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25. 메인 퀘스트 : 이번엔 사로잡힌 왕자님?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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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구의 빛으로 지하 감옥 내부가 환히 밝혀지면서, 침입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백금발이 지나치게 밝은 빛 아래에서 거의 백색에 가깝게 빛났다.
내 앞에서 보이던 가련한 표정과 달리, 지금 잔뜩 일그러진 표정은 확실히 열두 살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소리를 높였다.
“빙고!”
잠시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던, 소년, 즉, 시벨은 놀랄 정도로 빠르게 표정을 바꿨다.
순식간에 불쌍하고 천사 같은 아이의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천연덕스럽게 묻는다.
“왜 그래, 리샤? 나는 어머니를 뵙고 싶어서 온 것뿐인데…….”
순식간에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이 맺히는데 절로 감탄이 나왔다.
“혹시 경비들 앞에서도 그렇게 연기했어?”
내가 비꼬자, 시벨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어린애가 엄마를 보고 싶어요-라고, 말해서, 다들 동정심에 길을 열어 줬다고 말하기로 한 거야?”
“…….”
“너무 안일한 변명 아니야? 그 정도로 우리 가족이 넘어갈 것 같았어?”
진짜로 동정심에 호소해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일 리 없었다.
지금 밖을 지키고 있는 놈들은 틀림없이 사교도와 끈이 닿은 놈들일 거다.
시벨은 부드럽게 웃었다.
“역시 나는 네 가족이 아닌 모양이야?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진짜 시벨이라면 당연히 내 가족일 수 있었겠지.”
그러자 백금발의 꼬맹이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어른스러운 한숨을 쉬었다.
“제대로 속여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한 말이 너무 작위적이었거든. 자기를 죽여도 좋다니, 보통 열두 살은 그런 식으로 말 안 한다구.”
어린애가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라기엔, 너무 뉘앙스가 교묘했다.
‘나는 이렇게 착하고 무해한 어린아이니까 해치지 말아 주세요.’
-라고,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도리어 부자연스러웠던 것이다.
덕분에 나도 오빠도 좀 빠르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당연히 티 내지 않고, 일부러 옆에 붙어서 안심시키다가.
베아트릭스와 사교도를 언급해서, 이 녀석이 움직이게 해 제대로 된 증거를 확보하려 한 거다.
그러자, 시벨, 아니, 시벨의 모습을 흉내 내던 사교도 놈은 겸연쩍은 듯.
뺨을 긁적거리면서 말했다.
“……그러는 너도 절대 일반적인 열두 살 같지는 않았는데.”
“나야 정말로 일반적인 열두 살이 아니니까.”
“…….”
뭐, 왜.
내가 평범하지 않다고 해서 네가 열두 살답지 않게 굴어도, ‘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줄 알았냐?
나는 아스트라를 뽑아 들며 물었다.
“진짜 시벨은 어디 있어?”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야?”
“…….”
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긴 했다.
이미 알 것 같았으니까.
‘엄마랑 할아버지가 슬퍼하시겠네.’
그나마 에즈몬드 외삼촌과 다르게 이자가 진짜 시벨이 아니라는 것이 유일한 위안인가.
나는 냉랭하게 말했다.
“시벨인 척하는 변장이나 풀어.”
할머니를 닮은 백금발에, 할아버지를 닮은 남빛 눈동자.
아마도 저 외모 자체는 진짜 시벨의 것이 틀림없으리라.
사교도 놈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하. 이거 그분께 단단히 혼나겠는데.”
동시에 백금발이 은발로 변했고, 남색 눈동자는 진녹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외모 자체는 큰 변화가 없었다.
아니.
으드득-.
뼈가 다시 짜 맞추어지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열두 살 소년은 그대로 성장하듯 청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천이 찢어지는 소리도 들린 걸로 보아, 아마도 옷도 견디지 못하고 찢어진 듯했다.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기에 다행히 눈에 띄진 않았지만.
천사 같은 외모 속에 악마를 숨긴 청년은, 고개를 쳐들고 나를 보며 웃었다.
“겁도 없이 황녀님 혼자 나를 잡으려고 기다린 거야? 혹시 다른 가족들이 상처받을까 봐 걱정해서?”
“착각은 네 자유긴 하지.”
“말랑말랑하시네, 우리 황녀님.”
청년은 빙긋이 웃더니, 지금까지 내가 본 중 최고로 강력한 부정의 마력을 뿜어 냈다.
‘이건, 그랑디오르 공작 이상이잖아?’
내가 기억하는 사교도의 2인자였던 자보다 더욱 강력한 부정의 마력.
게다가 직접 ‘그분’을 언급했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나는 이를 갈며 물었다.
“소피아, 지금 어디 있지?”
“글쎄. 그분은 어디에도 계시고, 어느 곳에도 없으시지.”
그 순간.
콰과광!
굉음이 울리며, 벽이 부서졌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리샤!”
“어딜 감히 우리 딸에게!”
“죽여 버리겠어!”
“감히 내 콩만 한 손녀에게 무슨 짓이냐!”
오빠, 엄마, 아빠, 할아버지.
네 명이 우르르 벽을 부수며 달려 들어온 것이다.
그걸 보고 나를 공격하려던 사교도 놈은 경악해서 굳어 버렸다.
동시에 할아버지를 제외한 세 명의 아스트라가 살기를 뿜고 달려들었다.
“이런!”
놈은 분명히 소피아를 제외하면 내가 본 중 가장 강력한 부정의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여기 모인 네 명을 한 번에 상대해서 이길 순 없었다.
‘그건 소피아도 불가능할 테니까.’
내가 잠깐 지켜보는 사이.
우당탕쿵쾅! 하는 엄청난 소음이 나고, 누군가가 얻어맞고 어디가 부러지는 소음이 들린 뒤.
어이없을 정도로 빠르게 놈이 제압되었다.
“큭……, 이게 무슨……?”
시벨을 가장했던 사교도 놈은 진심으로 당황한 것 같았다.
나에게 정체를 들켰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우리 가족 모두가 분노에 차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할아버지의 분노가 가장 컸다.
“네놈! 그 아이는, 시벨은 어찌한 것이냐?!”
그러자 얻어맞아 그새 퍼렇게 멍든 얼굴로, 놈은 도발하듯 말했다.
“이미 말하지 않았나. 살려 둘 이유가 없지.”
“이노옴!!!”
할아버지는 얼음 속에서 터져 나오는 화산처럼 분노했다.
그리고 놈은 의도적으로 할아버지의 그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 손으로 깨끗이 처리했지. 노인네가 얼마나 손자에게 관심이 없었으면, 알맹이가 바뀐 것도 못 알아챘을까.”
“……!”
이 말에 할아버지는 진심으로 충격을 받아 휘청거렸다.
엄마가 옆에서 할아버지를 부축했다.
“정신 차리세요.”
“시벨, 그 아이가……. 그 어린 것이……!”
더 놔뒀다간 할아버지가 정말로 쓰러지기라도 할 것 같아서, 내가 나섰다.
“거짓말하지 마!”
“뭐?”
“아마 꽤 오래전부터 넌 시벨을 가장하고 있었을 거야. 대충 시벨이 대여섯 살일 때? 혹은 더 어릴 때일 수도 있겠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걸 보니, 외조부의 충격을 걱정하는 건가? 친절하신 황녀님이군.”
나는 코웃음 치는 놈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외모가 큰 변화가 없잖아. 머리 색 눈 색 정도만 달라졌지, 열두 살짜리에서 성장만 한 셈이야. 아마 시벨로 가장하고 있던 모습이, 네 열두 살 때 외모겠지.”
“……!”
“게다가 너 시벨인 척하고 있을 때랑 지금 행동과 말투에 큰 변화가 없어. 그게 네가 오래전부터 시벨인 척하고 있었다는 증거야.”
진짜 시벨이 이자의 어린 시절과 쌍둥이처럼 닮은 게 아니라면.
저 외모 자체가 증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꽤 오래 전부터 시벨로 가장한 채로 지냈다- 라는.
게다가, 일부러 가련한 척할 때를 제외하면, 이 녀석의 행동과 말투는 지난 사흘간과 지금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니 할아버지가 손자로 알고 지낸 시벨은 결국 변장한 이자였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면 진짜 시벨은 훨씬 오래전에 이미 죽은 걸 수도 있겠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차라리 그게 더 낫겠다 싶었다.
하루아침에 손자가 뒤바뀐 것도 본인이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보다는.
그때, 내 말에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
“그러고 보니, 시벨이 세 살 무렵에 크게 아파서, 베아트릭스가 비체가의 영지로 데리고 내려간 적이 있었다. 그 전에는 수도의 비체가 저택에서 지냈었는데……. 설마!”
‘그거다!’
증거나 증인을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만에 하나 그 시기가 아니더라도, 그때 바뀐 걸로 우길 생각이었다.
그때.
‘어?’
내내 <궁예> 스킬의 부가 효과가 켜져 있긴 했지만.
이자가 그랑디오르 공작보다 강력한 사교도라 속내는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다 깨지던 시스템 메시지의 일부가 정상적으로 보였다.
[파헬 : ‘%^%#@@ 설마 시기까지 눈치채다니*&;$’]
그 메시지는 순식간에 다시 에러 표시로 뒤덮였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봤다.
‘정말 그때 시벨이 병으로 잘못된 거구나!’
내세울 왕족을 잃고 망연한 베아트릭스의 앞에, 사교도가 나타났던 것이다.
좋아.
이걸로…….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어!’
하지만 놈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말이다! 진짜 시벨이 내 손에 어떻게 죽었는지……!”
나는 고개를 삐딱하게 모로 기울이며 물었다.
“너 시간 끌려고 그러는구나? 그게 소피아의 명령이었어?”
놈의 눈동자가 잠시지만 분명히 떨렸다.
<궁예> 스킬은 여전히 먹통이었지만, 내 지적이 놈의 약점을 찔렀다는 걸,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