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9화 (180/218)

Level 25. 메인 퀘스트 : 이번엔 사로잡힌 왕자님? (07)

***

후드득.

박살 난 나스카 성의 파편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생각보다 마력 소모가 컸다.

1km가 넘는 레비아탄의 거대한 몸체만큼이나, 외피는 두툼한 데다 단단했고.

내부의 나스카 성 역시도 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그걸 다 박살 내자니 마력도 체력도 어지간히 소모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미하일 외의 나스카 일족이 성안에 있진 않다는 사실.

성을 부수다가 살아 있는 사람을 발견했으면 무시하기 힘들었을 테니까.

어쨌든, 나는 마력과 아스트라를 이용해 전부 부수고 뜯어가며 들어갔다.

안으로, 또 안으로.

그 결과, 마침내 도달해 냈다.

시스템이, 아니 미하일이 보여 주었던 그가 있는 위치까지.

하지만 미하일이 이 위치를 얄려 준 이유와는 정반대의 일을 할 셈이었다.

언뜻 보면 나무뿌리 혹은 거대한 혈관 같은 것에 미하일은 뒤덮여 있었다.

그것들은 탐욕스럽게 미하일을 휘감고서 그의 마력을,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중이다.

그래서일까.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지금의 미하일은 훨씬 더 수척해 보였다.

창백하고 마른 얼굴에, 꼬챙이처럼 가느다란 팔다리.

미하일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휘둥그레진 금빛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겨우 열넷? 열다섯? 정도밖에 안 된 앳된 얼굴.

잔뜩 수척해진 미하일은 멍하니 물었다.

“……왜, 여기에?”

정말이지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미하일다운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동시에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연히 너 한 대 패 주려고 왔지!”

그가 원한 대답이 아닐 거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가 기뻐할 대답이라는 것 역시, 확신했다.

잠시 홀린 듯 바라보던 미하일은 머뭇거리다가, 겨우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따스한 체온이 손끝을 조심스레 감아 왔다.

그는 무언가 목이 멘 듯이 중얼거렸지만.

“서나야, 나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서나가 아니라, 아나트리샤야.” 

그가 준 두 번째 생에 얻은 이름이, 지금의 내 이름이니까.

“그리고.”

그의 마른 손을 잡아 거칠게 당기면서, 외쳤다.

“지금은 한가하게 이런 대화를 하고 있을 여유가 없어!”

동시에 아스트라가 내 의사에 따라 모습을 바꾸었다.

거대한 금빛 새의 모습.

어릴 때 태양의 마력을 활용할 때 보인 적 있는 형태와 같았다.

그때 새의 모습을 띤 마력은, 전생에 내가 아스트라를 활용하던 형태를 흉내 낸 것이었다.

그게 익숙했으므로.

당연히 지금의 아스트라는 어릴 때 사용한 것에 비해 몇 배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금빛 새가 괴성을 내지르며 거대한 발톱을 휘둘러, 미하일의 몸을 얽어맨 부정의 마력을 찢었다.

키이이이----!!!

소름 끼치는 소음이 울리며, 미하일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부정의 마력을 가르고 부쉈다.

레비아탄의 신체와 부정의 마력이 뒤엉켜 만들어진 촉수가, 우리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정확히는 미하일을.

거대해지고 강화된 육체를 유지하게 해 주는 제 코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건 제법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다 부숴 버리면 그만이야!”

어차피 다 박살 내고 들어온 참이다.

좀 더 부순다고 티도 안 난다.

아스트라가 변화한 금빛 새가 날개를 휘두르자, 가는 촉수들이 속절없이 녹아내렸다.

그중 조금 전까지 미하일에게서 밤의 마력을 꽤 뽑아 낸 커다란 촉수는 바로 힘을 잃지 않았다.

꽤 날렵하게 달려드는 것을, 아스트라가 부리로 낚아채어 두 동강 냈다.

뿌득!

마침내 미하일의 몸이 레비아탄에게서 완전히 분리되었다.

그것만으로 주변의 떨림과 흔들림이 커지는 느낌이다.

괴물이 제 심장을 뜯긴 걸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미하일은 힘없이 내 품 안으로 쓰러졌다.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 아니, 리샤. 지금이라도 날…….”

“헛소리 작작 해. 진심도 아니면서.”

“……!”

“레비아탄과 소피아를 처리하고 나면, 넌 변명해야 할 일이 아주 많을 거야. 사과할 일도.”

내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를 바랐는데, 불가능했다.

이를 악물고, 겨우 말을 끝냈다.

“사과받아야 할 일도.”

나는 순식간에 흔들림과 떨림을 지우고서.

최대한의 마력을 전개한 아스트라로 나와 미하일을 뒤덮어 보호했다.

내가 이미 부수고 들어온 구멍이 있었지만, 이미 순식간에 막힌 뒤였다.

레비아탄은 물과 얼음으로 이루어진 마물이니 이런 수복이 쉬웠으니까.

하지만 이까짓 것들이 감히 내 앞을 막을 수는 없었다.

최대한으로 뽑아 낸 마력을 두른 아스트라가 그대로 앞으로 돌진했다.

콰드드득!

나스카 성의 잔해와 레비아탄의 몸체가 녹아내리고 부서져 내리며, 서서히 탈출구가 생겨났다.

***

쿵! 콰광!

레비아탄의 몸에서 떨어진 얼음덩어리와 부서진 성의 파편이 빙해를 부수며 폭음이 울렸다.

그나마 인가가 없는 빙해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이라, 인명 피해가 없는 상황이다.

조금만 위치가 바뀌어 하스티아 왕성이나 그 주변의 거리 위에서 이런 전투가 벌어졌다면.

반드시 사상자가 나왔을 거다.

루퍼스리안은 초조함 가득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허공에 뜬 레비아탄이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치고 있었다.

크아아아---!!!

괴성이 눈보라 가득한 하늘을 찢었다.

명백히 타격을 받고 있는 증거였다.

‘역시 리샤야. 확실하게 약해지고 있어.’

레비아탄은 그가 기억하는 전생 때보다 두 배는 거대하고 또 강력했다.

물론 지금의 전력 또한 그때보다 배 이상으로 강력했다.

그때는 부모님을 비롯한 S급 헌터 중 많은 수가 전사한 상태였고.

지금처럼 레비아탄 공략에 유용한 속성의 마력을 가진 이들이 많지 않아서 힘들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훨씬 유리하다.

‘레비아탄을 약화시키면 당장에라도 없앨 수 있을 정도야.’

그러니 레비아탄을 저렇게 거대하게 만들고 강화한 밤의 마력을 제거해야 했다.

정확히는 그 마력의 근원.

미하일을.

루퍼스리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역시 내가 들어갔어야 했나.’

여리고 착한 동생은 전생에 자신의 등을 찌른 배신자마저 구하려 하고 있지 않은가.

밤의 마력을 공급하는 근원을 제거하는 건, 미하일을 죽이는 걸로도 충분히 가능했다.

이를 알면서도, 아나트리샤는 미하일을 살려서 구해 내기 위해 들어간 것이다.

제 몸의 위험은 무시하고서.

으득.

절로 이가 갈렸다.

전생에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원인 제공을 한 것이 누구인지는 상관없었다.

그보다 몇 배로 중요하고 또 이가 갈리는 건, 하나였다.

‘놈이 리샤를 배신했다는 것!’

동생은 그가 배신하지 않았다 말했다.

하지만 루퍼스리안은 전생에 보았다.

놈이 동생의 등을 찌르는 모습을.

대체 무슨 이유와 사정이 있다한들, 그것만은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유리관에 누운 채 다시 나타난 그 얼굴을 봤을 때, 괜히 지독히 불쾌했던 게 아닌 거다.

루퍼스리안은 낮게 협박했다. 절대 레비아탄의 안에서는 들리지 않을 경고의 말을.

“네놈, 또 내 동생 울리면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게 만들어 주겠어!”

이를 갈면서도, 루퍼스리안은 동생의 부탁을 지켰다.

안으로 따라 들어가서 방해하지 않고서.

레비아탄을 사방에서 공격하며 내부에서 싸우고 있을 동생의 부담을 줄이려 노력했다.

‘리샤가 다치지 않고 무사히 오겠다고 약속했으니까!’

그 약속을 신뢰하고서, 지금은 할 수 있는 걸 해야 했다.

그게 오빠로서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이것은 가족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다들 불안과 걱정, 그보다 더욱 굳건한 신뢰를 공유하고 있었다.

‘리샤! 어서 돌아와!’

그때였다.

지금까지 중 가장 끔찍하고 처절한 괴성이 울렸다.

***

전력으로 탈출구를 만들고 비집어 늘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미하일은 품 안에서 축 늘어져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야말로 괴물에게 갇혀서 구해 주길 기다리고 있는 왕자님 꼴이다.

마력과 체력 소모가 이미 상당했지만, 그를 구해 나가겠다는 계획이 불가능하진 않았다.

이대로라면 안으로 쳐들어올 때보다 느리긴 하지만, 탈출은 어렵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누구 허락을 받고 내 애완동물의 먹이를 훔쳐 가는 거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순간.

나는 공중제비 돌아 뒤로 피했다.

간발의 차이로 내가 조금 전까지 있던 장소에 소피아가 휘두른 거무튀튀한 채찍이 내리찍혔다.

쾅!

나스카 성의 잔해가 박살 나며 레비아탄의 몸체가 파괴되더니 바닷물이 쏟아졌다.

“훔치다니? 내 걸 찾아가는 것뿐이야.”

거대한 구멍이 소피아의 등 뒤로 뚫려 있었다.

하얀 하늘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소피아를 쓰러뜨리고, 한 번만 더 도약하면 탈출할 수 있었다.

나는 늘 여유롭던 미소를 약간 잃은 소피아의 상태를 눈치챘다.

“……당신은 배신자를 용서 안 하는 거 아니었어요? 그만은 예외인가요? 그 정도로 특별해요?”

어쩐지 조금 초조해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나는 그녀를 비웃으며 물었다.

“왜? 내가 미하일을 용서하면 네 계획이 망가지기라도 해?”

그 순간.

소피아의 고운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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