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22. 메인 퀘스트 : 되새김의 시간 (02)
오빠의 입에서 나온 탄성은 간결했다.
“아…….”
‘아차’처럼, 자신이 실수했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몰라서 당황하고 있지도 않았다.
알고서 한 말이라는 소리.
조금 전, 소피아의 사념과 직접 대화를 나눌 때보다 더욱 강력한 충격이 내 뒤통수를 때렸다.
그동안 내심 바라왔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가능성조차 입에 담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기억나는 거야?”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리는 게 내 귀에도 들렸다.
하지만 아닌 척할 수 있는 여유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오빠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는 아니지만 조금씩 돌아오고 있어.”
“아, 아아…….”
목이 콱 멨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도 많은데, 한꺼번에 목구멍으로 몰려들어서 단 한마디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눈앞이 순식간에 뿌옇게 흐려지자, 오빠가 당황하는 게 보였다.
아니, 그것도 곧 잘 보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나는 참지 못하고 빽 외치고 말았다.
그냥 일곱 살짜리 안서나로 돌아간 것처럼.
“왜 바로 말 안 했어!”
내 목소리에 가득한 원망보다, 조절이 안 되어서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눈물에 오빠는 더 놀라고 당황한 것 같았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떠오른 지 얼마 안 됐어! 다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오빠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소매로 내가 눈물 콧물 다 흘리는 걸 닦아 주었다.
“게다가 너 요새 그랑디오르 때문에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었잖아.”
“그래도 재깍재깍 말했어야지!”
나도 모르게 기쁨과 원망이 뒤엉켜서 오빠의 어깨를 톡톡 친다는 게 그만, 힘 조절을 못 해 버렸다.
이게 다 이런 중요한 일을 숨기고 있었던 오빠 놈 때문이다!
퍽! 쿵!
“크헉!”
“헉! 괘, 괜찮아? 실수야! 힘 조절을 잘못……!”
당황해서 오빠의 상태를 살피던 나는 말문이 다시 막혀 버렸다.
오빠가 배를 잡고 허리를 접은 채로도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투닥거리던 전생의 어린 시절처럼.
그리고, 또 ‘그때’ 나를 보호하려 자신의 몸을 던지던 그때처럼.
그 웃음을 보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한 대 더 때렸다.
퍽퍽!
“뭘 잘했다고 웃어!”
“컥! 리샤, 오빠 잡……!”
“이번엔 세게 안 쳤거든!”
엄살을 부리면서도 오빠는 여전히 바보처럼 웃었다.
“뭘 잘했다고 웃냐고!”
“기억 돌아오기 전에도 너 보면 괜히 웃음이 나오고 뿌듯했는데, 이젠 이유를 알 것 같으니까.”
하나뿐인 동생을 지켜 내서 뿌듯했다, 이런 건가.
한 대 더 패 주고 싶었다.
저딴 소리를 하면서 웃다니.
하지만 차마 때릴 수가 없었다.
눈물이 또 줄줄 흘렀다.
“기억났으면 왜 말 안 한 건데!”
“그게……, 아, 나 죽었을 때 기억은 방금 떠올린 거야. 네가 또 부정의 마력에 사로잡힌 거 보고 눈이 돌아가서…….”
내가 소피아의 덫에 걸린 걸 보고 전생의 비슷한 기억을 떠올린 모양이다.
오빠는 앵무새처럼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내 얼굴을 닦아 주었다.
나는 훌쩍거리다가 ‘팽!’ 하고 시원하게 오빠의 망토를 더럽혀 주었다.
그런데도 깔끔쟁이 주제에 오빠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리샤 눈 다 부었어.”
나는 작게 머뭇거리면서 물었다.
“내 이름은…… 기억나?”
“응. 당연하지. 서나야.”
오빠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을 듣는 순간.
가슴속에 오래 응어리져 있던 무언가가 스륵 녹는 것이 느껴졌다.
존재 자체를 지금 깨달았지만.
“그런데 아직 입에 안 익어. 리샤가 더 익숙해.”
“상관없어. 그냥 알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오로지 혼자 전생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과 같았다.
미하일이 기억하고 있긴 하나, 그와 전생에 대해 사이좋게 이야기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과의 추억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이번 생에서 내가 겪는 근본적인 외로움은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나는 순수한 기쁨만으로 가득 찬 눈물을 조금 흘리면서, 오빠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난장판이 된 거리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엉망이 된 얼굴로 웃고 있자니.
곧, 부모님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달려오셨다.
“아가! 우리 아가들!”
“루퍼스! 리샤!”
***
그리고 난 놀라운 사실을 연달아 듣게 되었다.
“엄마 아빠도 기억을 찾으셨다구요?!”
“그래. 신기하게도 루퍼스와 거의 같은 때였단다.”
“아직 다 기억하게 된 것도 아니고, 되찾은 기억도 다들 좀 다른 것 같지만.”
그 말에 나와 오빠의 시선이 마주쳤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 합의를 마쳤다.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
‘알았어.’
전생의 오빠가 나를 구하려다 죽었다는 건, 오빠도 나도 부모님께는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모든 사실에 대해 가족들에게 털어놓는 것을 망설였던 이유와 같았다.
‘설마, 가족들이 기억을 되찾을 줄은……!’
감히 바라기 힘든 일이었다.
두 번째 생을 얻어 가족들을 되찾은 것만으로도 사실 이미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나 혼자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쓸쓸하고 외로우니 함께 나눌 대상이 필요하단 생각은, 너무 욕심이 많은 게 아닐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현실이 되어 버렸다.
내가 너무 바라서, 꿈에서라도 바란다고 말하기 힘들었던 일이.
나는 부모님의 품에 안겨서, 이 현실감 없는 행복을 만끽했다.
그사이 가족들은 조금 어이없는 투닥거림을 나누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선수를 쳐 버리면 어떡하니, 루퍼스!”
“맞아. 치사하구나. 아가.”
“어쩔 수 없었어요. 상황이 그렇게 되었는걸요.”
부모님은 많이 아쉬워하고 있었고, 오빠는 왠지 승자의 여유 같은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나는 당연한 의문을 떠올렸다.
“혹시 나한테 바로 이야기 안 해 준 게, 누가 먼저 말할지 합의점을 못 찾아서였어요?”
“…….”
침묵이 세 배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들 환하게 웃다가, 말머리를 돌려 버렸다.
“그나저나 이게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구나. 거리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다니.”
“엄마한테 제대로 설명도 안 하고 이렇게 위험한 데에 달려왔다가, 우리 아가가 크게 다칠 뻔했잖아!”
……두 분 다 너무 티 나게 말을 돌리고 있었지만, 나는 모른 척하기로 했다.
이번에 잘못한 건 맞으니까.
그래서 나는 진심을 다해서 말했다.
“죄송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사실 지금까지 비슷한 말을 몇 번이나 해 왔지만, 속에서는 늘 딴생각을 품고 있었다.
‘내가 위험해져도 가족들을 지키는 게 먼저야!’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닌 척하고 있었던 거다.
그 때문에 가족들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은 것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게 잘못됐다는 걸 이제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마터면 정말로 죽을 뻔했어.’
오빠가 제때 와 주지 않았다면, 진짜 위험했을 거다.
나 혼자서는 짜낼 수 있는 생각도, 할 수 있는 일도 한계가 있었다.
이는 내가 아무리 강해져도 똑같았다.
나 혼자서 모든 위험을 감당하면 가족들은 안전해질 거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설사 가족들을 지켜낸다 해도 그 대신 내가 잘못된다면…….
남은 가족들이 어떤 심정일지,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한번 경험해 봤으니까.’
같은 일을 너무나도 소중한 가족들에게 겪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앞으로는 절대로 혼자서 이런 일 안 할게요. 혼자서만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게요.”
“그래. 그래. 아가.”
“제발 그래다오.”
그래서 동시에 가족들에게 말했다.
“꼭 약속할게요. 절대로 안 그럴 테니까, 엄마랑 아빠랑 오빠도 약속해 주세요.”
누구도 내가 ‘무엇을’ 약속해 달라고 하는 건지 묻지 않았다.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한 어리석은 행동을, 가족들도 하지 말아 달라는 거였다.
동시에.
‘다시 나한테 가족들을 잃는 경험을 하게 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
내 간절한 눈빛을 가족들은 무시할 수 없었다.
엄마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연하지. 내가 우리 아가를 두고 어딜 갈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렇게 애기인데.”
“아빠도 약속하마. 절대로 가족들을 놔두고 위험한 시도를 하지 않을 테니까. 어렵게 되찾은 행복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 지킬 거란다.”
나는 아직 대답하지 않은 오빠를 물끄러미 보았다.
아까 오빠는 위험한 짓 하지 말라고 떼를 쓰는 나한테,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위험해지지 않으면 그러겠다고.
이건, 내가 위험해지면 또 저지르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전생에 했던 짓을!’
내가 노려보고, 부모님 역시 의아해하며 오빠를 바라보자.
오빠 역시 결국 항복했다.
“알았어. 절대 안 할게.”
나는 겨우 웃을 수 있었다.
“약속!”
내가 내민 새끼손가락은 너무 작아서, 가족들과 한 번에 손가락을 걸 수는 없었다.
우리는 차례차례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
빈민가 일각이 칼키나의 마력 폭발로 인해 증발한 다음 날.
나는 황녀궁 한곳에 철저한 결계로 감시되고 있는 감옥으로 향했다.
바로, 그랑디오르 공작이 갇혀 있는 곳으로.
‘좋아! 이제 전생의 복수를 해 줄 시간이야! 세 배는 돌려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