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1화 (152/218)

Level 21. 메인 퀘스트 : 덫을 놓을 때는 최선을 다해서 (07) 

***

나는 스킬로 기척을 숨긴 채, 아래쪽이 돌아가는 꼴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이비 종교 집단의 환장 대잔치.

그렇다. 

계획을 급하게 바꾼 직후. 나는 <사일런트 메시지>로 엄마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토벌, 체포 명령 전부 잠시 중지해 주세요. 아빠에게도 연락 부탁해요!

덕분에 지금 이 지하에 BQ벌레 같은 놈들이 다 모여 있을 수 있는 거다.

최대한 많이 모인 자리에서 독을 풀어야 하니까.

그래야, 마지막 하나의 소굴까지 찾아내어 박멸할 수 있으니까.

나는 팔짱을 낀 채 로헨, 아니, 독 먹인 벌레가 하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좋아.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볼까?’

***

‘성녀가 깨어났다.’

보통 신도가 한 말이라면 그저 헛소문으로 치부되었을 터다.

하지만 제국 내의 사교도들 중에 두 번째로 높은 위치에 있는 주교인 로헨이 한 말이었다.

당연히 높은 신뢰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성녀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던 이들은, 열광에 빠졌다.

“우와아아!!!”

“성녀님께서 나타나셨다는 소식이 사실이군요!”

“드디어 눈을 뜨셨다!”

“우리를 올바르고 고요한 멸망으로 인도하실 분이 오신다!”

“오오오!!!”

광기가 음습한 지하를 가득 채웠다.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 함께 흥분한 어조였던 로헨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또한 성녀께서는 신도 중에 감히 당신을 배반한 사특한 무리들이 있음을, 이미 내가 고하기 전부터 알고 계셨다.”

경악과 분노가 사교도의 집합소 안을 내달렸다.

“그런……!”

“죽여라!”

“누구인가!”

“감히 성녀님을 배반한 자!”

“영혼까지 저주받아도 모자라리라!”

평신도들 중에는 전혀 상황을 모르는 듯 경악하고 분노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지위가 있고 상황을 아는 자들은 명백한 대상을 향해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

“역시 그놈들이 배반자임이 틀림없습니다!”

“추기경님을 의심했던 자들입니다!”

“주교라 불릴 자격도 없어요!”

하지만 전부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하, 하나 그분은 이미 성녀님을 뵌 적 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거짓을 말하거나 배반할 분은 아닙니……, 컥!”

로헨이 배반자라 칭한 이를 편든 사람들은 무사하지 못했다.

곧바로 칼날이 번뜩였고, 뜨거운 피가 튀었다.

“배반자다! 성녀님과 추기경을 배반한 칼키나의 끄나풀이다!”

“죽여! 저들의 피로 성전을 정화하라!”

로헨의 선동에 이끌린 자들이, 칼키나 일파의 편을 든 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피가 흐르고 비명이 튀었다.

지하 공동의 천장 근처, 가장 높은 기둥의 궁륭에 걸터앉은 채.

아나트리샤는 들리지 않게 혀를 찼다.

‘난장판이네.’

하지만 소녀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에는 자비가 없었다.

일곱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냉혹함이었지만, 수라장에 가까운 전쟁을 경험한 영혼의 소유자에겐 더없이 자연스럽다.

그녀가 이 정도 따위에 눈 하나 깜짝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건 손 안 대고 코 푸는 상황인데, 차라리 손뼉을 치면 쳤지.’

사교도들끼리 알아서 서로 죽이고 있으니 말이다.

아나트리샤는 큰 감흥 없이 아래에서 벌어지는 살육장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굴렸다.

‘칼키나라, 그게 바로 소피아를 직접 만났다고 주장하는 주교인 모양이군.’

로헨의 말에 따르면, 칼키나 역시 상당히 중요한 위치의 주교였다고 했다.

공작의 인도로 자신이 사교도임을 각성했고.

처음에는 상당히 신실하고 능력 있는 동료였다 했다.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주교의 지위까지 올라갔고.

그런데 약 3년 전, 갑작스럽게 태도가 바뀌었다 했다.

‘성녀를 직접 만났다고 주장하면서부터…….’

아나트리샤는 이미 각오한 바였다.

자신이 그런 것처럼, 소피아 역시 환생했을 것이라고.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사교도 놈들이 여전히 그림자 속에서 활개 치고 있을 리도 없고.

시스템이 과하게 보상을 퍼주기까지 하면서 자신을 성장시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하일을 죽이라고 계속 주장할 이유도 없어.’

미하일은 적어도 지금은 아나트리샤에게 최대한 협조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스템은 미하일에 대한 살의를 멈추지 않았다.

이건 소피아가 지금도 마왕 소환을 위해 암약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여러 이유를 따져보았을 때, 칼키나라는 사교도가 소피아를 만난 건 진짜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지금 아나트리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였다.

‘칼키나라는 자를 만나야 해.’

당사자를 직접 추궁해서 소피아를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를 알아내야 했다.

가능하다면, 현재 어디에 있는지까지도.

‘그럼 이제 약을 풀어 볼까.’

벌레 굴의 상태 확인은 충분히 했으니.

아나트리샤는 품속에 있는 아이템을 하나 꺼내 들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유리병과 그 안의 액체, 그리고 뚜껑에 붙은 투명한 구슬이 전부인 아이템.

이건 몇 년 전 퀘스트 보상으로 시스템이 주었던 것으로, 그동안은 별로 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인벤토리에 던져둔 잡다한 아이템 중 하나.

하지만 지금 상황에는 이것처럼 유용한 물건이 없었다.

‘추적향. 오랜만에 쓰네.’

전생에 개미나 벌 등과 유사하게 군집 생활을 하는 몬스터의 본거지를 알아낼 때 자주 썼던 아이템이다.

아나트리샤는 투명한 액체가 차 있는 유리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병 속의 액체가 눈에 보이지 않고 맛도 향도 없는 기체가 되어 사방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향이라 들킬 일은 없었다.

감각이 예민한 몬스터들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니, 인간들에게는 더욱 효과가 확실했다.

‘어차피 냄새가 강해도, 피비린내가 가득해서 모를 것 같긴 하지만.’

이 특수한 기체는 지하실 안을 가득 채웠고.

이 안에 있는 자들에게 확실한 흔적을 남겨 놓았다.

이런 상황을 알 리 없는 사교도들은 자신들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로헨은 피에 젖은 칼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배신자들을 모조리 처단하여 제단에 바쳐야 한다! 우리의 주인을 위해!”

“우리의 성녀님을 위해!”

“와아아아아!!!”

숫자에서 밀리는 칼키나 파의 인물들 중 몇몇은 치명상을 입은 채 제압당해 있었다.

죽은 자들도 많았지만, 전부 죽이진 않은 것이다.

“자, 배반자가 지금 어디 숨어 있는지 말하라. 이는 성녀님의 뜻일지니!”

칼키나 파의 사교도들은 크게 동요했다.

당연했다. 성녀가 돌아왔고, 그 성녀가 칼키나가 배반자라 말했다 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칼키나는 성녀를 만났다면서도, 증거를 제시한 적도 이처럼 성녀의 뜻을 명확하게 전한 적도 없었다.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칼키나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 자, 혹은 의심하는 자.

저항은 있었지만 결국 현재 칼키나가 있는 위치를 털어놓는 이가 있었다.

그리고 제압당한 이들은 모조리 살해당했다.

칼키나의 정보를 말한 이들조차 예외는 없었다.

로헨은 피에 젖은 눈으로 심복들과 함께 바쁘게 움직였다.

“칼키나를 잡아야 한다! 그 목을, 성녀님께 바쳐야 해!”

로헨과 그 측근들이 칼키나를 잡기 위해 집회장을 빠져나간 뒤.

남은 이들은 방금 살해한 사교도들의 시체를 제물로 바쳐 의식을 치르기 시작했다.

멸망을 이 세상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인신 공양 의식.

제물을 통해 부정의 마력이 증가하는 것을 내려보며, 아나트리샤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대로 지하를 나왔다.

***

나는 칼키나를 잡기 위해 달려간 로헨의 뒤를 밟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머리가 있는 놈이라면 이렇게 바로 잡힐 리 없어.’

그 정도로 바보라면 진작 추기경 일파에게 살해당했을 터였다.

나는 최대한 높은 곳을 찾아 올라갔다.

한눈에 황도 르펜시아 전체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광장의 첨탑 꼭대기.

황도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아이템을 작동시켰다.

텅 빈 유리병의 뚜껑에 달린 구슬 장식. 그것에 마력을 불어넣자, 붉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아이템에서 뿜어진 빛은 곧 작은 빛 알갱이가 되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무수히 많은 붉은 빛들이 황도의 야경 속에서 헤엄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빛들은 한곳에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이것은 내가 조금 전까지 본 사교도 놈들의 집회 장소지.’

그리고 한쪽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수십 개의 붉은 빛.

‘저쪽은 칼키나를 잡겠다고 달려 나간 로헨 일행.’

그때 내 눈에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붉은 빛이 들어왔다.

단 하나.

그것은 무엇보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주 다급하게 로헨 일행이 간 곳과 전혀 연관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절로 내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옳지! 여기다!’

***

황도 르펜시아 외곽에 작은 규모로 자리한 빈민가.

그 한구석으로 검은 로브를 눌러쓴 누군가가 숨어들었다.

그는 누군가 제 뒤를 쫓지는 않는지 사방을 신경 쓰며, 빈민가에서도 가장 더럽고 사람들이 오지 않는 곳으로 향했다,

바로, 나병 환자들이 모인 작은 거리.

그중 한 낡은 천막으로 들어선 남자는 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주교님, 칼키나 님. 어서, 어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낡고 붉은 로브로 온몸을 가린 한 노파가 쇳소리를 내며 물었다.

“드디어 변절자가 나를 죽이겠다 하더냐?”

“로헨이 성녀님의 이름을 팔았습니다. 성녀님께서 칼키나 님을 배반자라 낙인찍으셨다 주장하며……!”

“당치도 않은 헛소리! 나는 그분을 배알했다! 그분의 옥안을 뵙고, 그 목소리를 들었어! 어디서 로헨 따위가……!”

그때였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 아무도 없던 공간에서, 한 소녀의 모습이 나타나며 차가운 목소리가 들린 것은.

“네가 칼키나구나.”

“누, 누구?!”

경악한 시선을 받으며, 아나트리샤는 씩 웃었다.

“누구긴. 네 주인이지.”

‘뻥이지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