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4화 (155/218)

Level 22. 메인 퀘스트 : 되새김의 시간 (01) 

나는 정신을 다 수습하기도 전에 바락 화부터 냈다.

소피아에 대한 분노마저도 잠시 잊어버렸을 정도였다.

“오빠, 왜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지금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

내 말에 오빠의 잔뜩 찡그러진 미간이 더더욱 구겨졌다.

아니, 엄마가 모처럼 잘생기게 낳아 줬는데, 왜 저렇게 오만상을 쓰고 있어?

오빠는 환생 이후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 분노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는 너는?! 그 위험한 데에 왜 너 혼자 온 건데!!! 그것도 우리에겐 말도 안 하고서!”

“어…….”

말문이 막혔다.

환생한 이후 오빠는 나에게 거의 화를 내지 않았다.

아빠와 화해하는 과정에서 조금 삐지긴 했지만, 그때도 차라리 도망갔지 나에게 이렇게 화낸 적 없었다.

그게 조금 충격이었고…….

또, 어째선지 강렬한 기시감이 들었다.

“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국은 인간이야, 안서나! 그렇게 위험한 곳에 왜 혼자 달려드는 건데?!”

그렇다.

오빠는 지금 나를 ‘혼내고’ 있었다.

전생에 내가 몇 번인가 위험을 무릅쓰고 작전을 성공시켰을 때.

혹은 크게 다쳐서 왔을 때.

그때마다 오빠는 저렇게 화를 냈다.

“너도 다치면 피가 흐르고 아픈 인간이라고! 남들이 최강이니 뭐니 하면서 너를 무기 취급한다고, 너 자신까지 그래도 되는 줄 알아? 엄마 아빠가 이 꼴을 보면 뭐라고 하시겠어!!!”

늘 그랬다.

내가 위험을 향해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거나, 심하게 다쳐올 때마다.

오빠는 지치지도 않는지 늘 화를 내고, 나를 혼냈다.

내가 너무 걱정되어서. 화가 나서 못 견디겠다는 듯.

전생의 기억과 지금 눈앞의 오빠가 겹쳐졌다.

“네가 말도 안 하고 없어져서 내가 얼마나, 얼마나……!!!”

오빠의 눈가에 물방울이 그렁그렁했다.

눈동자가 떨리고, 숨소리가 거칠었다.

그러고 보니, 오빠와 라이언에게 그랑디오르 공작을 잡아 두라고 말하고.

엄마에게 토벌 및 체포 명령을 취소해 달라고 부탁한 뒤.

나는 자세한 설명을 할 여유도 없이 바로 사교도들의 집회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길로 곧장 이곳, 칼키나의 은신처까지 왔다.

그사이에 가족들은 내가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 놀랐을 것이다.

걱정되고 화가 나는 건 당연했다.

만약 오빠가 같은 짓을 하면 나 역시도 걱정되고 화가 날 테니까.

아마 그냥 안 뒀겠……. 아, 지금은 이런 말장난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나는 드물게 할 말을 못 찾아서 어물거렸다.

“그게……, 그러니까…….”

오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흐릿하지만, 말꼬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너는 지금 겨우 일곱 살이야. 이렇게 작고, 가벼운데.”

지금 오빠와 내 주변은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였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빈민가였다지만, 거리 하나가 통째로 증발해 버렸다.

흉하게 아가리를 벌린 거대한 구덩이 위에, 멀쩡한 건 우리 둘뿐.

내가 사라진 걸 알고 오빠가 얼마나 다급하고 초조하게 찾아다녔을지 충분히 상상이 갔다.

그래서 평소처럼 말장난을 하거나, 대충 얼버무려 넘길 수가 없었다.

“왜, 너는 늘 모든 걸 혼자서……!”

결국, 오빠의 눈가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 버렸다.

내가 울려 버린 거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오빠의 눈물을 훔쳤다.

그러자 오빠는 흠칫했다. 그리고 곧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자기가 울었다는 걸 스스로도 몰랐던 모양이다.

“이, 이건…… 나, 운 거 아니거든! 그냥 빗방울이 묻은 거거든!”

하늘이 저렇게 쨍쨍하게 파란데?

평소라면 이걸로 엄청나게 놀려 줬을 거다. 그리고 몇 년은 잊지 않고, 놀림감으로 썼겠지.

하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네. 많이 젖었어.”

대충 머리를 쓰다듬는 척을 하자, 오빠의 얼굴에 떠올랐던 상처받은 표정이 조금 가라앉았다.

내가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미안해, 오빠.”

“…….”

“그리고 구해 줘서 고마워.”

그러자 겨우 오빠의 표정에 살짝 미소가 돌아왔다.

아니, 돌아오려다가 바로 자기가 화내던 중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는지 애써 표정을 가다듬는다.

“나, 화 진짜 많이 났거든!”

표정이 덧붙여서 말하고 있었다.

‘아직 화 안 풀렸거든!’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는 오빠는 좀 귀여워 보였다.

역시 아직 열두 살이라니까.

나는 헤헤 웃으면서 오빠를 두 팔로 꼭 끌어안아 주었다.

그리고 평소에 잘 안 하는 애교 있는 목소리로 변명을 덧붙였다.

“그치마안‒, 너무 상황이 급박했는걸. 사교도 놈들이 자기들끼리 치고받느라 숨긴 게 많아서, 원래 계획대로 했다간 전부 솎아 낼 수가 없었다구—.”

말꼬리를 늘이면서, 오빠를 올려보며 눈을 깜빡깜빡했다. 어떤 이족 보행 고양이처럼.

음. 좀 많이 오글거리지만 참자. 이번엔 내가 확실히 잘못한 거니까.

오빠의 입꼬리가 춤을 추어대서 내 작전이 잘 먹혔다는 건 티가 팍팍 났다.

하지만 오빠는 아닌 척을 했다.

“흥! 그래도 움직이기 전에 한두 마디는 해 줄 수 있었잖아!”

“진짜 미안해. 잘못했어. 앞으로는 절대 안 그럴게. 용서해 줘, 응?”

여기서 고개를, 갸웃!

효과는 확실했다!

“커흑! 귀여움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면 오산…… 인 게 아니라, 우리 리샤는 하고 싶은 거 다 해! …가 아니지!”

오빠는 무슨 두 인격이 있는 것처럼, 스스로와 싸워댔다.

하지만 결국 오빠는 나를 용서해 줄 수밖에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오빠도 알았다.

“절대, 절대로 또 그러면 안 돼. 알았지?”

“응!”

나는 고개를 꾸닥거리면서 말하는 걸 잊지 않았다.

“하지만 오빠도 약속해 줘! 이번처럼 위험한 데 뛰어들면 절대 절대 안 돼!”

나는 이미 최악의 결과를 본 적 있으니까.

하는 김에 오빠에게서도 확답을 받고 싶었다.

오빠는 씩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빠 걱정됐구나. 그렇게 오빠가 좋아요? 오구오구. 우리 리샤, 오빠가 너무 좋아서 어떡해?”

“대답해! 절대절대절대 안 한다구!”

나는 빽 외쳤다.

그러자 오빠는 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먼저 이런 위험한 장소에 혼자 달려와 놓고 할 말은 아닌 것 같지 않니, 리샤?”

“……그래도, 알았다고 해 줘! 빨리 알았다고 약속하란 말이야!”

빼액!

나는 진짜 일곱 살 안서나로 돌아간 것처럼 떼를 썼다.

오빠에게 절대 ‘그때’와 같은 위험한 시도를 하지 않겠다고 확답을 받을 기회였다.

놓칠 수 없지.

오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푸스스 웃었다.

“……알았어. 리샤가 위험해지지만 않으면 안 그럴게.”

“……!”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려 했다.

이런 대답은 싫어.

내가 위험할 때 오빠가 무슨 짓을 할지, 나는 이미 몇 번이나 봤으니까.

전생에.

그리고 환생 이후에도 몇 번이나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조금도 몸을 사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이러니까 내가 말을 못 하지!’

말 안 하고 와도 달려와서 몸을 던지는데!

그래서 결국 빼앵 울어 버렸다.

“싫어! 싫단 말이야! 약속해!”

두 팔을 바둥거리면서 오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오빠가 곤란한 표정을 했다.

“리샤…….”

“오빠 다치는 거 싫어! 죽는 건 절대 싫어! 나 때문에 그런 건 진짜진짜 싫단 말이야! 우아아앙!!!”

일부러 짜낸 울음이긴 했다.

우리 가족은 내 웃음에도 약하지만, 울음에는 더더욱 약하니까.

하지만 막상 짜내다 보니 진짜로 울음이 나와 버렸다.

그야말로 어린애처럼 품속에서 빽빽대며 울어 버리는 나를 안고서, 오빠는 잠깐 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 만에 오빠가 나를 꼭 안고서 속삭인 대답은, 내가 바란 것과는 달랐다.

“……미안해.”

‘미안해’의 앞부분은 너무 작게 속삭여서 하마터면 다 듣지 못 할 뻔했다.

하지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분명히,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꼴을 보게 해서, 미안해.”

심장이 바닥으로 뚝 떨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누군가가 사정없이 걷어찬 듯한 충격이 이어졌다.

내 작은 심장은 고무공이라도 된 것처럼 몸 안에서 사방으로 날뛰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소리가 북소리처럼 고막을 난타해 댄다.

오빠의 저 속삭임은, 나에게 한 가지 의미로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내가 죽는 모습을 보게 해서 미안해.’

아무런 기억 없는 열두 살짜리 꼬마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아니었다.

나는 눈물이 고인 눈을 들어서 오빠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멍하니 물었다.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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