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20. 메인 퀘스트 : 힐링 타임 (02)
곧 가족들이 내 옆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괜찮으니, 아가?”
“드디어 눈을 떴구나! 의사가 돌팔이인 것 같아서 벌을 주려고 했는데, 다행이야.”
“리샤아--!!!”
하나같이 걱정이 눈에 그렁그렁 고여 있어서.
나는 번갈아 가며 나를 끌어안고 안도하는 가족들의 손길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뭐, 그게 아니라도 가족들과의 포옹을 거절할 리는 없지만.
그나저나 진짜 쪽팔렸다.
‘그때 일 좀 떠올렸다고 호흡 곤란에 졸도라니! 전직 S급 헌터 반납해야 돼!’
새삼스럽게 나 자신도 좀 충격이었다.
그때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었구나, 슬펐구나-를 몸으로 깨달은 기분이어서.
그래서 더 가족들의 온기 속으로 파고들기도 했다.
이보다 더한 실감은 없었으니까.
‘괜찮아. 다들 살아 있어. 무사해.’
환생하고 정신을 차린 직후 나에게 했던 타이름을, 이번에도 반복했다.
가족들은 전부 따스한 온기를 품은 채, 내 곁에서, 나를 안고 있었다.
그러니, 더는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필요도, 절망할 필요도 없었다.
어쩐지 조금 가뿐한 기분이었다.
***
그랬다.
분명히 나는 그랬는데…….
“엄마, 그러니까 내가 그때 못한 말이…….”
“자, 아가. 우선 이 약부터 먹고 이야기하자꾸나. 자, 아-.”
“……아.”
나는 결국 의사가 처방해 줬다는 쓴 약을 코를 막고 꿀꺽 마셨다.
그리고, 아빠가 입 안에 넣어 주신 허브 꿀 사탕을 빵빵해진 볼 안에서 굴렸다.
꿀의 달콤함, 각종 허브의 향긋함과 쌉쌀함이 입 안에서 섞였다.
‘그러고 보니 허브 사탕은 특이하네. 보통 아이들이 좋아할 맛은 아닌데.’
가족들이나 황녀궁의 궁인들, 피오나 이모가 나에게 챙겨 주던 간식과는 조금 이질감이 있었다.
어쨌든 맛있으면 그만이다.
사탕을 쪽쪽 빨아 먹다가 와그작와그작 씹어서 삼킨 다음,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어제 다 말 못 한 걸 다시 말하자면…….”
“리샤! 자, 이것 봐!”
이번엔 오빠였다. 오빠는 어깨를 으쓱으쓱하면서 커다란 솜뭉치를 세 개 들고 왔다.
저게 대체 뭔가 하고 멍하니 보고 있자니, 오빠는 내 옆에 커다란 인형 세 개를 놓았다.
보드라운 감촉의 천에 폭신한 솜을 가득 넣은 귀여운 인형은…….
“이거 혹시…… 엄마, 아빠, 오빠?”
나는 인형들을 차례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오빠는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닮았지?”
오빠 말대로 내 몸 절반만 한 커다란 인형들은, 우리 가족을 닮은 모습이었다.
단 곰돌이들인 것은 좀 달랐지만.
아빠 곰인형은 금색과 붉은색이 섞인 털로 뒤덮여 있었고, 사파이어로 만든 눈이 반짝였다. 또한 곰돌이 주제에 멋들어진 금술이 달린 예복을 입고 있었다.
엄마와 오빠는 은색 털의 곰돌이들이었다. 엄마곰의 눈 색은 어디서 찾아온 건지 오묘한 청보라색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오빠곰은 아빠곰과 같은 사파이어. 입고 있는 옷들도, 꽤나 그럴싸했다.
나는 신기해서 오빠곰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이건 갑자기 뭐야?”
“선물!”
“생일도 아닌데? 게다가 생일 선물은 이미 줬잖아?”
엄청나게 줬었다. 황자궁 전체를 내 드레스룸으로 만들 기세였었지.
그때 오빠가 사서 채워 놓은 황녀궁의 드레스룸이 몇 개인지 모른다.
아마 하루에 몇 벌씩 입는다 해도 다 입어 보기도 전에 커져서 못 입게 되지 않을까.
오빠는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닮은 은색 곰을 들어 올려 팔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엄마가 돌아오시고 나서 내가 따로 만들라고 명령을 내려뒀거든. 마침 거의 완성이 되었다고 해서 빨리 가져오라고 했어.”
“…….”
어쩐지 마침 거의 완성된 걸 가지고 온 게 아니라, 어떻게든 빨리 완성하라고 닦달했을 것 같은데.
심증이 아주 강했지만, 지금은 이런 사소한 걸 추궁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엄마곰을 폭 끌어안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럼 리샤곰은?”
그러자 옆에서 엄마가 앓는 소리를 내셨다.
“흐억! 내 딸이 세상에서 제일 귀여워!”
침대의 캐노피를 지탱하던 나무 기둥이 과자처럼 엄마 손아귀에서 부서졌다.
콰직!
“아, 이런. 미안하다, 아가. 엄마가 새로 침대를 만들도록 할게.”
오빠 역시 아빠와 함께 가슴을 부여잡다가, 반 박자 늦게 내 질문에 대답했다.
“그야, 리샤는 여기 있으니까!”
음. 가족을 닮은 곰돌이들에 둘러싸여 있는 내가 있으니 상관없다는 걸까.
하지만 어쩐지 미심쩍었다.
정말 엄마, 아빠, 오빠곰만 만들게 한 게 사실일까.
나는 세 가족 곰을 한 번에 낑낑대며 끌어안고는…….
(좀 힘들었다. 특히 아빠곰은 내 앉은키보다 커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다행이네. 혹시 리샤곰이 만들어졌는데, 리샤곰만 따로 떨어져 있는 거면 외로울 것 같았거든.”
“……!”
이 말에 오빠는 저도 모르게 외치고 말았다.
“괜찮아! 리샤곰은 오빠랑 있으니까 외로울 일은 없……!”
역시.
나는 눈을 세모꼴로 떴다.
엄마까지 다 모인 완전체 가족이 된 기념으로 만들게 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내 인형만 빼놓고 만들었다는 게 이상했다.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엄마, 아빠가 호들갑 떨며 오빠를 혼냈다.
“아니, 우리 아가아가곰을 루퍼스 너 혼자서 독점하려고 한 거니?”
“물론 우리 아기를 닮은 곰 인형은 너무너무 귀여울 테니 혼자만 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를 하지만, 그래도 아빠는 서운하구나!”
“…….”
그렇게 인형 횡령 비리(?)를 들킨 오빠는 결국, 내 인형까지 가져오게 시켰다.
나중에야 알게 된 얘기지만, 오빠는 이미 유리 케이스까지 만들어서 신줏단지처럼 모셔 둔 상태였었다.
어쩌다 알게 되었냐면, 내게 인형을 뺏기고 아쉬워한 오빠가 똑같은 걸 하나 더 만들게 해서 전시해 놓은 걸 지금으로부터 시일이 좀 지난 뒤에 결국 목격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놀랍게도 오빠가 가진 것과 똑같이 만들어진 내 인형들이 엄마랑 아빠의 궁에도 모셔진 건 그보다 조금 더 늦게 알았다. 물론, 부모님 궁의 리샤곰들은 오빠곰들과 함께였다.
내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른다.
황궁 앞 광장에서 지금도 매 정각마다 오르골 소리와 함께 뱅글뱅글 돌고 있을 천사상보다는 조금 덜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쪽팔리지 않은 건 아니니까!
어쨌든 다가올 미래를 모르는 나는 오빠의 선물 덕분에, 내가 좌우로 데굴데굴 굴러도 넉넉하던 침대가 꽉 찬 느낌을 즐겼다.
인형의 보들보들하고 폭신한 감촉은 꽤 기분 좋아서, 나도 모르게 자꾸 곰돌이들을 쪼물거리게 된다.
그런 나를 보고 가족들은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듯,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 늦게 깨달았다.
‘헛! 맞다! 전생 얘기!’
가족들이 혼을 쏙 빼놓는 바람에 까먹을 뻔했다.
내가 다시 분위기를 환기하려는데.
“아까 다 못한 이야기가 있어요!”
이번엔 아빠가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굽혀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리고, 내 손을 커다란 손으로 마주 잡았다.
아빠의 커다랗고 마디진 손안에 감싸이자, 새삼 내 손은 너무 작고 말랑말랑해 보였다.
솔직히 아빠 곰 인형 앞발이 내 손보다 커 보였다.
“말하지 않아도 된단다, 리샤.”
“……왜요?”
분명히 내가 혼절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은 듣고 싶어 했었는데.
내가 가족들을 지키고 싶어서, 홀로 무언가 숨기는 걸 슬퍼하고 있었지 않은가.
내 의문에 아빠는 흐리게 웃으셨다.
“너는 아직 너무 어리잖니.”
그게 무슨 상관이길래?
“잘은 몰라도 그 일을 우리에게 말하기 위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힘들다면……,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된단다.”
이제야 알겠다.
가족들이 왜 이러는지. 내가 전생의 기억을 고백하려다가 쓰러진 것 때문에, 너무 걱정이 되어서였다.
‘내가 또 충격을 받을까 봐.’
하긴, 일곱 살짜리가 갑자기 호흡 곤란 오다가 졸도했으면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일곱 살짜리가 아니지 않나.
나는 부러 활달하게 웃으며 팔로 알통을 만들어 보였다.
“이제 괜찮아요! 끄떡없다구요!”
아빠는 더없이 부드럽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뿐이었다.
“그래. 우리 딸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멋진 건 아빠가 잘 알지.”
하지만 아빠의 태도는 따스하고 부드러운데, 뭐라고 저항하기 힘들 만큼 단호했다.
“그러니까…….”
“나중에 말해 주렴.”
내가 말문을 열려는 걸 단칼에 잘라 버린다.
“네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말하렴. 엄마 아빠는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으니까.”
“그치만…….”
“아가가 또 그렇게 아파하는 건 절대 보고 싶지 않아.”
늘 다정하고 물렁물렁한 아빠가 이렇게 단호하다니. 나는 내심 놀랐다.
나도 모르게 바짝 긴장하게 될 만큼.
이건 정말 드문 일이었다. 아빠는 늘, 내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어 주시니까.
엄마와 오빠 역시 말은 안 하는데, 비슷한 분위기였다.
“우리 다 같이 소풍 가요! 아, 엄마. 저번에 아빠랑 리샤랑 별궁으로 소풍 갔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래? 엄마만 못 간 게 조금 서운한걸?”
엄마와 오빠는 그렇게 말하며 짠 것처럼 나를 보았다.
“이번엔 엄마도 함께 가자!”
“그래, 우리 가족 넷만 함께 지내는 건 어떠니?”
알겠다.
가족들은 이미 믿고 있었다.
내가 숨기고 있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충격받아서 쓰러졌다고.
그러니까 충분히 나아질 때까지 나에게 또 충격을 주고 싶지 않은 거였다.
깨달음이 왔다.
‘지금 말하면 안 되겠다.’
지금 상태에서 내가 전생이 어쩌고, 시스템이 어쩌고 하는 소리를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갔기 때문이다.
‘내가 충격 때문에 헛소리를 한다고 오해할지도 몰라!’
평상시라면 괜찮았을 거다. 내 말이라면 뭐든 믿어 줄 테니까.
하지만 지금 타이밍이 문제였던 것이다.
나는 이마를 꾹 눌렀다.
‘아이고.’
하지만 가족들의 오해는 내 생각 이상으로 굳건하다는 걸, 나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완전체가 된 기념이라며 별궁 가족 여행을 빙자한, 내 요양 여행이 시작되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