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화 (111/218)

Level 16. 메인 퀘스트 : 진실 (06)

자주 만지고 열어 본 것인지, 펜던트에는 자잘한 흠이 가득했다.

그리고 소켓 안쪽에는 두 장의 그림이 들어 있었다.

나와, 오빠의 초상화.

그리고 그 화풍은 눈에 익은 것이었다.

“이거 셀리나 그림이잖아요?”

“그러게!”

게다가 이건 완전 최근의 우리를 그린 그림이었다.

나와 오빠의 놀란 눈이 엄마와 셀리나를 번갈아 가며 향했다.

우리 시중을 들어 주고 있던 셀리나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이젤리아 전하께 두 분의 초상화와 일상을 그려서 보내드리고 있었어요.”

그제야 기억났다.

내가 아기일 때부터 셀리나는 꾸준히 나와 오빠의 그림을 그렸었다. 전에 본 건 그저 일부에 불과할 정도로 많은 그림을.

“그 그림이 전부 엄마 주려고 그린 거였어?”

나는 감동했다.

셀리나의 희한한 취미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사실 전부 엄마에게 우리의 근황을 알려 주기 위한 거였다니!

“아! 혹시 내 머리카락이나 양말 모으던 것도 그래서야?”

“……아뇨. 그건 제 순수한 취미이고 소중한 컬렉션입니다. 왕녀님께도 두 분 머리카락은 몇 번만 드렸어요.”

“…….”

셀리나는 아주 진지했다.

농담 따위가 아니라는 걸, 표정으로도 태도로도 잘 알 수 있었다.

내가 잠시 짜게 식은 사이.

엄마랑 오빠가 이상한 말들을 서로 주고받기 시작했다.

“엄마. 셀리나는 리샤의 나이 대별 머리카락을 쭉 모아서 보관하고 있어요. 조금만 나눠 달라고 해도 절대로 안 줬어요.”

“세상에! 그게 정말이야, 셀리나? 어떻게 그런 귀한 컬렉션을 만들어 놓고 나에게는 말을 안 할 수가 있어!”

뭔가 두 사람이 셀리나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포인트가 조금 이상한 것 같지만.

나는 포기했다.

‘하하.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이런 걸 보면 오빠는 아빠만 닮은 게 아니다.

머리 색이나 얼굴만이 아니라 성격도 엄마를 닮은 부분이 아주 아주 많았다.

그때, 나는 펜던트의 구조가 묘하다는 걸 깨달았다.

오빠와 내 초상화가 마주 보고 있는 가운데, 뚜껑 부분에 가는 틈이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작은 틈새.

마력을 흘려 넣어 그 틈새를 비집고 열자, 안쪽에 숨겨진 공간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안에는…….

“…….”

한 박자 늦게, 엄마는 내가 소켓 안쪽의 숨겨진 공간을 본 걸 눈치채셨다.

엄마는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내 손에서 펜던트를 가져가셨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왜 아빠 초상화도 가지고 다니세요?”

“……옛날에 만들어 넣어 놓고 빼는 걸 잊어버렸단다.”

말도 안 된다.

누구도 믿지 못할 거짓말이라는 걸, 나도 엄마도 오빠도, 셀리나까지 알았다.

나는 엄마의 소맷자락을 잡고 물었다.

“엄마. 아직 아빠 사랑하시는 거예요?”

“…….”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침묵이 긍정 외의 다른 대답이 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알았다.

그래서, 도저히 이 질문을 참을 수가 없어졌다.

“그럼 엄마. 아빠가 엄마를 배신한 게 아니라면요? 그러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엄마는 곤란한 표정을 하셨다. 하지만 내가 계속 얌전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 한참 만에 어쩔 수 없이 대답을 내주셨다.

“……그때는,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했었단다.”

“…….”

해 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엄마는 결국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석양을 바라보는 엄마의 옆얼굴은 너무나도 쓸쓸해 보였다.

***

그리고 그날 밤.

아빠의 파란 눈이 충격으로 떨렸다.

“……!”

“…….”

나와 오빠를 각자의 궁으로 데려다주는 길.

엄마는 아빠와 마주치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언젠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빠는 늘 나와 오빠를 챙기려 애썼다.

아무리 정무로 바빠도, 늘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아침에는 잠깐이라도 들러 손수 내 머리를 묶어 주려 노력하셨다.

그러니, 엄마가 우리를 만나 시간을 보낸다는 건 곧 그만큼 아빠와 마주칠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엄마도 내심 짐작하고 계셨는지 씁쓰레하고 서글픈 표정으로 나와 오빠에게 인사를 했다.

내 머리에, 그리고 오빠의 이마에 뽀뽀를 해 주시고는.

“엄마는 이만 가 볼게. 좋은 꿈 꾸렴, 아가들.”

“엄마……,”

“…….”

엄마는 그대로 뒤돌았다. 그리고 아빠에게 어떤 눈길도, 말도 건네지 않은 채, 사절단의 숙소로 돌아갔다.

엄마의 뒷모습이 밤의 어둠 속에 녹아 사라져 버린 뒤.

나는 망부석처럼 서 있는 아빠에게 다가갔다.

“아빠.”

“…….”

아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엄마가 사라진 곳을 못 박힌 듯 바라보기만 할 뿐.

나는 참지 못하고 다가가, 아빠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아빠는 겨우 두 손을 뻗어 나를 끌어안아 주셨다.

오늘 들었던 엄마의 마음, 그리고 아빠의 떨리는 손길에서 두 분의 슬픔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나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오빠에게,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소리 없이 다짐했다.

‘내가, 어떻게든 되찾을 거야! 반드시!’

***

다음 날, 새벽.

나는 주변의 눈을 피해 하스티아 사절단 숙소의 엄마가 묵는 방으로 향했다.

톡톡.

창문을 살짝 두드리자, 다행히 엄마는 바로 문을 열고 나와 주셨다.

“아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혼자 어떻게…….”

“엄마!”

나는 포릉 날아올라, 엄마의 품에 안기며 동시에 말했다.

“엄마, 오늘 내 생일인 거 아시죠?”

엄마의 청보랏빛 눈 색이 한층 짙어졌다.

“당연히 알지. 엄마가 어떻게 모르겠니.”

“나, 엄마한테 생일 선물 받고 싶어요!”

“뭐든 말해 보렴.”

나는 환하게 웃으며 엄마에게 속삭였다.

“내 생일 파티에 엄마도 오는 거요!”

“…….”

엄마의 표정을 보고, 나는 내 예상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오늘 내 생일 파티 연회에는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었단 걸.

어제 아빠와 마주친 직후의 반응을 보고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공식적으로 참석해 주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파티장 안에 와 주시기만 하면……, 그러면…….”

나는 어떻게든 엄마를 파티장에 오게 하기 위해 약은 짓도 해 버렸다.

잔뜩 풀 죽은 일곱 살 어린아이인 척한 것이다.

눈을 내려뜨리고, 자그마한 두 손을 우물쭈물 마주 잡고 꼬물거렸다.

지금까지 갓 태어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엄마와 한 번도 생일을 같이 보내지 못한 서글픈 바람을 살짝 드러내는 아이.

그리고, 이 와중에도 엄마가 거절하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는 가여운 아이.

-로 보이도록!

그리고 아빠와 오빠의 반응으로 예상한 대로, 엄마 역시 나의 이런 행동과 태도에는 당해 내지 못했다.

“그래, 아가. 공식적으로는 힘들지만, 사절단의 수행원 중 하나로 참석할 수 있도록 해 보마.”

“네!”

나는 행복하게 웃었다.

나는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그들’이 움직일 거라는 걸.

특히, 놈들의 가장 뒤쪽에서 꼭두각시의 실을 움직이고 있을 ‘그 여자’.

이런 것이 그 여자의 방식이었으니까.

***

아나트리샤 황녀의 일곱 살 생일이 밝았다.

황도 르펜시아는 벌써 며칠 전부터 잔뜩 들떠 있었다.

그 기대감이 황녀의 생일 당일을 맞이하여 그대로 터져 나왔다.

대륙 곳곳에서 불러들인 광대와 서커스, 극단들이 황도 곳곳에서 무료 공연을 펼쳤다.

전부 황실에서 돈을 내고, 신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여흥이었다.

전야제 3일간부터 이미 황도 곳곳에서 풍성한 먹거리와 마실 거리도 함께 제공되고 있었다.

어린 황녀의 생일이다 보니, 술은 제외된 것에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황녀와 비슷한 나이 대의 어린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를 것들이 많았다.

“우와! 구름사탕이다!”

“졸인 과일이야! 맛있어!”

황녀의 명령으로 달콤한 간식들이 무제한으로 제공되어, 아이들을 기쁘게 했다.

황도만이 아니었다. 르펜시아에 가장 많은 돈이 풀렸지만, 지방 곳곳에도 황실 주도로 많은 먹거리와 볼거리가 제공되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국 곳곳에는 생일을 맞이한 황녀에 대한 칭송으로 넘쳐 흘렸다.

“우리 황녀님 만세!”

“감사합니다, 황녀님!”

“오늘 태어나 주셔서 감사해요!”

다들, 황제의 명령으로 세워진 황녀의 조각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천사상을 보고 기도를 드렸다.

그렇다. 이 금 천사상은 황궁 앞에만 지어진 게 아니었던 것이다!

아직 아나트리샤는 알지 못했지만, 황궁 앞에 세워진 것처럼 금을 입힌 것은 아니어도 많은 천사상이 제국 곳곳에 세워졌다.

전적으로 황제와 황자의 팔불출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우리 아가가 이렇게 귀여운 걸 널리 알려야 한다!”

“리샤가 이렇게 이렇게 사랑스럽다구! 보고 부러워하란 말이야!”

-라는 이유에서였다.

어쨌든 오늘 주인공을 위한 파티는, 태양이 가장 높게 떠오르는 정오 무렵 시작되었다.

덕분에 황궁은 오전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외궁은 지방에서부터 올라온 지방 귀족과 젠트리, 평민들이 우르르 몰려와 있었고.

내궁에는 대륙 곳곳에서 몰려든 사절단들과 제국 내의 고위 귀족들이 우글거렸다.

그들은 모두 단 한 사람의 입장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녀 전하께서는 언제 들어오실까요?”

“소문 들었어요? 알라나 몰리아스가 최고의 드레스를 황녀님께 바쳤다던데.”

“역시 황녀님이시네요. 그 콧대 높은 장인을 어떻게 매혹시키신 걸까요?”

그때였다.

파티가 한창 무르익고, 태양이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른 시각.

그레이트 홀에 오늘 주인공의 입장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황녀 전하께서 드십니다!”

“황제 폐하, 황자 전하 드십니다!”

여러모로 전례를 깬 입장이었다.

아무리 오늘의 주인공이 황녀라 해도, 황제의 입장을 먼저 알리는 것이 관례이므로.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파격이 누구를 위해 누구의 주도로 벌어진 것인지 알았다.

‘틀림없이 황제 폐하께서 주장하셨겠지.’

‘정말이지 황제 폐하의 황녀 전하에 대한 사랑은 못 말린다니까.’

오늘도 황녀는 황제의 품에 안겨 입장했다.

알라나 몰리아스가 특별한 능력을 각성하여 만들었다는 특제 드레스는, 황녀의 귀여움을 더욱 배가시키고 있었다.

마력에 조예가 깊은 이들은 드레스가 황녀의 마력에 공명하여 효율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저런 게 가능하다고?’

‘엄청나다!’

모두의 감탄과 선망 속에 황녀의 입장이 이루어지던 찰나였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갑자기 두 인영이 뛰어나와, 황제와 황녀 앞을 감히 막아섰다.

주변의 경악 속에서, 황제의 행차를 막은 두 사람 중 한 명.

홀덴 백작 영애가 외쳤다.

“폐하! 폐하, 여기 폐하의 또 다른 딸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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