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5/218)

Level 10. 메인 퀘스트 : 나를 귀여워한 스파이 (01)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쪽쪽이 대소동 이후로도 아빠랑 오빠, 혹은 유모나 시녀 언니들이 소소한 소동을 일으키곤 했지만.

다행히 전부 내가 진압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대로 평화롭다 못해 한가한 일상이 이어지려나 하던 차.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가 던져졌다.

“말린다 다브네스라 합니다.”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소녀는 나를 빤히 올려다보며 웃었다.

“오늘 황녀궁의 수석 시녀로 배속되었습니다.”

나는 쪽쪽이를 쬽쬽거리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스파이인 거네?’

띠링!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돌발 퀘스트 발생!]

***

황후궁에서 황녀궁으로 새로 시녀를 보냈다.

이상한 일이다.

아빠가 보냈다면 놀라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도 머리를 묶어 주고 간 아빠는 아무런 언급도 없으셨다.

아니, 오히려 얼마 전에 시종장과 기드온 삼촌이 내 시중 인원을 늘리는 게 좋지 않겠냐고 조언했을 때, 고개를 저었다.

“리샤를 돌볼 이는 나와 루퍼스만으로도 충분해. 라이벌을 일부러 늘릴 필요는 없지.”

“…….”

근데 아빠도 아니고, 황후궁에서 보냈다?

황후궁에서 모든 궁의 시녀들 배치를 관장할 수 있는 건 사실이었다. 궁인의 배속은 황제의 허가가 필요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황후궁을 관리하고 있는 건 분명히 ‘그 여자’였다.

그때 이상한 짓을 하려던 여자.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이 안 난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네? 그때 이후로 죽은 듯이 얌전하게 굴고 있다고 시종장이 얘기했었지, 아마?’

아무튼 그 여자가 보낸 시녀라니.

‘너무 노골적으로 수상쩍은 냄새가 나잖아?’

슬쩍 유모와 시녀들의 안색을 살폈다.

역시나 다들 그다지 달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특히나 수석 시녀라는 부분이 더 그랬다.

‘그럼 황녀궁 시녀장인 엘제 바로 아래라는 소리잖아. 셀리나랑 모냐보다 상관.’

황녀궁 짬바가 두 사람이 더 긴데, 굴러온 돌이 더 위에 눌러앉겠다고 한다.

당연히 두 사람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엘제는 살짝 굳은 얼굴로 새로 온 시녀에게 물었다.

“수석 시녀라고? 누가 발령을 낸 건가?”

굴러온 돌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대답했다.

“당연히 황후궁의 관리를 맡고 계신 부시녀장이시지요.”

굴러온 돌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엘제에게 물었다.

“설마, 유모님께서는 황후궁 부시녀장님의 명을 거부하시려는 건가요?”

너야말로 지금 감히 내 유모한테 대드는 거야?

나는 살짝 이맛살을 찌푸렸다.

“후웅. 나는… 엘제랑, 모냐랑, 세리나랑 있눈 거 죠운데…….”

그러자 굳어 있던 유모랑 시녀들의 얼굴 근육이 흐물흐물해졌다.

“황녀니임―.”

“우리 아기님. 저도 사랑해요!”

“경쟁자가 느는 건 곤란해요! 안 그래도 폐하와 황자님 때문에 황녀님을 모실 시간이 줄어서 피눈물이 나는데……!”

“…….”

중간에 이상한 말이 들리는 것 같지만 무시하자.

그리고 오빠가 언제나처럼 헛소리를 진심처럼 떠드는 셀리나를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보는 것도 무시했다.

하지만 오빠는 나를 달랑 안아서 자기 무릎 위에 앉혀 버렸다. 셀리나가 아쉬움의 탄성을 삼킨다.

‘에효. 어쩔 수가 없네.’

나는 왠지 모르겠지만 조금 삐진 오빠의 머리를 쓰담쓰담해 주었다.

그러자 오빠의 얼굴이 대번에 풀어진다.

정말이지 단순해서는.

내가 대놓고 ‘너 필요 없어.’라고 말할 때부터 굴러온 돌은 당황한 것 같았다.

그런데 내 말에 시녀들이 감격해서 몰려들고.

오빠가 쓰담받으면서 얌전해지는 것까지 보자, 혼이 나간 것처럼 표정이 이상했다.

하지만 정식으로 발령까지 받았는데 이대로 계속 냅두기만 할 수는 없으니.

가볍게 시작해 볼까?

나는 고개를 까딱이며 손을 잼잼했다.

“안냥?”

그리고, 윙크. 당연히 스킬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내 윙크를 보고 굴러온 돌의 눈이 지진 난 것처럼 떨렸다.

그리고, 뾰롱뾰롱.

스파이에 대한 정보가 눈앞에 주르륵 떠올랐다.

[대상의 정보를 분석 중입니다…. 분석 완료.]

[이름: 말린다 다브네스.]

[지위: 황후궁 수석 시녀→황녀궁 수석 시녀]

[특성: 우둔함(5lv), 기회주의자(3lv), 어설픈 야심가(4lv), 큐트 매니아(5lv)…….]

[협력자 : 폴카 다브네스(신뢰).]

기억났다.

황후궁 부시녀장이라는 다브네스 후작 부인, 그 여자의 협력자 리스트에서 본 적 있었다.

그리고 연이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킬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S급)> 부가 효과 적용 성공!]

[부가 효과 적용 시간 : 3분]

[적용 대상의 속마음을 표시합니다.]

좋았어.

***

말린다는 당황했다.

숙모는 일이 어렵지 않을 거라 말했고, 그녀도 그렇게 생각했다.

‘황녀라고 해도 겨우 네 살짜리 아기야. 뭘 알겠어. 시녀들은 숙모님의 지위로 찍어 누르면 돼.’

그렇게 해서 황녀궁 안에서 말린다가 실권을 잡는 게 계획이었다.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만만하게 황녀궁에 입성한 직후부터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겨우 네 살이라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한 아기 황녀가 똘망똘망하게 말했다.

“후웅. 나는… 엘제랑, 모냐랑, 세리나랑 있눈 거 죠운데…….”

한마디로.

‘너 필요 없어.’

정말 네 살 맞는 건가?

저렇게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정확하게 의사 표현을 한다고?

말린다는 아기 황녀에 대한 소문이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백치였다가 겨우 나아졌고, 황제가 황자 황녀에 대한 관심을 회복했으니.

모두가 입을 모아 아부하느라 그리 말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 눈으로 본 아기 황녀는 소문 이상으로 총명해 보였다.

게다가 황녀의 저 말에 감격한 시녀들의 호소와 눈물 바람에 말린다는 순식간에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 이게 아닌데?’

말린다가 당황해 있는 사이.

그제야 아기 황녀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앙증맞은 손을 잼잼하면서 한쪽 눈을 깜빡하며 인사했다.

“안냥.”

쿵!

큰 쇳덩이로 심장을 후려치는 듯한 충격.

정신적인 충격이 실제로 육체적으로 영향을 주는 듯했다.

심장이 아플 만큼 빠르게 뛰고, 저도 모르게 얼굴 근육이 후드득 풀려 버릴 뻔했다.

‘너, 너무 귀, 귀엽……!’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직전,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다.

‘헉, 허억! 위험했다!’

그녀는 말하자면 적진으로 바로 들어온 셈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다.

그런데 상대방의 귀여움이 너무 강력했다.

단단히 세워 둔 경계심이 단번에 풀려 버릴 만큼.

그녀가 겨우 정신을 수습하는데, 루퍼스리안 황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리샤의 인사를 무시하고 서 있다니, 황녀궁 시녀로서 자질이 없어 보이는군.”

황자의 파란 눈은 경계심을 가득 담고 있었다.

유모와 시녀들도 끼어들었다.

“황자 전하 말씀이 맞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인사를 받고도 그냥 있을 수 있을까요?”

“심장이 돌이 아니라면 말도 안 되지요. 황녀님의 귀여움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하……, 아니, 그게 아니라… 황녀궁 시녀로서 소양이 모자랍니다!”

“뭔가 음습한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라면 말도 안 됩니다!”

“그래. 사특한 이유로 황녀궁에 잠입하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

그들은 더없이 열정적으로 진심을 다해 말하고 있었다.

‘황녀의 귀여움에 반응하지 않다니, 스파이가 아니면 말도 안 된다!’

어이없는 논리였으나, 이들의 기세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저들의 막무가내식 논리가 일부 사실을 담고 있다는 점이 특히 말린다를 당황시켰다.

이대로는 수석 시녀는커녕 하녀로도 남지 못하고 내쫓길 판이다.

그랬다간 그녀를 여기로 밀어 넣은 숙모가 분노할 것이 분명했다.

“황녀궁에 잠입해서 그곳의 정보를 내게 보내 주렴. 가능하면 황녀궁을 장악하고. 불가능하다면…….”

“반드시 해내겠어요. 믿어 주세요, 숙모님! 황녀궁을 제 손에 넣겠어요.”

“그래. 황녀를 구슬려서 우리 편으로 만드는 거다. 아니라면, 황제와 황자 황녀 사이를 벌려 놓는 것도 좋아.”

“네! 숙모님!”

“명심하렴. 내가 황후가 되면, 너는 황후의 조카가 되는 거야.”

지난 3년간 말린다는 황후궁 안에서 마치 공주처럼 생활했다.

그녀의 숙모가 황후궁의 실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가에서의 생활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황홀한데, 숙모가 정말로 황후가 된다면.

‘그러면 나는 황녀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어!’

지금 눈앞에 펼쳐진 화려하고 유복한 생활이 그녀의 것이 될 수 있었다.

말린다는 필사적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심장을 부여잡고 바닥에 엎어졌다.

“크흑! 하마터면 심장이 멈출 뻔했습니다! 황녀님께서 너무 사랑스러우셔서…….”

그리고 입 안쪽을 깨물어 가며 눈물을 짜냈다.

“저따위를 이리 환대해 주시니 너무나도 감격하여……, 흐흑!”

말린다가 눈물을 줄줄 흘리자, 황자와 시녀들은 못마땅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렇게 감격하는 게 당연하지.’

‘인간이라면 그래 마땅하지요.’

이런 태도였다.

그때였다.

아기 황녀가 포로롱 날아와서 손을 내밀었다.

“마리댜!”

자신의 야심을 위해 필사의 연기를 하는 와중에도, 말린다는 순간적으로 혼이 나갈 뻔했다.

해사하게 웃는 아기의 얼굴이 너무나도…… 귀여웠기 때문이다.

“리샤랑 놀쟈!”

저도 모르게 손을 마주 내밀 만큼.

게다가.

‘소, 손이 너무 작아. 그리고 따끈따끈 말랑말랑해…… 하응…, 아, 이게 아니지! 정신 차리자!’

겨우 정신을 차린 말린다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기껏해야 네 살짜리 아기. 속여 넘기는 것도 구슬리는 것도 쉽지.’

그런데 어째 주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황자와 유모, 시녀들이 불타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불순물을 보는 듯한 시선.

‘뭐지? 내가 스파이 티를 낸 건가?’

하지만 아니었다. 잘 속여 넘기지 않았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말린다는 황자와 유모, 시녀들이 한마음 한뜻이라는 걸 알 리 없었다.

‘라이벌이 늘었어!’

자신의 앞길이 어마어마하게 험난하리라는 것도.

***

[말린다 : ‘정말 숙모님이 황후가 된다면…… 나는 황녀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어!’]

나는 눈앞에 뾰롱뾰롱 떠오르는 메시지를 전혀 읽지 못한 아기처럼 맑게 웃었다.

“마리댜, 재미써! 꺄하하!”

[말린다 : ‘그런데…… 저, 정말 귀엽……, 아니, 이게 아니지!’]

우리 굴러온 돌 씨, 별로 스파이로서 재능 없는 것 아닌가.

[오빠 및 3인 : ‘라이벌이 늘었어! 어떻게든 쫓아내고 말겠다!’]

아니, 해지 마.

이 부가 효과 필터링 같은 건 안 되는 건가?

그나저나 굴러 들어온 돌은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드는 애였다.

그럼에도 바로 쫓아낼 수가 없었다.

시야 구석에서 깜빡거리고 있는 퀘스트 때문에.

[퀘스트 명: ‘나를 귀여워한 스파이’]

[완료 조건: 말린다 다브네스의 진심 어린 복종]

[완료 보상: 아이템 ‘인비저블 아이(S급)’]

S급 아이템 놓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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