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2/218)

Level 11. 메인 퀘스트 : 잠자는 관 속의 왕자님 (02)

대공 부부는 딸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세실리아의 화려한 차림새와 이 티 파티 자리가 곧 증거였다.

세실리아는 근래 수도 사교계의 작은 여왕으로 군림하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었다.

세실리아 대공녀가 주최하는 모임이 사실상 올해 사교계의 선두 역할을 했으니 당연했다.

황후 자리가 비어 있고 황녀가 아직 어리다 보니, 대공녀보다 신분이 높은 황족 여성이 없는 상황.

때문에 대공 일파에게 줄을 대려는 이들이 아니라 해도, 이 파티에는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빠졌다간 올해 사교계 유행에서 뒤처지는 신세라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자신을 숭배하듯 몰려든 소녀들의 한가운데에서 세실리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후후. 좋아. 사교계의 여왕 자리도, 장차 황위도 전부 내 것이야! 그 백치 계집애가 아니라!’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반면, 자신의 위치를 진심으로 즐기는 중인 세실리아 대공녀를 다들 조금 질린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대로면 정말 대공녀가 사교계의 여왕이 되겠어요. 황후께서는 안 계시고, 황녀께선 아직 어리시니.”

“하지만 황녀 전하께서 엄청난 마력을 보이셨잖아요. 황제 폐하와 황자 전하의 황녀님 사랑은 유명하고요.”

과거 황자 황녀에 대해 헛소문이 돈 이후, 황제는 아들딸을 공식적인 자리에 꽤 자주 데려왔다.

마치 과시하는 것처럼.

‘이렇게 내 아이들의 능력이 출중하고, 내 딸이 귀엽다!’

―라고.

덕분에 황제와 황자가 황녀에게 껌뻑 죽는다는 건 유명했다.

“황녀께서 사교계에 나오시기만 하면 분위기가 바뀔 텐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 대공녀를 따르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의심을 가지는 영애들도 많았다.

대공녀의 오빠인 아키러스 대공자가 모욕적인 사건을 계기로 지방으로 쫓겨난 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대공녀도 아직 확실한 금 동아줄은 아니었다.

“하지만 황녀님은 이제 겨우 일곱 살이신걸요. 그분이 사교계에 나오시려면 빨라도 7, 8년은 걸려요.”

세실리아의 나이는 올해 열네 살.

그녀가 예비 사교계를 장악하려 드는 것도 나이에 비해 이르다는 평이 많았다.

귀족가의 영애들은 보통 열여섯에서 열일곱 사이에 사교계에 데뷔했기 때문이다.

벨론드 대공가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세실리아의 사교계 데뷔를 앞당기는 무리수를 두었다.

덕분에 황녀가 사교계에 등장하기 전 대공녀가 사교계를 장악하는 데에 성공한 듯 보였다.

황녀의 사교계 데뷔는 몇 년 이상 더 기다려야 하므로.

그 긴 시간 동안 대공녀의 눈 밖에라도 났다가 피해를 볼 것이 두려워 몸 사리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황녀의 존재감은 절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대부분의 영애들이 눈앞의 대공녀와 미래의 황녀 사이에서 고민 중이었다.

그리고 세실리아는 이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 백치 따위를 감히 나와 비교하다니.’

세실리아가 생각하기에 황녀가 저보다 나은 건 딱 하나였다.

‘아버지가 황제고 오빠가 황자라는 것뿐.’

태양의 마력이 없어 제대로 황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버지.

그리고, 공개석상에서 치욕을 당한 끝에 쫓겨난 오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전혀 상대가 안 된다.

‘하지만 나와 황녀를 비교하면 달라!’

자신 역시 태양의 마력을 갖추고 있으니까.

주변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분명히 황녀께서 대공녀님보다 태양석을 더 강하게 빛나게 하셨다고…….”

세실리아는 무서운 눈으로 그 말을 한 영애를 노려보았다.

이 지적이 세실리아도 모른 척 지나치려는 그녀의 가장 큰 허점을 찌르고 있었으므로.

세실리아의 찌를 듯한 눈빛이 영애를 스치고 지난 순간.

“악!”

태양석 운운한 영애의 소매 레이스에 불이 붙었다.

“꺄악!”

“빠, 빨리 물을!”

소매에 불이 붙은 영애의 머리 위로, 투명한 펀치 보울(punch bowl)이 뒤집어지며 붉은색 칵테일 주스를 쏟아 냈다.

촤악!

당연히 세실리아가 벌인 일이었다.

“…….”

“…….”

시끌벅적하던 홀 안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세실리아의 비웃는 목소리가 고요한 홀 안을 울렸다.

“조심하시지 그랬어요. 하마터면 촛불에 불이 붙어 크게 다칠 뻔했네요. 제가 빨리 끄지 않았으면 큰일이 났을지도 몰라요.”

지금은 낮이었고, 홀 안에 촛불 따위 없었다.

그러나 이를 지적할 수 있는 이가 있을 리 없었다.

소매에 불을 붙인 것도, 불을 꺼 주는 걸 빙자해 무알콜 칵테일을 머리에 부은 것도 세실리아다.

제 심기를 거스른 이에게 태양의 마력을 대놓고 과시한 것이다.

모욕을 당한 영애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대공녀…님.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 흑, 우욱….”

자신을 위협하고 모욕 준 상대에게 도리어 감사해야 하는 상황.

영애는 참지 못하고 오열하며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세실리아는 그 뒷모습을 코웃음 치며 감상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키기로 했다.

“이런. 장갑이 젖어 버렸네요. 바꿔 오시겠어요? 에아루스 영애?”

주변의 시선이 대공녀의 근처에 있던 소녀, 에아루스 후작 영애 아멘다에게 모였다.

에아루스 후작가는 단 셋뿐인 개국 공신 가문 중 하나였다.

황실로부터 남부 지역의 광산 채굴권을 받고, 대대로 풍요로운 남부의 가장 넓은 평야를 소유한 유서 깊은 가문이기도 했다.

그 부는 제국 내에서 황가 다음간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아멘다는 그 에아루스 후작가의 하나뿐인 딸이었다.

후작 영애에게 이런 일을 시킨다는 의미는 하나였다.

‘설마, 에아루스 영애가 대공녀의 시녀가 된 건가?’

경악 어린 시선 속에서, 아멘다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장갑을 받아 들었다.

“예, 대공녀님.”

그리고 불편한 다리를 절룩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인의 명을 따르기 위해.

세실리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 아무리 마력이 강하면 뭐 하겠어. 어떤 마력을 어떻게 쓰는지가 중요한 거지.’

에아루스 후작가를 발아래 꿇린 자신처럼 말이다.

***

꿈을 꾸었다. 전생의 기억.

마왕 소환을 앞둔 마지막 전장에 나서기 직전.

“서나야. 안서나.”

지금도 ‘그 남자’의 모습과 목소리는 지독하게 생생했다.

그의 눈은 늘 차가웠다.

누구에게나 웃어 주고, 늘 장난기 어린 태도로 모든 이를 대했으나-.

나만은 알았다. 그는 진심으로 웃는 적이 거의 없었다. 진심으로 다정한 적도.

때문에 오빠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저 자식 짜증 나. 웃는 표정이든 예의 바른 태도든, 전부 가식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만은 달랐다. 나를 볼 때만은 그의 눈이 진심으로 상냥하게 녹아들었다.

그의 아우라까지 눈이 비추는 감정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나에게만 다정하던 회청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오빠와 다른 동료들이 듣지 못하는 거리에서.

“그러니까, 지금 내가 널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뭐?”

“이 말은 농담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줘.”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자니 그는 더더욱 장난스럽게 웃었다.

저렇게 웃으면서 어떻게 믿으라는 건가.

“너 지금 사망 플래그 세운 거 알아? 꼭 전투 앞두고 그런 말 하면 꼭 죽더라.”

“아, 그러면 취소. 마왕 잡고 나서 다시 고백할게.”

“……그게 더 강한 플래그거든.”

실없는 농담처럼 넘겼다. 그는 늘 장난스럽게 굴었으니까.

그런데도.

그럼에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내 얼굴이 어떤 색인지 어떤 표정인지도 몰랐다.

멍청하게도.

마왕 소환을 앞두고 내 마음과 정신을 흩뜨려 놓기 위한 놈의 음모라는 것도 모른 채.

바보 같게도 귓전을 울리는 내 심장 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날 믿고 기다려 줘, 서나야.”

나는 그를 믿었다. 그리고 배반당했다.

소환진을 파괴하여 마왕 소환을 저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믿은 그 순간.

마왕은 그 남자의 육체를 빌어 이 세상에 강림했다.

그리고 하나 남은 가족이었던 오빠를 죽였다.

“위험해, 서나야!”

“오빠!”

그에 대한 내 호의와 믿음은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

내 한 번의 실패.

하지만 두 번은 없을 것이다.

‘이번 생에서까지 다시 만난다면……, 반드시…….’

이건 맹세였다.

그렇게 결심을 굳히고.

나는 천천히 꿈에서 깨어났다. 막 눈을 떴을 때.

[?(&% 퀘스트 발생!]

[퀘스트 명 : ‘절대적인 맹세’]

[설명: 부디 네 결심이 변치 않기를.]

[완료 조건 : 배반자 배제]

뭐?

평소와는 전혀 다른 퀘스트의 내용에 나는 놀라고 말았다.

***

어쩐지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했다.

“…….”

나는 망연자실했다.

“왜 그래, 리샤?”

오빠가 놀라서 이렇게 속삭일 정도로.

이유는 간단했다.

전혀 예상 못 한 일이 눈앞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나스카 공국의 유일한 후계자, 미하일 나스카 님이십니다.”

내가 잘 아는 얼굴이, 아빠 무릎에 앉은 내 앞에 나타났다.

하얗고 고운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단정하게 자른 검은 머리카락은 전생과 같았다.

다만 눈은 감고 있어, 눈동자 색까지 전생과 같은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조금 아쉽……?

‘아쉬워? 내가? 뭐가 아쉬워?’

놀랍게도 그의 이름은 전생과 같았다.

미하일.

전생의 모든 S급 헌터 중 내가 가장 강한 것은 부동의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하고 top3를 꼽으라면 반드시 꼽히는 이가 딱 셋이었다.

하나는 내 오빠이기도 한, 염제 안서운.

두 번째는 성녀.

그리고 마지막이…….

대현자 미하일 칼라닌.

‘저놈이 왜 지금 여기서 튀어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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