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4/218)

Level 15. 메인 퀘스트 : 재회 (10)

라이언 그랑디오르.

이 낯선 이름을 가진 소년의 전생 이름은.

‘하무현!’

그는 오빠의 친구이자, 멸망 직전까지 랭킹 10위권 안에서 늘 이름을 보였던 헌터였다.

공격력은 강하지만 방어력이 약한 편이었던 오빠와, 방어 하나만은 알아주는 하무현은 꽤 잘 어울리는 파티원이었다.

아빠랑 우명 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나와도 꽤 친했다. 농담도 자주 했었고.

“꼬맹아, 꼬맹아. 우리 서운이가 말이야. 동생이 관심을 안 준다고 너무 서운한 서운이가 되고 말았지 뭐야?”

“너 안 닥쳐! 내가 언제 그랬다고!”

“아, 그래? 우리 안서운은 안 서운한 거였어? 형이 몰랐네. 미안!”

“죽인다!”

늘 재미없는 말장난으로 오빠를 골려 먹었는데.

그게 나랑 아주 죽이 잘 맞는…… 돌+아이였다.

‘다시 보니 반갑…긴 한데.’

왜 하필이면 그랑디오르야?

가르텐이라든가, 하다못해 그냥 평범한 가문 출신이기만 해도 좋았을 텐데.

마음 편하게 반가워만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복잡한 심경으로 오랜만에 만난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두 공작가의 알현이 막 끝나갈 때, 나는 제안을 했다.

아빠는 놀란 눈을 하셨다.

“두 공자를 초대하고 싶다고?”

“네! 내 생일 파티를 위해 와 줬기도 하고, 앞으로 친하게 지내면 좋을 것 같아서요!”

내 말에 반응들이 이리저리 나뉘었다.

우선, 가르텐 공작과 소공작은 조금 곤란한 기색이었다.

“황녀 전하. 다시 자리를 마련하여 초대해 주시면 기쁘게 참여하겠사옵니다만…….”

“가르텐의 후계자인 제가 황녀 전하의 초대에 따르는 것은 옳지 못한 듯합니다.”

아. 맹약 얘기구만.

아직 황위 계승자가 결정이 안 되었는데.

후보 중 하나인 나와 공신 가문 후계자들이 회동하는 건 안 되겠다는 소리인 모양이다.

나는 깐깐한 가르텐의 꼬맹이에게 화사하게 웃어 주었다.

“오빠랑도 나이가 비슷하니까 다 같이 간단한 티파티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마침, 오빠가 또 견제와 방해의 시동을 부릉부릉 걸려고 하던 참이기도 하고.

불편한 표정으로 어떻게 어깃장을 놓을까 하는 표정이던 오빠는, 곧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옆에서 감시…, 아니, 함께 친교를 다질 수 있으면 좋겠네.”

나와 오빠가 함께 참여하는 자리라면, 현재 황위 계승권자인 둘이 모두 참여하게 된다.

나나 오빠 중 한 명만 있는 모임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는 게 판명되자, 꼭 닮은 가르텐 부자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그랑디오르 가문은 처음부터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특히 그랑디오르 공자 쪽이.

“영광입니다, 황녀 전하!”

“……무례는 범하지 않도록 해라. 라이언.”

“네. 걱정 마세요. 어머니.”

나는 복잡한 기분을 숨기며 최대한 해사하게 웃었다.

그리고.

윙크!

“고마워요! 친구가 많이 생길 것 같아서 기뻐요!”

이럴 때는 어린 나이가 편하다.

그냥 뜬금없이 윙크해도 그냥 일곱쨜 어린아이의 애교로 보고 넘어갈 테니까.

그리고 당연히, <궁예> 스킬이 켜졌다.

‘가르텐 쪽은 시스템 정보창에 큰 특이점은 없고…….’

나는 살짝 긴장한 채 그랑디오르 패밀리를 보았다.

일단, 가장 걱정한 라이언 그랑디오르 쪽은 크게 눈에 띄는 게 없었다.

한 가지 빼고는.

[이름 : 라이언 그랑디오르 (하무현)]

‘진짜 그 하무현이 맞네.’

그리고 소공작 쪽을 보았을 때는 조금 당황했다. 다른 의미로.

[System Error!]

[…▶▤▧▩<$@…띕궇‱…]

잠시 버벅거리긴 했지만, 곧 시스템 정보창은 그랑디오르 소공작의 정보를 띄웠다.

일견 이상이 없어 보이는 내용만을.

[이름 : 로헨 그랑디오르]

[지위 : 그랑디오르 소공작]

‘역시.’

나는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나는 이미 두 공작가의 사람들을 만나기 전, 한쪽에 의심을 가진 상태였으니까.

‘세실리아에게 접근한 건 분명히 그랑디오르 공자였다고 했어.’

그렇다. 마차 사고로 죽은 걸로 알려진 세실리아는 멀쩡히…… 는 아니지만, 잘 살아 있었다.

사교도 놈들이 세실리아의 목숨을 노릴 게 뻔한 상황이니, 그에 대한 대비책을 미리 주었던 것이다.

내가 직접 만들어 준 일회용 실드 마법 아이템을.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면 자동으로 발동하도록 만들어서 말이다.

동시에 암살자에 대한 대비로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아이템 역시 주었었다.

하지만 암살자를 따로 보낸 게 아니라서 그에 대한 대비는 필요 없게 되었다.

사교도는 부정의 마력을 이용한 일종의 저주를 발동시켜서 사고를 일으킨 것이니까.

세실리아는 다치긴 했지만,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정보를 전달해 주었던 것이다.

“그랑디오르. 그랑디오르 공작의 손자가, 비밀리에 접근했었어요.”

“그랑디오르라. ……혹시 너한테 뭔가 물건을 주지 않았어?”

“맞아요. 손수건을…줬었어요.”

전생에서 놈들이 자주 쓰던 수법이다.

부정의 마력이 깃든 물건을 보내어, 상대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나 동물이 미쳐 날뛰게 하는 것.

놈들의 가장 효율적이고 간단한 암살 방법이었다.

그만큼 대비하기도 쉽고 말이다.

‘조금이라도 마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지.’

세실리아가 마력을 아예 잃은 건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저 방법을 쓰지 않을까 했는데,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세실리아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없었다.

‘스킬로 확인까지 했으니까 확실해.’

세실리아를 이용은 하고 있어도 진심으로 믿는 건 아니니까.

당연히 교차 검증을 마친 상태.

세실리아에게 접근한 건 분명히, 라이언 그랑디오르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랑디오르 가문과 사교도가 연관이 있다 봐야 했다.

때문에 나는 처음부터 적을 대하듯 경계하며 그랑디오르를 마주했던 것이다.

내가 굳이 세실리아를 죽은 것으로 해 두고 빼돌린 이유는 간단했다.

‘세실리아의 입을 막는 데에 성공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야 했으니까.’

그래야 방심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내 예상대로, 그랑디오르는 거리낌 없이 움직여 주었다. 

자신들이 사교도와 연관 있다는 걸 누구도 알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이렇게 당당하게 황궁에 걸어 들어왔으니까.

실제로 아주 약간이지만 그랑디오르 소공작의 시스템 정보창은 오류를 보였다.

요즘 시스템은 전처럼 심각한 오류는 잘 띄우지 않았다.

그런데 아들의 정보를 보여 줄 때는 멀쩡하던 게, 소공작 때에만 에러가 났다는 건.

한 가지 의미였다.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것.

그것도 시스템의 눈으로도 다 읽을 수 없는 무언가를.

안 그래도 타인의 모습을 훔치는 술법에 정통한 놈들이다.

게다가 최근에 내가 피떡으로 만들었던 놈은 근거리에서 만났는데도, 부정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놈들도 진화를 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시스템이 만능은 아니지만, 이 경우에는 오류까지도 유의미한 정보라고 봐야겠지.’

여기까지는 예상하고 노린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당황스러웠고 불쾌했다.

그랑디오르 패밀리의 시스템 정보창에서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사실보다.

나를 진심으로 당혹하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라이언 그랑디오르 그 자체였다.

그는 분명히 전생의 하무현.

오빠의 동료였고, 나와도 친밀했던 사람이니까.

‘전생에 동료였던 사람이 환생 이후에는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해 본 일인데.’

놀랍게도 이 사실은 나에게 꽤 큰 충격을 주었다.

***

두 공작가의 공자들은 황녀궁으로 함께 자리를 옮겼다.

예정대로 오빠도 따라왔다. 오빠는 조금 불만인 듯한 상태였다.

[오빠 : ‘리샤는 왜 저런 놈들을 굳이 초대까지 하는 거지? 그나마 내가 옆에 있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10% 확률이 얼마나 낮은 수치인지 확인시켜 주고 있던, <궁예> 스킬의 부가 효과가 조금 전에서야 켜졌다.

좋아. 다른 놈들의 속마음도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눈을 돌렸다.

당연히 의심스러운 그랑디오르부터.

[라이언 그랑디오르 : ‘오호. 이곳이 바로 그 소문이 자자하신 황녀님의 궁이로군.’]

[라이언 그랑디오르 : ‘그나저나 황녀도 황자도 소문대로 대단한 마력인걸.’]

[라이언 그랑디오르 : ‘혹시 언제 대련 한번 요청해 볼 수 없을까. 태양의 마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해 보고 싶은데.’]

‘대련광 버릇은 환생해도 그대로인 모양이네. 역시 그 하무현의 환생이 맞는데. 이번 생에는 사교도로 넘어갔다고?’

솔직히 믿고 싶지 않았다. 배신당하는 건,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질 수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전생의 친우니까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전생과 지금의 생은 다르니까.’

혹은 전생에도 배신자였는데, 내가 그걸 알기 전에 죽은 걸 수도 있고.

한번 의심이 싹을 틔우자, 전생의 하무현이 보인 모든 행적과 말이 수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 봤자 지금 하무현이 전생에 배신자였는지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

당장 저 ‘라이언 그랑디오르’가 사교도와 연관이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가능성이 있고,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럼 미끼를 한번 던져 볼까?’

그때 내내 냉랭한 표정으로 있던 가르텐 소공작 꼬맹이가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한데, 황녀 전하께서는 아직 어리신데도 벌써부터 대귀족들과의 친교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듯하군요.”

음. 이거, 어린 게 벌써부터 정치질이냐는 소리 맞지?

‘겨우 여덟 살 주제에 벌써부터 배배 꼬여서는…….’

그런데, 띠롱띠롱하는 시스템 창은 전혀 다른 말을 해대고 있었다.

[코넬 가르텐 : ‘……소문보다 몇 배로 귀엽고 사랑스럽고 앙증맞은 분이시군. 심장이 두근거려서 눈도 마주치기 힘들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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