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11. 메인 퀘스트 : 잠자는 관 속의 왕자님 (01)
아빠와 오빠는 오늘도 이상한 경쟁이 붙었다.
아빠가 시작하자.
“아가. 네 일곱 살 생일이 얼마 안 남았구나. 네 이름을 붙인 성을 하나 지어 주마. 어떠니?”
오빠가 불을 붙였다.
“나는 거기에 황금을 입혀 줄게. 리샤의 머리 색을 닮은 금빛 성이 되는 거야!”
이제 열두 살이 된 바보 오빠의 말.
오빠는 이제 제법 키도 커졌고, 근육도 많이 붙었다. 열대여섯 살인 황실 기사들의 종자들과 비슷할 정도다.
전생보다 키가 더 커질 것 같다. 쑥쑥 포션 괜히 나눠 줬나. 이번에는 내가 더 커야 하는 건데.
꽁지 머리를 모아 묶은 은발은 재수 없게 찰랑거리고 있었고. 여전히 얼굴은 엄마를 많이 닮아 그린 듯한 미소년이었다.
물론 입 다물고 조용히 있을 때 이야기다. 입만 열면 깨서 큰일이다.
‘저걸 누가 데려가려나 몰라.’
아무튼 황금으로 만든 성이라니. 아무리 아빠랑 오빠라도 너무 오버다.
사실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절로 한쪽으로 시선이 갔다.
대리석 바닥 한구석에는 금으로 아기 발자국 본을 뜬 모형이 다섯 쌍 새겨져 있었다.
저게 무엇인고 하니.
‘내 첫걸음마 기념물이라니!’
그렇다. 내가 첫 생일에 정신을 차리고 나서 좀 있다가 기념비적인 걸음마를 했더랬다.
유모를 향해 다섯 걸음 걸었지.
셀리나가 그 자리에 내 발 표시를 해 놨었는데.
나중에 오빠가 그걸 보고 뭔지 물었었다. 당연히 시녀들은 사실대로 대답을 해 주었고.
아빠와 오빠는 잠시 그 자리를 아련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뭐라고 서로 쑥덕거리더니.
며칠 있다가 저런 흉물스러운 걸 만들어 버렸다.
거기에 오빠는 자기 마력 결정으로 보호 유리 같은 것까지 만들어서 씌워 놨다.
“우리 리샤 첫걸음마 자리 절대 지켜!”
―라나, 뭐라나.
그걸 생각하면, 황금 성 진짜 할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
‘아니, 아까운 황금을 왜 성에 입혀! 딴 데 써야지!’
이 두 남자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건 나뿐.
화제를 돌려 보자.
“오빠가 황금이 어디 있어서?”
그러자 오빠는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어서 정말로 기쁘다는 표정.
“1황자 몫으로는 세 개의 금 광산과 은 광산도 몇 개 있어. 덧붙여서 아키러스 놈 것도 권리가 내게 와서, 금광만 네 개야.”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나도 있어요?”
“그래. 1황녀의 것도 당연히 있단다. 일곱 살 생일이 지나면 네 명의로 바뀔 예정이란다.”
아빠는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루스템 제국에서 황금은 곧 태양의 파편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중요한 금속으로서 제국 내의 모든 금 광산은 황가의 관리를 받았다.
몇몇 특권을 받은 가문에서 관리하는 것을 제외하면.
때문에 계승권을 가진 황족에게는 광산의 소유권이 주어졌다.
물론 다음 대 황제가 즉위할 때까지의 한시적인 소유권이고.
일곱 살 생일이 지나야 광산에 대한 권리를 받을 수 있는 것도 금광이 계승권과 연관 있기 때문이다.
“태양의 마력을 각성한 이들에게만 금광에 대한 권리가 주어지기 때문이란다.”
오빠 같은 예외가 아니면 보통은 다섯 살 전에 태양의 마력을 각성하니까.
혹시 모를 예외적인 경우를 위해 2년의 유예를 더 주는 모양이다. 만 다섯 살이 될 때까지.
곧 금 광산을 받지 못한 황족은 황위 계승권에서 멀어졌다고 증명되는 것이다.
이미 받았다 해도 계승권을 빼앗길 일이 생기면, 잃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오빠가 콩나물 대가리 금광 뺏은 거구나? 그건 꼬시다.
나는 오빠가 먹여 준 아이스크림으로 빵빵해진 볼을 삐죽였다.
서너 달 뒤엔 내 금 광산이 생긴다, 라.
“훙-. 아직 몇 달이나 남았다니.”
그럼에도 입가가 실룩거리는 걸 참기 힘들었다.
내 금광이란다!
이건 전생에도 경험 못 해 본 일인데.
좀 더 빨리 안 되나.
태양의 마력이 조건이면 난 이미 클리어 했잖아!
몇 달 정도면 좀 빠르게 줘도 되지 않나?
내가 잠깐 삐죽거리고 있으려니, 오빠가 선뜻 말했다.
“그럼 내 거 줄까, 리샤?”
딸기 사탕을 나눠 주겠다는 듯 가벼운 말투였다.
“진짜?”
나도 모르게 뺨이 상기되어서는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물어본 모양이다.
주변 사람들이 앓는 소리를 냈다.
“금광, 은광, 아니, 대륙 전체를 드려요!”
“좋은 생각이군.”
그만해요, 아빠. 아빠가 그러면 농담이 아니게 되잖아요.
오빠는 흐물흐물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웅. 리샤가 오빠한테 한 가지만 해 주면, 줄게!”
“뭔데?”
나는 손안의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감췄다.
설마 내 아이스크림을 나눠 달라는 건 아니겠지?
아냐. 그래도 금광인데 아이스크림이랑 바꿀 수도…….
오빠는 뺨을 내밀면서 말했다.
“뽀뽀해 주면 주지! 뽀뽀 한 번에 금광 하나!”
“……진짜?”
뽀뽀 한 번에 금광 하나? 이거 아주 수지맞는 장산데?
물론 아빠 아들놈한테 뽀뽀해주긴 좀 많이 징그럽지만.
지금은 열두 살짜리 꼬마기도 하고, 무엇보다 금광이 걸려 있지 않나.
내가 심각하게 고민하는데, 옆에서 내 어깨 퍼프소매를 꼼질꼼질 건드리는 손길이 있었다.
“아빠?”
아빠는 부드럽게 웃으며 속삭였다.
“아빠는 금광 더 많단다, 아가.”
그야 황제니까 당연하겠죠.
그리고 아빠와 오빠는 다시 경쟁이 붙었다.
“뽀뽀 한 번에 금광 두 개!”
“아빠 치사해! 나는 세 개! 아니, 네 개! 은광은 보너스로 줄게!”
왜 갑자기 내 뽀뽀 경매가 된 건데.
이걸 흐뭇하게 봐야 하는 건지. 아니면, 한심하게 봐야 하는 건지.
1, 2년 전쯤부터 오빠는 자연스럽게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빠에 대한 오빠의 호감도는 진작 회복되어 있었는데, 오빠 놈은 아닌 척하면서 좀 버텼다.
그러다가 은근슬쩍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폐하, 다음은 아버지, 지금은 아빠.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일이다.
“리샤는 일곱 살 생일이 안 지나도 황실의 금광을 전부 가질 수 있도록 법을 바꾸겠다!”
아니, 아빠까지 나이를 거꾸로 먹으면 안 되잖아요.
그때 모냐가 손수건을 물어뜯는 소리가 들렸다.
“나, 나한테도 금광이 있었으면 황녀님 뽀뽀를 받을 수 있었는데!”
금광이 내 뽀뽀 받는 기준이 된 거야?
이대로 놔뒀다간 빈부격차로 인한 뽀뽀 박탈감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늘어날 상황.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나서는 수밖에.
“됐어. 필요 없어.”
“응? 금광 필요 없어, 리샤?”
진짜 필요 없을 리가 있나.
하지만 떼써서까지 일찍 받아 낼 필요를 못 느끼는 것뿐이다.
어차피 생일만 넘으면 받는다고 하고.
‘게다가, 아빠 거, 오빠 거는 그냥 내 거 아닌가?’
사실 지금 금광 가진 이 사람들한테 갖고 싶은 거 사 달라면 다 사 줄 텐데.
지금도 성을 지어서 금을 발라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아빠는 법을 바꾸겠다고 난리고.
진짜 그럴까 봐 내가 금광으로 말을 돌리지 않았나.
돈이랑 금은 아주 좋지만, 그렇게 많이 필요하진 않았다.
‘황족으로 태어난 덕분에 먹고살기 아주 편한걸.’
전생에도 돈에 쪼들려 본 적은 없었다.
집안 자체가 S급 헌터만 있는 데다 S급 헌터에게 돈 버는 건 숨 쉬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으니까.
지금은 더했다. 굳이 더 욕심낼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가질 거면, 어차피 내 거 될 걸 일찍 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적들이 가진 걸 뺏는 게 낫잖아?’
나는 사악하게 웃었다.
황위 계승권을 가진 황족이 금광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다.
그렇다면 벨론드 대공가에도 아직 금광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이 남아 있었다.
세실리아 벨론드 대공녀.
그 몫의 금광을 빼앗으면, 벨론드 대공가의 자금줄을 말려 버릴 수 있었다.
그러면 저쪽 –1, 우리 +1. 도합 +2만큼의 효과가 나지 않겠는가!
파사삭!
아이스크림에 꽂혀 있던 초콜릿이 입 안에서 부스러졌다.
후후후. 기대되는걸?
내가 잠시 사악한 생각에 빠진 동안 눈앞에서는 바보 싸움이 커져 가고 있었다.
“전부 받고! 맥켈런의 다이아몬드 광산까지 더 걸겠다!”
“으읏! 더는 걸 수 있는 광산이 없는데! 진짜 치사해요, 아빠!”
저러다가 왕관이나 황궁까지 걸겠다는 소리 나오겠다.
갈수록 팔불출이 심해져서 황족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수준이다.
안 되겠다 싶었던 나는 강력한 패를 꺼냈다.
“리샤한테 뽀뽀해 주면, 나도 뽑뽀해 줄게!”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뻗었다.
일곱 살이나 되어서까지도 삼인칭 화법을 쓰자니 아주 민망했다.
하지만 아빠랑 오빠가 이거에 껌뻑 죽는걸.
“…….”
“…….”
잠시 방 안에 침묵이 가득 찼다.
다가올 미래를 예측한 나는 지체 없이 결계를 펼쳤고.
쿵! 콰광!
덕분에 아빠와 오빠의 주먹에 벽이나 바닥이 녹거나 불타는 건 피했다.
“아빠는 죽는 줄 알았단다, 내 딸.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그런 걸로 심장마비 걸리지 마세요.
“리샤는… 천사야! 내 동생은 천사라구! 저런 착한 마음 씀씀이라니…… 어흑!”
바보 오빠는 그런 걸로 울지 말라고.
어쨌든 나는 두 사람의 경쟁을 한 방에 제압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리샤. 뽀뽀!”
아빠랑 오빠의 뽀뽀를 양 볼에 받고.
나도 번갈아 가며 쪽, 쪽 뽀뽀를 날려 주었다.
“하아. 이대로 영원히 뺨은 씻지 말아야지.”
씻어! 더러워!
그리고 아빠랑 오빠를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보는 유모와 시녀 언니들 덕분에, 나는 또 잠시 뽀뽀 타임을 가져야 했다.
‘휴. 정말이지 인기인은 힘들단 말이야.’
***
벨론드 대공저에는 갓 사교계에 데뷔한 어린 영애들의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당연히 그 주체는 올해 열네 살이 된 세실리아 대공녀.
오빠 아키러스가 계승권을 잃고 수도에서 쫓겨난 지금, 대공가의 유일한 희망인 그녀였다.
풍성한 주황색 곱슬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꼬면서, 소녀는 사랑스럽게 웃었다.
“후훗. 오늘도 많은 분들이 제 초대에 응해 주셨네요,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