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16. 메인 퀘스트 : 최고의 생일 선물 (01)
“네? 방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 아바마마?”
에릴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아니, 받아들이기 싫은 듯했다.
오빠는 기다렸다는 듯 냉혹한 말을 쏘아붙였다.
“이해력도 떨어지나? 너 따윈 우리 가족이 아니라는 거야.”
오빠는 엄마와의 재회 이후 아빠에게 쌓인 감정이 많아 보였지만.
적어도 조금 전 아빠가 한 말만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두 번 연달아 정신 공격을 당한 에릴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럴, 그럴 리가…… 에릴의 아바마마고 오라버니시잖아요. 그런데 왜………?”
에릴의 멍한 눈이 아빠의 품에 안긴 나를 향했다.
아빠와 나를 번갈아 보다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 듯했다. 아이가 입술을 사리문다.
“에릴이… 에릴이 아바마마, 오라버니와 안 닮아서…… 그래서, 그런 거예요?”
“…….”
말이 안 통하는 애인 건 잘 알겠다.
그때, 아빠는 에릴을 무시하고 그 모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빠의 눈빛에는 차가운 분노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내 분명히 그때 말했을 텐데. 절대 내 눈에 띄지 말라고.”
“폐, 폐하!”
아빠는 차가운 목소리로 시종장을 추궁했다.
“웨인. 이들이 어찌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인가. 설마, 홀덴 백작가에 황궁 출입 허가를 내준 건 아니겠지? 그것도 내 딸의 일곱 살 생일날.”
“송구하옵니다, 폐하. 이에 대한 죄는 다시 청하겠사옵니다. 다만, 공식적으로 이번 황궁 연회에 출입이 허가된 이들 중에 홀덴 백작 일가는 없었습니다.”
하긴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아빠가 아무리 사교도의 약으로 그때의 일을 기억 못 하고 있었고.
홀덴 영애의 딸이 자신의 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도.
아빠가 저 모녀를 그냥 넘겼을 리 없었다.
‘아예 가문 전체를 황궁 출입 금지시킨 모양이네.’
그 정도면 사실 온건한 처벌이었다.
그 일 때문에 아빠와 엄마는 이혼했고.
오빠는 1년 가까이 외롭게 지내야 했으니까.
‘그리고 아마, 온건한 처벌을 한 건 황가의 핏줄을 임신 중이라는데 강한 처벌을 할 수가 없어서겠지.’
그리고 내 예상은 대충 맞아떨어졌다.
이 자리에는 황가의 측근들뿐 아니라, 가르텐과 그랑디오르, 에아루스의 가주와 가주 대리도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세 가문은 개국 공신이자 이번 일에 대한 증인으로서 참여하게 된 것이다.
황위 계승 경쟁에는 세 가문은 참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종종 황족의 혈통 인정 등에 증인으로 서곤 했다.
황가는 태양의 마력을 가진 이를 늘리기 위해 사생아를 인정하다 보니, 그런 분쟁이 잦았던 것이다.
이번 경우 역시 그런 예로 판단한 것이다.
가르텐 공작이 여전히 냉정한 표정으로 나섰다.
“폐하. 부디 진노를 거두소서. 홀덴 영애에 대한 처우나 처결은 나중 문제입니다.”
“……!”
“우선은 태양의 마력을 증명한 저 소녀를 황족으로서 인정하실지에 대한 판단이 먼저 필요합니다.”
아빠는 가르텐 공작을 노려보며 대꾸했다.
“이미 말하지 않았나. 나는 인정할 생각이 없다.”
“……전례에 없는 일이군요.”
가르텐 공작은 곤란한 표정으로 안경을 매만졌다.
지금까지 태양의 마력을 각성한 사생아를 황족으로 인정하지 않겠다 주장한 황제는 없었던 모양이다.
아빠 외에는.
홀덴 영애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다.
“폐하! 이 아이는 폐하의 딸입니다! 태양의 마력을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까! 저를 내치시더라도 이 아이는 황녀로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진실을 아는 내 입장에서는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나는 아빠의 목을 끌어안고 속삭여 주었다.
“괜찮아요, 아빠.”
“……미안하다. 아가.”
아빠는 다시 나에게 나지막이 사과했다.
이런 상황을 보게 만들고, 저런 말을 듣게 만든 데에 너무나도 미안해하고 있다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아빠의 잘못이 아닌데.
하지만 홀덴 영애나 에릴, 세 공신 가문의 가주들이 있는 이 자리에서 이걸 말할 수는 없었다.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일곱쨜 어린애가 알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으니까.
‘아이템으로 과거를 보고 왔어요…… 라고 하면, 잘도 믿어 주겠다.’
아마 어릴 때 돌았던 ‘황녀가 백치래.’라는 소문이 ‘황녀가 망상증이래.’라는 소문으로 바뀔 뿐이겠지.
홀덴 영애의 기억까지 확인한 것으로 과거의 조각은 전부 맞췄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퀘스트 조건에도 쓰여 있지 않았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도록.’
그걸 생각하면 내 생일 파티는 최고의 자리였다.
아빠와 오빠가 나를 위해 온 대륙의 이목을 집중시켜 놓았는데.
바로 그 자리에 홀덴 영애와 에릴이 끼어들어 왔으니까.
그리고, 나는.
‘준비를 다 해 놨지.’
아빠의 품속에서 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스킬을 발동시켰다.
<사일런트 메시지>를. 연회장 구석에서 대기 중인 이들에게.
-준비하고 있어. 곧 시작이니까.
‘감히 우리 가족을 건드렸겠다. 절대 가만히 안 놔두겠어.’
***
아빠는 홀덴 영애와 그 딸에 대한 분노와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대다수는 이를 당연하다 여겼으나, 일부는 홀덴 모녀에게 동정심을 가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친부를 찾아온 모녀를 가혹하게 내치는 구도였으므로.
그렇다고 해서 가르텐 공작이 나선 이유가 동정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공정의 가르텐이었으므로.
지금까지 황실의 전례에 따라, 에릴이 황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 판단했을 뿐이다.
“하오나 폐하, 국법상 황실의 핏줄을 이은 것이 확실하고 태양의 마력을 가진 이는 태양의 책에 이름을 올리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이는 태양의 마력을 발현했다면 예외 없이 모두 황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침묵하고 있던 그랑디오르 소공작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황손을 인지하는 것이 전적으로 황제 폐하의 권한인 것 또한 분명하지요.”
“그건 그러하나…….”
두 가문의 언쟁에, 에아루스 후작가는 끼지 않았다.
이미 한번 맹약을 깬 바 있고, 에아루스의 후계자가 내 시녀이니.
사실상 에아루스는 암묵적으로 이 건에 대해서는 이미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내 편이라고.
그러니 도리어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이미 태양의 마력을 각성한 이를 방치해 두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또한 오늘은 경사스러운 황녀님의 일곱 살 생일 연회기도 하고요.”
“그러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그랑디오르 소공작.”
“오늘의 연회는 이대로 진행하고, 홀덴 영애와 그 딸은 저희 가문에서 임시로 보호하고 있겠습니다. 후일 다시 자리를 마련하여, 그 처우를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언뜻 듣기에는 타당한 말이었다.
가르텐 공작이 홀덴 모녀의 편을 드는 듯한 말을 먼저 한 덕분에, 그랑디오르는 중립을 택한 것으로 보였으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이렇게 보였다.
‘충분히 내 생일에 초 쳤으니, 이젠 천천히 우리 가족을 더 갈라 놓겠다는 걸로 보이는데.’
이미 오빠는 홀덴 영애 모녀의 등장만으로도 상처가 커 보였다.
겨우 여섯 살 때 경험한 충격적인 일들과, 그 뒤 1년간의 방치가 트라우마처럼 되살아난 것이다.
이번 일이 장기화될수록, 우리 가족 사이의 금은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무고하다는 게 밝혀진 뒤에는 나아지겠지만.
그 고통과 오해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처는 더욱 클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아까 다 보셨을 거라구!’
내 부탁 때문에 온 엄마는 아까 홀덴 모녀가 우리 앞에 끼어드는 꼴을 다 봤을 거다.
절대 엄마의 오해와 상처가 커진 채로 일을 넘길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절대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외쳐서 상황에 제동을 걸었다.
“리샤, 언니 갖구 싶어! 언니 줘!”
머릿속으로 자기 암시를 반복해야 간신히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곱쨜… 일곱쨜……, 하. 2회 차 인생 진짜 살기 힘드네.’
2회 차 인생 7년 차. 잠시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대신 그만큼 효과는 아주 확실했다.
“뭐, 리샤? 방금 뭐라고 했어?!”
“…아가?!”
주변의 경악한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
인적이 드문 정원의 나무 그늘에 서서, 이젤리아는 한숨을 쉬었다.
가슴팍을 누르는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조금 전 ‘그 광경’을 보았을 때는, 정말로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카스톨트와 두 아이가 입장하는 와중에, ‘그 여자’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7년 전의 끔찍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황공하오나, 황후 폐하. 지금 제 배 속 아이가 황제 폐하의 아이라는 건, 두 분 폐하 모두 부정하실 수가 없답니다.”
그때의 충격과 고통이 새삼 떠오르는 듯했다.
그럼에도 어제, 그리고 그들이 나타나기 전 마주한 카스톨트의 얼굴이 반갑고 여전히 사랑스러워서…….
자신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꼴을 또 보고 견딜 자신은 솔직히 없었다.
‘애초에 그를 보려고 온 것도 아니었잖아. 최대한 빨리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자. 그게 나아.’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젤리아는 새삼 암담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스티아 국내의 정세도 아직 불안정해. 최대한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온통 불안하고 걱정되는 일들 뿐이었다.
그때였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말하는 듯 들려온 것은.
-엄마.
이젤리아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주변 어디에도 딸은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그 아이의 목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엄마. 연회장으로 와 주세요! 꼭 할 이야기가 있어요!
이젤리아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
잠시 중지되었던 황녀의 생일 파티는 곧 다시 시작되었다.
황녀가 황제, 황자와 다시 입장하면서였다.
연회에 모인 귀족들은 세 공신 가문의 뒤를 따라 연회장으로 입장하는 홀덴 영애 모녀를 보고 수군거렸다.
“어떻게 된 걸까요?”
“설마 다시 함께 입장할 줄은…….”
“혹시 폐하께서 이번엔 저 아이를 인정이라도 하시려는 걸까요?”
그때, 어린 황녀가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미소를 지은 채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