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15. 메인 퀘스트 : 재회 (09)
***
“후응.”
세실리아의 소식은 바로 나에게 도착했다.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저 이미 합의하고 준비해 둔 뒤처리가 아주 깔끔하고 빠르게 실행된 걸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걸로 어느 정도 윤곽은 잡혔네.’
벨론드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세실리아의 죽음은 장례식도 없이 소식만 짧게 돌았을 뿐이다.
때문에 비밀리에 벨론드가에서 짐마차 한 대가 나갔다는 건 아무도 몰랐다.
몰락한 황족의 죽음에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므로.
***
그 와중에도 내 생일 파티 준비는 우당탕탕 이어지고 있었다.
나의 기력과 주의를 쏙 빼먹으면서.
그 절정은, 아빠와 오빠가 생일 파티 날까지 감추려던 것을 내가 조금 일찍 보고 경악한 순간이었다.
“이거…… 대체 뭐야?”
황궁의 입구 바로 앞 광장.
갑자기 부산스럽게 뚝딱거리고 있는 걸 그냥 넘겼었는데.
거기에 뭔가, 이상한 것이 생겨 있었다.
거대한 분수가 세워진 건…… 그렇다 치자.
그 분수가 금색으로 번쩍거리는 것도……, 그래, 그렇다고 넘어가자.
그런데 분수 꼭대기에 뭔가 이상한 게 있는 것만은 넘길 수 없었다!
“저거, 나잖아!”
내가 빼액 외치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천사상이 오도카니 올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천사상은, 누가 봐도 날 닮은 모양이었다!
그렇다. 아빠랑 오빠는 내가 몇 번이나 안 된다고 못 박았던 걸 나 모르는 사이에 실행해 버린 것이다.
“금 입힌 성이나 탑 안 돼!”
“내 초상화도 안 돼!”
우리 집 두 남자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저건 분수잖니.”
“게다가 조각상인걸.”
“내 모습으로 만들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자 아빠랑 오빠는 빠르게 말을 바꾸었다.
“저건 이상적인 천사를 조각한 거야. 그러니까 저 천사상이 리샤를 닮은 건 전적으로 우연적 필연이지!”
“맞단다. 아가. 이건 전부 아가가 너무 귀여워서, 천사 같아서 벌어진 우연 같은 필연일 뿐이란다.”
“거짓마알!!!”
게다가 내가 좌절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분수 꼭대기의 천사상이 익숙한 손짓을 하고 있어서였다.
‘K-하트가 왜 저기 있어!’
그렇다. 당근 꼬다리와의 전투 때, 내가 아빠랑 오빠를 안심시키기 위해 보여 줬던 K-하트.
아빠랑 오빠는 그걸 금 입힌 조각상으로 박제해 버렸던 것이다!
‘으아아아! 쪽팔려!’
특히나 나의 쪽팔림은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을 때, 더해졌다.
딩딩디링딩-♪♩♬
종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금으로 번쩍거리는 K-하트 손짓을 한 내 조각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만, 그만해애!’
게다가 황도의 신민들이 분수 주변에 모여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내 조각상을 흐뭇하게 감상하고 있었다.
“어머 예뻐라. 노래도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네.”
“저게 황제 폐하께서 황녀님이 ‘능력 증명’에서 승리하신 기념 겸, 일곱 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세우신 거죠?”
“하지만 역시 실물만 못 하네요.”
“맞아요. 황녀님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우셨는데요.”
“요즘 정각만 되면 일부러 보려고 나온다니까.”
그나마 꽤 떨어져 있어서 내 모습이 보일 일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모습을 드러냈다간, 더 난리가 날 기세였다.
슬프게도, 나의 뛰어난 청력은 저 멀리서 군중들이 떠드는 소리를 조금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
“그런데 저 손짓은 뭐죠? 처음 보는데.”
“어디 지방 다녀오셨나요? 요즘 황도에서 저 손짓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가족이나 연인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손짓이죠! 황녀님이 황제 폐하와 황자 전하께 보여 주신 게 얼마나 화제가 되었는데요!”
내 모습이 금을 입힌 천사상으로 박제가 된 것도 모자라.
여기서까지 K-하트가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고 말았다.
‘그런 건 왜 유행하는 건데!’
나는 쪽을 무한으로 생산해 내고 있는 모양이다.
이미 다 팔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팔릴 게 남아 있었던 걸 보면.
‘따흑!’
***
시간은 정신없이 빠르게 흘렀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생일 파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조금 의문이 남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나는 혼자 있는 틈에 인벤토리에서 ‘그 물건’을 꺼냈다.
금이 간 낡은 거울.
그냥 보면 쓰레기인 줄 착각하기 쉽지만, 중요한 물건이었다.
[아이템 명: ‘진실의 거울’(S급)]
무려 S급 아이템 님이신 것이다!
‘당근 꼬다리와 능력 증명에서 이기라는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인데…….’
그렇다.
당연히 ‘능력 증명’ 승리 같은 큰 건에 보상이 없었을 리 없다.
이번에도 아이템이 보상으로 주어졌고.
등급도 S.
당연히 기뻐해야 하지만, 아이템 기능이 좀 의문이었다.
[효과 : 거울에 비친 상대의 과거 일부를 일어난 사건 그대로 관찰할 수 있다. 단, 상대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상태에서 거울에 비추어야 한다.]
[*사용 횟수 (0/3)]
이런 아이템이 왜 주어진 걸까?
지금까지 내가 얻는 스킬이나 아이템은 전부 쓸모가 있었다.
등급이 낮은 편이었던 <은밀의 호흡>이나, 정말 잡템으로 생각했던 포션들조차 나름의 쓸모가 있었다.
시스템이 그 쓸모가 있을 걸 알고 준 것처럼.
그렇다면 무려 S급 아이템인 이 ‘진실의 거울’도 쓸모가 있을 거란 소리였다.
내 일곱 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걸까?
나는 치솟는 불안감을 누르며, 아이템을 인벤토리로 돌려놓았다.
***
결국 내 생일 파티는 역대급 규모로 열리게 되었는데.
무려 전야제가 있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일곱쨜짜리 생일 파티에 전야제라니…….’
대충 2, 3주가 남은 시점부터 대륙 곳곳에서 사절단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제국 내의 귀족들 역시.
그중에서도 특히, 개국 공신 세 가문 중 두 가문은 신경을 써야 했다.
때문에 나는 아빠의 무릎에 앉아 오빠를 옆에 끼고, 그들의 알현을 먼저 받게 되었던 것이다.
개국 공신 세 가문 중 ‘황금의 에아루스’를 제외한 두 공작가는 내가 환생한 이후 처음으로 수도로 올라왔다.
‘보통 대귀족일수록 수도에 오래 머무르지 않나?’
처음에는 이런 의문을 가졌는데.
알고 봤더니, 이 세 가문이 특이한 것이라고 했다.
아멘다의 설명으로 보면 말이다.
“제 저주가 아니었다면, 저희 가문도 영지에서 잘 올라오지 않았을 거예요. 세 가문은 본디 중앙 정치에 잘 참여하지 않거든요.”
“진짜? 왜?”
“그야……, 세 가문은 초대 황제 폐하와 황위 계승 다툼에 끼어서는 안 된다는 맹약을 했으니까요.”
들은 기억이 났다.
아멘다와 후작 아저씨가 잠시 당근 꼬다리에게 협력한 게, 그 맹약을 깬 거였다던가.
“그 대신, 저희 에아루스 가문은 제국 내 금력을, 가르텐 가문은 지식과 인재의 보고인 아카데미를, 그랑디오르 가문은 무력의 상징인 독립 기사단을 관리하게 되었지요.”
에아루스가 세 가문 중 유일하게 후작가인 건, 다른 두 가문이 본디 독립 왕가 출신이기 때문이라 했다.
개국 당시에는 에아루스가 유일한 후작가였다고 했다.
때문에 시간이 흐르며 후작가로 승작된 가문들은 몇 있어도, 감히 에아루스에 견줄 수 있는 가문은 없다고 했다.
“물론 그 명예도…… 저 때문에 깨지고 말았지만요.”
그렇게 말하는 아멘다는 꽤 슬퍼 보였다.
“하지만 아멘다의 아빠는 가문의 명예보다 아멘다가 소중했던 거잖아. 아멘다도 그렇지?”
“…네!”
“나는 그게 좋다고 생각해.”
“……저도요.”
아멘다는 그제서야 웃었다.
하지만 이번 알현에는 일부러 아멘다를 데려오지 않았다.
다른 두 가문의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 에아루스가 맹약을 깬 걸 가지고 뭐라고 할 수도 있어서였다.
먼저 인사를 올린 건, 안경을 쓴 냉철해 보이는 남자와 그 옆의 꼭 닮은 미소년이었다.
금속성 광택이 도는 남빛 머리카락과 회색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가르텐의 가주와 그 후계자가 황제 폐하께 인사 올립니다. 태양의 영광이 폐하의 어깨 위에 함께하시길.”
“코넬 가르텐입니다.”
소공작은 대충 나와 비슷해 보이는 나이였다.
아빠와 공작이 일반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와 소공작의 시선이 마주쳤다.
“…….”
“…….”
딱히 전생의 나와 인연이 있는 외모나 아우라는 아니었다.
다만.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가르텐 소공작은,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리더니 슬쩍 고개를 돌렸다.
‘……뭐야?’
내가 조금 기분이 상하려는 찰나.
아빠와 비슷한 연배의 군복을 입은 여성이 나섰다. 짧게 자른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다.
“그랑디오르 소공작이 폐하께 인사 올립니다. 태양의 영광이 폐하의 어깨 위에 함께하시길.”
그 옆에는 앳된 얼굴과 반대로 성인 남성 정도 키의 소년이 서 있었다. 근육으로 꽉 짜인 몸.
짧게 자른 갈색 머리카락과, 선하기 짝이 없는 진녹색 눈동자.
소공작은 소년을 이렇게 소개했다.
“제 아들입니다. 인사 올리거라.”
“라이언 그랑디오르라 합니다. 폐하의 어깨 위에 태양의 영광이 끼치기를.”
절도 있는 군례를 올리는 그의 모습은, 내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그의 아우라 역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