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6/218)

Level 16. 메인 퀘스트 : 진실 (01)

따스한 체온이 내 작은 몸을 감쌌다.

엄마의 두 팔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강인한 힘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동시에 내 어린 몸이 다치기라도 할까 봐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이건 전생의 엄마와 달랐다.

전생의 엄마는 늘 나를 마음껏 안아 주셨으니까.

태어난 이후 엄마가 전사하실 때까지, 이렇게 길게 떨어져 지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엄마의 이 어색하고 불안한 손길은, 그 자체가 우리의 오랜 이별을 보여 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저렸다.

아니, 저린 게 아니었다.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가슴속에서, 그동안 차곡차곡 쌓였던 눈물이 끓어 올라, 넘쳐흐르려 하고 있었다.

나는 환생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알았다.

이번에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세 번은 울겠구나, 하고.

아빠를 만나고.

오빠를 다시 보고.

그리고, 엄마에게 안겼을 때.

울지 않을 자신이 없었으니까.

전생의 나는 모든 가족의 죽음을 전부 겪어 보았다.

한번 잃은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때의 내 깨달음은 틀렸다.

나는 이미 세 번 울었으니까.

아빠와 오빠를 만나고는 기뻐서.

그리고 엄마를 다시 못 볼 것이라 생각하고 너무 슬퍼서.

그런데 이번에도 내가 틀렸다.

나는 결국 네 번째로 울고 말았다.

엄마를 다시 만나고 엄마의 품에 안겨서, 너무 놀라고, 무엇보다 너무 기뻐서.

“으, 흐앙! 으아아앙앙! 엄마아!!!”

엄마는 나를 다시 꼭 안아 주셨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 이건 꿈이 아니구나.’

사실 지난 5년간 몇 번인가 꿈을 꾸었다.

그 꿈속에서는 엄마까지 우리 가족 넷이 모두 모여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깨기 싫은 꿈이었다.

그래서 엄마를 본 순간, 어울리지 않게 이런 생각도 해 버렸던 것이다.

‘이거 꿈 아닌가?’

하지만 아니었다. 나를 끌어안은 엄마의 따스한 체온과 든든한 힘.

그리고 무엇보다 내 뺨 위로 떨어지는 엄마의 눈물이 너무 뜨겁고 선명해서.

나는 알 수밖에 없었다.

***

엄마 품에 안겨서 애기처럼 엉엉 한참을 울고 나서야,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뭐야? 엄마 돌아가신 거 아니었어?’

내가 환생한 이후, 엄마에 대한 언급이나 주변 상황이 딱 그거였는데?

내가 엄마를 언급하면 아빠와 오빠는 이제는 못 볼 사람을 떠올리는 것처럼 아련하게 굴었고.

아빠는 특히 너무 슬프고 아픈 표정을 하시곤 했다.

오빤 아예 내가 엄마에 대해 처음 물었을 때, 그냥 도망가 버렸었고.

‘근데 아니잖아? 엄마 이렇게 멀쩡하게 건강하게 살아 계시잖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물론 돌아가신 게 아니라니, 당연히 기쁘고 행복하지만 그 이전에 잠깐 짚고 넘어가야겠다.

아빠랑 오빠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니,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빠도, 오빠도, 다른 그 누구도……, 내 앞에서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리는 한 적 없었던 것이다!

‘이게 대체 뭐야!’

내가 잠시 패닉에 빠져 있는 사이.

옆에서 셀리나가 훌쩍거리는 한편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아기 때 헤어지시고 처음 뵙는 건데, 바로 알아보실 줄은…….”

엄마도 울컥한 목소리로 나를 끌어안은 채 속삭였다.

“고맙다, 아가. 엄마를 바로 알아봐 줘서.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황자님과 함께 전하의 초상화를 자주 보러 가셨어요.”

“그래. 그랬구나.”

그리고 엄마는 조심스럽게 셀리나에게 물었다.

“셀리나. 루퍼스는? 그 애는 왜 같이 안 왔지? 혹시 이제 와 왜 나타났냐고 보기 싫다고…….”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전하.”

전하?

황후 폐하가 아니라?

그제야 나는 스킬을 켜 볼 생각이 들었다. 아예 존재 자체를 까먹고 있었다. 엄마 때문에 너무 놀라서.

퉁퉁 부은 눈을 비비는 척, 한쪽 눈으로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이름 : 이젤리아 하스티아 (진수연)]

[지위 : 하스티아 왕국의 왕세녀, 전(前) 루스템 제국의 황후]

‘하스티아? 꽤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내가 아기 때부터 유달리 하스티아에서 온 선물들이 많았었다.

당연히 이번 생일 파티에 참여하는 사절단 중에도 하스티아는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제야, 대략 5년 전쯤 잠깐 스치듯 봤던 오빠의 시스템 정보창 내용이 기억났다.

[이름 : 루퍼스리안 루스템(안서운)]

[지위 : 루스템 제국의 황자, 하스티아의 왕손]

“아!”

너무 잠깐 스쳐 간 데다, 중간에 꺼 버려서 제대로 기억도 안 날 뻔했다.

아빠랑 오빠에 대해서는 둘이 친해지길 바라를 찍을 때, 호감도를 본 이후 시스템 정보창을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

충격으로 굳은 내 머리 위에서, 엄마와 셀리나의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늘 황녀님과 같이 계셨는데 제가 소식을 듣고 모시러 갔을 때, 하필이면 자리를 비우셔서요.”

“……나를 위로하려는 거짓말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루퍼스가 날 원망해도 당연한 일이니까.”

“아니에요! 어떻게든 빨리 뵙게 해 드리고 싶어서, 우선 황녀님만 모셔 온 거예요. 황자님이 티는 안 내셔도, 전하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계셨는데요.”

“……그래?”

엄마의 목소리에서는 희미한 기쁨과 자책이 묻어났다.

***

그리고 셀리나의 말이 사실이라는 건, 곧 증명되었다.

나와 엄마를 두고 잠시 황녀궁으로 갔던 셀리나가 오빠를 데리고 온 것이다.

오빠의 눈이 지진 난 것처럼 떨렸다.

“어, 엄마?”

“……루퍼스.”

지금의 오빠를 보니, 조금 전의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얼굴을 했을지 알겠다.

오빠는 세상에서 제일 멍청하고 바보 같은 얼굴로 엄마를 바라보다가.

자기 뺨을 꼬집어 봤다.

“어어?”

“꾸마냐.”(꿈 아냐.)

나는 오빠가 오기 전까지 너무 우느라 코가 막혀서 코맹맹이 소리가 났다.

하지만 의미는 대충 통한 것 같았다.

“진짜 아냐?”

“아냐.”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오빠에게 손을 내밀었다.

“많이 컸구나, 루퍼스.”

그제야 오빠는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듯,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나와 엄마에게 달려들었다.

“엄마!!!”

늘 잘난 척하고, 열 살이 넘은 뒤로는, 온갖 근엄한 척은 다 하던 오빠지만.

아직 열두 살이었다.

오빠는 아빠와 화해했을 때보다, 아니, 그때보다 몇 배는 더 서럽게 엄마에게 안겨서 울었다.

오빠랑 엄마가 우는 걸 같이 안겨서 보자니, 나도 눈물이 또 났다.

그래서 그냥 일곱쨜답게 다시 엉엉 울어 버렸다.

“어엄마아!!!”

“으아앙! 앙아아앙앙!!”

“그래, 아가. 그래, 우리 아기들. 엄마가 너무 늦어서 미안하구나.”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서로를 끌어안은 채 울고 있었다.

옆에서 셀리나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

기쁨과 눈물의 시간이 흐른 뒤.

엄마와 오빠, 나는 빨갛게 퉁퉁 부은 눈으로 겨우 침착하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구러니까, 크흥. 세리나가… 엄마가 보낸 시녀여따구여?”

“그래. 루퍼스에게도 믿을 만한 시녀를 붙여 두었는데, 내가 떠나고 몇 달 만에 급사할 줄은 몰랐단다.”

엄마는 오빠의 이마를 다정하게 쓸어내렸다.

오빠는 아직도 진정이 덜 됐는지, 엄마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였다.

딱 봐도 엄마 옷이 다 젖어서 축축해진 게 보였다.

그리고 오빠 놈의 귓가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쪽팔리구나.’

평소라면 적극적으로 놀려 먹었겠지만, 오늘은 참기로 했다.

절대 나도 비슷하게 울어제껴서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나는 억울했다.

나 혼자 ‘엄마 없는 하늘 아래’를 찍고 있었다는 걸 깨닫자. 뒤늦은 쪽팔림과 분노가 솟았던 것이다.

“그치만, 그치만 나, 나는 엄마 얘기 하나도 못 들었는데! 그래서, 그래서 당연히 엄마가 돌아가신 줄 알았다구요!”

오빠도, 아빠도!

셀리나도! 유모랑 다른 시녀들이나 시종장도!

나한테 다들 아무 말도 안 해 줬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알아?!

너무 서러워서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자 엄마는 슬픈 얼굴로 내 이마에 뽀뽀를 해 주셨다.

“내가 그렇게 말하라고 했단다. 그게 차라리 낫겠다 싶었으니까.”

“……어째서요?”

엄마가 죽은 줄 아는 게 차라리 낫다니, 그게 뭐야? 말도 안 돼!

“6년 전 루스템을 떠나 하스티아로 돌아갈 때, 내가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으니까.”

“……!”

“그동안 하스티아는 반란…, 아니, 그 수준이 아니구나. 내전을 겪고 있었으니까. 한때 수도까지 위험했단다.”

“……네? 엄마 괜찮으신 거예요?”

“걱정 말렴. 끄떡없으니까. 그리고, 늦었지만 이젠 다 해결해 놓고 왔단다.”

엄마는 아주 든든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나는 저 미소를 잘 알았다.

언제나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우던 S급 헌터로서, 자신의 능력을 단단하게 신뢰하는 전사로서.

엄마는 늘 저렇게 웃으셨다.

환생 이후 엄마를 보는 것도 처음이고 머리 색이며 외양도 많은 게 바뀌었지만, 그것만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나는 새삼 가슴이 뭉클해졌다.

“다행……아!”

그리고 너무 정신이 없어서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엄마! 아빠한테 같이 가요! 아빠도 엄마 기다리고 계셨을 거예요!”

그리고 어색하고 껄끄러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엄마와, 오빠, 셀리나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

“…….”

“…….”

뭐야, 이 분위기?

그때, 엄마가 침착하게 내 어깨를 잡고서 충격적인 말을 꺼내셨다.

“아가. 네 아빠에겐 말하지 말아 주렴.”

“……네? 어째서요?”

아빠가 얼마나 엄마를…….

이어진 엄마의 말에 내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버렸다.

“엄마는 6년 전에 아빠와 이혼했단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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