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17. 서브 퀘스트 : 짧은 평온 (03)
간략하게 나만 아는 정보들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사특한 무리, 사교도들이 있다.’
‘그들이 벨론드 대공과 세실리아 등에게 손을 써서 우리를 위협하려 했고.’
‘세실리아와 얽히다가 우연히 사교도들이 7년 전에 아빠를 음모에 빠트린 것까지 알게 되었다.’
공개적으로 알려진 사실에 사교도에 대한 약간의 정보만 추가한 정도였다.
실제 사실에 비하면 매우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내 말이 하나씩 더해질 때마다 가족들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나는 전생에 대한 것까지 전부 말하지는 않았다.
그건 정말로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고, 가족들이 아는 건 더더욱 바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사교도의 위협은 내 예상보다 가까이 와 있었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 가족을 갈라놓으려 하고 있었다.
대비를 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는 말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우리 가족의 행복이랑 평화가 좀 더 이어졌으면 싶었는데…….’
가족들에게 사교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우리 가족들의 평화와 행복을 내 손으로 깨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살짝 우울해졌다.
“…….”
“…….”
“…….”
가족 세 명분의 침묵이 잠시 공기를 짓눌렀다.
역시 충격적인 사실이긴 할 것이다.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세력의 존재만으로도 놀라운데, 그들이 우리 가족을 갈라놓으려 들었으니.
그런데 가족들의, 특히 엄마와 아빠의 반응은 내 예상과 달랐다.
두 분은 아무런 말 없이 다가와 나를 꼭 안아 주셨다.
나를 감싼 두 분의 팔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엄마 아빠?”
고개를 들자, 기쁨과 자랑스러움보다 더욱 선명한 감정이 보였다.
바로, 걱정과 불안, 미안함. 죄책감. 안쓰러움.
그 모든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인 엄마와 아빠의 아우라가 나를 아늑하게 감싸 안았다.
“미안하다, 아가.”
“네? 뭐가요?”
“전부. 이렇게 어린 네가 그동안 혼자 모든 걸 다 감당하게 했다니…….”
나는 당황했다.
“아니, 내가 말 안 했으니까 두 분은 모르실 수밖에 없죠!”
“아니, 아니란다. 그래도 알았어야 해.”
내 작은 손을 쓸어내리는 아빠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아빠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네 곁에 있었으면서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니. 역시 아빠 실격이구나. 정말 미안하다.”
“아니. 나 때문이야. 내가 그때 그렇게 성급하게 떠나지 않았다면…….”
“아냐. 당신은 그때 어쩔 수가 없었어. 전부 내 잘못이야.”
엄마 아빠는 서로 자신의 잘못이라며, 나를 너무나도 안쓰럽게 바라보고 계셨다.
‘어? 어어? 이게 아닌데?’
그 와중에 오빠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리샤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거지? 혹시 오빠 걱정할까 봐 아프거나 힘든데 하나도 말 안 해 준 거 아냐?”
“……아냐!”
왜 대답에 시간이 좀 걸렸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한 일이라곤 사교도 놈들을 실컷 두들겨 패준 것뿐인데.
하지만 가족 모두가 나 혼자 사교도와 싸워 온 것에 대해 너무나도 아파하고 미안해하고 있었기에.
나는 이렇게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론 리샤 혼자 위험한 짓 안 할게요! 그러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오빠두!”
내가 거듭 약속하자 그제야 가족들은 조금 안심한 듯했다.
그리고 비로소 우리 가족에게 다가온 위협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할 수 있었다.
“세상의 멸망을 불러오려는 사교도들이라니, 그런 미친놈들이…….”
“그런 놈들이 태양의 마력을 뚫고 황족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니, 큰일이군.”
“우리 리샤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어요!”
이제야 내가 예상했던 반응들이 나오고 있는데, 나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가족들에게 말한 걸 후회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조금 이상한 걸 느꼈다.
‘나 진짜 가족들에게 사교도에 대해 말하기 싫었나 봐. 혼자 다 해결해 버리고 싶었는데…….’
그게 너무 화가 나고 슬펐다. 다시 한 번 가족들을 전생에 경험한 슬픔과 고통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아서…….
생각에 잠겨 있다 조용해진 사위에 고개를 드니 모두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가족들은 바로 내 기분을 눈치챈 듯했다.
아,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데.
“아가, 왜 그러니?”
“우리 딸이 왜 이렇게 풀이 죽었을까?”
“리샤! 이거, 봐! 오빠 웃기지 않아?”
엄마는 나를 걱정하며 안아 들더니 무릎 위에 앉히셨고.
아빠는 나를 걱정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엄마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나를 올려다보신다.
오빠는 어떻게든 나를 웃기려고 얼굴을 표정을 이상하게 망가뜨렸다.
어떻게든 어른스럽고 멋지게 굴려는 오빠가 평소엔 절대 하지 않는 짓이다.
“걱정하지 마. 그동안 혼자 무서웠어서 그런 거지? 오빠가 사교도 놈들 다 해치워 줄게! 오빠가 리샤 지켜 줄 거야! 그러니까, 우리 리샤는 하나도 안 무서워해도……!”
오빠가 나를 안심하게 하겠다고 한 말에.
“하지 마! 절대 하지 마!”
“…리샤?”
도리어 나는 바락 화를 내고 말았다. 진짜로 화가 나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탓이다.
아닌 척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 꿈을 꿨다.
전생의 기억들을.
엄마와 아빠의 죽음도 고통스럽고 너무 슬펐지만, 나는 직접 두 분의 죽음을 본 적 없었다.
아니,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했었다.
때문에 가족의 죽음이나 그 증거를 목도한 건, 오빠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것도 나를 지키려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오빠가 리샤를 지켜 줄게.’는 그야말로 트라우마 스위치였다.
나도 모르게 빼앵 울면서 외쳐 버리고 말았다.
“지키려고 하지 마아! 싫어!”
“……리샤?! 왜 그래?”
“으아아아앙!!”
나는 한참 동안 오빠에게 안겨서 앵앵 울어댔다.
정말 일곱 살짜리 아이가 되어버린 것처럼. 전생의 진짜 일곱 살 때조차 이런 적이 없었는데.
하지만 정말 무서웠다.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알 수가 없었다.
이성으로는 오버라는 걸 아는데, 도저히 스스로 제어가 되지 않았다.
오빠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나를 끌어안고 있다가, 곧 아무 말 없이 토닥여 주기 시작했다.
내가 울다 지쳐서 잠들어 버릴 때까지.
***
루퍼스리안은 품 안의 여동생을 침대에 누여 놓고, 고개를 들었다.
의아해하는 한편으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까지 걱정하는 거지?’
특히나, 루퍼스리안이 뱉은 ‘지켜 주겠다’라는 말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안 그래도 평소에는 심할 정도로 어른스럽게만 행동하는 아이가.
정말 제 나이대 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화내고 떼를 쓰며 울었다.
마치.
‘명명식 날 나를 봤을 때처럼.’
벌써 몇 년이나 지났지만, 루퍼스리안은 그날을 잊지 못했다.
내내 인형처럼 누워 지내던 여동생이 처음으로 눈을 뜬 날.
그리고 소년을 처음으로 오빠라고 불러 준 날이니까.
그날, 루퍼스리안은…… 꽤 맞았었다.
‘리샤의 주먹은 작고 귀엽지만… 꽤 매섭지.’
추억을 떠올리자, 그때 앙앙거리면서 동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에에엥! 히엥, 흐앙! 으아아앙앙!”
(죽어 버려! 아, 아니, …… 아니, 또 죽지는 말고!)
발음이 다 뭉개져서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있었다.
아기는 무서워했다. 제 오빠가 다치거나 죽을까 봐.
그리고 그건 꽤 시간이 지나, 가족의 도움 없이도 홀로 사교도의 음모를 쳐부수고, 가족을 되찾아온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새삼스럽게 루퍼스리안은 눈이 퉁퉁 부은 채 잠든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작은데…….’
루퍼스리안은 알지 못했다.
동생이 왜 저렇게까지 무서워하는 건지.
행동이나 말만 보면, 꼭 자신이 크게 다치거나 죽는 걸 보기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
루퍼스리안은 잠든 동생의 귀에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 리샤. 오빠는 절대 안 다칠 테니까.”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잠든 동생의 자그마한 입가에 흐린 미소가 번졌다.
아나트리샤의 배 위에 이불을 덮어 주고 침실에서 나오자.
가라앉은 표정의 부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나트리샤가 제 오빠에게 워낙 심하게 매달려서, 루퍼스리안이 달래다가 아예 재우게 한 것이었다.
“……어떠니?”
“잠들었어요.”
“그래.”
세 가족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카스톨트였다.
“내가 부족한 탓이야. 저 어린아이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전전긍긍하고 노력했으면…….”
“아냐. 내가 조금이라도 더 일찍 돌아와서 곁에 있어 줬어야 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이젤리아의 자기반성이 이어졌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때 루퍼스리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엄마, 아빠. 리샤가 다 말 안 하고 있는 거 아셨죠?”
“그래. 알 수밖에 없었지.”
“…아가가 우리를 사랑하긴 하지만, 믿지는 못해서 저런 게 아닐까 싶구나. 전부 내가 믿음을 주지 못해서…….”
다시 땅을 파려는 부친에게 루퍼스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빠. 그건 분명히 아니에요. 그냥 리샤는 우리를 너무 사랑해서 우리를 잃을까 봐 무서운 것 같아요.”
이젤리아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남편의 어깨를 도닥였다.
“당신은 아직도 스스로를 용서 못 한 것 같아. 자기 자신도 믿지를 못하는 거지. 그러니까 루퍼스나 리샤도 당신을 믿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건가.”
카스톨트는 씁쓸한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아내의 지적이 틀리지 않다는 걸, 그는 바로 알았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한다고 그걸 아이에게까지 비춰 본 건가. 한심하군.’
이젤리아는 남편에게 속삭였다.
“우리들 중 누구보다 당신을 믿은 것도, 우리 모두를 믿어 준 것도, 리샤잖아.”
“……그래. 우리 딸이 우리를 구했지.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줬고.”
“이젠 우리가 지켜 주고 행복하게 해 줘야 할 차례야. 자책하느라 시간 낭비하면 안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