은 얼굴이 팍 찌그러졌다.

“쪼쪼기 마나!”

언제까지 쪽쪽이로 난리를 칠 셈인 거지? 질렸다고!

하지만 오빠는 굴하지 않고, 내 작은 손 안에 더 작은 투명 쪽쪽이를 올려 주었다.

“자, 만져 봐.”

나는 미간을 찡그리다가 쪽쪽이가 손에 닿자 놀랐다.

“웅? 차감네?”

조금이지만 분명히 차가웠다.

그러고 보니 오빠의 마력이 느껴졌다.

‘태양의 마력은 아니고……, 두 번째로 각성한 마력 형질이네?’

눈과 얼음.

오빠의 서늘한 은빛 머리카락을 닮은 마력.

“그치? 시원하지?”

오빠는 손으로 내 이마를 쓸어내려 주며 말했다.

“요즘 더워졌잖아. 이렇게 땀도 흘릴 정도로.”

“우웅…….”

“그래서 오빠가 만들어 봤어! 어때?”

나는 손안에서 쪽쪽이를 굴리면서 가볍게 마력으로 분석해 보았다.

‘오? 매개체에 마력을 넣은 게 아니라 마력 자체를 형태화시킨 거네?’

그러고 보니 선물로 들어온 장난감 중에 비슷한 것들이 좀 있었다.

보석이 아니라 마력을 결정화한 물건들.

주로 ‘하스티아’에서 온 선물이라고 했었나?

어쩌면 전생에 던전에서 마력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그쪽에는 이런 물건들이 특산품인 걸지도.

‘후웅. 그럼 나중에 거기도 찜해 놔야지!’

근데 거기 선물도 그렇고 오빠가 만든 것도 속성이 비슷했다. 하긴 마력이 응축되려면 얼음 속성이 적합하긴 하니까.

아직은 작은 야심을 숨기면서, 나는 오빠가 준 쪽쪽이에 집중했다.

딴생각 중인 걸 눈치채면 삐지거든. 게다가 눈치도 빠르다.

오빠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쪽쪽이는 딱 기분 좋은 온도의 얼음 조각 같았다.

바깥 부분은 딱딱한데, 입에 무는 부분은 말랑거렸다.

하나의 형태로 응축하면서 부위에 따라 감촉이 다르게 느껴지도록 만들어 놓다니, 대단한 마력 컨트롤이다.

‘쪽쪽이 따위에 이렇게 마력 컨트롤을 낭비하다니.’

“기온 따라서 온도도 조절해 줄 수 있어. 한여름에는 얼음처럼 차가워지게 해 줄게!”

“우옹.”

오빠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장담했다.

“이게 리샤가 제일 좋아하는 쪽쪽이가 될 거야!”

이건 꽤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안 녹는 얼음이란 소리잖아? 온도 조절도 마음대로 되고.

“그럼 진짜 어름처럼 차감께 해죠!”

나는 씩 웃었다. 아주 유용하게 잘 써드리죠.

“얼마든지!”

오빠가 쪽쪽이에 손을 대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때, 내 눈에 오빠의 옷깃에 투명한 결정이 박힌 피불라(장식용 핀)가 달려 있는 게 보였다.

피불라의 보석은 내 쪽쪽이와 같이 오빠의 마력이 결정화된 것이었다.

그리고…… 투명한 결정 안에는 평범한 세 잎 클로버가 두 개 들어 있었다.

이파리 중 하나는 조금 찢어져 있기까지 한 세 잎 토끼풀.

황족의 마력 결정에 고이 넣어서 보관할 만한 물건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저 클로버를 알고 있었다.

내가 빤히 그걸 보고 있자, 오빠는 사르르 웃으며 덧붙였다.

“새로운 마력을 이리저리 사용해 보다가 발견한 방법이야. 마력을 결정화하면 내가 마력을 해제하거나, 더 강력한 외부의 마력으로 깨지 않는 한 안전하게 보존이 되더라고.”

태양의 마력은 형질상 이렇게 결정화되지도 않고, 안에 든 물체를 보존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오빠가 가진 두 번째 마력이 눈과 얼음의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그래서 그 마력으로 내가 선물해 준 세 잎 클로버를 감싸서 보관하고 있는 모양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그냥 풀 쪼가리일 뿐인데.’

새삼 뭉클했다.

“자아, 이제 얼음처럼 차갑지?”

그래서 오빠가 내민 쪽쪽이를 얌전히 물어 주었다.

원래는 지금 마시는 중인 딸기우유에 퐁당 넣어 먹을 생각이었다. 아주 성능 좋은 얼음 삼아서.

오빠는 울상을 할 테지만, 원래 호적 메이트를 놀릴 기회는 놓치지 않는 것이 여동생의 본분 아닌가.

하지만 결정 속 세 잎 클로버를 보고 나니 쪽쪽이를 음료수에 퐁당 할 수가 없었다.

‘흥. 감동해서 그런 거 아니다, 뭐. 시원하니까 기분 좋아서 그런 거야.’

쫍쫍쫍.

그리고 며칠 뒤.

아빠의 집무실 탁자 위에 비슷한 세 잎 클로버가 들어 있는 마력 얼음 결정 장식을 발견했다.

내가 피식 웃으며 쳐다보자, 오빠는 슬쩍 시선을 피했고.

아빠는 더없이 환하게 웃으셨다.

오빠의 피불라도, 내가 물고 있는 쪽쪽이도, 아빠의 탁자 위 장식도.

딱 기분 좋은 서늘함의 결정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우리가 행복한 한 계속해서 그럴 것이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웃었다.

“아빠, 오빠. 죠아!”

내 한마디에 또 오버한 아빠랑 오빠가 마력 폭주를 일으키려고 해서 다시 뜯어말려야 했다.

‘내가 못 살아!’

***

유모 엘제는 요람 속에서 깊이 잠든 아기 황녀의 천사 같은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쭙쭙.

아나트리샤는 쪽쪽이를 물고, 양손으로는 제 몸만 한 인형을 안은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렇게 보니 영락없이 아기님 같네요. 요즘 너무 어른스럽게 굴려고만 하셔서 안쓰러웠는데.”

아이가 첫 생일을 맞기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매일같이 근심했다.

그런데 갑자기 명명식 이후로 어른이 된 것처럼 굴면서, 조각조각으로 갈라져 있던 황실 가족을 하나로 이어 냈다.

이 모든 것이 기적 같았다.

더없이 감사하고 감격하면서도, 더 바라게 되는 것이다.

“부리 우리 아기님이 마음껏 응석 부리는 해맑고 행복한 어린아이로 지낼 수 있는 때가 조금만 더 길기를…….”

엘제는 가슴 깊이 기도하며, 그녀의 손가락을 잡고 있는 자그마한 손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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