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10. 메인 퀘스트 : 나를 귀여워한 스파이 (06)
안 그래도 안구 건조증으로 연약해진 내 안구를 테러하는 시스템의 헛소리들이 이어졌다.
[System Error!]
[……표시할 수 있는 내용만을 출력합니다.]
[@#* &*¥ 아직^은 때가√Å」iß……]
[완료 조건 : 폴카 다브네스의 조건부 생존]
“…….”
이거, 아무리 봐도 지금 죽이지 말라는 거지?
나중에 쓸모가 있으니까.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서 분노한 아빠와 오빠를 보았다.
그리고, 발악 중인 다브네스 후작 부인과, 저러다가 탈수로 죽겠다 싶은 말린다까지.
솔직히, 솔직히…… 아주 불만스러웠다.
나는 강렬한 사이다를 원하고 있었으므로.
이제 준비된 사이다를 마시기만 하면 되는데, 미뤄 두라고?
원래 적을 완전하게 뿌리 뽑지 못하면 되살아나서 발목을 잡으려 드는 법이다.
전생에 나는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한 바 있었다.
이번에는 더더욱 그런 상황을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살려 주라고?
지금의 시스템이 전생의 것이라면 그냥 무시했을 터였다.
전생의 시스템은 모든 헌터를 돕는 AI 같은 거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시스템은 달라.’
에러가 난 이후, 전생과 달리 나를 위해서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시스템의 보조를 받는 것도 나뿐.
확실히 보상으로 주어지는 아이템이나 스킬, 퀘스트의 내용도 전생과는 달랐다.
레벨 관련이 없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전생의 시스템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그리고 이건 느낌이지만.
‘나에게 유리하게 굴 때마다 에러가 더 심해지는 것 같단 말이지.’
이 의심이 떠오르자, 마치, 내 생각이 맞다고 주장하는 듯 메시지가 떠올랐다.
[돌발 퀘스트 중간 보상을 수령 가능합니다. 수령하시겠습니까?]
역시 살려 주라는 거다.
지금은.
그리고, 그게 더 나를 위해 유리하다고.
설마, 미래를 예고해 주기라도 하는 건가?
[돌발 퀘스트 2차 중간 보상을 수령 가능합니다. 수령하시겠습니까?]
알았어. 알았다고!
아니기만 해 봐라. 확, 작살내 놓고 말겠어!
나는 어쩔 수 없이 포르릉 날아올라, 아빠의 품에 안겼다.
“아빠. 부쨩해여.”
주변의 경악 가득한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
아기 황녀는 빨개진 (안구 건조증의 여파였다) 커다란 눈에 진주알 같은 눈물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조막만 한 손으로 황제의 옷자락을 부여잡고서.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기지 마세여.”
황제는 자신의 소매를 부여잡은 작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딸의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다시 눈을 들자, 딸의 눈물 맺힌 커다란 청보라색 눈동자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녀’를 꼭 닮은 오묘한 청보랏빛 눈동자가,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동정심으로 달달 떨리고 있었다.
딸이 망설이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귀를 두드렸다.
“잘모테찌만, 그래두 부쨩한데…….”
자그마한 은종이 울리는 듯 맑고 처연한 목소리.
“살려 주면 안 대여?”
아기의 동그란 머리가 갸웃, 하고 움직였다.
카스톨트 황제는 커다란 망치가 심장을 후려치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 망치의 이름은 ‘귀여움과, 기쁨, 감동, 기타 등등 어쨌든 세상 모든 좋은 것들’이었다.
“크헉.”
어떤 부상이나 고통을 당해도 끄떡도 하지 않던 황제의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그만이 아니었다.
황자는 물론, 주변의 모든 이들이 심장을 부여잡고 현기증을 느끼는 등, 사방에서 비명과 신음이 울렸다.
황제는 홀린 듯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 리샤 하고 싶은 거 다……, 아, 하지만 아예 사면은 조금…….”
마지막에 조금 정신을 차린 것은, 다브네스 후작 부인의 죄가 워낙에 컸기 때문이다.
“오오, 자비로우신 황녀님.”
“우리 아기님은 어쩌면 이렇게 순하고 착하실까.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가시려고.”
“제가 목숨을 걸고 지킬 거예요!”
다들 아기 황녀의 자비로움과 귀여움을 찬양하기에 바빴다.
그들의 머릿속에, 평소 아나트리샤가 ‘다 빼버리꼬야!’ 하던 것은 기억에 없었다.
물론 진짜 기억 못 할 정도로 기억력이 나쁜 이들은 없었지만.
스스로 머리를 후려쳐서 기억을 지워서라도, 지금 아기 황녀님의 자비를 찬양할 준비가 만만했던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단 한 명만 빼고.
다브네스 후작 부인.
‘뭐,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조금 전까지 그녀의 죄를 밝히고 죽음으로 몰고 가는 선봉에 섰던 황녀 아나트리샤.
그 아이가 갑자기 황제에게 눈물로 자신을 용서해 달라 청하고 있었다.
아기의 눈물에 황제는 물론 주변의 모든 이들이 넘어갈 듯 보였고.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 아직 어린아이니까, 엄마가 그리운 게 분명해. 날 보고 엄마에 대한 애정을 떠올려서 저러는 거야!’
희망은 덧없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때였다.
아기 황녀의 청보랏빛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다브네스 후작 부인만은 볼 수 있었다.
아기는 아주 사악하게 웃었다.
“헷.”
보란 듯이.
일부러 희망을 주었다가 박살 내려는 것처럼.
아기는 천진난만하게 외쳤다.
“사며는 안대! 주기지만 마라여!”
죽이지만 말아라.
이 말은 다브네스 후작 부인의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게 만들어라.’
이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건, 다시 다브네스 후작 부인을 향하는 아나트리샤의 미소로 확실해졌다.
황녀는 그녀를 잔뜩 비웃고 있었다.
절망의 끝에서 간신히 주어진 희망이 다시 박살 났다.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완전히 이성을 잃고 발악했다.
“악마! 이 꼬마 악마가!”
그녀는 황제의 품에 안긴 아기에게 삿대질하며 외쳤다.
“저 사악한 것에게 속지 마세요! 저게 다 꾸민 거예요! 날 함정에 빠트린 거라고! 폐하!”
잠시 딸의 귀여움과 자비로움에 흐물흐물해지려던 황제의 눈에 다시 살기가 어렸다.
“감히 내 딸에게 뭐라고?!”
루퍼스리안이 마력을 일으켰다.
“제가 즉결 처형하겠습니다. 어차피 아까 아바마마께서 처형을 명령하지 않으셨습니까.”
주변 모든 이들의 살기와 혐오가 다브네스 후작 부인에게로 쏟아졌다.
“아…….”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이성을 잃고 최악의 선택을 했음을 깨달았다.
후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
아나트리샤 황녀의 자비롭고 사랑스러운 청에 따라, 다브네스 후작 부인은 목숨만은 건졌다.
목숨만.
다브네스 후작가의 작위는 몰수되었고.
자산 역시 국고로 환수되었다.
후작 부인의 횡령에 연루된 본가와 친정의 사람들이 줄줄이 잡혀 왔다.
그들은 대부분 작위와 재산을 빼앗기고 변방의 유형지로 보내졌다.
범죄에 적극적으로 공모한 자신들의 죄는 생각 못 하고, 후작 부인에 대한 원망만을 하며 끌려갔다.
가장 주요한 죄인인 다브네스 후작 부인 본인은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긴 뒤.
황궁의 죄수들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노역하는 곳으로 보내졌다.
죄수들의 오물을 처리하는 곳으로.
“윽! 우우욱! 아아아악!”
그녀는 눈물 흘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애초에 도움을 청할 목소리를 이미 잃은 상태기도 했다.
황녀를 악마라 모욕한 죄의 대가였다.
“감히 황녀를 악마라 칭한 죄는 그냥 넘길 수 없다. 더는 어떤 사특한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라.”
다브네스 후작 부인, 아니, 이제는 성을 잃은 죄인 폴카는 오물 속에서 짐승처럼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
철저하게 벌을 받은 죄인들 가운데 한 명만은 다른 처우를 받았다.
재산과 작위가 몰수당한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참작의 여지가 있었던 탓이다.
“마리댜.”
나는 그녀를 불렀다.
말린다 다브네스는 성을 잃었기에, 이제 그냥 말린다였다.
다브네스 후작 부인의 공범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지만, 말린다는 마지막에 스스로 죄를 증언하고 증거를 내놓았다.
그래서 살기만으로 다브네스가의 몰살을 일으킬 기세였던 아빠와 오빠도 말린다의 사면에는 동의했다.
물론, 내 청도 있었다.
“먀리댜는 사면해 주쎄여!”
이 말 한마디에 윙크와 갸웃을 더하는 걸로 충분했다.
“크흑! 너무, 너무 귀여워…!”
“이걸 그냥 흘려보내야 하다니. 영원히 박제해야 하건만!”
아빠와 오빠는 벽과 바닥을 다 녹여 버리고 얼려 버리긴 했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말린다는 다시 한 번 감격에 겨워 눈물의 수도꼭지를 콸콸 틀어 버렸다.
“제 죄를 용서하고 직접 사면을 청해 주시다니으허엉어엉엉!”
하지만 아빠도 오빠도 말린다를 계속 황녀궁에 두는 건 허락해 주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내 곁에 있었던 경력으로 쪽쪽이 공방 중 하나에 취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대륙 최고의 쪽쪽이 장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지만, 그건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다.
말린다의 숭배는 아주 많이 부담스러웠으니, 나도 만족했다.
[오빠 : ‘후후. 이제 리샤의 쪽쪽이를 내가 선택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되었어.’]
[아빠 : ‘드디어 라이벌을 하나 줄였군. 더 줄일 방법은 없을까?’]
“…….”
만족…, 했, 나?
어쨌든 시간은 쏜살처럼 빠르게 흘러, 어느새 나의 일곱 살 생일을 서너 달 앞둔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