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15. 메인 퀘스트 : 재회 (06)
“리샤! 오빠는 감동했어! 오빠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다니……. 우리 리샤는 어쩌면 이렇게 상냥한지…….”
눈가를 콕콕 찍어 내는 것이, 누가 봐도 감동에 눈물을 훌쩍이는 걸로만 보였다.
물론 매의 눈을 가진 여동생에게는 아니었지만.
“우는 척하지 마!”
“아닌데. 진짜 감동했는데.”
잘 통하지 않는 걸 깨닫고, 루퍼스리안은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하긴. 그때 내 생일은 별것 없이 지나가긴 했지.”
이유는 간단했다.
루퍼스리안의 일곱 살 생일은, 아나트리샤의 명명식 몇 달 전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때 루퍼스리안은 태양의 마력을 각성하지 못한 채 일곱 살 생일을 맞이하던 상태였다.
황족의 일곱 살 생일을 성대하게 치른다는 건, 어디까지나 태양의 마력을 각성한 이들 한정이다.
일반적으로 일곱 살 생일 때까지 태양의 마력을 각성하지 못하면, 남은 일생에도 각성이 불가능하다 알려져 있었으므로.
그런 황족의 일곱 살 생일은 화려하게 하지 않는 게 관례였다.
그 경우 생일 파티가 성대할수록 오히려 주인공에 대한 조롱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사상 황제에게 미움받는 자식들의 경우, 태양의 마력을 각성하지 못했는데도 일곱 살 생일을 성대히 치르는 경우가 있었다.
전적으로 각성하지 못한 황족을 조롱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루퍼스리안의 생일 때는, 부자가 화해하기도 전이었고, 아나트리샤도 눈을 뜨기 전이었다.
하지만 루퍼스리안은 그때 생일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것에 별로 아쉬움이 없었다.
‘내 여덟 살 생일 때, 리샤가 직접 준비를 해 줬는걸!’
겨우 세 살이었던 동생이 아빠와 몰래 쑥덕쑥덕하더니, 세 가족만의 행복한 생일 파티를 해 주었던 것이다.
“애 태어난니, 아, 이건 아니고…… 새닐츄카함미다-! 새닐츄카 함미댜!”
“사랑하는 루퍼스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무려 아빠가 직접 만든 케이크까지 있었다.
‘물론…… 정말 간신히 먹어만 줄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을 게 분명한 아빠가 직접 케이크까지 굽다니.
루퍼스리안은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기뻤다.
솔직히, 태양의 마력을 좀 일찍 각성하고 대륙 전체에서 성대히 축하받는 일곱 살 생일과 비교해도, 저 생일이 훨씬 좋았다.
환하게 웃으며 축하 노래를 불러 주는 여동생과.
찌그러진 케이크를 직접 구워 온 아빠.
그때의 기억은 너무나도 소중하게 가슴 한편에 남아 있었다.
그런 만큼, 그 이상으로, 아니, 역사에 남을 것 이상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생일 파티를 동생에게 주고 싶었다.
그래서 루퍼스리안은 동생에게 아주 잘 먹히는 특효약을 쓰기로 했다.
루퍼스리안의 일곱 살 생일이 초라하게 넘어갔다는 사실에 동생도 아빠도 아련해졌기 때문이다.
“후웅……, 역시 그냥 나도 최대한 간단하게 넘어가는 게…….”
“전부 내 잘못이구나. 내가 조금만 일찍 정신을 차렸어도…….”
루퍼스리안은 손뼉을 짝! 하며 선언했다.
“그러니까 이번에 그 몫까지 같이 하는 걸로 해!”
“오빠 몫?”
“같이?”
소년은 환하게 웃었다.
“그래! 내 일곱 살 생일을 그냥 넘긴 것까지 합쳐서 이번에 합동 생일 파티를 하는 거야!”
그러자 카스톨트의 안색이 확 펴졌다.
“좋은 생각이로구나, 루퍼스! 역시 내 아들은 똑똑해!”
아빠의 팔불출 짓은 잠시 접어두고.
아나트리샤는 오빠의 수작을 대충 눈치챘다.
날카로운 청보라색 눈빛이 오빠를 바라본다.
‘그렇게 내 생일 파티 규모를 키우려고 수작을 부리는 거지!’
하지만 늘 동생에게 이길 수 없는 루퍼스리안도, 이번만큼은 질 수 없었다.
그래서 루퍼스리안은 가드 불가 기술을 시전했다.
바닥에 드러누운 것이다.
“내가, 내가 얼마나 리샤랑 같이 생일 파티 하는 걸 기대했는데에!”
정작 일곱 살 때도, 그 전에도 벌인 적 없는 생떼였다.
짜게 식은 눈을 하는 아나트리샤는 차치하고.
카스톨트 황제는 진심으로 감동한 듯했다.
루퍼스리안을 꼭 안아 주며 말하는 태도가 그랬다.
“우쭈쭈. 우리 큰 애기가 그랬어요? 동생이랑 같이 생일 파티 하고 싶었어요? 아빠가 해 줄게!”
이번 생에 자식들이 어리광 피우는 데에 면역이 너무 약한 아빠의 폐해였다.
그나마 아나트리샤는 가끔 아빠 오빠의 폭주를 막기 위해 어리광을 보여 주었지만.
루퍼스리안의 어리광이나 생떼는 정말로 레어한 것이었으니 황제가 쉽게 넘어갈 만도 했다.
무려, 겉으로는 짜게 식은 표정인 아나트리샤마저도 짠한 마음을 다 숨기지 못했다.
‘하긴 저 때 오빠가 얼마나 외로웠겠어.’
그 결과 최종 승자는 루퍼스리안으로 결정되고 말았다.
물론, 중요한 의견 하나는 기각되었다.
“하지만 금으로 입힌 성도 탑도 안 돼요.”
“……쳇.”
“초상화도 안 돼! 특히나 그렇게 큰 건 말도 안 돼!”
“……쳇쳇.”
두 번째엔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함께 울렸다.
***
황도의 사교계에서도 황녀의 생일 파티에 관한 이야기가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마다 이에 대한 소문이나 예상을 주고받았다.
“이번에 수백 년 만에 최고로 성대하게 할 예정이라고 하던데요?”
“황자님의 일곱 살 생일 파티를 제대로 못 했잖아요. 황자 전하께서 늦게 각성하시는 바람에. 그래서 이번에 황자 전하 몫까지 함께 치른다고 하더군요.”
“안 그래도 전 대륙에서 축하 사절이 도착할 거라고들 난리에요.”
“……왜 지난번 황녀님 명명식 때에는, 헛소문 때문에 사절들이 적었잖아요.”
아나트리샤 황녀가 백치라는 소문 때문에, 국외의 사절단도 적거나 급이 낮았고.
국내의 귀족들 중에도 대공 일파에게 붙어 황녀를 조롱하러 참석한 경우마저 있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각국에서 왕족들을 위시한 사절단이 올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대륙 동서남북의 끝에서도 사절단이 올 거라더군요.”
“그러고 보니 하스티아에서 내전이 끝났다고 이번에 대규모 사절단을 보낸다고…….”
“게다가 소문 들으셨어요? 그랑디오르 소공작 부부와 가르텐 공작 부부도 황도에 들어왔다더군요.”
황금의 에아루스와 더불어 제국 삼대 개국 공신 가문의 주요 인사들까지 움직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분 고하에 상관없이 제국의 귀족들은 어떻게든 참여하려 애쓰고 있었다.
황녀의 생일 파티는 내궁과 외궁의 파티로 나뉘어서 진행될 예정이라 했다.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궁의 파티에는 국내외의 고귀하고 저명한 인사들이 초대될 예정이었다.
애매한 신분의 귀족들은 어떻게든 내궁의 파티에 초대받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때문에 한 파티장에서는 아주 대조적인 두 광경이 동시에 펼쳐졌다.
우선, 드물게 무도회에 참여한 에아루스 영애 아멘다의 주변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세상에. 이렇게 파티에서 뵙게 되다니, 기뻐요. 에아루스 영애.”
“황녀님께서는 여전히 귀엽고 뛰어나시겠죠? 가까이서 뵐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영애. 저와 좀 긴히 이야기를…….”
다들 어떻게든 아멘다의 눈에 들어 내궁 파티에 초대받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아멘다는 황녀의 시녀들 중 유일하게 외부 활동을 하는 이였기 때문이다.
다들 아직 사교계에 데뷔하지 않은 황녀의 대변자로서, 아멘다를 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정확한 판단이기도 했다.
아멘다가 이번 파티에 참여한 이유는 황녀의 명령 때문이었으니까.
아멘다는 웃는 얼굴로 대충 말을 거는 이들을 흘려 넘기면서 누군가를 찾았다.
곧 어렵지 않게 찾던 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파티장의 벽에 어색하게 서 있는 세실리아였다.
전에 비해 훨씬 초라한 드레스 차림에, 본래 머리 색과 같은 색의 가발을 찾지 못했는지, 머리는 어정쩡하게 어색했다.
게다가 두터운 화장으로 가렸어도, 안 좋은 피부색과 곳곳의 흉터가 선명했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는 더 많은 멍과 흉터가 있었다.
누가 봐도 위세를 부리던 대공녀로는 보이지 않는 초라한 모양새.
아멘다는 차분한 표정으로 그런 세실리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누가 봐도 명백히 어색한 티가 나도록, 세실리아의 드레스 자락에 와인을 부었다.
“아, 실수, 했네요. 미안해요. 벨론드 영애.”
“……아니, 예요. 에아루스 영애.”
다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처지가 뒤바뀐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태도는 명백히 세실리아에게 적대적이었다.
“수치를 알면 이런 자리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게 맞지 않나요?”
“이젠 황족도 아니고 재산도 별로 없으니, 더 기를 쓰고 참석해야죠. 그래야 혼처라도 잡을 수 있지 않겠어요?”
“누가 황실의 눈 밖에 날 각오를 하고 벨론드 영애에게 혼담을 넣겠어요.”
“또 모르죠. 그래도 벨론드 영애의 자식이 태양의 마력을 타고날 가능성도 있으니.”
“어쨌든 에아루스 영애도 보기 싫은 얼굴을 보니 짜증 나겠어요.”
“또 모르죠. 보복해 줄 수 있으니 통쾌할지도요.”
“하긴…….”
쑥덕거림 속에서, 아멘다는 굳은 표정으로 창백한 얼굴의 세실리아를 잡아끌었다.
“휴게실로 가죠. 내가 옷을 더럽혔으니, 책임을 질게요.”
“굳이 그러실 필요는…….”
“…….”
“……네.”
그렇게 세실리아는 아멘다의 손에 휴게실로 끌려갔다.
“좀 더 괴롭히고 싶은 모양이네요.”
“그럴 만도 하죠. 벨론드 영애가 오죽이나 괴롭혔어요, 에아루스 영애를.”
세실리아가 대공녀 시절 부린 패악에 대한 기억이 선명한 이들은, 꽤나 고소하다는 듯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
세실리아와 아멘다 두 사람이 주변의 눈이 없는 휴게실에 들어선 순간.
아멘다는 세실리아의 팔을 잡아끌던 손을 딱 놓았다.
그리고 세실리아 역시 조금 전까지 낭패스레 굳어 있던 얼굴을 싹 지웠다.
그리고 아주 사무적이고 형식적인 태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세실리아는 짜증스럽게 물었다.
“황녀님의 전언은요?”
“그 전에 수상하게 접근하는 이들에 대한 정보부터 말해요.”
아멘다는 딱딱하게 대꾸했다.
그렇다. 이 두 사람은 아나트리샤의 명령으로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일부러 이런 자리를 만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