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2화 (93/218)

Level 14. 메인 퀘스트 : 박수 칠 때 (10)

당근 꼬다리는 더더욱 마르고 비척거리는 몸으로, 지독하게 불타오르는 마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상태 이상 : 반각성(A급)]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결국 그런 선택을 했구나.”

당근 꼬다리는 움찔거리더니, 곧 히죽 웃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내 목숨은 내가 알아서 챙길 테니까……, 넌 여기서 죽어 주렴!”

원래의 열 배에 가깝게 늘어난 마력양.

당근 꼬다리는 그 마력을 과시하듯 사방으로 풀어놓았다.

태양석이 이에 호응하듯 빛을 뿜어냈다.

쿵! 우직우직!

당근 꼬다리가 쏘아내는 마력탄에 황궁 대연무장의 단단한 화강암 바닥이 박살 났다.

참관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아빠의 결계까지 조금 흔들렸을 정도였다.

아빠와 오빠의 얼굴에 어린 걱정과 불안이 더 커졌다.

나는 두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생긋 웃어 보였다.

‘걱정할 것 없어요.’

내 마음은 잘 전해진 모양이다. 아빠와 오빠의 걱정 어린 눈빛이 누그러지는 게 보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는 것 또한 잘 보였다.

아빠랑 오빠가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더라면 나 역시 그럴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서 나는 두 사람에게 한쪽 눈을 깜빡 한 다음, 손가락 두 개를 겹쳐 K-하트를 만들어 보여 주었다.

짠!

여기엔 없는 제스처지만 대충 알아먹겠지.

그리고, 양손이나 양팔로 크게 하트 만드는 건 진짜 민망하단 말이야!

크게 소리치진 않았지만, 입술만 움직여 소리 없는 말도 덧붙였다.

‘아빠, 사랑해요!’

‘오빠, 사랑해!’

아빠와 오빠는 매의 눈으로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얼굴에 기쁨이 넘쳐흐르면서…….

‘뭐야? 또 마력 폭주는 진짜 오버거든!’

다행히 이번에는 두 사람 다 폭주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넘치는 마력에 기절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가까스로 직전에 자제하는 데에 성공한 모양이다.

진짜 오버해서 그랬다간 나한테 혼날 테니 당연하지만.

그리고 이 난리를 치르는 동안…….

“이익! 나한테 집중하지 못해?!”

쿵! 콰광!

당근 꼬다리의 약 오른 목소리와 귀가 터질 듯한 파열음이 주변을 진동시켰다.

……그렇다.

나는 당근 꼬다리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전부 가볍게 피하면서, 아빠와 오빠에게 K-하트를 날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해맑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치만, 지루해서 말이야.”

하암. 작은 하품까지 살짝 곁들여 주었다.

빠직.

당근 꼬다리의 이성이 끊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아나트리샤 황녀와 세실리아 대공녀의 ‘능력 증명’ 의식은 전 제국인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한 달의 유예 기간이 주어진 덕분에, 직접 참관하기 위해 지방에서도 일부러 올라온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여기 제일 좋은 참관석 티켓이 있어요!”

“앞자리에서 17년 만에 열린 능력 증명 의식을 관람하실 분!”

그런 이들을 노리고 참관석 자리를 두고 암표를 파는 이들도 나타났다.

애초에 황족 간의 ‘능력 증명’에는 제국 내는 물론 전 대륙의 이목이 집중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의식이 유달리 열광의 중심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세상에 얼마 전에 치솟았던 그 불꽃이 대공녀가 일으킨 거라면서?”

“그렇다니까. 마력 폭주가 일어날 뻔했다던가?”

“그나마 죽은 사람이 없는 건 전부 황녀님 덕분이래. 대공녀의 마력 폭주를 저지한 것도 황녀님이시라네.”

“황녀님께선 겨우 일곱 살 아니신가? 저렇게 작고 여리신데 대단해.”

“일곱 살이면 아직 애기인데.”

“대단하긴 하지만, 걱정이 되고 불안해요. 겨우 일곱 살이신데, 능력 증명의 자리에 서게 되다니.”

“이건 공공연한 비밀인데, 대공 일가가 억지로 황녀님을 능력 증명으로 끌어 냈다고 하는 거 알아?”

“진짜? 미친 거 아냐?”

“자길 구해 준 어린 사촌을 어떻게…….”

안 그래도 얼마 전 일어날 뻔했던 재앙을 황녀가 막은 것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목숨을 구한 이들이 적극적으로 황녀의 자비로움에 대해 소문 내고 다녔기 때문이다.

반면 대공녀와 대공 일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역시 들끓었다.

“대공녀가 가게를 다 태워 버려서 길에 나앉게 된 사람들이 많은데, 대공가에서는 보상을 해 줄 수 없다고 했다지?”

“그걸 황녀님께서 사재를 털어서 대신 보상해 주셨다네?”

물론 대공가는 보상을 해 줄 만한 자금이 없어 배를 짼 것이었고.

아나트리샤는 세실리아의 금광에서 나온 수익 일부로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 준 것이지만, 세세한 내막까지 이들이 알 리 없었다.

중요한 건 하나뿐.

‘나쁜 대공녀가 친 사고를 황녀님이 전부 수습해 주셨다! 천사 같으신 황녀님!’

그리고 그게 사실이기도 했다.

이 와중에 대공 일가의 억지로 어린 황녀가 능력 증명의 자리에 끌려왔다며, 걱정하고 분노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걱정과 불안 가득한 눈으로 대연무장의 가운데에 선 자그마한 소녀를 보았다.

붉은색이 감도는 금빛 고수머리, 사랑스러운 분홍빛 뺨.

신비한 청보라색 눈동자를 반짝거리고 있는 어린 황녀님은, 그들이 소문으로 들은 것보다 몇 배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렇기에 이런 폭력적이고 잔인한 자리에 끌려 나와 있는 것이 더욱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때문에 극히 소수만 남은 대공 일파와 아직 그들의 손을 놓지 않은 이들만이 대공녀를 응원했고.

절대다수가 황녀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었다.

조용히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듯.

그리고 ‘능력 증명’의 의식이 시작되자.

그들은 탄식과 걱정의 말을 내뱉어야 했다.

“황녀님이 밀리고 계셔!”

“역시 아직 능력 증명에 나서시기에는 너무 어리신 거야!”

“황녀님 나이 두 배면서 어린 사촌 동생을 저렇게 괴롭히다니. 너무해!”

이들은 세실리아가 발악하는 것도, 아나트리샤가 얼마나 여유 넘치는지를 알아볼 능력도 없었다.

때문에 그저 화려하고 위압적인 마력을 사방에 날려대는 대공녀가 유리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조마조마해하던 이들 중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참관인의 일부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말은 곧 대연무장 주변을 뒤덮었다.

“황녀님, 힘내세요!”

“제발 힘내세요, 황녀님! 저희를 구해 주신 것처럼!”

“나쁜 대공녀 따위에게 지지 말아요!”

황녀를 응원하고 대공녀를 비난하는 말들은 점점 더 커져 갔다.

마침내 대연무장에서 마력을 터뜨리며 격렬하게 싸우던 두 사람의 귀에도 닿을 정도로.

세실리아는 당황했다.

‘뭐야? 왜 내가 악당인 거야?’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황도 한가운데서 엄청난 재난을 일으킬 뻔했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었다.

아나트리샤가 아니었다면 죽은 사람이 많이 나왔으리라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난 어쩔 수 없었어! 그 인간들이 날 모욕했다구! 황족 모욕죄는 어차피 사형이야! 당연히 죽어야 할 인간들인데……!’

게다가 지금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을 거쳐 마력을 늘렸는지도 모르면서.

저 순진한 척하는 아나트리샤가 사실은 자신에게 엄청난 굴욕을 줬다는 것도 저들은 모르지 않는가.

피해 보상을 해 줬다는 것도, 어차피 자신에게서 빼앗은 금광으로 해 준 거다.

그러면 그 보상은, 결국 자신이 해 준 것이나 매한가지가 아닌가.

‘비난받아야 하는 건 쟤라구! 내가 아니라!’

세실리아는 억울함과 분노에 사로잡혔다.

“닥쳐! 어디서 감히 무지렁이들이!”

그녀가 쏘아 낸 엄청난 크기의 마력탄이 참관석에 모인 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콰과광!

당연히 황제의 결계에 가려 참관인들은 무사했지만, 그들은 똑똑히 보고 말았다.

조금 전 마력탄은 전투 중에 실수로 튄 것이 아니었다.

분명하게 자신들을 노리고 공격한 것이다.

“봐, 봤어?”

“히익! 우, 우리를 노리고 날린 거야!”

“말도 안 돼! 결계가 아니었으면 우린 다 죽었을 거라고!”

“저런 사람이 루스템의 황족이라니! 태양신께서 분노하실 거야!”

경악과 분노가 참관인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졌다.

이들의 부정적인 반응은 세실리아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반각성으로 불안정해진 그녀의 마력과 정신은 주변의 비난을 견뎌 낼 여력이 거의 없었다.

“그만! 그만하라구!”

세실리아의 마력이 제어를 벗어나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

이번엔 나도 좀 당황했다.

자기 욕 좀 들었다고 민간인에게 마력탄을 날리다니.

‘쟤, 뇌가……없는 게 아닐까?’

진지하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한술을 더 떴다.

당근 꼬다리의 몸에서 쏟아지는 마력의 양이 갑자기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비정상적인 마력의 증량.

‘이건……!’

제어 불가능해진 마력은 온 사방으로 퍼지며, 불꽃과 폭발, 열을 발생시켰다.

마력에 무지한 이들도 세실리아의 상태가 이상한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동요가 사방으로 번져 나가는 찰나.

나는 결계를 더욱 강하게 펼쳐서 당근 꼬다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마지막 조언을 했다.

“내가 준 포션 지금 먹는 게 좋아. 안 그러면 넌 여기서 죽을 거야.”

이건 경고도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사실의 설명일 뿐.

당근 꼬다리가 눈에 띄게 동요했다.

하지만 곧 자신만만한 미소가 얼굴을 가득 채웠다.

“거짓말! 네가 날 위한 말을 해 줄 리가 없잖아. 넌 날 싫어하는데.”

“그래 난 네가 싫어. 네가 날 싫어하는 것처럼.”

“그래! 그런데 네가 날 살리기 위한 조언을 해 줄 리가 없잖아! 날 이기기 힘들 것 같으니까, 그러는 거지? 그래서 내 마력을 잃게 만들려고!”

세실리아의 손에서 짙은 주황색의 마력탄 수십 개가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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