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16. 메인 퀘스트 : 진실 (02)
이게 무슨 소리야?
엄마랑 아빠가 이혼?
그제야 조금 전 엄마의 시스템 창에서 본 단어가 떠올랐다.
‘전(前) 루스템 제국의 황후.’
전이라는 말은, 지금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러니까 이혼했다는 것 외에는 다른 설명이 안 되긴 했다.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건 달랐다.
‘이혼? 이호온? 엄마랑 아빠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랑 아빠가아?!’
나에게는 세상이 거꾸로 뒤집히는 급의 충격이었다.
‘말도 안 돼! 엄마랑 아빠가 얼마나 잉꼬부부였는데! 이혼이라니?’
하지만 곧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혼이 반드시 두 사람 사이가 갈라져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갈라서는 부부도 많았다.
게다가 이번 생에는 아빠는 제국 황제에, 엄마는 하스티아의 왕세녀다.
서로 자신의 나라를 어깨에 지고 있으니, 그 과정에서 사랑하지만 헤어지는……,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어물어물 엄마를 설득하려 애썼다.
“그, 그치만…… 그래도 아빠랑 엄마니까, 얼굴이라도 보고…….”
엄마는 잠시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아꼈다.
그리고 오빠, 셀리나와 눈짓만으로 뭔가 서로 의사소통을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더 있구나!’
엄마는 흐리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엄마랑 아빠가 아주 많이 싸웠거든. 아직도 많이 화가 나서, 그래서 아빠 얼굴을 보기 힘들단다. 이해해 주렴, 우리 딸.”
알겠다. 이건, 진짜 이유가 아니라, ‘일곱쨜을 위해 최대한 순화한 표현’이라는 걸.
<궁예> 스킬의 부가 효과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지금이 피치 못할 사정이라고!’
나는 바로 부가 효과를 시도했다.
두근두근.
심장이 불안하게 떨려 왔다.
[부가 효과 발동이 실패… 실패… 실패… 성공했습니다!]
[엄마 : ‘이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말해 줄 수가 있겠어. 제 아빠가 나를 배신해서 이혼한 거라고는.’]
나는 얼이 빠졌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아빠가 엄마를 배신했다고?
그건…… 바람피웠다는 소리 아냐?
쿵!
머리 위로 커다란 망치가 떨어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아빠가 엄마를 두고 바람피웠다고? 그래서 두 분이 이혼하셨다고?’
말도 안 된다. 내가 아는 아빠는 세상에 엄마 외에 누구에게도 한눈팔 사람이 아니었다.
당연히 전생에도 그런 일은 없었고.
그런데, 엄마는 이번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오빠도 셀리나도 크게 싸웠다는 엄마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어찌나 놀라고 얼이 빠졌는지, 이 내용을 스킬로 확인한 것도 잊고 대놓고 물어보고 말았다.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고요? 정말로?”
그러자 엄마, 오빠, 셀리나가 경악했다.
아, 내가 지금 모르는 사실이어야 하지.
나는 경악도 잠시 잊고 머리를 쥐어짜서 다급히 이유를 지어냈다.
“그, 우연히 하녀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어요! 더 어릴 때! 그때는 무슨 소린지 몰랐다가……. 방금 깨달아서…….”
침묵만이 북쪽 정원의 찬 공기 위로 내려앉았다.
내 경악 어린 질문에 긍정을 의미하는 침묵이.
***
“……아가, 어쨌든 아빠에게는 내가 왔다는 건 비밀로 해 주렴. 공식적으로 나는 제국에 오지 않은 거니까.”
엄마는 그렇게 말하시고는 하스티아 사절단의 숙소로 돌아갔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비밀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영혼을 도둑맞은 것처럼 멍한 상태로 황녀궁으로 돌아왔다.
비슷한 상태인 오빠를 옆에 끼고서.
그리고 주변에 사람을 전부 물리고 단둘이 된 다음.
소리가 밖으로 새지 않는 결계도 치고 나서, 오빠에게 물었다.
“왜 나한테 말 안 해 준 거야?”
오빠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시기상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고 제국을 떠났다.
그리고 그때 오빠는 여섯 살.
충분히 엄마에 대해 기억하고 있을 수 있는 나이.
게다가 아까 엄마의 충격적인 사실 고백 때, 오빠는 놀라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곰곰이 고민해 보면, 의심 가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화해시키기 전, 오빠가 아빠에게 보이던 격렬한 거부감.
그건 거의 증오나 분노에 가까웠다.
‘그냥 아빠가 오빠를 방치해서 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아빠랑 오빠의 사이가 완전히 봉합되는 데에 시간이 이렇게 많이 필요했던 거다.
오빠는 아빠가 엄마를, 우리를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오빠는 무거운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리샤는 평생 몰랐으면 했어.”
“말도 안 돼! 그래도 말해 줘야지!”
오빠는 붉어진 눈가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엄마가 떠나실 때, 나에게 말씀하셨어. 앞으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그러니까 내가 오빠니까 아기인 리샤를 지켜달라고 하셨어.”
“…….”
엄마는 죽음을 각오하고 전장으로 떠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엄마가 어떤 심정으로 그런 말을 하셨을지.
그리고 어린 오빠는 또 어떤 심정으로 그 말을 들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오빠의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리샤. 넌 이제 겨우 일곱 살이야. 그리고 그때 넌…… 너무너무 작고 위험한 아기였어.”
나보다 훨씬 큰 오빠가 왜 이렇게 작아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의 오빠는 마치 여섯 살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작고, 외롭고, 상처받은 어린아이로.
“나는 너만 있으면 돼.”
아직 이름도 받지 못한, 제대로 의식을 가지지도 못하는 동생을 끌어안고.
이렇게 중얼거리는 여섯 살의 어린아이를.
오빠의 눈가에는 다시 이슬이 맺혀 있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너무 가슴 아팠다.
“나는, 나는……, 나는 리샤. 사실 모르고 싶었어. 그런 거.”
“오빠…….”
“그래서 리샤라도 몰랐으면 했어.”
오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바닥에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얼룩을 만들었다.
나는 두 손을 뻗어 오빠를 끌어안았다.
지금도 여전히 어리고.
그때는 훨씬 더 어렸던 불쌍한 꼬마를.
“미안해, 리샤. 화내지 마. 나 미워하지 마.”
“안 해. 안 미워해.”
어떻게 미워해.
나는 한참 동안 오빠를 끌어안고 있었다.
***
오빠는 또 엉엉 울다 보니, 눈도 다 붓고 목도 쉬어서 그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듣기 어려웠다.
‘그리고 열두 살짜리한테 물어보기 힘든 내용이야.’
그때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상처받은 티를 내는데.
저 일은 아직도 오빠에겐 낫지 않은 상처임에 틀림없었다.
그걸 또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난 셀리나를 불러들였다.
“자세하게 설명해 줘, 셀리나.”
“황녀님…….”
“그런 얘기 이해하기엔 너무 어리니 뭐니 하지 말고, 전부 다 말해! 이건 명령이야!”
내 단호한 선언에, 셀리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셀리나가 말해 준 이야기는 꽤 충격적이었다.
“황녀께서 태어나시기 전, 황제 폐하께서 한 귀족 영애와 스캔들이 있으셨습니다. 처음에 황후, 아니, 왕세녀 전하께서도 저희도 믿지 않았지요.”
“황제 폐하께서 얼마나 왕세녀 전하를 사랑하셨는지 다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직접 고백하셨습니다. 술에 만취하여 잠드셨다가 일어났을 때, 옆자리에 그 영애가 있었다고요.”
왜 다들 그동안 나에게 숨겼는지 알겠다.
일곱 살짜리 앞에서 하기에 적절한 이야기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곧 그 영애는 황제 폐하의 아이를 가졌다고 떠들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왕세녀께서는 황녀 전하를 임신 중이셨고요.”
셀리나는 그때의 분노를 다시 떠올리는 듯,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황녀 전하께서 태어나시던 날. 그 영애도 딸을 낳았습니다.”
“……뭐?”
“그 영애는 그날 태양석이 빛난 것이 황녀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딸 때문이라 주장했습니다.”
그 이후,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고 고국으로 돌아갔고.
하스티아의 상황이 악화되어 있었기에, 나와 오빠를 데려가지는 못하셨다고 했다.
대륙 대부분이 그러하듯 제국 역시 철저히 일부일처제를 지켰다. 정략결혼을 하고 애인을 따로 두는 경우도 있었지만, 도덕적으로는 지탄받는 일이었다. 사생아에게 가문을 물려주는 것도 불가능했고.
다만 황실만은 사정이 달랐는데. 태양의 마력을 물려받은 황족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태양의 마력을 가졌다면 황제의 사생아라 할지라도 황족으로 인정받았다.
때문에 황제가 여러 연인을 두는 것과 사생아를 두는 것은 도리어 권장되었다.
하지만 하스티아는 전혀 다른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불륜은 가문에서 축출당할 정도로 중죄였다.
게다가 아빠와 엄마는 정략결혼이 아닌, 순수한 연애 결혼이었다고 했다.
아빠는 평생 자신의 사랑은 엄마뿐일 것이라 약속하고 결혼했고. 약속대로 누구에게도 눈 돌리지 않고 엄마만을 바라보셨다고 했다.
그래서 스캔들이 터졌을 때, 엄마의 배신감과 상처가 더 클 수밖에 없었던 거다.
나는 엄마가 우리와 헤어지기 전에 한 말을 떠올렸다.
“이제 와 이런 말을 하기에는 염치가 없지만, 아가. 엄마와 함께 가지 않겠니? 너희 둘 다.”
그렇다. 엄마는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 제국으로 돌아오셨던 거였다.
나는 잠시 입술을 사리물고 있다가, 셀리나에게 물었다.
“그 여자 이름이 뭐야? 아빠랑 스캔들이 있었다는.”
“홀덴 백작 영애입니다. 딸을 낳고 얼마 있다가, 함께 영지로 내려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메인 퀘스트!]
[System Error! ………▩▶€※]^b!#$%………]
***
그날 저녁, 아빠가 황녀궁으로 왔을 때, 나는 아빠에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오빠는 본인 궁으로 돌려보내놓고,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였다.
물론 엄마가 왔다는 사실은 아직 밝히지 않았다.
내 의심과 의문을 전부 확인한 후에, 아빠에게도 알려 줄 생각이었다.
내가 훨씬 어릴 때 우연히 소문을 들었고.
지금 그 의미를 깨달았다고 말했을 때.
아빠는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빠는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그저 때늦은 죗값을 치르려는 죄인의 태도로 말했다.
아빠의 표정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미안하다, 아가. 이렇게 어린 너에게 그런 더러운 일을 알게 하다니.”
아빠는 나를 끌어안고 싶은 듯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처럼.
“그래. 그게 아빠의 죄란다. 절대 용서받지 못할 죄이지.”
“…….”
“언젠가 네가 알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이른 나이에 알게 될 줄은……. 미안하다. 아가.”
“……아빠.”
나에게 듣는 ‘아빠’라는 호칭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과분한 것이라는 듯, 아빠는 쓰린 표정을 했다.
급기야 아빠의 눈가에서 두어 방울 눈물이 흘렀다.
아빠는 이미 전에 나에게 말한 적 있었다.
‘우리가 엄마를 잃게 만든 것이 본인의 죄라고. 그게…… 이런 의미였을 줄은.’
그때는 엄마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계신 거라고 착각했는데,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나와 오빠에게도 가까이 올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셨던 거다.
그때 우리와 멀어지려던 아빠의 모습이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죄수 같다고 느꼈던 건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아빠는 자신을 그리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배신감과 의문이 당연히 따라왔다.
나는 전생과 현생을 연속성 있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기억을 가진 것도 나뿐.
라이언의 예처럼, 전생과 현생의 입장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도, 이젠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못 믿겠어! 아빠가 정말 그랬다는 걸!’
내가 아는 아빠는 전생에도 지금도 똑같았다.
절대 엄마 외에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릴 사람이 아니고.
나와 오빠를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
설사 완전한 진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아빠가 엄마를, 우리를 배신했을 거라고 믿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나에게는 방법이 있었다.
몇 가지 의심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금이 간 자그마한 거울이 내 손 안에 떨어졌다.
[아이템 명: ‘진실의 거울’(S급)]
나는 그걸 아빠 코앞에 들이대며 물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주세요!”
[퀘스트 명 : ‘가족을 지켜라!’]
[설명 : 당신의 가족은 당신이 태어나기 전 있었던 그 일로 인해 갈라져 있습니다. 그날의 진실을 확인하여 완전한 가족을 되찾기 위한 준비를 마치세요.]
[완료 조건 : 그날의 진실 확인 및 원흉 찾기]
[보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