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14. 메인 퀘스트 : 박수 칠 때 (11)
아나트리샤는 똑같은 개수의 마력탄을 쏘아내어 세실리아의 공격을 중간에서 무효화시켰다.
퍼퍼펑!
충격파가 다시금 결계를 때렸다.
세실리아의 마력의 색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특유의 마력색인 주황색에서, 점점 붉은색의 비중이 커져 가고 있었다.
마치, 피에 물드는 것처럼.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역시 내 말은 안 믿는 거구나.”
마지막 경고를 굳이 한 이유는 간단했다.
눈앞에 있는 짜증 나고 싫은 애가 그래도 열네 살짜리였기 때문이다.
‘너무 어려.’
어른에게, 그것도 부모의 욕심에 이용당하다 죽기엔 너무 어린 나이인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물론 지금 내 몸은 일곱 살이라 당근 꼬다리의 절반 정도밖에 못 살았을 정도로, 훨씬 더 어리지만.
어쨌건 알맹이는 다르지 않은가.
서른 넘은 어른인 내가 저 애랑 같은 수준으로 내려가기엔 마음에 걸린……다고 하기엔, 이미 드잡이질 중이긴 하네.
‘하지만 쟤는 일곱쨜한테도 전심전력으로 덤비는 데다가, 우리 엄마까지 들먹였다고. ……다시 생각하니까 열 받네.’
그래서 나는 결심을 했다.
자기 손으로 부모의 주박을 끊을 수 있게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안 되었으니까.
‘강제로 끊어 주지.’
나는 환생 이후 처음으로, 전력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전신의 마력 회로가 활성화되며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
“어?”
세실리아는 당황했다.
살고 싶어서 아나트리샤에게 매달린 건 진심이었다.
이대로는 정말로 죽을 것 같았고, 굴욕을 겪더라도 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손에 넣은 힘을 스스로 놓는 건 너무나도 어려웠다.
자신은 분명히 강해졌으니까.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강력함이었다.
물론 그 대가로 엄청난 고통을 치러야 했지만, 그래도 믿어지지 않는 힘이 손에 들어왔다.
이 힘에 도취되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특히나, 늘 압도적으로 위에서 자신을 내려 보던 아나트리샤와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게 되었으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가…….’
그렇게 미루고 또 미루었다.
살고 싶은 마음이 진심인 것처럼, 강해지고 싶은 것도 진심이었으니까.
‘이 계집애만 꺾고 나서……! 그때에……!’
아나트리샤를 거꾸러뜨리는 것이 손안에 잡힐 듯 가까워져 있었다.
……그렇다고 믿었다.
아니, 착각했었다.
자신은 이미 싸우기도 전부터 패배해 있었던 거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내가 질 리 없어! 져서는 안 돼!”
세실리아는 몸이 갈가리 찢기는 듯한 고통을 감수하고 전력을 다해 마력을 내뿜었다.
제대로 제어가 안 되었지만 어쨌든 몸 밖으로 마력을 밀어내는 건 할 수 있었으니까.
“죽어!!!”
하지만 세실리아의 마력은 아나트리샤에게 가까이 가지도 못한 채 피식 꺼져 버렸다.
어린 황녀가 뿜어내는 마력의 여파조차 견디지 못하고 짓눌린 거다.
그리고 연이어, 아나트리샤의 작은 몸을 중심으로 금색의 빛이 눈부시게 내쏘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금빛의 새 모습으로 작은 소녀를 감싼 채.
점점 커져 마침내 하늘에 두 번째 태양이 뜬 듯, 아니, 태양마저 가려 버릴 정도로 거대해졌다.
태양석은 이미 아나트리샤의 금빛에 물들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세실리아의 마력과 공명하던 것은 잊어버린 것처럼.
아나트리샤는 그대로 앞으로 빛살처럼 쏘아지듯 돌진했다.
팟!
순식간에 세실리아와 아나트리샤 사이의 거리가 0으로 줄어들었다.
아나트리샤는 그 압도적인 마력의 극히 일부를 손에 휘감아 그대로 금빛의 칼날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내리쳤다.
스컥!
빛의 칼날은 세실리아를 감싸고 있던 마력만을 일부, 베어 냈다.
동시에 그녀의 품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어떤 물건을 베었다. 신체에는 조금의 상처도 내지 않고서.
퍽!
상태 이상 해제 포션이 박살 나며, 내용물이 세실리아의 몸에 뿌려졌다.
아나트리샤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포션은 꼭 마셔야만 되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 포션은 내용물과 신체가 접촉하기만 하면 효과가 발동했다.
이는 전생에는 베테랑 헌터라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먹는 게 힘들 경우, 병을 깨서 몸에 뿌리거나, 일부러 깨지도록 동료의 몸에 던져 주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처럼.
세실리아는 한발 늦게 상황을 알았다.
“아……?”
본인은 알지 못했지만, 정말 간발의 차이로 그녀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상태 이상 : 반각성(A급→S급)]
[*타이밍 판정 결과, 상태 이상의 등급 상승이 취소됩니다.]
[*상태 이상 ‘반각성(A급)’이 해제됩니다.]
반각성 상태 이상이 막 S급으로 등급이 오르려는 찰나였다.
그 직전에 상태 이상 해제 포션이 사용되었고, 반각성 등급이 S급으로 오르기 전에 해제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세실리아는 깨달았다.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햇살 아래 녹아 사라지는 눈처럼.
그것과 함께 그녀에게 너무나도 중요하고 소중한 것도 함께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의 마력이.
[*반각성 상태 이상 해제의 부작용으로, 모든 마력 회로가 비활성화 상태로 전환됩니다.]
[*비활성화된 마력 회로는 영원히 활성화가 불가능합니다.]
“내 마력이……!”
온몸이 텅 빈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은 아주 어릴 적, 태양의 마력을 각성하기 전과 같았다.
아무런 마력도 없는 하잘것없는 민간인과 차이가 하나도 없는 상태.
세실리아는 절망 어린 비명을 내질렀다.
“아아악!!! 안 돼애!!!”
승부의 결과가 정해졌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
황제의 결계마저 흔들던 세실리아의 주홍빛 마력이 녹아내리듯 사라졌을 때.
참관석에서 의식을 지켜보고 있던 벨론드 대공 부부는 경악하여 벌떡 일어났다.
“무슨 짓이냐, 세실리아? 승부를 포기할 셈이니?”
“지금 마력을 거두다니, 미친 게냐?”
그들은 잘 싸우던 세실리아가 갑자기 전투 의지를 잃고 마력을 거두었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세실리아는 목숨을 건진 대신 마력을 영원히 잃은 것뿐이었다.
“정신 차려라, 세실리아! 어서 다시 일어나지 못해?!”
딸을 채근하는 대공과 달리, 대공비 루도비카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입술이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설마……!’
세실리아는 부모의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럴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아, 아아아악!!!”
세실리아의 절망적인 비명을 배경으로, 아나트리샤 황녀는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그녀의 몸 주변을 감싸 안은 빛의 새는 압도적으로 강대하고 아름다웠다.
이 대조적인 광경을 본 이들은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
대다수의 참관인들이 응원하고 있던 이는 당연히, 허공에 당당하고 아름답게 떠 있는 어린 황녀님이었다.
어린 황녀의 승리를 확신한 순간.
사람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황녀님 만세!”
“우리 황녀님이 이기셨어!”
“당연하지! 대공녀 따윈 상대가 안 되었다고!”
“만세! 만세!”
“와아아아!!!”
열화와도 같은 환호 소리가 마치 우레처럼 황궁 전체를 울렸다.
때문에 능력 증명 의식을 참관하지 않은 이들조차, 이 순간 승부가 났다는 걸 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태양보다 환하게 빛나는 황금빛의 새와, 그 가운데 선 자그마한 소녀의 모습.
이를 찬양하듯 빛나는 태양석의 금빛을 보고, 황도 르펜시아의 모든 이들이 깨달을 수 있었다.
아나트리샤 황녀가 승리했다는 것을.
세실리아는 눈물을 흘리는 방법조차 잊은 것 같았다.
아나트리샤를 바라보던 그녀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차라리 그냥 죽여……. 이렇게 마력도 없는 하찮은 인간이 되어서 살 바에야…….”
아나트리샤는 천천히 패배한 사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차갑게 말했다.
“말했잖아? 난 네가 싫어.”
“갑자기 무슨……!”
“네가 싫으니까 살려 준 거야. 한 줌의 마력도 없이, 네가 멸시하던 하찮은 존재가 되어서 살아 보라고.”
아나트리샤는 히죽 웃더니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목을 빼고 기다리는 두 사람에게로 날아갔다.
“아빠! 오빠!”
“어디 다친 건 아니지, 우리 아가?”
“괜찮아, 리샤?”
그들은 승부는 상관없이, 오로지 아나트리샤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황녀는 저렇게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지은 채,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것이겠지.
세실리아는 새삼 깨달았다. 자신은 완전히 졌다.
그리고. 그리고…….
“흑, 으윽…….”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서러움과 상실감의 가장 안쪽에, 부정할 수 없는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독한 안도감.
몸의 고통과 이상 증세가 눈 녹듯 사라진 순간, 다른 어떤 감정보다 가장 먼저 느낀 게 바로 그것이었다.
‘살았구나.’
그리고 자신을 살려 준 건, 분명히 저기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작은 아이였다.
아나트리샤는 자신보다 훨씬 강했다.
마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름답고 뛰어난, 게다가 자신만을 사랑해 주는 가족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마음의 강함에서 이미 져 버린 것이다.
적의 목숨까지 살려 놓고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압도적인 강함.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완패였다.
세실리아는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으, 허엉! 으아앙!!”
황족으로서의 위엄이니 뭐니 하는 것은 전부 의미 없어진, 그냥 열네 살짜리 소녀의 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