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6화 (97/218)

Level 15. 메인 퀘스트 : 재회 (03)

***

능력 증명 의식이 끝나고 나서, 벨론드 일가는 두문불출 상태였다.

물론 나는 인비저블 아이로 벨론드저의 제한된 곳을 감시하고 있었다.

사교도의 방어 때문인지 인비저블 아이로 확인할 수 있는 벨론드저의 공간이 극히 한정적이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일주일 내내 당근 꼬다리가 전혀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았어.’

능력 증명에서 패배하고 황위 계승권을 잃은 상태이니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딸이 패배하고 치욕을 당했으니, 일가 모두가 외출을 자제하고 자중하고 있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이미 당근 꼬다리에게 목숨을 살려 주는 대가로 받은 정보도 있었고 말이다.

“너를 재각성 시켜 준 사람, 누구야?”

“……어머, 어머니야.”

이건 정말 예상외의 정보였다.

내가 직접 만난 벨론드 대공비, 아니 백작 부인은 허영심 강하고 속물적인 인간이었지만.

사교도, 그것도 반각성을 직접 실행할 정도의 능력을 가진 거물로는 안 보였던 것이다.

‘특히, 전에 확인했을 때 시스템 정보창에 수상한 부분은 없었는데.’

물론 요즘에는 따로 확인해 보지 않긴 했다.

내 눈빛에서 그걸 읽어 낸 것인지, 당근 꼬다리는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믿기 힘들겠지. 사실, 내가 제일 믿기 힘들긴 해. 어머니가, 언젠가부터 갑자기 변했어. 사람이 아예 바뀐 것처럼.”

“……사람이 바뀌었다?”

짐작 가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사교도 중에는 아예 타인의 모습으로 감쪽같이 변신하는 게 가능한 이도 있었으니까.

어쩌면 사람이 바뀐 것같이 달라졌다는 벨론드 백작 부인은, 실제로 다른 사람으로 대체된 걸지도 몰랐다.

이 정보를 얻은 뒤, 나는 인비저블 아이를 통해 벨론드 백작 부인을 좀 더 상세히 관찰했다.

시종장을 통해 백작 부인의 배경을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식적인 정보로는 수상한 점을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뒷공작하기 귀찮으니까 직접 가자!’

원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

내 주먹을 적과 가까운 곳에 가져가는 게 빠른 해결의 전제 조건이었다.

지난번 당근 꼬다리에게 정보를 얻는 퀘스트 보상으로 얻은 스킬이 도움이 되었다.

[스킬명 : <은신의 호흡(B급)>]

‘B급 스킬은 좀 낯서네. 환생하고 A급 이하 스킬은 취급도 안 했다 보니.’

아주 배부른 투정이다.

하지만 이것도 괜찮은 스킬이었다.

모습과 기척을 내가 숨을 참고 있는 동안 아예 지워 주는 것.

그리고 나는 마력을 활용하면 30분 정도는 숨을 참을 수 있었다.

‘이렇게 숨어들기에 딱 좋은 스킬이지!’

덕분에 편하게 걸어서 벨론드저에 들어와, 지하실까지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지하실에 들어올 때는 백작 부인의 바로 뒤에 따라서 들어오기까지 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내해 줘서 고마워!”

찡긋.

[스킬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S급)> 적용 가능합니다. 적용하시겠습니까?]

“응!”

그리고, 예상한 대로의 현상이 벌어졌다.

[……System Error……!]

[대상의 정보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이 경우, 이 메시지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잡았다, 사교도!’

절로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

세실리아는 갑자기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나타난 아나트리샤를 보고 경악했다.

동시에 반갑고 안도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살려, 살려 줘! 나 좀 구해 줘!”

제 입으로 내뱉으면서도 지독히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증오하던 아나트리샤에게 또 살려 달라고 매달리게 되다니.

그것도 모친을 앞에 두고서.

하지만 지난 일주일간 세실리아가 경험한 지옥은 실낱처럼 남아 있던 부모에 대한 희망이나 애정을 증발시키기 충분했다.

“내 마력을 빼앗아 태어난 주제에, 제대로 하는 것도 없다니! 황족으로서 지위도 태양의 마력도 없으면, 너 따윈 버러지만도 못해!”

“쓸모없는 것! 대체 내가 키워 준 마력을 어쩐 거야!”

일방적인 비난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누더기를 입히고, 식사도 제대로 주지 않았으며, 머리를 쥐 파먹은 듯 잘라 놓은 것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갑자기 변한 모친의 가학적인 행동이었다.

“최대치까지 키워 놓은 마력이 이렇게 빨리 사라져 버릴 수가 있나? 젠장. 시체에서 ‘수확’만 하면 되는 상태였는데.”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알 수 있는 건 하나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마력 없이 살아남기보단, 마력을 가진 채로 죽기를 바란 거야.’

게다가 마력을 잃은 것에 대한 체벌이라며, 엄청난 매질과 학대가 가해졌다.

자존심이고 뭐고, 죽일 듯 증오했던 아나트리샤의 얼굴이 천사처럼 보일 정도로.

세실리아는 진심을 다해 외쳤다.

“제발 살려 줘! 구해 줘! 뭐든, 뭐든 할 테니까! 제바알!”

벨론드 백작 부인은 얼굴을 찌푸리며 채찍을 다시 내리쳤다.

“입 닥쳐!”

짜악!

세실리아는 고통을 예상하고 몸을 옹송그렸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살을 찢는 고통이 없었다.

“어?”

고개를 들자, 자신의 앞을 막아선 아나트리샤의 모습이 보였다.

소녀는 손을 뻗어 채찍을 맨손으로 잡아챈 상태였다.

겨우 일곱 살짜리 어린애다. 한때는 백치라고 멸시하고 우월감을 가졌던, 일곱 살이나 어린 사촌.

그런데 그 작은 몸이 이렇게까지 강하고 든든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아나트리샤는 히죽 웃으며, 벨론드 백작 부인을 노려보았다.

“얠 어쩌든 상관없는데, 내가 너희에겐 유감이 아주 많아서 말이야.”

“무슨……!”

“BQ벌레보다 질긴 지긋지긋한 것들!”

아나트리샤의 온몸에서 분노의 마력이 폭발했다.

얼마나 강했는지, 일반인이 된 세실리아는 맥없이 날아가 벽에 부딪힐 정도였다.

“억!”

하지만 아나트리샤도 벨론드 백작 부인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나트리샤는 작은 주먹을 아주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여기까지 쫓아와서 나랑 우리 가족 앞을 방해해? 박멸해 주겠어!”

눈부신 빛이 벨론드 백작 부인을 강타하자. 그녀는 피를 토하며 물러났다.

“어차피 그거 네 본모습 아니잖아. 진짜 얼굴을 드러내시지? 가짜 모습 유지할 여유는 이제 없어질 텐데.”

“……어, 어떻게 우리의 존재를 아는 거지?”

벨론드 백작 부인, 아니, 그 모습을 가장한 사교도는 경악했다.

하지만 아나트리샤의 말이 맞는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한 방 맞았을 뿐인데, 내장이 진탕이 되는 기분. 마력이 없었다면 바로 절명했을 것이다.

그녀, 아니, 그는 모습을 바꾸고 있던 술법을 풀었다. 술법에 소모되는 마력까지 끌어와 자신을 보호하는 데에 쓰기 위해.

백작 부인의 모습이 녹아내리듯 사라지고, 남은 건 검은 로브를 걸친 평범한 남자였다.

세실리아의 눈이 커졌다.

“진짜, 진짜 어머니가 아니었어?”

내심 느끼고 있던 데다 조금 전 둘의 대화를 듣기는 했어도, 도저히 믿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본 이상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순간.

쿵!

아나트리샤의 발차기가 지하실 벽에 적중했고.

어린아이의 작은 발자국 하나만큼의 구멍이 벽에 뻥 뚫렸다.

아마도 루퍼스리안이 보았다면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리샤 발자국 너무 작아! 귀여워! 틀로 떠서 금으로 모형을 남기자!”

모양은 귀여웠지만, 위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무시무시했다.

벽이 버틴 건 한순간뿐이었다. 그대로 와르르 무너지며 돌 더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교도는 아찔한 눈으로 무너진 벽을 바라보았다.

‘저걸 몸으로 맞았으면, 그대로 끝이었어!’

그리고 다음 순간. 이번엔 주먹이 날아들었다.

사교도는 온 힘을 다해 옆으로 굴렀다.

쾅!

작은 주먹 모양의 구멍이 바닥에 뚫리고, 이번에도 약간의 시간을 두고 바닥의 반절이 무너져 내렸다.

세실리아는 옆으로 밀려나 있어 붕괴에 딸려 내려가진 않았다.

하지만 사교도는 그대로 아래층의 지하로 굴러떨어졌다.

“크헉!”

첨벙!

지하실 아래에는 악취가 솟는 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오물에 빠진 사교도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허우적거렸다.

“으윽! 젠장!”

위에서 어린 황녀가 황금색 빛을 두르고 천천히 허공을 걸어 내려왔다.

“BQ벌레답네. 시궁창이 그렇게 좋아?”

살을 에는 듯한 살기.

사교도는 한발 늦게 깨달았다.

이건 싸움이 아니었다. 자신은 절대 저 어린 황녀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나를…… 가지고 놀고 있는 거야.’

지독한 두려움이 사교도를 덮쳤다.

고양이 앞의 쥐, 아니, BQ벌레가 된 기분을, 그는 무슨 벌레인지도 모르면서 피부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혀, 협상, 협상을 하자! 나는 네 마력을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어! 저 쓸모없는 대공녀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봤잖아! 너라면 대륙에서 가장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어!”

필사적이지만, 의미 없는 시도였다.

아나트리샤는 작게 실소했던 것이다.

“필요 없어.”

“뭐?”

“난 그딴 사술 없이도 이미 이 대륙에서 제일 강하거든.”

“…….”

헛소리라든가 아니라는 부정의 말을 내뱉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그 정도로 그가 경험한 황녀의 힘은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넌…….”

지독한 두려움이 순식간에 코앞으로 다가와.

퍽!

얼굴을 후려쳤다.

“커헉!”

“그냥 내 샌드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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