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4화 (145/218)

Level 20. 메인 퀘스트 : 힐링 타임 (05)

루퍼스리안, 아니, 꿈속의 안서운은 동생에게 화가 난 것 같았다.

이름이 아니라 오빠라고 부르라고 외쳐 놓고는, 곧 자신이 화가 나서 모른 체하던 중이라는 걸 깨달은 듯했다.

고개를 팩 돌리고 다른 일을 하는 척한다.

그러면서도 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신경 쓰고 있었다.

루퍼스리안은 걱정되었다.

‘이렇게 무시당하는데 상처받지 않았을까, 리샤? 아, 리샤가…… 맞는 건가?’

동생의 외모는 지금과 달랐고, 나이도 더 많았다.

주변의 환경도 아예 다른 세상처럼 너무나도 달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꿈속의 저 소녀는 루퍼스리안의 하나뿐인 동생이었다.

나이든 뭐든 상관없이, 분명히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루퍼스리안은 지금의 동생을 걱정하듯, 꿈속의 소녀를 걱정했다.

“오빠, 삐졌어?”

“…….”

“화났어? 내가 실수해서?”

“…….”

잘은 모르겠지만, 그들을 닮은 이 남매는 뭔가를 이유로 싸운 모양이다.

하지만 그게 뭐든 속이 엄청나게 좁은 오빠 놈의 잘못이 분명했다.

루퍼스리안의 감상이나 생각이 어떠하든, 꿈속의 상황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굴러갔다.

“나 좀 봐 봐, 오빠!”

“…….”

고집스럽게 동생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뱅뱅 돌리던 오빠는, 결국 동생의 거친 손길에 제압당했다.

그리고 겨우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빠가 그러셨어. 말로 안 하면 마음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그게, 뭐?”

“사실 난, 내가 실수했던 거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 안 해도 오빠가 그걸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실제로 꿈속의 소년은 알고 있었다.

동생이 큰 악의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는 걸.

[오빠는 A급이니……, 앗!]

그냥 혼자 상처받은 것뿐이다.

그걸 눈치채고 동생이 미안해하면서 쭈뼛거리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말하자면, 그래. 소년은 삐져 있었던 게 맞았다.

그래서 동생이 ‘삐졌어?’하고 묻자 더 화가 난 거다. 지레 찔려서.

“근데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실수해서 미안하면, 더 확실하게 말해야지!”

“……그거랑 날 의자에 묶어 놓은 거랑 무슨 상관인데?”

지금 소년은 의자에 마력으로 묶여 있었던 것이다.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동생은 헤헤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오빠가 자꾸 도망가니까!”

“안 도망갈 테니까 풀어 줘.”

“진짜지?”

몇 번이나 도망 안 간다고 확언을 받고 나서야, 동생은 마력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소년은 정말로 그냥 의자에 앉아서 동생의 사과를 기다렸다.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다음, 턱을 치켜올리고서.

그걸 보고 동생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말해 봐. 들어 줄 테니까.”

“으음. 이러니까 말하기 싫어진다.”

“원래 먼저 잘못한 쪽이 을인 거야.”

“난 을 같은 건 평생 하기 싫은데.”

투덜거리면서도 착한 동생은 정식으로 말해 주었다.

“미안해, 오빠. 내가 잘못했어!”

이렇게 말하는데 꽁해진 마음을 풀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앞으론 그러지 마.”

“응!”

소년은 쑥스러워하면서도 동생이 내민 화해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생은 한껏 웃는 얼굴로 부모님에게 달려갔다.

“아빠! 오빠한테 사과했어요!”

“잘했다, 우리 딸.”

동생처럼, 부모님도 같았다.

단, 외모가 조금 다르고, 나이가 다를 뿐. 

부모님은 동생을 안아 들고서,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동생 용서해 주다니 마음이 넓네, 우리 아들.”

“어쩌겠어요. 서나는 천방지축이잖아요. 마음 넓은 오빠인 제가 양보해야죠.”

에헴. 소년은 그렇게 말하며 짐짓 잘난 척을 했다.

그야말로 조금도 모자람 없이 행복한 가족의 한때였다.

세상과 그들의 향한 위협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행복했던 때의.

그리고, 루퍼스리안은 추락하는 듯한 감각과 함께 눈을 떴다.

“……!”

놀란 가슴을 잡고 눈을 껌뻑거리고 있었는데.

곧 놀라운 사실을 하나 깨달을 수 있었다.

‘엄마, 아빠?’

부모님이 거의 동시에 눈을 뜨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곧 아들 역시 비슷하게 꿈에서 깨어났다는 걸 눈치챈 것인지, 이젤리아가 다가가 아들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깼니, 아가?”

어머니의 손길은 더없이 다정했는데, 드물게도 살짝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느꼈던 놀라움을 다 감추지 못하는 듯.

루퍼스리안은 고개를 돌렸다.

옆자리에는 아나트리샤가 천사처럼 깊이 잠들어 있었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것처럼.

행복한 꿈을 꾸는 것처럼 아이의 입꼬리가 활짝 올라갔다.

작은 잠꼬대 소리가 울렸다.

“우웅, 엄마. 아빠. 오빠…….”

설마.

설마……?

루퍼스리안은 고개를 돌렸다. 당혹감으로 굳은 부모와 눈을 한 번씩 마주친 뒤.

잠든 막내를 제외한 가족들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은 거의 같은 꿈을 꾸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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