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5/218)

Level 16. 메인 퀘스트 : 최고의 생일 선물 (02)

***

아까 우리와 측근, 세 공신 가문만 있었던 자리에서 나는 말했다.

‘리샤는 일곱쨜 뿌우-.’ 모드로 말이다.

누구는 아주 화나고, 또 누군가는 불안하도록 잔뜩 애교를 피우면서.

“리샤, 언니 갖구 싶어! 언니 줘!”

“……아가?!”

그렇게 폭탄을 던졌다.

“리샤 오늘 생일이잖아요! 생일 선물로 언니 주세요!”

오빠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아빠 역시 암담한 표정.

대부분은 당황했고, 몇몇은 기뻐하고 있었다.

누가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으리라.

계속 시도하다가 조금 전 켜진 <궁예> 스킬의 부가 효과가 삐롱삐롱거리고 있었다.

[에릴 : ‘정말? 생각보다 나쁜 애는 아닐지도……, 그러면 나도 언니로서 귀여워해 줄 수 있어!’]

[엘라이자 홀덴 : ‘세상에! 이런 기회가! 예상보다 순조롭게 에릴이 인정받을 수도 있겠어. 나 역시도!’]

당연한 일이지만, 가짜 사생아 에릴은 전혀 주제 파악을 못 하고 있었고.

자신은 상관없으니 딸만이라도 받아들여 달라던 홀덴 영애의 애원은, 역시 거짓말이었다.

[가르텐 공작 : ‘총명해 보이시지만 그래도 아직 어리신 분이 맞군. 본인에게 불리한 말을 이런 자리에서 스스로 해 버리시다니. 걱정이야.’]

겉바속촉 꼬맹이의 아빠는 외모만 아들과 닮은 게 아니었다.

에릴을 황족으로 인정할 걸 요구한 건, 전적으로 그게 전례와 법에 맞는 일이었기 때문인 거다.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나에게 더 기울어져 있었다.

그걸 티 안 내고 있는 것까지 겉바속촉의 아빠다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랑디오르 소공작은.

[그랑디오르 소공작: ‘……생각보다 일이 %&#$*‱▧#$▩%^€……’]

음. 역시 다 깨지는군.

어쨌든 대충 예상은 가니 상관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일곱쨜 리샤로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정말 우리 언니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으니까. 파티 자리에서 밝혀요!”

“파티 석상에서 말입니까? 지금의 파티는 황녀 전하의 일곱 살 탄일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나는 저들이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말을 꺼냈다.

정확히는 에릴과 홀덴 영애가 절대 물러나지 못할 미끼를.

“에릴도 오늘이 생일이라면서! 그러면 둘이 같이 생일을 축하하면 되겠네!”

“……맞아! 리샤는 착한 아이구나! 언니가 예뻐해 줄게!”

“화, 황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오늘은 이 아이의 생일이기도 하니, 함께 인정을 받고 축하를 받아야……!”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려던 홀덴 모녀는 오빠와 아빠의 살기에 그대로 멈춰 서야 했다.

오빠는 살기만으로 둘을 죽여 버릴 기세였고.

나를 끌어안은 아빠의 손은 작지만 분명히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 듯하구나, 아가.”

“그래.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리샤. 응?”

하지만 결국 아빠와 오빠는 나를 이길 수 없었다.

덕분에 모두가 기대하며 준비했던 내 일곱 살 생일 파티의 자리는.

즉석에서 에릴 홀덴의 신분을 확정하는 법정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미안해요, 아빠. 미안 오빠. 그치만…… 내가 다 계획이 있다구!’

더 끌어서 고구마를 길게 먹고 싶지 않았으니까!

오늘 여기서 다 끝장내 버리겠어!

***

다시 연회가 한창인, 그레이트 홀.

황족을 위한 상석에 황제와 그 품에 안긴 황녀, 그리고 굳은 표정의 황자가 올랐다.

그 뒤를 당연하다는 듯 따라가려던 홀덴 모녀는 가르텐 공작에 의해 막혔다.

“황제 폐하의 옥좌와 그 근처의 자리는 직계 황족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 두 사람은 아직 자격이 없소.”

가르텐 공작이 자신의 편을 들어 준다고 생각했던, 홀덴 영애와 에릴은 꽤 놀란 듯했다.

그러자 주변 눈치를 보던 홀덴 영애가 다시 앞에 무릎을 꿇고 읍소를 시작했다.

“황제 폐하! 이 아이는 분명히 6년 전, 태양의 달(8월) 열엿새에 태어난 황녀입니다!”

당연히 태양의 달 열엿새는 바로 오늘이다.

“그때 태양석이 빛난 건 모두가 아실 겁니다. 바로 이 아이 때문에 빛난 겁니다!”

그러자 내내 분을 참고 있던 피오나 이모가 나섰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오, 홀덴 영애! 그때의 빛은 아나트리샤 황녀 전하의 것입니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그때 태어난 건, 내 딸도 같아요! 게다가 태양의 마력을 이미 각성하지 않았습니까! 에릴, 어서 보여 드리렴. 네 능력을!”

“…….”

에릴은 제 모친의 명령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제대로 해내야 자신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건 이해하고 있었다.

“봐 주세요, 아바마마! 에릴은 분명히 태양의 마력을 가졌어요!”

아이의 몸에서 붉은빛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태양석이 공명하듯 빛나기 시작했다.

홀 안의 수군거림이 커졌다.

“정말로 태양석이 공명하는군요. 상당한 태양의 마력을 가진 모양인데요.”

“하지만 난 6년 전 그때 태양석이 빛나는 걸 봤어. 분명히 금빛으로 빛났단 말이야.”

“저도 기억해요. 아름다운 금색이었죠. 황녀님의 마력처럼.”

“확실히 지금 홀덴 영애의 딸이 가진 마력의 색과는 다르군.”

홀덴 영애의 생각과 달리, 주변의 여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특히, 6년 전 태양석의 빛을 직접 본 이들이 많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아무리 속이려고 해 봐도 소용이 없지. 황녀님의 빛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걸.”

“어딜 뻔뻔하게 하필이면 이 날을 골라서 끼어들다니.”

아마도 홀덴 모녀가 그대로 물러난 다음.

그랑디오르 공작저에 의탁하면서 황족으로 인정받기를 기다렸다면 반응은 달랐을 수 있었다.

황녀의 생일에 뛰어들어 상황을 망칠 뻔하긴 했지만, 그만큼 절박했던 거라 넘길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직후 물러났다면 몸을 사리는 것으로 보여, 황제의 냉정함이 도리어 가혹하다는 평이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륙 전체의 축복이 한곳에 모인 황녀의 생일 파티.

황녀에게 우호적인 세력이 특히나 많이 모인 자리에서. 

지금의 모녀는 이 자리를 대놓고 망쳐 놓으려 작정한 걸로밖에 안 보였던 것이다.

‘그걸 노린 거기도 하지.’

아나트리샤는 살짝 웃었다.

저들이 더 뻔뻔해 보이도록.

그래서 자신에 대한 호의와 동정심이 극대화되도록.

아나트리샤의 계산은 정확히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덕분에, 6년 전 그날 태양석의 빛이 에릴의 것이라 우기는 홀덴 영애의 계략은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그렇다 하더라도, 이 아이가 폐하의 핏줄이라는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닙니다!”

“…….”

“아이가 태양의 마력을 각성하지 못했다면 다른 이야기지만, 이미 각성하지 않았습니까. 폐하의 핏줄이 아니라면 어떻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조금 전 에릴은 그 힘을 증명하기도 했어요. 그렇다면, 당연히 황녀로 인정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홀덴 모녀에게 부정적인 이들도, 이 주장은 부정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제국 역사상 황제의 혼외자 중 태양의 마력을 각성한 이는, 전부 황족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홀 구석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가 홀덴 영애에게 대신 대답했다.

“그 아이가 정말로 황제 폐하의 친자(親子)라면 그렇겠지요.”

아나트리샤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깊게 눌러쓰고 있던 후드를 벗으며 얼굴을 드러낸 이는, 이 자리에 등장하리라 누구도 예상 못 한 이였다.

“벨론드 대공녀……아니, 백작 영애?”

“분명히 죽었다고 들었는데?”

“살아 있었……?”

“아니, 그 전에 지금 뭐라고 말한 거죠?”

홀 안에 혼란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

나는 타이밍을 재다가, 적절한 때에 신호를 보냈다.

-지금이야.

그리고 당근 꼬다리는 그 말에 착실하게 따랐다.

그녀는 아멘다의 시중 하녀로 위장하여, 얼굴과 모습을 숨기고 미리 연회장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내 명령대로.

그녀의 등장에는 아빠와 오빠도 경악했다.

“세실리아? 살아 있었던 건가?”

“마차 사고가 심하게 났다고 했는데…… 어떻게?”

세실리아는 절뚝거리며 걸어와 홀덴 영애와 에릴의 옆에 섰다. 그리고 깊숙이 절하며 말을 시작했다.

“누군가가 제 목숨을 노렸기에 죽은 것으로 해 두고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에아루스 영애와 황녀 전하께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아빠와 오빠의 놀란 눈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저 해맑게 웃어 주며 대꾸했다.

“쎄씨가 무섭다고 했어요! 그래서 숨겨 줬어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말에 홀에 모인 귀족들 사이에 나에 대한 찬양이 다시 번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자비로우셔라.”

“능력 증명에서 황녀님께 도전한 영애를 살려 주신 것도 모자라, 보호해 주기까지 하시다니. 어쩜.”

“그런데, 벨론드 영애가 목숨을 위협받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마차 사고라고 들었는데, 그게 그냥 사고가 아니었다는 걸까요?”

기다렸다는 듯 세실리아의 고발이 이어졌다.

“예. 제가 알고 있는 비밀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치명적이라, 저를 죽여 입을 막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누군데, 쎄씨?”

세실리아는 홀덴 모녀를 가리켰다.

“바로 홀덴 백작 영애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쟨 누구예요? 누구길래 에릴한테 저런 말을 하는 거예요? 왜 에릴을 괴롭히는 거야?”

홀덴 영애는 경악했고, 에릴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아빠가 감을 잡은 듯 직접 세실리아에게 물었다.

“네가 알고 있다는 비밀이 무엇이냐.”

세실리아의 입에서 충격적인 고발이 흘러나왔다.

“홀덴 영애의 딸은, 폐하의 아이가 아니라, 돌아가신 제 친부 벨론드 백작의 자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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