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3화 (174/218)

Level 25. 메인 퀘스트 : 이번엔 사로잡힌 왕자님? (01)

미하일에 대해 떠올린 이후.

다음 날부터 나는 며칠간 성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혹시 나스카의 부유성을 본 적 있어?”

-라고.

그리고 놀랍게도 이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예. 몇 달 전 밤에 한 번 본 적 있습니다.”

“저도요. 백야 기간에 갑자기 나타나서 유달리 눈에 띄었었지요.”

“그렇게 커다란 성이 허공에 떠 있어서 꽤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할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봤단다. 나스카의 부유성이 하스티아에서 목격된 건 정말 오랜만이라 기억하고 있지.”

“그 성이 어디로 가는지 혹시 보셨어요?”

내 질문에 할아버지의 시선이 북쪽을 향했다.

이곳은 하스티아의 왕성.

왕성 북쪽에는 거대한 빙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빙해의 범람을 막고 있는 거대한 얼음벽이.

그쪽으로 사라졌다는 거다.

대체 왜 부유성이 그곳으로 움직인 걸까?

…아니, 이건 제대로 된 의문이 아니다.

‘왜 미하일이 하스티아로 온 거지?’

그리고 이 하스티아에서 사교도가 나타났다.

이게 우연일 수 있을까?

적어도 그가 사교도를 쫓아 이곳으로 왔거나.

혹은, 그가 이곳에 온 뒤 사교도가 나타났거나.

둘 중 하나여야 말이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시스템 창을 열어, 여전히 남아 있는 퀘스트 두 개를 확인했다.

[완료해야 할 퀘스트가 있습니다.]

[퀘스트 명: ‘두 번째 삶’]

[퀘스트 명: ‘절대적인 맹세’]

하나는 아직 환생으로 얻은 두 번째 삶이 완전하지 않다는 증거.

그리고 두 번째는, 미하일의 존재가 여전히 위험하다는 증거.

단순하게 생각하면, 미하일을 죽이면 이 두 퀘스트가 모두 완료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그건 쉬운 일이었다.

나는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미하일이 내게 준 스킬을 발동시키진 않고 활성화만 시켰다.

그러자, 왼손 약지에서 붉은색 리본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만져 봐도 감촉은 없었다.

진짜로 내 손가락에 리본이 매여 있는 게 아니니까.

‘이 스킬을 발동시키면, 미하일은 바로 죽어.’

그렇다. 내게 미하일을 죽이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는 이미 내게 자신의 목숨을 맡겼으니까.

그가 어디 있든, 어떤 상황이든, 이 스킬을 발동시키는 순간.

그는 죽을 것이다.

그러면……, 저 두 퀘스트가 모두 완료되고.

나와 우리 가족은 완전한 두 번째 삶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그렇게 쉽게 모든 게 해결될까?

전생의 한때, 내가 아직 동료라 믿고 있었던 소피아가 한 말이 떠올랐다.

“왜 그런 선택을 하신 건가요, 안서나 씨?”

그래. 그때였다.

미하일이 자신을 희생해서 적과 함께 죽으려 했던 때.

내가 적을 죽여 버리고 그를 구해 낸 뒤였다.

나중에 상황을 듣고 나서, 소피아가 이렇게 말했었던 것이다.

“이성적이지 못한 선택이었다는 건, 당신도 알죠? 이번에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던 건 기적에 가까워요. 그때는 미하일 씨의 말을 따르는 편이 나았어요. 자칫 일이 잘못되었다면, 당신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까지 전멸했을 거예요.”

“…….”

“동료의 희생은 조금도 용납할 수 없다는, 그런 유치한 정의감이셨던 건가요?”

나는 시니컬하게 웃으면서, 소피아의 질문을 비웃었다.

“내가 왜 네 말이나, 미하일의 말을 따라야 하는데?”

“……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서 한 것뿐이야. 유치한 정의감 따위는 애초에 가진 적도 없지만, 내가 성공한 일을 가지고 그때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너에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어.”

내 말을 듣고 소피아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때까지, 그녀가 그렇게 놀라는 건 본 적 없었다.

그리고.

“역시 당신은 특별해요. 안서나 씨. 꼭…… 보고 싶네요.”

그렇게 말하는 소피아의 입꼬리가 그려 낸 미소는, 절대 성녀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소름 끼치는 미소를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나의 선택은 그때와 같았다.

왼손 약지에 나타났던 리본은 다시 사라졌고.

나는 미하일이 내게 준 스킬을 발동시키지 않았다.

그를 죽이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

내가 미하일과 나스카의 부유성, 그리고 소피아에 대해서까지 떠올리는 사이.

시간이 꽤 많이 흐른 모양이다.

사촌 간의 ‘친해지길 바라’를 찍고 있던 중이라, 옆에는 오빠와 시벨이 있었고.

앞에는 하스티아식 다과가 화려하게 차려져서.

잼을 넣은 진한 밀크티와 꿀 케이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워낙 깊이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티타임이 시작된 것도 몰랐던 모양이다.

옆에서 오빠가 한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리샤가 간식을 앞에 두고도 포크를 한 번도 움직이지 않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러자 옆에서 시벨이 안절부절못했다.

“내, 내가 자리를 피해 줄까?”

“아, 그거 좋은 생각…….”

“떽! 어딜 오빠 맘대로 하려고! 그리고 왜 애를 내보내려고 해?”

오빠는 또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아까부터 리샤가 하나도 집중을 못 하니까…….”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랬어.”

나는 오빠가 건네는 은제 포크를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꿀 케이크의 모서리를 잘라 냈다.

잘 잘린 케이크 조각을 입안에 가져가자, 꿀의 달콤함이 혀 위에서 스르륵 녹는다.

“맛있다! 셀리나가 만들어 준 적 있긴 한데, 훨씬 맛있어!”

“…그러네. 그때 셀리나가 현지에서 먹는 게 훨씬 맛있을 거라 그러더니.”

“꿀 케이크는 하스티아의 대표적인 디저트예요. 고조할머님이신 알렉산드라 왕비님을 위해서 처음 만들었다고 해요.”

“잘 아네.”

“하스티아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니까.”

그렇게 말하며, 시벨은 꽃처럼 웃었다.

지난 며칠 사이에 아이는 주눅 들어 있던 어깨도 우울해하던 것도 많이 나아져 있었다.

조금 밝아졌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방 안이 환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얼굴에서 빛이 났다.

하스티아의 간식들은 제국의 것보다 단맛이 강한 편이었다.

왜 엄마가 제국의 디저트는 좀 심심하다고 했었는지 알겠다.

나는 케이크와 달콤한 홍차를 맛나게 먹어 치우며, 오빠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까, 오빠. 아빠가 잡아 온 베아트릭스와 사교도 심문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들었어?”

“응. 사교도는 아직 입을 전혀 열지 않았대. 그리고 베아트릭스는 치료가 어느 정도 끝나서 의식이 돌아온 것 같다던걸.”

“혹시 자해하려 한다거나 그렇진 않대?”

“전혀.”

“다행이네.”

우리는 할아버지의 반대로 베아트릭스와 사교도를 심문하는 자리에 갈 수 없었다.

“아니! 어린애들이 그런 험한 꼴을 왜 보러 가겠다는 게냐? 나나 너희 엄마가 확인하는 걸로도 충분하다!”

“자네, 설마. 제국에서는 애들을 그런 자리에까지 데리고 다닌 건 아니겠지?!”

-라고, 아빠가 다시 구박을 받을 상황이 되어버려서, 어쩔 수가 없었다.

대신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직접 그들을 심문하고 계신다고 했다.

곧 그들의 입이 열리고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미하일이나, 소피아에 대해서 쓸 만한 정보가 나오면 좋겠는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시벨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아, 미안. 그래도 네 어머니 얘긴데, 좀 더 조심해서 말할 걸 그랬다.”

“아니야. 난 괜찮아. 어머니가 어떤 죄를 저지르신 건지……, 너무 잘 아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백금빛 나비 날개 같은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래. 우리는 그냥 할아버지랑 엄마를 믿고 기다리면 될 거야.”

오빠는 옆에서 계속 궁시렁거렸다.

“리샤랑 같이 하스티아를 돌아보고 싶었는데, 쓸데없는 꼬리가 붙어서는……!”

“죄, 죄송해요!”

“애 괴롭히지 말랬지!”

내가 혼내자, 오빠는 입을 삐죽거렸다.

정말이지, 열일곱 살답지 않게 너무 유치했다.

시벨이 더 의젓하겠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오빠는 시벨을 내쫓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우리가 하스티아에서 보내는 사흘째 밤이 깊어갔다.

***

깊은 밤.

하스티아의 왕성, 지하 감옥 깊은 곳.

가장 엄중하게 경계하고 있는 곳으로, 누군가의 작은 발자국 소리가 울렸다.

자박자박.

고요함을 깨뜨리고 숨어든 이는, 부정의 마력을 발동해 문을 굳게 잠근 자물쇠를 쉽게 부쉈다.

그리고 지하실 안으로 숨어들어, 그 안에 갇힌 이들을 확인했다.

창백한 얼굴로 의식 없이 누워 있는 베아트릭스.

그리고, 꽤 거친 심문을 받았는지 엉망이 된 채 제압당해 있는 다른 사교도 여자.

숨어든 이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들을 잠시 바라보고는, 부정의 마력을 일으켰다.

두 입을 막으려는 것이다.

그 순간.

쿵!

열려 있던 문이 닫히며, 캄캄하던 지하 감옥 안이 눈부신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큭!”

“빙고!”

쾌활한 소녀의 목소리가 지하실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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