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21. 메인 퀘스트 : 덫을 놓을 때는 최선을 다해서 (02)
아멘다는 망언을 한 세실리아를 노려보며 망치질을 반복했다.
망치가 달군 쇠를 두드리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더 소리가 맑아졌다.
캉, 캉!
내가 아멘다에게 망치를 건네줄 때부터 못마땅한 눈으로 보고 있던 대장장이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나는 세실리아 옆으로 가서 허리를 쿡 찔렀다. 세실리아가 바짝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쎄씨.”
“헛! 죄송합니다. 조용히 하겠…….”
“더 말해 봐.”
“네?”
“더 하라니까.”
내가 손을 까딱까딱하자, 세실리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내가 비꼬거나 혼내려는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말 그대로, 하던 말을 비슷한 식으로 더 하라는 소리.
세실리아는 내 눈치를 보면서도 다시 뾰족한 말을 입에 장착했다.
“망치질도 어설프군요. 정말이지 대귀족가의 영애답지 못해요. 과연 에아루스의 수준을 알 만…… 하군요?”
스스로 말하면서도 계속해도 되는 게 맞는지, 의심하는 눈치였다.
과연 세실리아의 추임새(?)는 효과가 확실했다.
아멘다가 망치를 휘두르는 기세가 더더욱 맹렬해졌으니까.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세실리아를 칭찬했다.
“쎄씨의 나쁜 성격이 이렇게 도움이 될 때도 있네.”
“어, 네, 감사합……니다?”
내 칭찬이 좀 미묘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아냐. 이번엔 칭찬 맞아.
나는 윙크하며 엄지를 치켜올렸고.
그제야 세실리아는 조금 안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쿵! 쿵쿵!
대장간 전체를 울리는 어마어마한 망치질 소리에, 세실리아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그리고 아멘다는 숫제 눈에서 불을 내뿜으며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세실리아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은 채로.
그렇다.
‘때로 분노는 각성의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되니까.’
전생에 열음 언니는 가족을 잃게 만든 몬스터들에 대한 분노로 각성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분노가 그 계기가 되어야 하는 건 같은 모양이다.
세실리아 또한 지금 아멘다가 거세게 망치질을 하는 원동력이 자신에 대한 분노라는 걸 곧 깨달은 듯했다.
두려움에 몸을 떠는 걸 보면 말이다.
“히, 히익!”
세실리아의 그런 모습에 아멘다의 흥(?)이 더 오르는지, 망치질 소리가 더 커졌다.
그럴 만도 했다. 아멘다가 워낙 쌓인 게 많으니까.
쾅!
점점 더 영롱해지는 소리와 함께,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한 망치질이 달군 쇠와 모루를 때린 순간.
파아앗---!
눈부신 빛이 아멘다의 몸을 감쌌다.
이런 순간을 나와 주변에 있는 이들은 한번 본 적 있었다.
‘바로, 알라나의 각성 때!’
또한 나나 오빠의 각성 및 재각성 때에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었다.
확인하듯, 때마침 시스템이 나와 아멘다의 성공을 알려 주었다.
[이름: 아멘다 에아루스(무열음)]
[직업: 분노의 대장장이, ???]
직업 이름이 좀 이상한데? 전생에도 저런 이름이었나?
알 게 뭐야. 어쨌든 중요한 건 드디어 아멘다도 각성에 성공했다는 거지!
***
아멘다의 직업 이름이 분노의 대장장이인 이유는 빠르게 밝혀졌다.
눈앞에 분노의 대상이 있을수록 엄청나게 효율이 올라갔던 것이다.
그 말은 곧.
캉, 캉, 캉!
“황녀님! 제발 저 좀 대장간에서 내보내 주세요오!!!”
세실리아가 아멘다의 대장간 전용 토템이 되었다는 소리다.
절절 끓는 용광로 앞이라 뜨거운 데다, 사방에서 망치질과 금속을 가공하는 소리가 귀를 괴롭히는 곳이 바로 대장간이다.
사실 곱게 자란 귀족 영애들이 견디기 힘든 험한 장소는 맞았다.
게다가 아멘다가 자신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노려보면서 분노의 망치질을 해대는 게, 꽤 무서웠던 모양이다.
결국 세실리아는 며칠을 버티다가 달려와서 내 앞에서 읍소했다.
“에아루스 영애를 지켜보는 것만 하면 되는 거라면, 꼭 저일 필요는 없잖아요!”
아니, 반드시 세실리아여야 했다.
나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안 바꿔 줘. 돌아가.”
“황녀니임――!”
“연행해.”
내 명령으로 세실리아는 다시 질질 끌려가서 대장간의 토템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그렇게, 일주일.
“어서 오세요, 황녀님!”
아멘다는 환하게 웃으며 대장간을 살펴보러 간 나를 맞이했다.
건강한 땀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이 아주 매끈매끈한 것이, 엄청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일주일간 험한 일에 빠져 있던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소.
도리어 일주일간 그냥 대장간에 서 있던 것이 전부인 세실리아가 얼굴이 시커멓게 반쪽이 되어 있었다.
아멘다는 지난 일주일 내내 대장간에서 반쯤 눈이 돌아간 사람처럼 각종 일을 해댔다.
풀무와 화로, 용광로를 다루는 법. 망치로 메질과 담금질을 하는 방법.
물론 그 며칠 사이에 몇십 년은 익혀야 하는 기술을 전부 체득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장장이들이 경악하다 못해 자괴감에 일을 그만두고 싶은 기분을 느끼게 할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성장 속도를 보여 주었다.
다들 경악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전생의 열음 언니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당연하지!’
아멘다는 언뜻 봐도 전에 없이 생기에 차 있었다.
드레스 대신 편한 가죽옷을 입고, 손에는 마력으로 빛나는 망치를 든 채였다.
양쪽 팔뚝에는 벌써 근육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대장장이가 천직인 사람!
그녀는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감탄했다.
“역시 황녀님이세요. 제게 이 일이 딱 맞을 거라고 생각하시고 데려오신 거군요!”
“혹시 그렇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딱 맞았네!”
속성으로 각성을 마치는 데에 성공한 김에, 나는 ‘아스트라’에 대한 힌트까지 주기로 했다.
“아멘다. 사람마다 마력의 속성과 패턴이 전부 다르잖아. 그 마력 자체를 금속화하면 오로지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무기가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어떻게 생각해?!”
이건 전생에 열음 언니가 10년 가까이 시간을 들여 가며 가설을 세우고 만들어 낸 아스트라의 기본 설계 원리였다.
내 말이 끝나자, 아멘다의 눈이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황녀님은 천재세요!”
좀 민망하긴 한데, 지금 그걸 가릴 때가 아니었다.
‘최대한 빨리 아스트라 만들어야 한다고!’
그날 후로 우리는 함께 대장간에 틀어박혔다.
아스트라는 일종의 맞춤식 무기이기 때문에 대상의 마력 형질과 잘 맞는 금속 혹은 광물에 마력을 계속 퍼부어 가며 제련하며 만들어야 했다.
때문에 전생에 아스트라를 가진 헌터는 다 합쳐서 셋뿐이었다.
‘나, 오빠, 그리고 미하일.’
열음 언니는 소피아의 것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마력 패턴과 맞는 금속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소피아가 숨기고 있던 마력의 본질은 세상의 멸망이니까. 그에 맞는 물질이라는 건 존재할 수가 없었겠지.’
“…….”
이런 우울한 생각은 집어치우고!
이미 내 아스트라를 만들어 봤기 때문에 나는 해답지를 들고 문제를 푸는 격이었다.
“나는 금이 좋아! 반짝반짝 예쁘잖아!”
“좋아요! 한번 시도해 보죠!”
그리고 아멘다의 마력으로 정제된 순금은 나의 마력 형질과 딱 맞아떨어졌다.
마력의 금속화 자체가 지금의 아멘다에겐 처음 시도하는 것이고, 나도 상세한 제작법을 아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몇 번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전생의 기억 덕분에 진행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덕분에 나는 그랑디오르 공작이 황도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리기 전.
완성된 ‘아스트라’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새벽을 깨고 나온 여명의 빛을 품은 금빛의 칼이 내 손안에서 빛났다.
지구에서 사브르라 불리던 칼과 비슷한 검. 하지만 크기와 길이가 훨씬 짧았다.
가드는 내 손을 다 감싸는 덩굴 모양이 화려했다. 폼멜에 박힌 붉은색의 보석은 속에 불꽃과 빛을 품고 이글거리고 있었다.
폭이 좁은 직선의 블레이드는 약 50cm 정도.
지금 일곱 살인 내 몸에 맞추어진 것이다.
내가 자라면 그 크기도 맞춰서 변할 거다.
아니, 그 전에, 아스트라는 그 모양도 내가 바라는 대로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했다.
시험 삼아 마력을 불어넣어 보았다.
그러자, 아름다운 검은 내 손안에서 그대로 빛으로 녹아내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 손안에는 작은 단검으로 변한 금색의 칼이 쥐여 있었다.
이것에는 대장장이들이나 시녀들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놀란 눈을 했다.
나는 시험 삼아 아스트라를 한 번 더 변형시켜 활의 형태로 바꿨다가, 기본형으로 되돌렸다.
이것이 바로 아스트라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었다.
‘정해진 형태가 없이, 주인이 바라는 대로 모습을 바꾸는 전천후 무기.’
동시에 주인의 마력이 성장함에 따라, 무기 역시 강해진다.
아스트라가 내가 바란 대로 완성된 것을 확인한 아멘다는,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로 단언했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건 역작입니다!”
그 말대로였다.
전생에 열음 언니가 수천, 수만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겨우 완성했던 그 무기가.
비교도 안 되게 빠른 시간 만에 내 손안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그대로 손을 흔들어 무기를 간단한 팔찌 형태로 만들었다.
이러면 언제 어디서든 티 내지 않고 무기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좋았어!’
나는 뒤돌아서, 가족들과 아멘다를 보고 외쳤다.
“이제 엄마, 아빠, 오빠 것도 만들자!”
내가 그러려고 이 순간만을 얼마나 별러 왔는데!
그러자 딱 한 명을 빼놓고 모두의 얼굴에 기쁨과 기대감이 어렸다.
우리 가족들은 전생에도 지금도 뛰어난 전사들이다. 전사에게 훌륭한 무기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었다.
게다가, 아멘다는 막 대장장이로 각성하고 능력을 얻은 참이다.
한창 자신의 힘을 써 보고 싶을 때였다.
불행한 건 한 명뿐이었다.
“저, 저는…… 이제 그만 가도 될까요?”
3주 넘게 비번도 없이 늘 대장간에 끌려와 있었던 세실리아가 노래진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나도, 아멘다도 다들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그랑디오르 공작의 알현 요청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