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90/218)

Level 14. 메인 퀘스트 : 박수 칠 때 (07)

“……뭐, 라고?”

당근 꼬다리, 아니, 세실리아의 눈이 지진 난 것처럼 떨렸다.

굳이 <궁예> 스킬을 쓸 것도 없었다.

확신이 들었다.

‘얘도 본능적으로 느끼고는 있었구나.’

하긴, 모르기 어려울 거다.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힘과 반대로, 몸이 붕괴되어 가는 걸 스스로 느끼지 못할 리 없으니까.

아마도 현실을 부정하려 애쓰며 어떻게든 버티려 하고 있는 것이리라.

“네가 겪은 건 재각성이 아니야. 그보다는 차라리 반각성(反覺性)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려.”

지금 세실리아가 겪은 것, 그리고 전생에 사교도들이 광신도 일반인들을 개조해서 인간 폭탄으로 만든 것.

그 현상은 반각성이라고 불렸다.

지금 세실리아의 시스템 정보가 그 증거였다.

[이름 : 세실리아 벨론드]

[……]

[상태 이상 : 반각성(C급)]

각성의 반대에 해당하는 인공적인 상태 이상.

각성이란 결국 자기 자신과 인류, 지구를 지키기 위한 힘의 깨달음이다.

반면 저 힘은 일시적으로 사람을 강해지게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반대의 역할을 했다.

‘생명을 깎아 당사자의 죽음을 부르고, 더 나아가서는 세상의 멸망을 앞당기는 역할을 하지.’

그리고 반각성자들이 늘어나 부정의 힘이 쌓이면, 그 자체가 마왕을 불러들이는 토대가 된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걸로 분명해졌다.

‘이번 생에도 쫓아왔구나. 빌어먹을 사교도 놈들.’

기쁘고 올바르게 멸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미친놈들.

놈들이 뒤에서 움직이고 있었던 거다.

그 끄트머리가 세실리아, 정확히는 애비 실격에게 붙은 거고.

‘놈들도 그새 진화한 모양이지. 이렇게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도, 부정의 힘이 느껴지지 않아. 무슨 수를 쓴 거지?’

아마 나도 아우라를 보는 능력을 강화해 스킬로 만들어 두지 않았다면, 알아챌 수 없었을 거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궁예> 스킬의 부가 효과를 켰다.

사교도 놈들과 관련된 일이다. 확실하게 체크할 필요가 있었다.

[부가 효과 적용에 실패했습니다. 실패…. 실패…. 실패….]

[…적용에 성공했습니다!]

“무슨, 말도 아, 안 되는 소리야!”

내 말을 부정하면서도, 세실리아의 어깨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세실리아 : ‘그럴 리 없어. 그래. 이게 거짓말을 하는 거야! 그래도 내 부모님인걸. 내가 죽을 걸 알면서 그런 짓을 시켰을 리 없어!’]

역시 애비 실격에게 사교도가 붙은 모양이다.

이건 예상한 바였고, 좀 더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네 아버지 옆에 누구지?”

“뭐, 뭐?”

“너에게 재각성이라며 뭔가를 해 준 자가 있을 거야. 그자에게 뭔가를 당하고 난 뒤에, 네 마력이 증가했겠지. 그리고 급속도로 몸이 안 좋아지고, 감정을 조절할 수가 없고, 또…… 고통스러워졌겠지. 틀려?”

[세실리아 : ‘뭐야? 어떻게 저렇게 잘 아는 거야? 설마…, 설마……?’]

[세실리아 : ‘설마 진짜인 거야? 아버지가 날 그렇게 이용했다고? 하지만 그걸 나에게 *(& ※꒾€잖아! %^$&* 조차도, 내가 죽더라도 상관없었던 거야? 아냐! 그럴 리 없어! 말도 안 돼!’]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깨져서 정확히 안 보이네.’

아마도 벨론드 대공의 근처에 있는 사교도의 끄나풀에 대한 정보가 깨지는 듯했다.

어쩔 수 없나 싶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시스템이 뭔가 아주 중요한 정보를 줄 때.

혹은 ‘미하일’의 정보를 출력하려 할 때.

정보가 사정없이 깨지곤 했다.

시스템도 미처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뭔가에 방해를 받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아마 마왕이나 사교도의 중추와 직접 연결된 정보는 나에게 직접 전해 주는 데 방해가 있는 걸 수도 있어.’

시스템이 2년 정도 먹통이 된 것도 아마 그 영향이 있었을 거다.

얼마 전 또 상태가 안 좋았던 것도.

<궁예> 스킬로도 안 되면, 결국 세실리아 본인이 나에게 직접 말해 주어야 내가 알 수 있다.

퀘스트 알림 창이 떴다.

[메인 퀘스트!]

[퀘스트 명 : ‘나쁜 뿌리를 찾아서’]

[설명 : #@!%^*&@ Error! 표시할 수 없습니다!]

[완료 조건 : 세실리아 벨론드에게 직접 ^&@⌒에 대해 듣기]

충격으로 덜덜 떠는 세실리아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쟤를 구슬려 정보를 뜯어내야 한다는 소리다.

‘아, 이런 건 진짜 적성에 안 맞는데! 그냥 패는 게 편하다구!’

***

얼마 전에 황녀의 시녀가 된 에아루스 후작 영애 아멘다는 놀라움을 애써 눌렀다.

‘놀라면 안 돼. 놀라면 안 돼.’

황녀궁 생활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라지 않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폐, 폐하께서…! 황자 전하께서……!’

대륙 전체에 위명을 떨치는 제국의 유일한 주인. 태양신의 대리자인 황제 카스톨트.

그리고 어린 나이에도 얼음 칼날과 같은 냉철함과 예리함을 가진 황자 루퍼스리안.

이 고귀한 혈통에 강력한 힘을 갖춘 두 부자가, 사정없이 망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남자는 황녀와 세실리아 대공녀가 함께 들어 있는 침실 문에 따개비처럼 착 붙어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안쪽 소리를 훔쳐 듣기 위해 귀가 눌리도록 들이대고 있었다.

“전혀 안 들리는구나!”

“리샤의 결계는 완벽해요! 역시 내 동생다워!”

“내 딸답구나!”

“내 동생이니까요!”

대화 역시 이들의 행동만큼이나…… 이런 표현이 감히 어울릴지 알 수 없었으나.

‘파, 팔불출 같으셔…….’

사실 비슷한 행동을 황녀궁의 시녀로 오고 난 후 짧은 시간 사이에 자주 봤는데도, 익숙해지기 어려웠다.

“세실리아는 우리 아가를 공격했는데, 어째서 우리 아가는 저 애와 단둘이 대화하는 위험한 행동을 하려는 건지…… 너무 걱정되는구나.”

“헉! 설마, 우리 착하고 마음 약한 리샤를 세실리아가 꼬셔서 자기를 언니라고 부르라고 시키는 건 아니겠죠?!”

아멘다는 홀로 마음속으로 태클을 걸었다.

‘그럴 리가요. 황녀님과 대공녀가 얼마나 서로를 싫어하는데……,’

하지만 루퍼스리안 황자는 황녀와 대공녀가 어떻게 싸웠는지는 모른다는 듯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리샤에게 오빠든 언니든 될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언니가 느는 건 안 돼!”

“…….”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저 냉정하고 총명한 두 황족 남자가, 황녀와 연관되기만 하면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과 말을 보였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언니라니! 언니라니요! 감히 황녀님 입에서 언니 소리를 듣는다니! 상상만으로도 부러워서 죽을 것 같은……!”

“게다가 그게 대공녀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시녀들이 루퍼스리안 버금가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포인트가 ‘언니’라는 호칭에 집중되어 있는 걸로 들리는 건 어째서일까.

또 왠지 모르겠지만, 그 불똥은 아멘다에게도 조금 튀었다.

“그러고 보니 에아루스 영애는 황녀님께 언니 소리 들어 봤었죠.”

“제일 나중에 들어왔는데도 말이에요.”

“부러워라아…….”

아멘다는 루퍼스리안의 경계심 어린 눈빛과 손수건을 물어뜯는 시녀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동시에 받아야 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자신이 잠시 모시던 상전을 방패막이로 삼았다.

“뭐어, 어쨌든 대공녀께서 황녀님의 손위 사촌이신 건 맞으니까……. 언니라고 불러도 틀린 표현은 아니지 않을까요?”

아멘다의 예상과 희망대로, 시녀들과 황자의 분노와 경계는 다시 닫힌 문 안쪽을 향했다.

“세실리아 따위가 리샤의 언니라니! 절대 안 돼! 너무나도 부족해! 게다가 대공가와 세실리아가 얼마나 리샤를 헐뜯고 견제해댔는데!”

“맞는 말씀이에요! 세상 누구라도 황녀님께 언니 소리를 듣기엔 너무 모자랍니다!”

“특히 벨론드 대공녀라니!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활활.

아멘다가 불씨를 붙인 불꽃은 이미 쌓여 있던 장작 위에서 열정적으로 타올랐다.

아멘다는 그대로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그래도 이번엔 도움이 되었네요, 대공녀.’

하지만 빈말로도 감사의 인사는 하지 않았다. 워낙 당한 게 많았기 때문이다.

***

“살고 싶어?”

“당연하잖아! 왜 그따위 당연한 걸 물어?! 지금 날 놀리는 거야?”

나는 울면서 바락바락 대드는 세실리아를 향해 최대한 분노를 삭이려 애썼다.

‘그래. 얘는 겨우 열네 살이야. 어린애라고. 비록 싹수가 노랗다 못해 까만 애지만. 그래도 너무 어려. 어려서 뭘 몰라서 그런…….’

어떻게든 한 대 패고 싶은 걸 참기 위해서였다.

‘지금 패면 얘 죽을지도 몰라. 사실 큰 상관은 없지만, 일단 정보는 뽑아낸 뒤에…….’

그런데 당사자가 도와주지 않았다.

억울함과 원망 가득한 세실리아의 목소리가 적반하장으로 날 향했다.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면 당연히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그런 걸로 협박을 하려 들 수가 있어?”

“…….”

“아냐! 아냐! 그럴 리 없어! 내가 죽어 가고 있을 리 없다고! 아버지가 내게 그런 짓을 시켰을 리 없어! 넌 지금 거짓말하는 거야!”

“…….”

나를 비난하다가 현실을 부정하다가 아주 난리 블루스를 췄다.

‘침착, 침착하자. 이너 피스……. 얜 겨우 열네 살. 나는 2회 차 다 합치면 나이가 서른이 넘는다고. 어른은 아이에게 화를 내서는 안…….’

“어헝엉엉! 엄마도 없는 게!”

‘……되긴 개뿔!’

나의 얇디얇은 인내심이 툭, 하고 끊기는 소리가 났다.

생각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정신을 차리자, 세실리아의 멱살을 잡아 코앞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다른 손은 주먹을 쥐고 벽을 후려갈긴 상태. 마력은 두를 필요도 없었다.

쿵! 투두둑.

조각난 벽의 파편이 세실리아의 하얗게 질린 뺨 옆에 튀었다.

그리고 내 입은 손보다 한발 늦게 움직이고 있었다.

“너 맞고 말할래? 아니면 그냥 말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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