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9/218)

Level 10. 메인 퀘스트 : 나를 귀여워한 스파이 (05)

맑고 투명한 눈물이 아이의 눈가에서 흘러내려, 동글동글한 뺨을 타고 굴러떨어진다.

또록.

또.

또!

소년에게 저 눈물의 무게는 이 세계 전체의 무게보다 무거웠다.

루퍼스리안은 심히 자책했다.

더는 동생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 외에 눈물 따위 흐르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건만.

다시 울게 만들고 말았다.

이 분노는 다브네스 후작 부인을 갈아 마셔도 사그라지지 않으리라.

‘리샤!’

한 발짝 늦게 황제 역시 딸의 이상을 알아챘다.

평소라면 루퍼스리안보다 조금 일찍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분노하느라 머리에 열이 올라 조금 늦고 말았다.

이 사실 자체가 황제에게는 더더욱 큰 죄책감을 주었다.

‘내가 내 딸의 상태를 이렇게까지 늦게 알았다니!’

당장에라도 다브네스 후작 부인을 죽일 기세였던 두 남자가 갑자기 살기를 거두었다.

그리고 루퍼스리안 품의 어린 황녀에게 찰싹 달라붙어,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괜찮아. 걱정 말거라, 아가. 네 엄마의 물건은 하나도 망가지지 않았고, 이 아비가 죄인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다.”

“맞아. 리샤. 엄마도 네가 우는 건 원치 않으실 거야.”

황제의 살기에 숨 쉬는 것도 버거워하던 이들은 뒤늦게 상황을 눈치챘다.

아기 황녀가 눈물을 보였고, 이에 황제와 황자가 성심껏 달래고 있다는 걸.

황녀궁 시녀들의 눈에 대번에 살기가 어렸다.

‘감히 우리 황녀님 눈에 눈물이 나게 해?’

‘우리 아기님 마음 상하셨어요, 어떡해.’

‘리샤 님 눈물 낸 인간은 피눈물로 사죄하게 해 주겠어! 아니, 그것도 모자라!’

그러나 그들보다 더더욱 충격받은 이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다브네스 후작 부인의 조카, 말린다였다.

그녀는 지독한 충격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털썩!

‘세상에, 황녀님이… 우리 귀염뽀짝하고 뀨띠빠띠한, 사랑스럽고, 세상에서 제일 착하시고, 아무튼 뭐든 최고인 우리 아기님이…… 울고 계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게다가 그 원인이 바로, 얼마 전까지도 믿고 따랐던 말린다의 숙모였다.

새삼스레 말린다의 머릿속에서 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났다.

“내가 황후가 되면, 너는 황후의 조카가 되는 거야.”

‘그러면 나는 황녀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어!’

“저를 벌하시는 건 황후 폐하의 마음을 외면하시는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때는 어째서 몰랐을까.

가능성이 없는 것 이전의 문제였다.

황제는 여전히 황후를 사랑하고 다른 이를 곁에 둘 생각이 없었다.

어린 황녀는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런 불쌍한 아이가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어머니의 방을 보러 왔는데.

거기서 본 것이, 어머니의 물건을 함부로 걸친 제 숙모의 모습이다.

게다가 숙모는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했다. 황후가 숙모에게 황후 자리를 맡겼다고.

그러니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노라고.

오히려 황제와 황자, 황녀의 분노가 황후의 마음을 외면하는 거라고.

겨우 네 살짜리 어린아이가 상처받는 건 당연했다.

말린다의 마음속에서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앙증맞은 (이하생략) 아기 황녀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천사처럼 웃으며 말린다가 때 빼고 광낸 쪽쪽이를 좋아하던.

“꺄하! 마리댜, 죠아!”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을 좋아하고 배려해 준 사랑스러운 아기님.

말린다는 새삼스레 깨달았다.

‘내가, 내가…… 아기님의 마음을 배신했어!’

지독한 자책감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나는 살 자격이 없어!’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늦었지만, 지금에라도 모든 걸 바로잡는 것.

***

‘갑자기 뭔 놈의 부작용이야.’

전생에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안구 건조증의 테러에 아나트리샤는 뻑뻑해진 눈을 마구 문질렀다.

‘아, 눈 따가워. 여기는 인공 눈물 같은 것도 없을 텐데.’

팔이 짧고 손이 작아서, 눈을 부비적거리는 것도 힘들었다.

좀 부비부비하고 눈물도 조금 나니까 겨우 살 만해졌다.

그러고 황녀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예상 못 한 전개가 펼쳐져 있었다.

일단 황제와 황자가 아나트리샤를 안고 둥개둥개 중이었다.

온갖 위로와 사탕발림이 쏟아진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그리고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털썩!

“숙모님과 함께 저도 벌해 주세요!”

말린다였다.

“엥?”

말린다는 그야말로 폭포수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황녀만큼이나 다브네스 후작 부인도 당황한 듯 보였다.

“마, 말린다? 지금 무슨 소리를…….”

저러다 탈수 증상이 오지 않을까 걱정될 수준으로 흘리는 눈물만큼, 다브네스 후작 부인의 비리가 줄줄줄 흘러나왔다.

바로, 조카인 말린다의 입을 통해.

“아니에요! 황후께서는 숙모님께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어요!”

“말린다!”

“상식적으로 황후 폐하의 뜻이 그랬다면 황제 폐하께 말씀을 올렸겠죠!”

“아니, 황후께선 나에게만 은밀한 속내를 드러내신 것……!”

“제가 직접 숙모께 여쭤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숙모님께선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그때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음흉하게 웃었더랬다.

“황후는 끝까지 내 야심을 몰랐단다. 그냥 자식들만을 부탁했지. 속은 것도 모르고.”

말린다는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머리가 차가워지는 기분이었다.

어째서 진작 몰랐을까. 숙모의 생각이 전부 틀렸다는 걸.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지난 4년간 숙모님은 황후 폐하의 물건을 제멋대로 남용해 왔어요!”

“네가 미쳤구나! 누가 널 매수……, 아, 혹시 벨론드 대공비가 시켰니? 이번에도 내 발목을 잡으라고?!”

“그런 건 몰라요! 전 사실대로 말하는 것뿐이에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숙모님은 황후궁의 예산과 귀중품들을 빼돌려 다브네스 후작가의 명의로 돌려놓기까지 했어요!”

충격적인 고발 내용에 투왈렛 룸 전체가 싸늘하게 식었다.

***

아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 목숨을 걸고 증명할 수 있겠나?”

말린다는 피를 토하듯 외쳤다.

“예! 제 명의로 된 재산을 조사해 보세요! 숙모님은 본인 명의로는 모자라, 저나 다른 친척 명의도 빌려 썼으니까요!”

이건 나도 알고 있었다.

인비저블 아이로 감시하는 동안 확인한 여러 비리 중 하나였으므로.

그리고 시종장에게 살짝 말해서 증거를 찾아 두게 시켰다. 그때 시종장의 기색을 보니 이미 본인도 나름대로 조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눈짓을 하기도 전에 시종장 할아버지가 먼저 움직였다.

“저 시녀의 양심선언이 맞습니다, 폐하. 여기 증거들이 있습니다.”

시종장 할아버지는 준비해 두었던 서류를 아빠에게 건넸다.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보았다.

“황녀님께서 부시녀장의 복색이 지나치게 화려하다고 의아해하셔서, 그제야 의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뒤늦게 알게 되어 면목이 없습니다.”

주변의 반짝거리는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역시 총명하신 황녀님!”

“진작 눈치채고 계셨던 거군요!”

말린다는 가슴을 치며 아예 통곡하고 있었다.

“제가 반성하고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려 주신 거군요! 아기니임, 어허어엉! 저는 인간 자격이 없어요! 해삼멍개말미잘해파리보다 못한 존재예요!”

아니, 저기요?

아빠와 오빠는 세상을 중탕할 기세의 따스한 미소로 날 보고 있었다.

“내 딸의 총명함과 사려 깊음에 머리를 들 수 없구나. 내가 네 아버지인 건 전생에 세계를 서넛 구한 행운이다.”

아니, 아빠가 전생에 세상을 몇 번 구한 S급 헌터긴 했지만요.

“그 정도로도 부족해요. 제가 리샤의 오빠인 걸 보면, 전생에 세상을 열댓 번은 만든 창조신이라도 되는 게 틀림없어요.”

아니, 그만해.

S…T…AY……!

그러나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그만둬 주지 않았다.

안 그래도 작은 내 손발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동안 시종장과 시녀들은 아빠와 오빠의 주접에 진심 200%로 동의하고 있었고.

말린다는 양쪽 눈에 수도꼭지를 터뜨렸고.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악악대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야말로.

‘하하. 멍멍이판이네.’

***

내가 아빠와 오빠의 주접에 손발이 사라지고 입이 딱 붙어 버린 사이.

아빠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죄와 증거가 너무나도 확실했으므로.

“감히 황후의 자리를 탐낸 반역자다. 저 여자는 끌고 가서 처형하고, 다브네스 후작가 및 관련자들의 가산을 몰수한다.”

“폐하! 저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 여자는 자신이 아빠에게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것 같았다.

그러니 저렇게 억울하다는 듯 악을 쓰지.

나는 그냥 입 다물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결론이었으니까.

애초에 우리 가족의 손을 더럽힐 가치조차 없는 일이었다.

자, 이제 한 건 해결…….

그때였다.

띠링!

불길한 소리와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우르르 떠올랐다.

[돌발 퀘스트 발생!]

[퀘스트 명: ‘$%@도 약&(에 쓰려면 없#$▒다’]

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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