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1/218)

Level 12. 메인 퀘스트 : 쭉정이는 가라 (04)

대공비가 너무 놀라 말을 더듬었다.

“그, 금광이라니요?”

내내 강 건너편을 구경하는 듯하던 대공의 표정에도 변화가 생겼다.

미약하지만 분명한 불안감.

오빠는 눈치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주 배려 넘치는 대가 아닌가요? 대공녀가 실패할 경우 계승권을 잃는 것보다는 낫지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대공비와 대공의 표정을 보아하니, 어째 계승권보다 금광 뺏기는 게 더 싫은 눈치였다.

오빠 놈은 나와 세트로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해맑게 웃으며 손뼉을 짝짝 치며 말했다.

당근 꼬다리의 가장 큰 약점을.

“우웅. 쎄씨네 엄마는 쎄씨가 실패할까 봐 걱정되나 봐.”

니네 엄마도 너 못 믿는 거 아냐?

내 말에 당근 꼬다리와 대공비가 소금 맞은 미꾸라지마냥 펄쩍거렸다.

“어, 어머니?!”

당근 꼬다리는 배신감과 불신 어린 시선으로 제 엄마를 보았고.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저는 누구보다 딸을 믿고 있어요!”

대공비는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나는 아빠의 가슴팍에 머리를 폭 기대면서 해맑게 외쳤다.

“우리 아빠는 리샤를 언제나 믿어 주시는데! 내가 금광에 대한 권리를 걸겠다고 해도 믿고 기다려 주실 거야!”

그리고 미끼를 드리웠다. 사냥감이 절대 그냥 넘길 수 없을 탐스러운 것으로.

이 말이 끝나자마자 당근 꼬다리와 그 부모의 눈에 욕망이 드글드글 끓기 시작했다.

루스템 황족에게 주어지는 금광에 대한 권리는 직계와 방계의 차이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당근 꼬다리가 가진 권리는 금광 하나에 대한 것.

하지만 직계인 내가 받을 권리는 황도 르펜시아 인근의 금광 세 곳, 거기에 황제의 재량으로 은광이나 보석 광산 역시 내릴 수 있다.

저들이 욕심내는 것도 당연했다.

당근 꼬다리의 눈이 불타기 시작했다.

“지금, 분명히 황녀께서 본인의 권리를 걸겠다고 하셨죠?”

당근 꼬다리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양옆으로 벌어졌다.

동시에 그녀의 음흉한 속내가 내 눈앞에 보였다.

[세실리아(당근 꼬다리) : ‘그래, 상대는 겨우 일곱 살짜리 꼬마야.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거야. 틀림없어!’]

피오나 이모가 경악하며 나를 막으려는 찰나.

당근 꼬다리가 내 말이 취소되기라도 할세라 다급하게 외쳤다.

“저도 받아들이겠어요! 황족 두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걸었으니, ‘능력 증명’의 조건은 채워졌다고 봐도 되겠죠!”

아빠와 오빠는 굳은 표정으로 나와 당근 꼬다리를 보고 있었다.

[오빠 : ‘리샤가 나서지 말라고 했으니 나서면 안 되겠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위험은 차라리 내가 감수하는 게 나은데.’]

[아빠 : ‘나야 우리 딸을 믿지만, 하지만…… 저 어린아이가 벌써 ‘능력 증명’에 나서다니. 마음이 아프구나. 좀 일렀던 나조차 10대 중반은 되어서야 시작한 것을.’]

두 사람은 당장에라도 끼어들고 싶어서 움찔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눈을 부라리고 있어서인지 나서지 못했다.

오빠가 아까 실없는 소리를 해대면서 끼어든 건, 본격적인 ‘능력 증명’ 논의가 시작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몇 년 전 두 사람의 만행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도 내가 패 버리는 거 방해하면, 가만 안 둘 거야! 둘 다!”

몇 년 전 알현 자리에서의 원한(?)을 난 잊지 않았다.

무슨 후작 부인이랑 아키러스, 둘을 아빠랑 오빠가 내가 나서기도 전에 처리해 버렸으니까.

그때 얼마나 아쉽고 분했는지 모른다.

‘나도, 나도 패 버릴 수 있는데! 누구보다 잘 패는데!’

그래서 이번엔 약간의 도움 외에는 끼어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 두었다.

어차피 내가 이길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당근 꼬다리가 반드시 실패할 거라는 걸 알아.’

당근 꼬다리 본인이 성공하리라고 확신하는 것 이상으로.

나는 고개를 꾸닥꾸닥하며 대답했다.

“좋아, 그렇게 하자. 쎄씨!”

당근 꼬다리의 얼굴에 희열 어린 미소가 걸렸다.

[세실리아(당근 꼬다리) : ‘좋았어! 드디어 기회가 온 거야. 내가 황녀가 되는 것만이 아니라, 저것을 분에 넘치는 자리에서 내쫓을 기회가!’]

예상대로 당근 꼬다리는 일곱쨜을 상대로도 전력을 다해 죽자고 달려드는 열네 살 소녀였다.

나는 헤죽 웃었다.

‘미끼를 물었구나!’

***

세실리아는 보란 듯 황제의 품에 안겨 웃는 여자애가 몸서리치게 싫었다.

저 영광과 부귀, 권력, 애정 모두 자신의 것이어야 하는데.

괜찮다. 결국 자신이 능력을 가진 걸 증명하면 될 일이다.

그러면 저 짜증 나고 밉살스럽고, 영악하면서도 멍청한 계집애를 원래 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었다.

‘나는 몇백 년 만에 나타난 정화 능력을 가진 황족이니까.’

그래서 7대 전의 황제처럼, 저 영광된 자리에 오를 것이다.

저 계집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그때 황제의 낮은 선언이 들려왔다.

“그래. 이번 일은 ‘능력 증명’의 조건을 충족한다.”

그것이 세실리아의 귀에는 자신에 대한 항복처럼 들렸다.

황제도 자신의 능력을 보고 나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황녀의 자리에 어울리는 건 저 반푼이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걸, 황제도 인정하게 되리라.

세실리아는 침착하게 걸음을 내디뎠다.

나스카의 왕자가 누운 관 앞으로.

새삼스레 정말로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설화 석고로 빚어 낸 섬세한 세공품 같은 미소년.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져서, 코에는 향기가 감돌고, 귓가에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릴 듯했다.

세실리아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성스럽고 위엄 넘치는 표정을 지은 채, 소년에게 몸을 숙였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이 소년이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자태를 보고 한눈에 반할 수 있도록.

그리고 중얼거리는 척, 주변에 다 들리도록 말했다.

“가여운 왕자님.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녀의 손끝에서 주황색의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장에라도 꺼질 듯 약한 빛이었지만, 곧 홀의 반절을 채울 정도로 점점 커졌다.

세실리아는 태어난 이후 가장 큰 힘을 쥐어짜 내고 있었다.

‘힘들지만, 견뎌야 해.’

온몸의 피를 다 쥐어짜 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원래 마력을 사용하는 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했다. 체력, 혹은 생명력.

그중에서도 정화의 마력은 특히나 많은 체력을 뽑아 갔다.

‘특별한 힘이라 어쩔 수 없는 거지.’

세실리아는 그리 믿었다.

절대 자신이 가진 정화의 마력이 희박해서 이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리 없었다.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고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한계 이상까지 짜낸 정화의 마력을 전부 관 속에 누운 소년에게 퍼부었다.

동시에 세실리아는 불꽃과 열의 속성을 가진 태양의 마력을 최대한으로 분출했다.

흘긋, 그녀의 시선이 태양석이 있는 방향의 창문을 향했다.

그녀가 있는 힘을 모조리 짜낸 덕분에, 태양석이 빛나기 시작했다.

‘좋았어.’

빛나는 태양석을 배경으로 저주받은 왕자를 구해 주는 것이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데에 이보다 더 확실한 연출은 없었다.

“오오! 태양석이 빛나고 있어요!”

“대공녀의 마력과 똑같은 주황색이야!”

사방에서 터지는 감탄과 웅성거림을 들으며, 세실리아는 남몰래 웃었다.

다음 순간. 한계를 넘어 마력을 뽑아 낸 부작용이 닥쳤다.

“아!”

잠시 의식이 흐려져 그대로 휘청, 한 것이다.

누군가의 손이 그녀의 몸을 부축했다.

***

나는 당근 꼬다리가 쥐꼬리만 한 정화의 마력을 쥐어짜 내는 걸 봤다.

동시에 태양석을 빛나게 하겠다고 불필요한 타 속성 마력까지 내뿜는 것을.

‘쇼하네.’

하지만 남들 눈에는 정화의 마력을 극한까지 쏟아 낸 덕분에 태양석이 반응한 것으로만 보일 터다.

참관하겠다며 온 엑스트라들은 당근 꼬다리의 기대에 부응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당근 꼬다리가 무리해서 픽 쓰러지는 걸 보며, 안타까워했다.

“너무 무리하셨나 봐요.”

“저렇게 희생적인 모습이라니.”

“대공녀에 대한 소문과 너무 다른 모습인데요.”

“누가 악의적으로 왜곡한 게 아닐까요?”

그리고 픽 쓰러지는 당근 꼬다리를 부축한 건, 옆에 서 있던 나스카의 장로였다.

그걸 확인한 당근 꼬다리의 표정이 순간적이지만 일그러졌다.

[세실리아(당근 꼬다리) : ‘나스카의 왕자가 일어난 줄 알았는데. 이런 쭈그렁 노인이라니…….’]

정말이지 꿈도 참 컸다.

그리고 모두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미하일이 누운 관을 향했다.

당근 꼬다리와 대공 부부, 나스카 일족은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

“…….”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 뇌를 거치지 않고 중얼거린 소리가 너무 컸다.

“……안 일어나네?”

생각만 한다는 게 입 밖에 내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모두가 숨죽이고 있었기에 작은 소리가, 너무나도 크게 들렸다.

그 말대로였다.

나스카의 유일한 왕자는 여전히 관에 곱게 수납된 그대로 조금의 미동도, 나아진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화악! 당근 꼬다리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우와. 진짜 당근 같다.’

이젠 당근 꼬다리가 아니라 그냥 당근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다. 당근은 너무 심심하니까, 당근당근으로 부르자.

‘헹.’

절로 콧방귀가 나왔지만, 나는 소리 없이 비웃어 주었다.

여기서 놀라지 않는 건 나뿐이었다. 이 결과를 예상한 것도.

‘그야, 미하일 저놈이 저 상태인 건 저주가 아니니까.’

그러니 당근당근이 저주 정화의 힘을 훨씬 더 강하게 가지고 있었어도 전혀 소용이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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