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85/218)

Level 14. 메인 퀘스트 : 박수 칠 때 (02)

***

소풍 내내 아빠와 오빠는 아주 내 앞에서 절절맸다.

일단 자아비판부터.

“우리 아가. 아빠는 절대 우리 아가가 싫다는 일은 하지 않을 거예요. 아빠는 아주 마음 깊이 반성하고 있으니까…….”

“진짜 잘못했어, 리샤. 앞으로 그런 일이 또 생기면 무조건 아빠를 말릴 테니까…!”

“…….”

아빠는 상처받은 표정으로 오빠를 보았고, 오빠는 여전히 뻔뻔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런 건 오빠가 먼저 계획 세우는 거 다 알거든? 아빠한테 다 떠넘기려고 하지 마!”

오빠가 움찔하자, 못을 박아 넣었다.

“……또 실망하기 싫으니까.”

그래 놓고 유모에게 안겨서 시녀들과 개울가에 소풍을 나가자, 오빠와 아빠는 사이좋게 또 좌절했다.

나랑 오래 지낸 유모와 셀리나, 모냐는 태연했지만, 아멘다 언니는 안절부절못했다.

“저, 그래도 황제 폐하와 황자 전하께서 많이 상심하신 것 같은데요.”

나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로는 끄떡도 없으니까 걱정 마.”

내가 우리 가족을 모를까.

둘 다 내가 삐진 걸 보고 불안해하고 안달복달하는 건 진심이겠지만.

이 정도로 진짜 상처받을 만큼 약한 사람들은 아니다.

‘애초에 S급 헌터들은 다 멘탈도 강하니까.’

마음의 강함이나 회복력도 아마도 마력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조금 더 삐진 척해도 된다 이거야!

하지만 내 예상은 조금 틀리고 말았다.

유모랑 시녀들이랑만 놀고 돌아왔을 때, 아빠와 오빠의 상태가 이상했다.

시든 배추 같은 상태의 두 사람은 진심으로 땅을 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 심각성을 깨닫게 된 건, 다름 아닌 시스템 창 때문이었다.

[돌발 퀘스트!]

[퀘스트 명 : ‘관심을 주세요’]

[설명 : 동식물만이 아니라 사람도 관심이 모자라면 말라 죽고 맙니다. 상처받은 두 사람에게 애정과 관심을 촉촉하게 주세요. 그리고…….]

엥?

둘 다 진심으로 풀 죽었다고? 진짜? 이 정도로?

그리고 시스템은 더 어이없는 짓을 벌였다.

지직거리는 시스템이 만들어 낸 가상의 아이콘이 아빠와 오빠의 머리 위에 떠올랐던 것이다.

‘……클로버 새싹?’

섬세하게 사이즈도 조금 다른 두 개의 클로버 싹 모양이,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동동 떠 있었다.

그리고.

‘시들어 있어!’

아빠와 오빠의 세 잎 클로버 싹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지금의 아빠와 오빠처럼.

[……행복의 싹을 다시 튼튼하게 피워 주세요!]

***

물론 저 어설프고 이상한 시스템의 말을 바로 믿은 건 아니었다.

아빠랑 오빠 머리 위의 클로버가 시들시들하다고, 진짜 둘 다 풀 죽은 건진 확신할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시스템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이유가 있겠다 싶었다.

‘잘 살펴보자.’

잠시 관찰의 결과, 나는 아빠와 오빠가 진짜로 풀이 죽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둘 다 밥을 깨작거려!’

그렇다. 내가 두 사람에게 심술이 났다는 이유로, 식사를 같이 안 해서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딱 하루, 아니, 한나절인데!’

그렇다. 내가 한두 달, 아니, 최소한 며칠간 화를 내고 있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뭐야, 둘 다 왜 이렇게 약해졌어!’

나는 아빠랑 오빠가 무려 고기 가득한 저녁 식단을 1인분씩만 먹었다는 걸 확인하고 경악했다.

기척을 숨기고 몰래 두 사람의 식사를 엿보고 있다가, 참지 못하고 문을 열고 튀어나올 만큼.

쾅!

“뭐야! 둘 다 왜 그거밖에 안 먹어!”

시들시들하니 고기를 깨작대고 있던 아빠랑 오빠는 화색을 했다.

“아가!”

“리샤!”

그리고 둘 다 바로 내 옆으로 오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안 어울리는 짓이었다.

“아, 일부러 안 먹어서 걱정하게 하려던 건 아니란다.”

“맞아. 맞아. 리샤. 그냥… 하늘만 봐도 눈물이 나오고, 입맛이 하나도 없어서…….”

나는 바락 화를 냈다.

“아무리 나한테 혼났어도 그렇지! 밥을 그거밖에 안 먹으면 어떡해요!”

“미, 미안하다.”

“잘못했어.”

아빠랑 오빠가 밥을 1인분씩밖에 못 먹다니. 이건 엄청난 사태였다.

나는 우렁차게 시종장에게 명령했다.

“3인분씩 더 가져와!”

“예, 황녀님!”

아빠와 오빠의 앞에 각종 고기가 가득한 식사가 우르르 놓였다.

그리고 나는 두 손에 위풍당당하게 포크를 들고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물론 직접 발을 대지는 않았으니, 위생은 문제없었다. 허공에 동동 떠 있었으니까.

“둘 다. 아―!”

그러자 아빠와 오빠는 착하게 입을 벌렸다.

내가 스테이크를 한 장씩 통째로 입에 넣어 주자, 둘 다 착하게 받아먹었다.

“옳지! 잘한다!”

손뼉을 치며 응원해 주자, 두 사람은 어렵지 않게 곧 식욕을 되찾았다.

그리고 내가 안심할 수 있게 아빠는 3인분, 오빠는 2.5인분을 해치우는 데에 성공했다.

‘그래! 이 정도는 먹어야지!’

밥을 든든히 먹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옆에서 챙겨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랑 오빠 머리 위의 클로버 싹이 조금 기운을 차린 것 같았다.

오빠는 우물쭈물거리다가 겨우 물었다.

“리샤, 화 좀…… 풀렸어?”

원래는 이 기회에 좀 더 골려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스템까지 저러고 있는 걸 보니, 안 되겠다 싶었다.

“……음. 조금?”

그러자 아빠랑 오빠의 표정이 조금 밝아진다.

그리고, 땅을 향해 꺾여 있던 아빠와 오빠의 클로버 싹도 살짝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바닥과 이루는 각이 좀 더 둔각이 된 것 같은 걸 보면.

‘진짜 물 주고 비료 줘서 싹 키우는 기분이네.’

조금 키우는 보람(?)이 있어서 더 어이가 없었다.

아빠가 엄청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가, 같이 차 마셔도 될까? 절대 강요하는 게 아니라…….”

“……네. 좋아요.”

그러자 아빠와 오빠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어렸다. 싹도 조금 더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한나절 만에 나와 아빠, 오빠의 티타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리샤.”

“웅?”

아빠가 먹여 주는 스콘을 입 안 가득 욱여넣고 있었더니 발음이 샜다.

“오빠가 잘못했으니까, 리샤에게 사과를 하고 싶어.”

“웅.”

이어지는 오빠의 말은 내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내가 우리 리샤 발닦개가 될게!”

“…….”

나는 스콘을 뿜을 뻔했다. 유교걸의 영혼을 가진 내겐 타격이 좀 있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진지하게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발닦개는 좀 그렇지 않아?”

“……안 돼?”

경악스럽게도 오빠는 ‘발닦개는 아닌 것 같다’는 내 대답에 풀이 죽었다!

머리 위의 클로버도 고개를 숙였다!

이건 안 되지!

나는 재빠르게 태세를 바꾸었다.

“오빠가 내 발닦개가 되겠다는 건 전제가 틀렸어. 발닦개가 되겠다는 건, 지금은 아니라는 소리 아냐?”

‘하지만 오빤 내 밥인데? 이미 내 발닦개인데?’라는 소리.

내 너무한 말에, 오빠는 활짝 웃었다. 그래서 내가 더 당황하고 말았다.

이게 진짜 통한다고?

“아니! 맞아! 나는 리샤의 발닦개야!”

행복한 발닦개가 밝게 웃었다. 오빠의 클로버가 조금 고개를 들었다.

옆에서 아빠가 작게 중얼거렸다.

“부럽구나…….”

그러더니 아빠는 곧 나에게 물었다. 너무나도 해맑고 희망에 찬 미소였다.

“아빠는 노예로 삼아 주지 않겠니?”

“……노예는 위법이잖아요.”

제국법상 노예 매매는 금지되어 있었다.

게다가 딸이 아빠를 노예로 삼는 건 아무리 농담이라도 좀……, 아니, 농담이 아닐 것 같아서 더 무서웠다.

그런데 여기서 아빠는 조금 풀이 죽을 뻔하다가. 곧 좋은 해결책을 찾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법을 바꾸면 되지. 우리 딸만 노예를 가질 수 있도록. 아! 나 말고 딴 노예는 말고!”

……뭔가 우리집 식구들은 점점 더 이상해지는 것 같다. 어쩌면 이것 자체가 환생의 페널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가족애가 넘치는 건 좋은데, 어쩐지 표현이 좀……, 그렇지 않아?

하지만 나는 아빠에게도 맞장구를 쳐 주어야 했다.

지금 난, 클로버 싹을 살려야 하니까!

“으응? 그치만, 법 바꿀 것도 없이 아빠 이미 리샤 거 아니었어요?”

미안해, 나의 유교 영혼! 잠깐만 눈 감아!

아빠의 얼굴이 ‘확!’ 하고 피었다.

“맞아! 아빠는 우리 애기 거란다! 우리 애기의 노예야!”

‘아빠는 행복한 노예예요!’라고 외치는 듯한 표정.

그렇게 나의 발닦개 1호, 노예 1호 선언에 아빠와 오빠의 클로버는 조금 더 신선해졌다.

놀랍게도.

내가 잠시 어울려 주는 것으로 아빠와 오빠의 클로버는 제법 싱싱해졌다.

하지만 괜히 시간만 더 끌고 싶지 않았다.

‘가족 소풍을 충분히 즐겨야지!’

그래서 나는 한방에 퀘스트를 끝내 버리고, 아빠랑 오빠를 원 상태로 돌려놔야겠다고 결심했다.

“둘 다 리샤 소원 하나만 들어주면 용서해 줄게!”

그러자 아빠와 오빠는 그대로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

“뭔데, 뭔데?”

“뭐든 말만 하거라! 우리 애기가 바라는 소원은 뭐든 들어주마!”

나는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뻗었다.

“리샤 안아 주면!”

“……!”

“……!!”

아빠와 오빠의 얼굴에 놀라움과 기쁨, 미안함 등 온갖 감정이 흘러넘쳤다.

아빠랑 오빠는 아주 조심스럽게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두 사람을 마주 끌어안았다.

그러자, 제법 많이 살아났어도 아직 풀 죽어 보이던 두 사람의 클로버가 마침내 완전히 정상 상태로 돌아갔다.

그리고 뿅! 하며 축복하는 듯한 빛을 뿌리며 사라졌다.

[퀘스트 완료!]

하지만 난 당부를 잊지 않았다.

“또 리샤 속이면 그땐 용서 안 해 줄 거예요!”

“절대, 절대 안 할게!”

“그런 일은 없을 거란다!”

굳이 <궁예> 스킬로 속마음을 확인해 보지 않아도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진심 1000%라는 게 느껴졌으니까.

그 뒤로는 일주일간의 가족 소풍을 아주 알차게 즐겼고.

황궁으로 돌아갈 때에는 다 같이 한 마차에 탔다.

그리고 우리가 황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저거 왜 빛나는 거지?”

태양석이, 주황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서쪽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기 전 태양의 마지막 빛처럼, 눈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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