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16. 메인 퀘스트 : 진실 (08)
[System Error!]
[……표시 가능한 정보만을 출력합니다.]
[이름 : 에릴]
[지위 : 홀덴 백작가의 사생아, 황가의 사생아(주장)]
[…상태 이상 : 반각성(A급), ▩▤▧※(A급)]
[협력자 : 엘라이자 홀덴(신뢰, 경멸), 로헨 그랑디오르(신뢰), 라이언 그랑디오르(신뢰), @#$*+₩(신뢰)]
어느 정도 예상한 정보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상태 이상 중 상당히 높은 등급의 반각성이 포함된 것도.
전체 정보를 볼 수 없는 것까지 말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름 아닌 이름이었다.
‘역시 소피아의 환생이 아니야.’
에릴이라는 이름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하다못해 미하일 때처럼 깨진 글자들이 ( )사이에 적혀 있었다면, 소피아인지 의심할 여지가 있었다.
‘하긴 그런 거물이, 이렇게 소모적으로 등장할 리 없지.’
반각성 상태인 것만 봐도, 이 여자애는 사교도 놈들이 버리는 패였다.
“아바마마…….”
그렇게 말하며 커다란 눈에 눈물을 그렁거리는 꼴이……, 솔직히 꽤 거슬렸다.
하지만 지금은 저 꼬마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내가 저 애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가 반드시 함께 나타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로 에릴의 옆에 선 여자.
[이름 : 엘라이자 홀덴]
[지위 : 홀덴 백작 영애]
[……]
[협력자 : 하스토트 벨론드(사망), 루도비카 벨론드(사망), 에릴(불신)]
‘근데 저 여자는 왜 자기 딸을 불신하지?’
어쨌든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인벤토리.’
손안에 사용 횟수가 1회 남은 <진실의 거울>이 떨어졌다.
그렇다. 나는 홀덴 백작 영애가 눈앞에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 여자가 마지막 증인이니까.’
그것도 아빠보다 그때의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당사자.
나는 오빠의 품에서 벗어나, 에릴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일곱쨜처럼 순진하게 물었다.
“네가 우리 아빠 딸이라고? 그럼 내 동생이야?”
“아니! 내가 네 언니야! 홀덴 영애께서 그렇게 말해 주셨어. 내가 너보다 조금 일찍 태어났다고.”
발칵 화를 내는 꼬맹이의 태도는, 솔직히 아주 거슬렸다. 세실리아는 정말로 가려운 정도였군.
나와 같은 나이의, 같은 생일을 가졌다는, 아빠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아이.
‘솔직히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짜증 나.’
등 뒤에서 오빠의 참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뜻 듣기에도 물렁물렁한 꼬맹이가 또 잔뜩 상처받은 티가 팍팍 났다.
“리샤! 그런 인간들 상대하지 마!”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에릴 옆의 홀덴 백작 영애를 노려보았다.
“정말이에요? 얘가 우리 아빠 딸인 게 맞아요? 정말로?”
“……다, 당연합니다. 이 아이는, 폐하의 따님이세요.”
홀덴 영애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나는 거울을 들어 올려, 그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눈부신 빛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
차르륵-.
익숙한 소음이 귀를 울렸다. 나는 눈을 뜨고 바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이미 확인한 과거 기억들의 비어 있던 부분이 눈앞에서 채워지고 있었다.
다브네스 후작 부인이 벨론드 대공비에 의해 끌려 나간 뒤.
그 침실로 홀덴 영애가 들어섰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아빠가 방 안으로 뛰어드셨다.
“이즈!”
그리고……, 아빠는 곧 쓰러지셨고, 예정된 상황이 빠르게 흘렀다.
이 일을 꾸민 자들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하나 있었지만.
“꺅! 폐, 폐하!”
“……크, 흑!”
아빠는 사교도의 약에 당해 제대로 의식이 없는 상태셨다.
그럼에도 아빠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여자가 엄마가 아니라는 걸 무의식적으로 아신 모양이다.
마력까지 써 가며 거부하는 아빠를 홀덴 영애 혼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손톱을 깨물며 낭패 어린 표정을 짓다가, 결국 옆방의 벨론드 대공에게 찾아갔다.
“폐하께서 너무 저항이 크세요. 저 혼자서는 어쩔 수가 없어요. 만일, 내일 이 일을 모두 기억하신다면…….”
“아니, 기억 못 할 거다. 확실해.”
“그렇지만, 이대로는……, 이 아이를 황제 폐하의 아이로 둔갑시킬 수가…….”
그렇게 말하며, 홀덴 영애는 자신의 배를 감쌌다.
“……!”
벨론드 대공은 씨익, 재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상관 없지 않으냐, 어차피 황제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거다. 그리고 그 아이가, 황실의 핏줄을 이은 아이라는 건 명명백백한 사실이니.”
이제 알겠다.
에릴은 아빠의 딸이 아니라, 벨론드 대공의 자식이었던 거다.
그렇다면 왜 태양의 마력을 발현할 수 있었는지도 분명해진다.
대공의 말대로, 에릴이 황가의 핏줄이라는 건 분명하니까.
이미 대공의 자식들 중 둘이나 태양의 마력을 각성한 바 있지 않은가.
그의 사생아라면, 태양의 마력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7년 전, 벨론드 대공 일파는 아빠와 엄마를 갈라 놓고, 또한 황실 직계에 제 핏줄을 들여 놓기 위해 음모를 꾸민 것이다.
이어진 상황은 그들이 예상한 대로였다.
다음 날, 아침.
의식을 되찾은 아빠는 약의 부작용으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셨다.
때문에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무슨……!”
“폐, 폐하. 지난밤 폐하께서 저를…….”
홀덴 영애는 가증스럽게도 거짓말을 했고.
아빠는 정황상 자신이 저질렀다 믿을 수밖에 없는 잘못에 큰 충격을 받아야 했다.
물론, 더욱 큰 충격을 받은 건 엄마였다.
우리 가족의 신뢰와 애정이, 관계가 조각조각으로 갈라져 가는 걸 보며, 벨론드 대공과 홀덴 영애는 웃었으리라.
나와 에릴의 출생.
그날 태양석이 빛난 것을, 홀덴 영애는 자신의 딸이 빛낸 것이라 주장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녀로 받아들여지지도 못한 영애의 아이 때문이라기보다는 내가 한 것이라 여겼지만.
홀덴 영애와 에릴은 그 존재 자체가 나와 엄마를 흔드는 원흉이었다.
이어진 아빠와 엄마의 이혼.
여기까진 그들이 예상한 그대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홀덴 영애와 에릴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최종 목적은 이루지 못한 채, 홀덴 영애는 딸과 함께 황도를 떠나야 했다.
그리고, 지금.
파삭!
손안에서 <진실의 거울>이 쓰임을 다하고 부서져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어지럽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퀘스트 완료!]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보상 수령 완료.]
[…연계 퀘스트 ‘진실을 밝혀라’ 발생!]
[그날의 진실을 최대한 널리 알려, 오해와 불명예를 해결하고, 당신의 가족을 완전하게 되찾으시오.]
[보상 : ????]
당연하지!
안 시켜도 할 생각이었다구!
***
내가 그날의 진실을 확인하느라 잠시 멍해 있는 사이.
상황은 조금 예상외로 돌아갔다.
내가 <진실의 거울>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아빠와 다브네스 후작 부인에게 사용한 경우에 비춰 보면.
아이템이 적용된 당사자들은 제 눈으로 아이템을 본 것도,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시스템의 간섭과 보정 덕분인 듯했다.
그걸 믿고 지른 덕분에, 홀덴 영애나 주변의 사람들은 내 행동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그저, 충격적인 상황에 놀란 아이의 충동적인 추궁이라고만 생각한 모양이었다.
거기서 발칵 화를 내며 예민하게 반응할 만한 이는 하나뿐이었다.
겨우 일곱 살짜리 어린애.
에릴.
아마도 제 어머니를 잡고, 정말 자신이 황제의 딸이 맞는지를 묻는 내가 싫었겠지.
또한 내 행동이 꽤나 거슬리고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엄마한테서 떨어져!”
좀 전에는 홀덴 영애라고 새침하게 말해 놓고는.
저렇게 외치며 나를 밀어낸 걸 보면, 말이다.
아이템 사용 때문에 잠시 멍한 상태였던 나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덕분에 맥없이 밀려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폭!
“아가!”
“리샤!”
아빠와 오빠가 나를 안아 들었기에 뒤로 넘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와 오빠의 분노는 엄청났다.
“너! 너 따위가 감히 리샤를 밀어?! 죽고 싶어?”
“……오, 오라버니!”
“그따위로 부르지 마! 나는 너 같은 건 동생으로 둔 적 없어!”
어린아이답게 화를 내면서도 따가운 살기를 흘리는 오빠.
에릴의 눈이 두려움과 질투로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그 애에게 오빠의 반응보다 몇 배로 강한 타격을 준 건, 그 뒤로 이어지는 아빠의 말이었다.
내내 에릴과 홀덴 영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마른세수를 하고만 있던 아빠였다.
나는 아빠가 왜 그랬는지 짐작이 갔다.
어쨌건 아빠는 그때 자신이 잘못했다 여기고 있었고.
그렇게 보면, 아빠는 에릴에게도 자신이 잘못했다 여기고 있었으리라.
게다가 에릴은 겨우 일곱 살짜리 철없는 아이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방금 에릴이 나에게 한 짓은 아빠의 역린을 건드린 셈이 되고 말았다.
아빠는 처음으로 에릴을 향해 직접적으로 입을 열었다.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네 존재를 알고 있었다. 네 어미와 달리, 가엽다고도, 미안하다고도 생각했었지. 너에겐 아무런 죄가 없으니. 죄를 지은 것은 나니까.”
“아바마마!”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어. 내 잘못으로부터 도망치며 이 모든 것을 회피하고 있어서는 안 되었는데…….”
“역시 아바마마는 알아주시는 거죠! 받아들여 주시는 거죠, 에릴을!”
에릴의 주홍색 눈동자에 희망과 기쁨이 퍼져 나갔다.
하지만 아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에릴의 희망을 박살 내는 말이었다.
“그 때문에 내 하나뿐인 딸이 상처받는 꼴을 내 눈으로 보게 될 줄 알았다면, 진작 너도 네 어미도 그냥 놔두지 않았을 거다.”
“……네?”
아빠는 나를 꼭 안아 들었다. 그리고 더없이 차갑고 고압적인 태도로 에릴을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적의마저 내보이는 태도였다.
“너는 내 딸이 아니다. 내 피가 흐르든 아니든, 나는 이 아이 외에 딸이 없으니까.”
냉혹하고 잔인하기까지 한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