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23. 메인 퀘스트 : 추운 나라에서 온 사절단 (05)
[퀘스트 명 : ‘그를 찾아라’]
[설명 : 지금 당신의 생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죽여야 할 그자를 찾으시오.]
[완료 조건 : 그자가 있는 곳으로 가기로 마음먹기]
이건 또 뭐야?
지금 시스템이 말하는 죽여야 할 ‘그’가 누굴 말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미하일.’
시스템이 이렇게까지 지속적으로 살의를 보이는 건 미하일뿐이니까.
그런데 퀘스트 내용이 이상했다.
미하일이 있는 곳에 가기로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완료된다니?
이런 퀘스트 내용은 전생에도 현생에도 듣도 보도 못했다.
게다가 내가 지금 이동하고 싶어 하는 장소는 단 한 군데.
‘이건, 미하일이 지금 하스티아에 있다는 소리잖아?’
지난 5년간 미하일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내 부름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히 행방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시스템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미하일이 하스티아에 있다고?’
***
나는 아주 깊은 고민에 빠졌다.
“으음. 흐으음…….”
어찌할 것인가.
그러자 옆에 있던 부모님과 오빠가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특히, 엄마가.
“괜찮단다, 아가. 엄마 혼자서도 충분히 하스티아 일은 해결하고 올 수 있어.”
“그래, 그래. 아빠 혼자서도 집…, 아니, 제국 잘 보고 있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빠의 말꼬리는 더없이 시무룩했다. 강아지라면 꼬리가 바닥으로 축 늘어뜨려진 상태.
“맞아. 그러니까 장거리 이동 마법이 안 된다고 기죽을 필요 없어. 우리 리샤가 부족해서가 아닌걸.”
이럴 때면 기쁘고 고마우면서도, 이런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아니, 나는 열두 살짜리 어린애가 아니라구! 다들 알면서!’
나는 대놓고 투정 부렸다.
“내 정신 연령은 엄마 아빠랑 오빠도 알잖아요! 꼬맹이 아니라구요!”
껍질은 열두 살이지만, 속에 든 영혼의 나이는 어…, 그러니까…… 대충 30대 중반이다.
요샌 전생의 나이랑 합쳐서 나이 세는 것도 잠깐 버퍼링이 걸릴 정도다.
정말 갓 환생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생한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특히, 가족들이 기억을 찾은 후로는 더더욱.
내 푸념에 가족들의 얼굴은 더더욱 흐물흐물해졌다.
“하지마안-, 우리 리샤는 영원히 내 동생인걸. 리샤가 스무 살, 서른 살이 넘어도 애기로 보일 수밖에 없어.”
“이건 루퍼스 말이 맞단다. 우리 아가들은 영원히 아가들이지.”
“아직도 루퍼스랑 리샤 태어났을 때가 생생한데…….”
엄마는 나를 꼭 끌어안았고, 아빠는 오빠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오빠는 청소년기가 되면서 어린애 취급당하는 것에 질색하곤 했는데.
지금도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다지 싫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기쁜 한편, 조금 심통도 났다.
‘자기도 어린애 취급 싫다면서 나는 어린애 취급하고 그래!’
그래서 작은 복수 겸, 아빠를 충동질했다.
“아빠! 큰 아가도 아빠 품에 안기고 싶대요!”
“리샤!”
“그렇구나! 아빠가 우리 큰 아가의 마음을 몰라줬네!”
아빠는 이제 많이 자라서 자신의 키를 제법 따라잡은 아들을, 어린 시절처럼 꼭 끌어안았다.
오빠의 얼굴은 부끄러움과 기분 좋음이 뒤엉켜서 붉어졌다.
‘헤헹! 나만 당할 순 없지!’
오빠도 아빠의 애정 공격에 마구 당해 보라구!
***
잠깐 가족들과의 꽁냥 타임이 끝난 뒤.
나는 겨우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맞다. 나 이것 때문에 심란해하고 있었지!’
엄마 품에서 애교를 피우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던 것이다.
가족들이랑 있다 보면 가끔씩 내 영혼 나이를 까먹은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나는 벌떡 일어나 가족들 앞에 조금 전에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을 내놓았다.
“이거 보세요!”
“어?”
“이건 분명히…….”
“워프 포탈이 왜 여기 있어?”
이제 가족들은 전생의 기억을 찾았기 때문에 워프 포탈이 뭐 하는 물건인지 잘 안다.
그때 오빠가 뭔가를 눈치챘다.
“아! 그러고 보니 리샤 너 어릴 때도 쑥쑥 포션 같은 거 가지고 있었지? 그것도 시스템이 준 거였나?”
“응.”
가족들에겐 진작 시스템이 나만을 돕고 있다는 것도 다 얘기해 뒀다.
특히 오빠는 쑥쑥 포션(걸레 빤 물맛)을 먹어 본 적 있으니 더 잘 알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것도?”
“네.”
“잘됐구나! 사용 횟수가……, 오, 4회면 두 번은 왕복이 가능할 테니까 다 같이 하스티아에 다녀올 수 있겠어!”
특히 혼자 남아 집…, 아니 제국 보기 할 처지였던 아빠가 가장 기뻐 보였다.
나도 그건 좋긴 한데, 가족들에게 상담하고 싶은 건 다른 문제도 있었다.
“그런데 이걸 보상으로 준 퀘스트가 이상했어요.”
“뭐가 이상했는데?”
내 간략한 설명을 듣자, 가족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엄마는 낮게 중얼거렸다.
“마왕 소환의 매개체가 될 소년을 죽여라, 라.”
아빠의 표정은 험악하기까지 했다.
“그때 황궁에 왔을 때 처치했어야 하는 건데. 감히 우리 아가를 배신한 놈…….”
이번에도 오빠랑 무언의 합의를 통해, 마왕 소환 때 오빠가 날 지키다 죽었다는 소리는 생략했다.
오빠는 차가운 미소를 베어 문 채 중얼거렸다.
“이번엔 이 오빠가 미리 죽여 버릴 테니까 괜찮아, 리샤!”
오빠는 그때 기억도 있으니, 원한이야 나보다 더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지금 생에서 그가 나에게 과하게 협조적인 거라든가.
이상할 정도로 시스템이 그에게 적대적이라는 것 등.
그리고 무엇보다…….
“그래서 나는 아마 널 영원히 용서 못 할 거야.”
‘정말 우연인 걸까? 내가 미하일에게 그런 말을 하고 나서, 가족들이 기억을 되찾은 것이?’
지난 5년간, 미하일에 대해 곱씹다 보니 떠오른 의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 오빠는 미하일에 대한 적의를 한껏 불태우고 있었다.
“그때도 이번에도 도둑놈 관상이 틀림없어 보였는데……. 절대로 가만 안 놔두겠어.”
……어째 전생에 자기를 죽인 사람에게 보일 적의라기엔 뭔가 핀트가 좀 이상하지 않나?
하지만 대놓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
그렇게 우리 가족은 사흘간, 하스티아로 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엄마와 아빠는 그야말로 잠을 줄여 가며 중요한 업무를 다 처리해 두셨고.
나와 오빠는 하스티아 출신인 셀리나에게 조언을 받아 필요한 물자를 준비했다.
포탈이 옮길 수 있는 인원은 딱 네 명뿐이고, 가져갈 수 있는 짐 역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포탈 사용 가능 인원이 딱 네 명인 것도 좀 찜찜하네.’
우리 가족 인원에 딱 맞추기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
조금 찜찜해하고 있는데, 셀리나가 옆에서 유난이었다.
“이걸로는 모자라요! 하스티아는 정말로 추워서, 뜨거운 물을 뿌려도 공기 중에서 얼어 버린다고요! 세실리아! 모피, 모피를 더 가져와!”
“네! 여기 창고에 있던 담비와 여우 모피예요!”
셀리나가 유달리 더위에 약하고 겨울에 쌩쌩한 이유를 알겠다.
엄마도 여름에는 마력으로 늘 몸 주변을 시원하게 하곤 했다.
세실리아는 셀리나의 성화에 바지런하게 움직였다.
‘얘도 참 많이 바뀌었네.’
처음 세실리아를 만났을 때를 떠올리면, 신기할 정도의 변화였다.
내가 지그시 바라보자, 세실리아는 어깨를 움츠리며 속삭였다.
“저, 저는 마력도 없어서 하스티아에 갔다간 얼어 죽을 거예요…….”
“걱정 마. 안 데려가.”
전력도 안 되는데 데려갈 리가.
이 와중에 그 멀고 추운 곳에 자기 데려갈까 봐 걱정하며 몸 사리는 것이 세실리아다웠다.
‘그래. 사람은 근본적인 건 잘 안 변하는 법이지.’
나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아멘다가 일 잘하려면 세실리아가 꼭 필요한걸.”
“…….”
세실리아는 여전히 아멘다를 위한 분노의 토템 역할을 잘해 주고 있었다.
아멘다의 말에 따르면, 이젠 세실리아 자체에 대한 분노는 많이 흐려졌는데.
세실리아를 앞에 두고 일해야 능률이 오르는 게 일종의 징크스가 되어 버린 것 같다고 했다.
덕분에 아멘다가 대장장이를 그만둘 때까지, 세실리아가 일자리를 잃을 일은 없었다.
내 말에 세실리아의 어깨가 추욱 처졌다.
몇 년이나 옆에서 도왔(?)으면서도, 아직도 안 익숙해진 건가.
슬슬 포기하면 편해질 텐데 말이다.
나는 걱정과 불안에 차서 나를 동글동글한 털 공으로 만들 기세인 셀리나를 다독거렸다.
“걱정 마. 셀리나. 나는 태양의 마력이 있다구. 게다가 엄마랑 아빠도 같이 가시잖아!”
“그건 그렇지만……. 흑! 우리 귀염뽀짝뀨띠빠띠한 아기님을 그 위험한 곳에 보내야만 하다니이!”
셀리나는 아예 펑펑 울 기세였다.
몇 년 만에 나를 아기님이라고 부를 만큼.
사실 여행 준비를 돕고 있는 내 유모와 시녀들은 다들 비슷한 태도였다.
나는 모두를 안심시키기 위해 활짝 웃으며 주먹을 들어 보였다.
이젠 알감자가 아니라 제법 커서 중간 감자 정도 되어 보이는 내 주먹을.
“걱정 마. 우리 가족 건드리면 리샤가 다 패 버릴 거라구!”
다음 날.
우리 가족은 성공적으로 워프 포탈을 작동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