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23. 메인 퀘스트 : 추운 나라에서 온 사절단 (04)
엄마는 우리에게 미안해하며 운을 뗐다.
“상황이 이러니 잠시 하스티아에 다녀와야겠다. 5년이나 나라를 비웠더니 이놈들이 내 주먹맛을 잊어버린 모양이야. 가서 친절하게 알려 줘야지.”
아마도 엄마의 친절한 설명(물리)는 효과가 좋을 거다.
전생에도 현생에도 실패하는 걸 본 적 없으니까.
하지만, 엄마 혼자 떠나겠다는 말에, 동의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엄마 품으로 포롱 날아서 안겨 들었다.
“엄마! 리샤는 엄마랑 같이 갈래요!”
그러자 질세라 오빠도 옆으로 다가와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어머니. 저도 함께 갈게요. 저는 하스티아의 왕손이기도 하니까, 저에게도 이 사태에 관여할 의무가 있어요.”
오빠가 가진 얼음과 눈 속성의 마력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대대로 하스티아의 왕족들이 가지는 것으로, 제국과 비슷하게 저 속성 마력을 가진 왕족만 계승권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걸 생각하면 오빠의 말이 틀린 게 아니긴 했다.
물론, 오빠는 자기 편할 대로 하스티아의 왕손 지위와 루스템 황자 지위를 뗐다 붙였다 하긴 하지만.
그리고 아빠가 엄마를 뒤에서 꼬옥 끌어안았다.
“여보. 나도 같이 갈게. 당신 혼자 그 먼 곳으로 보내고 혼자 기다리는 건 너무 잔인해……,”
아빠는 짐짓 버려진 강아지처럼 처연한 표정을 했다.
전생의 경험에, 지난 5년을 더해 지켜본 결과, 아빠가 저렇게 약한 척하는 건 엄마 앞에서뿐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효과가 아주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에게 따개비처럼 딱 달라붙었다.
우리 셋의 주장은 한마디로 요약 가능했다.
‘절대 안 떨어질 거야!’
엄마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스티아는 멀어. 최대한 빨리 가더라도 수도까지 한 달 반은 걸릴 거야. 그리고 하스티아 내에서 눈 폭풍이라도 만나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어. 게다가 아주 추운 곳이라, 루스템에서 자란 이들은 적응하기 쉽지 않아.”
오빠는 조금 전의 논리를 다시 반복했다.
“저는 괜찮아요! 엄마에게 물려받은 마력이 있으니까요!”
오빠는 열여섯 무렵부터 점잔을 빼며 엄마 아빠를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은 꽤나 마음이 급한지 호칭도 까먹은 듯했다.
나도 지지 않았다.
“나도 괜찮아요! 태양의 마력으로 보온할 수도 있고, 이제 체력도 엄청 늘어서 그 정도 여행은 충분히 견딜 수 있다구요!”
그러자 엄마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아빠의 눈을 보며 말했다.
“애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황제인 당신이 황궁을 비우는 건 안 돼.”
이건 맞는 말이긴 했다.
실제로 엄마가 뒤늦게나마 하스티아를 비울 수 있었던 이유는, 외할아버지가 계셔서니까.
그것도 반란을 완전히 처리하고 난 후에야 가능했고, 5년을 비우자 지금 같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제국 내에야 아빠의 권위를 위협할 다른 세력은 없지만.
그래도 주인이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것은 좋지 않았다.
아빠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엄마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저 슬픈 표정으로 엄마를 꼬옥 끌어안을 뿐.
‘하긴 엄마 없이는 하루도 못 살겠다고 하시는 분인데……, 이번에 엄마가 하스티아에 가면 짧아도 몇 달, 길면 연 단위로 헤어져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나도 마음에 걸렸다.
아빠만 두고 다 같이 하스티아로 가는 것도.
그렇다고 엄마 혼자 하스티아로 가게 하는 것도.
싫다.
또한, 아무리 잠깐이라 해도 겨우 모인 우리 가족이 어떤 이유로든 다시 찢어지게 되는 것도 정말 싫었다.
그리고, 내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었다.
나는 주먹을 쥐고 외쳤다.
“걱정 마세요, 엄마 아빠! 리샤가 해결할게요!”
***
나는 즉시 아멘다와 가르텐 소공작을 불러들였다.
몇 년 전부터 그들에게 부탁해서 연구 중인 게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꼭 필요한 기술이!
“장거리 이동 마법 연구는 어때?”
내가 이들에게 명해서 연구하고 있던 것은 바로, 장거리 이동 마법이었던 것이다!
이 세계에는 이동 마법이 존재했다.
하지만 시야에 보이는 거리의 이동만으로도 마력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데다가.
실패했을 때의 위험성이 커서, 사람을 상대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마법이 실패하면 물건의 경우 분해되는 데 그치는데, 사람이나 생물의 경우 당연히 죽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실패 확률이 높아서 비싼 물건 이동에도 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장거리 이동 마법의 유용성은 엄청나니까, 나는 그동안 연구를 진행 시켜 온 것이다.
‘엄마가 언젠가 하스티아에 다녀오셔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기도 하고.’
하스티아의 왕세녀라는 엄마의 입장을 생각하면 당연했다.
‘게다가 아직 소피아를 못 찾았어. 그게 어디서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 모르니, 언제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기술은 반드시 필요해.’
내 질문에 아멘다는 황공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황녀 전하. 제 능력이 부족하여 지난번에 보고드린 대로 20 그라-카르(km) 정도의 거리 이동이 성공한 것이 전부입니다. 성공률 역시 30% 정도입니다.”
“사실 20 그라-카르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입니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기술은 그 절반 정도가 한계니까요. 성공률도 10%에 불과합니다.”
가르텐 소공작 코넬이 옆에서 아멘다의 편을 들었다.
내가 이 기술 개발을 아멘다와 코넬에게 맡긴 이유는 간단했다.
‘전생에 열음 언니의 특기는 무기 제작이나 이를 위한 마력 금속 제작에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무수한 마도구들이 언니의 손에 개량되고 발명되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이것도 있었다.
‘워프 포털.’
장거리 이동 마법을 가능하게 해 주는 아이템.
첫 등장은 시스템이 몇몇 퀘스트의 보상으로 내놓은 것이었다.
그걸 언니가 개량하여 성능을 늘리고, 경량화했었다.
코넬이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아카데미의 마도 공학자들과 마법사들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곧 황녀님이 원하시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 이것이 내가 코넬에게 언니를 도우라고 한 이유였다.
가르텐 공작가는 대대로 아카데미의 관리를 맡아 왔다.
가르텐 아카데미는 황도가 아닌 가르텐 영지에 위치하며.
그 명성은 제국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에 널리 알려져 있다.
아카데미는 졸업 때까지 성적 조건만 맞출 수 있다면 학비와 생활비까지 전부 지원되었고.
입학 및 졸업에 신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때문에 가르텐 아카데미에는 전 대륙의 인재들이 모두 모여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최고의 마법사와 마도 공학자들 역시.
실질적으로 아멘다와 협업하는 것은 가르텐 아카데미에서 파견된 인재들이고, 이를 관리하는 역할이 코넬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정도면 상당한 성과이긴 해.”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지금 나는 당장 그 기술이 필요하다는 거지! 그것도 최대까지 개발된 기술이!’
***
지금까지 개발한 이동 마법으로는 내가 원하는 만큼 빠르고 안전하게 우리 가족 전원이 하스티아를 왕복할 수는 없었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그놈의 그것이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이미 본 적 있었다.
‘나스카의 부유 요새.’
하늘에 떠 있던 나스카 일족의 성.
그건 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르게 움직였고.
미하일이 있는 곳으로 소환도 가능했다.
게다가, 미하일이 밤의 어둠과 그림자를 통해 자유롭게 이동했던 것도 떠올랐다.
그 힘으로 단번에 내가 있는 별궁까지 왔었지.
새삼 5년 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미하일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달리 창백하고 말라 있었던 소년.
지금은 벌써 5년이나 지났으니 꽤 자랐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기억하는 전생의 미하일과 더 비슷한 모습이 되었겠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다시 한번 스킬을 썼다.
지난 5년간 몇 번 사용했지만, 한 번도 대답이 없었던 그 스킬을.
-미하일?
“…….”
나는 꽤 오래 그의 대답, 혹은 방문을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 그날 역시 미하일은 대답을 보내지도, 내게 오지도 않았다.
***
하루가 꼬박 흘렀지만 내 고민은 바로 해결되지 않았다.
새삼 전생의 워프 포털이 아쉬웠다.
그거 하나면 대륙을 단번에 뛰어넘어서 게이트가 열린 곳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짙은 아쉬움에 한숨을 흘리고 있는 찰나였다.
눈앞에 오랜만에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돌발 퀘스트 발생!]
[돌발 퀘스트 완료!]
[보상을 수령 가능합니다. 수령하시겠습니까?]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운 시스템의 알림.
당연히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당연하지!”
[보상 : ‘워프 포탈(S급)’]
내 일곱 살 생일 이후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 내가 원하는 보상을 주는 퀘스트가 도착한 건 처음이었다.
“아싸!”
그런데 뭔 퀘스트였길래 또 받자마자 완료된 거지?
나는 퀘스트 상세 내역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퀘스트 창을 열었을 때, 경악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