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23. 메인 퀘스트 : 추운 나라에서 온 사절단 (03)
내 눈에서 불꽃이 튀었고,
오빠는 응접실의 공기가 다 떨리도록 소리를 질렀다.
“지금 감히 뭐라고 말하는 거냐? 어머니를 반역자로 체포?”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던 사절단 대표의 안색이 삽시간에 창백해졌다.
나와 오빠에게서 비롯된 살기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듯했다.
이 정도도 못 견디면서 어떻게 감히 엄마에게 그딴 소리를 할 수 있는 거지?
목숨이 아홉 개쯤은 되어야 운이라도 떼어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물론 정말 우리 가족에게 덤빌 생각이라면 아홉 개의 제곱만큼 목숨이 있어도 소용없겠지만.
그때, 사절단 대표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창백해졌던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왜, 응접실이 왜 갑자기 이렇게 더운……?”
나와 오빠, 엄마의 시선이 아빠에게 닿았다.
이상하게도 아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말도 안 되는 처지에 놓인 지금 상황에서 아빠가 정말 아무렇지 않을 리 없었다.
‘다브네스 후작 부인 때도 가장 분노했던 사람이 아빠였는데!’
사절단 대표는 급기야 온몸에서 땀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어? 어어?”
그의 얼굴과 몸은 단순히 더워서라기엔 이상할 정도로 붉게 달아올랐고.
곧 땀을 거의 온몸의 수분을 쭉 짜내는 것처럼 흘려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물론, 응접실 안의 기온은 멀쩡했다.
강력한 마력을 모두 갖춘 우리 가족이 아니더라도 시종 및 시녀들 역시 땀 한 방울 흘리는 사람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분노한 아빠가 사절단 대표의 주변만 기온을 급격하게 올린 것이다.
거의 산 채로 찌거나 구워 버릴 기세로.
사절단 대표는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컥! 뜨거, 뜨거워! 살려줘!”
엄마가 손을 뻗어 아빠의 손등을 매만졌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그만.”
“하지만, 여보. 저자가 감히 당신을 반역자라 모욕했어.”
“거기에 오라버니를 죽인 패륜아라고 말하기까지 했지. 하지만, 모욕을 받은 건 나야.”
엄마는 차분한 눈빛으로 나와 오빠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그러니 너희들도 마력을 거두렴. 아가들.”
“…….”
엄마의 말을 거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옆에서 오빠가 대놓고 “쳇!”하고 아쉬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사실 심정은 다르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엄마에게 저딴 모욕적인 말을 못 하게 만들어 줘야 하는데!’
아마 엄마가 막지 않았다면, 저 사절단 대표는 10분, 아니 5분 안에 흔적도 없어졌을 것이다.
아홉 번쯤 불타고, 서너 번쯤 얼었다가 다시 불타서.
재도 남기지 못했겠지.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느낀 살기에 비하면 너무나도 가벼운 아빠의 마력 행사에도, 그자는 기절해 버렸다.
아빠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런. 설명을 더 들을 수가 없겠구나.”
그러자 내 뒤에 시립해 있던 시녀들 중 셀리나가 나섰다.
그녀는 꽃병에서 꽃만 곱게 꺼내 조심히 내려놓은 뒤, 안에 담겨 있던 찬물을 기절한 사절단 대표의 머리에 들이부었다.
촤악!
“허억!”
대표는 죽었다 살아난 듯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엄마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자에게로 몇 걸음 더 다가갔다.
“자툴렌 백작.”
아, 저놈 이름이 자툴렌 백작인 모양이다.
“왜 네가 사절단의 대표로서 온 거지? 아바마마께서 너를 외교관으로서 중용하실 리가 없어.”
“……크, 아닙니다! 나는 적법하게 임명되어 제국에 온 겁니다! 아무리 루스템 제국 황제라 하나, 일국의 사절단을 이렇게 대하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자툴렌의 말을 무시했다.
말이 아니라, 주먹을 먼저 날리셨다는 소리다.
퍽!
“……!”
엄마의 날카로운 주먹이 자툴렌의 명치를 후려쳤다.
꽤 아팠는지 자툴렌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바닥을 굴렀다.
깔끔한 펀치에 우리는 일제히 손뼉을 쳤다.
짝짝짝!
“역시 멋져요, 엄마!”
“리샤의 주먹질도 대단하지만 아직 어머니의 것에 못 미치네요!”
역시 머리나 말보다 손발이 먼저 나가는 내 성향은 엄마를 닮은 게 틀림없었다.
탄산이 터지는 듯한 청량감에 나는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 우리 엄마야!
엄마는 우리를 보고 피식 웃더니, 자툴렌의 가슴팍을 강하게 밟았다.
“꾸엑!”
개구리 배 터지는 듯한 비명이 울렸다.
자툴렌이 응징을 당하는 것을 보고, 함께 온 사절단 일행들은 오들오들 떨었다.
엄마는 그들의 면면을 훑어보고는 차갑게 물었다.
“아바마마도 나도 쓰지 않는 자들만 이리 골라 보낸 걸 보면……, 역시 베아트릭스가 너희를 보낸 모양이구나.”
“……!”
엄마의 지적에 사절단은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하스티아의 내부 사정은 잘 모르지만, 베아트릭스라는 사람이 엄마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잘 알겠다.
“반역자 하펜이 아니라, 내가 오라버니의 암살 주모자라는 건 베아트릭스가 열심히 주장하던 말이지.”
겨우 정신을 차린 듯, 자툴렌이 꽥 소리를 질렀다.
“베아트릭스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왕세자 전하의 죽음으로 가장 이득을 본 것이 바로 왕녀 전하가 아니십니까!”
이제 알겠다.
엄마가 왕세녀임에도, 왜 저자가 엄마를 그냥 왕녀라고 부르는 건지.
그리고 베아트릭스라는 사람이 엄마를 외삼촌 암살의 배후로 몰고 있다는 것도.
아마도 이자들이 뻔뻔하게 엄마에게 반역자니 체포니 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마 엄마 역시도 그랬으리라. 처음으로 엄마 안색이 안 좋아지는 걸 봤으니까.
“이는 그분께서 직접 증언하신 일입니다! 바로 왕녀 전하의 오라버니이시자, 우리의 진정한 국왕이 되실 에즈몬드 전하께서요!”
엄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돌아가신 오라버니가 뭐라고 하셨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했다는 거냐?”
“바로 그 말입니다! 에즈몬드 전하께서 되살아나셨고, 자신을 죽이려 한 흉수가 바로 당신이라 지목하셨습니다! 때문에 폐하께서 당신을 체포하여 끌고 오라 명하신 겁니다!”
잠시 응접실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었던 것이다.
***
엄마의 표정은 심각했다. 하지만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우리를 위해 침착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하스티아의 사절단은 황족에 대한 무례와 유언비어를 이유로 모조리 가둔 후였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우리 가족의 의지였다.
그들이 끌려나간 뒤엔 주변을 전부 물렸다.
“에즈몬드는 너희도 알다시피 내 오라버니란다. 너희들에게는 외삼촌이 되지. 원래 왕세자였던 오라버니가 사촌인 하펜의 손에 암살당했고…….”
이건 우리도 이미 아는 일이었다. 바로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나게 된 원인 중 하나였으니 모를 수 없었다. 물론 사교도의 농간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베아트릭스는…… 에즈몬드 오라버니의 아내란다. 너희의 사촌인 시벨의 어머니이기도 하지.”
죽은 외삼촌에 이어, 처음 듣는 외숙모와 사촌의 이름까지 나왔다.
그러고 보면 전생에는 외가의 일은 거의 듣지 못했었다.
그냥 게이트 사태로 일찍 돌아가셨다는 것 정도만 들었을 뿐.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이다.
엄마의 표정이 전에 없이 심각해졌다.
“하지만 에즈몬드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났다니……. 불가능한 일이야. 분명 돌아가신 걸 확인했는데.”
그렇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다니.
우리처럼 환생한 것도 아니고, 말도 안 된다.
자연의 섭리상 불가능한 일.
오빠가 시니컬하게 말했다.
“그냥 말만 그런 게 아닐까요? 정말로 외삼촌이 되살아나셨을 리는 없으니. 그냥 비슷하게 생긴 대역을 데려다 놓고 헛소리를 하는 것일 확률이 높을 것 같아요.”
물론 이것이 가장 논리적인 가설이긴 했다.
그러나 엄마는 뭔가가 걸리는 게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바마마께서 에즈몬드 오라버니의 증언을 듣고 나를 체포해 오라고 명을 내리셨다고 했어.”
이 말에 우리는 다 같이 숙연해졌다.
우리는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외할아버지일 뿐이었다.
하지만 엄마에겐 아버지가 자신을 의심한 일이다.
화가 나고 억울한 것도 물론이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나랑 아빠, 오빠가 눈빛으로 어떻게 엄마를 위로할지 의견 교환을 하는 사이.
‘역시 내가 넓은 가슴으로 꼭 껴안아 줘야겠다.’
‘엄마는 제가 위로해 드릴 거예요!’
‘딸내미의 애교가 특효약일 게 틀림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각자 자기 자신을 엄마의 마음 치료제로 쓰려는 찰나.
엄마가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이 늙은이, 진짜로 노망이 났나?! 직접 달려가서 두들겨 줘야 제정신을 차리겠네!”
우리들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
“…….”
“…….”
그렇다. 엄마는 역시나 강인하셨던 것이다.
전생에도 우리 가족 중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가장 강인한 사람이 우리 엄마였다.
‘하긴, 나랑 오빠 성격이 어디서 왔겠어.’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