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21. 메인 퀘스트 : 덫을 놓을 때는 최선을 다해서 (06)
일단 소공작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어야 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조금 전 내린 명령을 스스로 거뒀다.
“아니, 아니다. 역시 내가 직접 배반자를 골라내는 게 낫겠어.”
조금 전 공작을 후려쳐서 끌고 가기까지 했으니, 지금 이 말은 대놓고 ‘너희 부녀는 못 믿겠으니 내가 직접 하겠다’고 말한 셈이다.
소공작은 혼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서 내 앞에 바짝 엎드려 다시 바닥에 이마를 댔다.
“미천한 종이 성녀님의 명에 따릅니다. 어떻게 해서든…… 배반자를 찾아내어 성녀님의 앞에 끌고 오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당연한 일을 대단한 것처럼 말하는구나.”
그렇게 대답하는 소공작의 태도에서는 흔들림과 불안감이 묻어났다. 지금껏 믿고 의지해 온 부친이 갑작스레 부재한 상황이 되자 당황한 티가 많이 났다.
덕분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내를 읽기도 쉬웠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내가 소공작을 택한 것이다.
‘공작보다는 이쪽이 훨씬 다루기 쉽겠어.’
게다가 좀 더 말랑말랑하고 귀도 얇다.
본인의 주관이 확실하다기보다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윗사람의 명을 따르는 종류의 인간.
전생에 나는 여러 사건을 겪으며 저런 타입의 인간군상을 많이 봐 왔다.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알았다.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파악을 마치자 어째서 내가 소공작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소공작은 전생에도 협회장은 물론, 하무현과 혈연 관계였을 확률이 높다.
지금까지 확인한 예를 생각하면 혈연은 높은 확률로 전생과 거의 비슷하게 유지되었다.
물론 100%는 아니다.
전생의 아빠에게 벨론드 대공 같은 형제는 없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내가 몰랐던 걸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그렇다 할지라도 소공작은 내가 알지 못했던, 혹은 알 필요가 없을 정도로 능력과 비중이 적은 인물이었을 확률이 높다는 거다.
그렇다면, 더더욱 다루기 쉬우리란 결론이 나온다.
“사실 네가 바친 명단에 있는 신도들에 대해 이미 체포 명령을 내려 두었다.”
“예?!”
소공작이 경악하여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심각하게 동요하고 있었고. 의혹마저 떠올랐다.
아마도 이렇게 의심하기 시작했겠지.
‘설마, 속은 건가?’
당연히 저런 의심을 하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나는 소공작이 정신을 차릴 새 없이 밀어붙였다.
“당연한 일이지. 그들 중에 나를 배반한 자가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니까.”
“……성녀님께서는…… 역시, 제 아버지도 의심하고 계신, 거군요.”
“당연하지 않으냐. 전생의 배반으로 인해 지금 내 영혼은 조각나 있고, 내 기억 또한 아직 불완전하다. 배반자가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으니, 당연히 모두를 의심해야지.”
“그건, 틀림없는 말씀이십니다만…….”
“네 아비는 내 가장 가까이 있던 자이니, 마땅히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하고.”
“……하오나, 아버님은…….”
몇 마디 더 변명하려던 소공작은 뭔가를 깨닫고 숨을 집어삼켰다.
“저, 역시 의심하고 시험하고 계시군요.”
나는 말없이 웃었다.
로헨 소공작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이건 사교도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일 것이다.
그들의 절대적인 충성과 애정의 대상인 성녀에게 의심 받는다는 것.
이는 곧 그들의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터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공작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끝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려, 내 눈을 직시하게 했다.
“나는 네가 넘긴 것이 신도들 전체의 목록이 아님도 이미 알고 있단다.”
“……!”
차갑고 잔인하게.
그러면서도 부드럽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밀어붙인다.
“네가 나를 의심하여서 그런 것인지, 그저 너희의 치부를 감추고 싶어 숨긴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
후자를 말하는 순간 소공작의 눈빛이 사정없이 떨리는 걸 보고, 나는 제대로 맞췄음을 알았다.
‘역시 사교도 내부도 파가 갈라져 있었군.’
내 급조한 계획이 꽤나 효과적이었음은 이걸로 증명된 셈이다.
성녀를 배반한 자가 사교도 내에 있었다는 내 거짓말을 듣자마자, 공작이 한 말이 그 증거였다.
“설마, 설마 그놈들이……!”
그건 짚이는 자들이 있다는 소리였다.
정말로 사교도 내에 성녀를 배반할 만한 역심을 품은 자들이 존재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사교도 내부에 공작과 반목하는 세력이 이미 있다는 의미.
원래 사람은 의심스러운 일이 생기면, 평소에 사이가 안 좋던 쪽으로 화살을 돌리기 마련이니.
나는 이를 강화할 겸, 또한 소공작의 고삐를 조일 겸, 대놓고 빈정거렸다.
“주인이 오래 자리를 비우면 종이 주인 노릇을 하려 드는 건 당연하겠지.”
“아닙니다! 저도, 아버님도 어찌 감히 그러한 마음을 품었겠습니까! 다만…….”
“다만?”
“우리의 주인께서 돌아오셨음을 확신할 계기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숨겼다? 신도들의 전체 명단도. 그리고, 내분에 대해서도?”
바닥을 짚은 소공작의 손등에 핏줄이 돋았다. 손톱이 우득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이 말을 하는 것이 죽기보다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듯.
“신도를 자청하는 자들 중에, 아버님을 인정치 않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이미 성녀님을 배알하였노라 주장하며, 아버님은 변절자 출신이라 믿을 수 없다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말에는 나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성녀를, 만났다?”
으득, 정신을 차리니 의자의 팔걸이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피아가 이미 사교도와 접촉을 했다고?
그렇다면, 그X의 행방을 아는 놈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건가?
눈앞이 시뻘게졌다.
나도 모르게 살기를 가감 없이 그대로 흘렸는지, 소공작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게 보였다.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당장에라도 소공작의 멱살을 잡고 그놈들이 누구고 어디서 소피아를 봤다 주장한다는 건지 추궁하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아 냈다.
그야말로 인내심을 바닥까지 긁어 온 결과였다.
소름 끼치게 싫은 소피아의 가면을 쓴 채, 나는 말을 잇는 데에 성공했다.
“나는 너희 외에 누구도 본 적 없는데.”
그 말에 소공작의 얼굴이 희색을 띠었다.
당연하다. 내가 그들의 편을 들어 준 셈이니까.
“역시! 당연히 그러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소공작은 기쁘게 말을 줄줄 늘어놨다.
내가 바라는 정보를. 하지만 큰 소용이 없는 정보를.
“그들은 성녀를 뵈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도 못했고, 성녀님께서 어디 있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자들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 눈 어두운 자들의 헛소리에 불과할 거다.”
성녀를 이미 만났다 주장하는 놈들도, 소피아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르는 건가?
끓어오르던 머리가 조금 식었다.
분노에 이성을 잃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나는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니까.
‘잔뜩 후려쳐 줬으니, 이제 좀 얼러볼까.’
그래야 기쁘게 서로를 의심하고, 반목할 게 아닌가.
“내가 너희를 의심하는 것이 억울하고 슬프냐?”
“그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소공작의 목소리는 힘없이 이지러졌다.
의자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나는 말을 이었다.
짐짓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직접 증명해 보이거라.”
“성녀님……!”
“내 원래 계획은 네가 알려 준 신도 대부분을 죽여 없애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성녀님의 이상을 이루는 데에 쓰일 힘 또한 부족해질 겁니다!”
“나도 안다. 그렇더라도 배반자는 배제하는 게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지. 그런데, 네 말을 듣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예?”
“본 적도 없는 나를 이미 만났다 헛소리를 하는 놈들이라니, 가당찮구나.”
‘다 의심하지만, 너만은 다르다’라는 말이 얼마나 달콤하게 들리겠는가.
그것도 사교도들이 신처럼 믿고 따르는 성녀의 신뢰라면.
“네 신실함이 나의 마음을 조금 움직였느니라.”
“아, 아아…….”
두려움과 분노로 떨리던 소공작의 눈빛이 감격으로 젖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쐐기를 박아 넣었다.
“마땅히 나를 섬기고 숭배해야 하는 신도들 사이에 섞여 있는 배반자를, 네 손으로 직접 찾아내어, 내 앞에 바쳐라. 지금 내가 황제를 움직여 내린 체포령은 잠시 거두겠다. 나 역시 따르는 자들의 수가 줄어들어, 목표를 이루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원하지 않으니.”
부친에게 많이 의지하는 그녀가 아주 혹할 만한 명분도 하나 더 던져 주었다.
“이는 네가 네 아비의 결백을 직접 증명하는 방법도 될 것이다.”
소공작이 절대로 거부할 수 없도록.
***
황도 르펜시아의 숨겨진 어둠 속.
시궁쥐처럼 밤의 어둠 속에 모습을 숨긴 이들이 은신처로 숨어들었다.
잘못된 믿음을 서로 주고받으며, 세상의 멸망을 기다리는 자들의 비밀스러운 모임.
사교도 무리의 안에서 누군가가 나섰다.
신도들이 모인 바닥보다 높은 곳, 연단에 선 이는 후드를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
바로, 그랑디오르 소공작 로헨이.
사교도들 중 지위가 있는 이들 중 그녀를 알아보는 자들이 있었다.
“주교님!”
“주교님이시다!”
자신의 상급자들이 로헨을 알아보고 주교라 칭하자, 일반 신도들은 비로소 주교의 존재를 알았다.
사교도는 보안을 위해 점조직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도들 사이에 기대와 희열이 물결처럼 번졌다.
워낙 비밀스러운 집단인 터라 특별한 때가 아니면, 이렇게 여러 인원을 모아들여 주교가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있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성녀가 돌아온 게 아니라면.
로헨은 두 팔을 뻗어 외쳤다.
“마침내 성녀께서 깨어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