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16. 메인 퀘스트 : 최고의 생일 선물 (06)
[지금까지의 경험치가 정산됩니다. ……정산 중……]
[……정산 완료!]
[Level up! Level up! Level up! Level up! Level up! Level up! Level up! Level up!……]
어?
그동안 레벨 업 한 번도 안 하더니. 이번 생에는 아예 시스템에서 빠진 거 아니었어?
그동안 시스템 기능이 제한되어 있었다가, 이번에 풀린 건가?
[1 레벨 보상이 정산…….]
[10 레벨 보상이 정산…….]
[20 레벨…….]
에러 메시지가 안구 테러를 했을 때보다 몇 배로 정신이 없었다.
시야가 온통 빨갛게 물들 정도로 레벨 업 메시지와, 관련 보상 메시지가 우르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경악할 만한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라 있었다.
[레벨 업 정산 완료.]
[현재 레벨 = 99]
세상에, 99?
저건 전생에서도 시스템상 가능하다고 알려져는 있었지만, 누구도 얻지 못했던 레벨이었다.
그걸 이렇게 간단하게 얻었다고?
나는 다시 이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2회 차 인생 개 꿀!’
그래서 나는, 창밖의 이변을 눈치채지 못했다.
벌써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홀덴 영애와 에릴의 일로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두워야 정상인 창밖은 그야말로 대낮, 아니, 대낮보다 몇 배로 환했다.
어떤 사이키 조명이 6년 전 그때보다 몇 배로 강하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
오늘은 아나트리샤 황녀의 일곱 살 생일.
황도 안은 황녀의 생일을 축하하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황실에서 내린 먹을 것 마실 것을 즐기면서,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황녀의 탄신을 축하하고 있었다.
“우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황녀님 만세!”
“대체 얼마 만에 고기를 먹어보는 건지…….”
“세상에! 흰 빵 너무 보들보들하고 맛있어요!”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내던 호화롭고 풍요로운 음식이 넘쳐흘렀고.
다들 이러한 선물을 내려준 황가와, 그 이유가 된 황녀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그들은 당사자가 매우 쪽팔려 하는 분수 위의 금빛 천사상에 기도를 올리며.
황녀의 탄생을 축하하고 그 미래를 축원드렸다.
“부디 만수무강하세요, 황녀님.”
“이런 파티가 또 열릴 수 있도록…….”
다들 이번 연회의 하이라이트인 퍼레이드를 기대하고 있었다.
정오 무렵 황궁에서 대규모 연회가 열린 뒤.
해가 질 무렵에는, 황도 전체에 마법등을 켜고, 그 길을 따라 황족들의 행진이 이어질 예정이었던 것이다.
황실에서 내려준 음식을 탐닉하는 사람들 이상으로, 퍼레이드가 잘 보이는 자리를 며칠 전부터 잡아 두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황녀님의 실물을 뵙고 싶어!”
“그거 들었어? 황녀님은 최고로 태양신의 축복을 받은 분이라, 뵙기만 해도 병이 낫고 앉은뱅이가 일어난대!”
“나는 다르게 들었는데?”
“뭐라고?”
“그냥 황녀님이 너무 귀여우셔서, 장님도 눈이 번쩍 뜨일 정도래.”
“기대된다!”
“어서 직접 이 눈으로 뵙고 싶어!”
당사자인 아나트리샤가 들었다면, ‘나는 사이비 교주가 아냐!’라고 외쳤을 말들이었다.
이들은, 빠르게는 며칠 전부터, 늦게는 당일 오전부터 퍼레이드가 벌어질 길목에 서서 대기 중이었다.
다들 손에는 황실에서 미리 나누어 준 일회용 발광 마법 꽃을 든 채였다.
이것은 황자의 야심 찬 계획의 일부였다.
“막 어두워지는 데에서 빛나는 꽃을 든 수만 명의 인파가 한 마음 한뜻으로 리샤의 생일을 축하하는 거야!”
“물론 최고로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꽃은 리샤겠지만!”
“리샤는 아주 감동해서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라면서 볼에 뽀뽀를 해 주겠지!”
-라는 주장이었다.
당연히 아들의 팔불출 짓에는 전혀 태클을 걸 생각이 없는 황제는 도리어 열렬하게 도왔다.
“역시 창의적이고 영민한 우리 큰 애기다운 발상이야! 어서 실행에 옮기도록 해라! …예산? 쌓인 내탕금에서 꺼내 와! ……일정? 예산을 두 배로 늘려 주지!”
세계가 바뀌었어도 자본주의는 여전했다.
덕분에 퍼레이드를 위해 황도의 백성 숫자보다 많은 발광 마법 꽃이 아낌없이 뿌려졌던 것이다.
덕분에 모두 기대를 단단히 하며 퍼레이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예정된 때가 되었는데도 퍼레이드가 시작되지 않았다.
“뭐지? 해가 다 져 가는데?”
“분명히 지금쯤이면 황실의 마차가 여기까지 와야 하는데?”
그들의 의문은 불길한 소문이 떠돌면서 더욱 증폭되었다.
“소문 들었어? 연회가 취소되었대. 당연히 퍼레이드도 취소될 거라는데.”
“뭐? 말도 안 돼! 내가 얼마나 황녀님을 직접 뵐 날만 기다렸는데.”
“대체 이유가 뭐래?”
“그게 말이지…….”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던가.
워낙 흥미로운 막장 드라마급 스캔들인 데다 그레이트 홀에 인원이 워낙 많았던 터라, 말을 옮기는 이들은 분명히 많았으리라.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상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누군가가 미리 알고 바람잡이들을 심어 두기라도 한 것처럼.
“황녀님이 한 분 더 나타났다는데? 오늘이 그분의 생일이기도 하대!”
“말도 안 돼! 황녀님이 쌍둥이라도 된대?”
“그게 아니라 모친이 다른 황녀님이래. 그리고 사실, 6년 전 태양석이 엄청나게 빛난 게, 그 다른 황녀님이 한 일이라던데?”
“세상에!”
웅성거림이 인파 속으로 빠르게 번졌다.
이대로 그냥 있었다면, 황제의 사생아가 오늘의 진짜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
이미 황도의 모두가 아는 존재인 아나트리샤 황녀보다, 지금까지 인정받지 못한 황제의 사생아가 갑자기 등장해, 능력을 드러내 보이고 신분을 인정받는 게 더 극적으로 보였으니까.
아나트리샤 황녀에게 호감을 가진 이들은 반감을 보였으나.
광장에 모인 이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음습한 기대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졌다.
과연 퍼레이드가 제대로 열릴 것인가.
황제는 새로 나타난 황녀를 인정할 것인가.
더 나아가, 혹시 이번 퍼레이드에 또 다른 황녀가 참여할 것인가.
흥미진진하다는 반응이 꽤 있었다.
“오늘이 생일인 것도, 황녀인 것도 같으면, 그분도 축하받아야 하지 않아? 같은 황녀님이신데…….”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같은 황녀님이라니! 황후 폐하 소생도 아닌데!”
“맞아! 게다가 황제께서 인정하실지도 모르는걸!”
시간이 흐를수록 다들 한쪽을 편들며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런 갈등을 일부러 더 조장하고 있었다.
그럴 일이 아닌데도 과장되게 화내며, 기물을 부수는 등.
어떻게든 분위기를 망치려는 의도였다.
“에잇! 같은 황제 딸이면 다 황녀지!”
“맞아! 일곱 살이 되어서야 찾아온 딸을 내치는 건 너무 냉혈한이야!”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 달리, 소란은 크게 번지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현상이 모두의 시선을 일시에 모았기 때문이다.
“태, 태양석이!”
“으악! 눈! 내 눈!”
“뭐, 뭐야? 분명히 해는 아까 졌는데?!”
너무나도 압도적인 빛이었다.
6년 전 아나트리샤 황녀가 태어났을 때보다, 훨씬 더.
그때에도 황도만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 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데.
이번에는 대륙 끝에서도 보일 것 같았다.
그리고 예정보다 늦어졌지만, 퍼레이드가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의 의문은 바로 해소될 수 있었다.
이날을 위해 새로 제작된 황실 가족을 위한 거대한 오픈 마차에는 네 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 황녀.
늘 황녀 껌딱지였던 황제와 황자.
그리고 은색 단발의, 황자 황녀와 많이 닮은 여인.
당연히 그녀는 오늘 새로 나타났다는 또 다른 황녀는 아니었다.
그리고 황도에는 전 황후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황후 폐하시다!”
“황후께서 돌아오셨어!”
이젤리아 황후는 황도의 관리와 구빈원 운영 등으로, 원래부터 평민들에게 칭송받던 이였다.
때문에 황후가 이혼하고 본국으로 떠날 때, 제국민들 중에는 눈물로 일행을 보낸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이를 기억하는 이들은 황후의 귀환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만세!!”
“황후 폐하 만세!”
또한 황녀에 대한 칭송 역시 넘쳐흘렀다.
이 자리에 모인 눈 있는 자들은 똑똑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 황녀의 몸에서는 다 갈무리하지 못한 금빛의 마력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마치, 빛나는 작은 태양처럼.
조금 전 태양석의 엄청난 빛이 누구의 것인지 모를 수 없었다.
“우와아아! 황녀님 만세!”
“너무 아름다운 빛이야!”
“저희에게도 은혜를 내려 주세요, 황녀님!”
백성들은 황녀가 내뿜은 마력을, 마치 태양의 축복인 듯 여겼다.
그래서 그 축복을 조금이라도 나눠 받고 싶어, 더 가까이 오려 아우성쳤다.
처음 퍼레이드를 시작할 때, 환하게 웃던 아나트리샤도 곧 이 기세에는 좀 질려 버렸다.
‘꼭 전생에 본 좀비 영화의 좀비 떼 같잖아!’
어떻게든 황녀님의 축복 어린 빛을 받아 보겠다고 몰려드는 이들은 끝이 없었다.
이대로 놔뒀다간 인파에 다치는 사람이 나오거나, 사고가 생길 수 있었다.
옆에서 이젤리아가 딸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가. 저들이 바라는 대로 빛을 나눠 주렴. 어려운 일도 아니잖니?”
“그거야 그렇지만……. 진짜 축복도 아니고, 무슨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닌데요…….”
솔직히 말하자면.
‘오글거려! 쪽팔린다구!’
딸의 그런 기색을 빠르게 눈치챈 이젤리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작게 속삭였다.
“때로 빛은 그냥 비추는 것만으로 많은 이들을 위로할 수 있단다. 그냥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말이야.”
아나트리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마력 회로를 최대한으로 전개했다.
오늘의 엄청난 레벨업으로 최종 랭크 S+++라는 신기원을 찍은 마력 회로가 풀로 가동된 것이다.
빛은 그대로 대륙 전체를 비출 기세로 퍼져 갔다.
모여든 제국민들은 마치 태양에게 바치듯 기도를 올렸다.
당연히 분란을 만들려던 어떤 이들의 음모는 제대로 진행되기도 전에 분쇄되고 말았다.
태양의 빛 앞에서 반딧불이 따위의 빛은 짓눌려 존재조차 드러나지 못하므로.
황궁 밖으로 쫓겨나, 감시와 보호를 동시에 하는 수행원들 사이에서.
그 반딧불이 꼴이 된 소녀가 아나트리샤의 빛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사람들의 환호와 사랑 역시.
“어째서? 어째서……?”
저건 내 것이어야 하는데, 라는 말을, 소녀는 눈물과 함께 삼켰다.
에릴은 원통함 가득한 눈으로 그 빛을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더 견디지 못한 수행원이 재촉할 때까지.
그리고 결국 반쯤 질질 끌려 과장을 떠나야 했다.
어쨌건, 이날 이후.
어린 황녀가 태양신이 보낸 천사라는 소문은 다른 소문으로 대체되었다.
“우리 황녀님께서, 태양신의 화신이라지 뭐야?”
***
아나트리샤의 빛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뻗어 갔다.
극광이 춤추는 눈의 대지 위에서, 한 소녀가 그 빛을 보았다.
은여우 모피로 작은 몸을 감싼 소녀의 주홍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털모자 아래로 몇 가닥 밤처럼 아름다운 검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아아. 언제 봐도 황홀한 빛이에요. 어떻게든 부숴 버리고 싶을 만큼.”
소녀는 키득거리며 남쪽을 향해 속삭였다.
“그나저나……, 여전히 불쌍할 정도로 애절해라. 역시 죽어가는 벌레처럼 발버둥 중이군요. 정작 받는 분은 알지도 못할 희생인데…….”
얼어붙은 바람이 소녀의 비웃음을 덮어 버렸다.
***
“커헉!”
소년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렀다.
방 전체에 펼쳐진 붉은 마법진이 마치 소년의 피를 머금은 듯이 빛났다.
소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나직이 중얼거렸다.
“부족해. 아직… 모자라…….”
짙은 핏줄기가 뚝뚝 떨어져 마법진 위를 더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