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2화 (183/218)

Level 26. 메인 퀘스트 : 혼선 (01)

미하일의 기억?

여기서 갑자기 왜 미하일의 기억이 나와?

에릴의 일 때처럼 아이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피아가 칼키나를 통해 남긴 사념과도 좀 달랐다.

그보다는.

[^%#[email protected]/%%@@+※⁂]

시스템 오류로 인한 혼선과 더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긴 생각해 보면 당연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미하일이 뭔 짓을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시스템이 형식을 빌려 그와 나의 영혼이 연결되어 있는 건 틀림없으니까.

내 의식 속에서 퀘스트를 주고 아이템과 기타 등등을 퍼준 건 미하일 본인이었지 않은가.

에러로 그 연결을 통해 기억이 일부 흘러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 이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상황. 분명히 나도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다.

사실 사건이랄 것도 없었다.

시답잖은 농담과 주로 내가 그에게 면박을 주는 일상의 한 장면.

‘그런데…… 왜 내가 이렇게 이뻐 보이지?’

정확히는 전생의 나인 안서나 말이다.

거울로 보던 실제 외모보다 미하일의 기억에 남은 내 얼굴이 훨씬 예뻐 보였다.

마치 뽀샤시해지는 필터라도 끼운 것처럼.

누가 필터를 끼운단 말인가? 남의 기억에?

‘게다가 저 때 일주일 동안 잠도 못 자고 싸워서 엄청나게 꼬질꼬질 했는데?’

몬스터의 피와 척수액 등등을 뒤집어써서, 옷 색이 변색될 정도였다.

머리도 못 감았으니 다 떡져 있어야 할 텐데…….

엘뭐라고 하는 샴푸를 쓴 것처럼 머릿결이 반짝반짝 사락사락해 보였고.

닷새 넘게 세수도 못 했을 얼굴이 화장한 것처럼 뽀얗고 발그레했다.

나는 합당한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 자식, 변태 같은 취향인 거 아니야?’

미하일의 정체에 대해 깨달은 이후 계속 아련함과 동정심, 또한 정체 모를 가슴 저릿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게 한순간에 와장창 다 부서져 버릴 위기였다.

***

나의 미하일에 대한 이미지 와장창과는 별개로.

미하일의 기억은 체계적으로 나타나지도 않았고.

그의 인생 전체를 제대로 보여 주는 것도 아니었다.

산발적인 기억의 파편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도 할 수 없는 단편적인 영상이나 소리들만 잠깐 스쳐 가기도 했다.

그러다, 어떤 ‘장면’ 하나가 내 앞을 스쳤을 때.

나는 처음으로 손을 뻗어 그것을 잡으려 시도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성공했다.

***

미하일 칼라닌이 대현자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직업을 가진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시스템의 총애를 받아 과거와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정보를 축적하고 분석하는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예지력은 그가 가진 이 능력을더더욱 굳건하게 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지는 확정된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이 높은 여러 미래를 확인하고, 그중 하나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가 소피아의 배반을 예지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증거였다.

아마도 사교도의 성녀였던 소피아의 힘이, 한 세계의 멸망을 바라는 거대한 악의가 그의 예지를 막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 중 미하일은, 미래의 한 장면을 예지했다.

눈앞에 있는 안서나의 모습 위로 겹쳐지는 미래의 형상.

그것은, 안서나의 등을 찌르는 미하일 칼라닌의 모습이었다.

그렇다. 바로 자신의.

“……!”

그는 드물게 진정으로 경악했다.

얼마나 놀랐느냐면 전투 중에 집중력을 잃고 적의 공격을 허용할 뻔했다.

아마도 안서나가 그의 앞을 지키고 있지 않다면 그렇게 되었으리라.

“정신 차려! 어디다 정신을 놓고 있는 거야!”

말은 툴툴거리면서도 걱정을 감추지 않는 그녀의 앞에서,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네 등을 찌르는 미래를 봤다-라고는.

미하일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런 미래는 오지 않아. 예지가 반드시 이루어지는 건 아니야. 내가 하지 않는다면, 그 미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자신을 타일렀다.

그러니 그녀가 다칠 일은, 그것도 자신의 배신으로 인해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것이었다.

불안과 위태로움을 의식적으로 감추었다.

하지만 감춘다고 존재가 사라질 리는 없었다.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터다.

답지 않은 짓을 한 것은.

알 수 없는 초조함에 떠밀리듯이, 예정에 없던 고백을 한 것은.

“그러니까, 지금 내가 널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뭐?”

“이 말은 농담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줘.”

“너 지금 사망 플래그 세운 거 알아? 꼭 전투 앞두고 그런 말 하면 꼭 죽더라.”

“아, 그러면 취소. 마왕 잡고 나서 다시 고백할게.”

“……그게 더 강한 플래그거든.”

이 고백은 그녀에게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 쐐기를 박는 것에 가까웠다.

스스로의 감정을 자각한 것은 꽤 되었으나.

이를 입에 담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사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나고 안정된 삶을 가질 수 있게 될 때까지는, 미래를 상상하는 관계를 더 쌓아 올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앞으로 더 나아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예지를 본 이후, 그는 견딜 수가 없어졌다.

이런 지독한 공포는 처음이었다.

언젠가, 저 끔찍한 미래를 이 손으로 이루어 버리고 말 것 같아서.

그러니 저 고백은 자신에게 쐐기를 박는 과정이었다.

‘나는 서나를 사랑해. 그러니 내가 그녀를 배신할 일도, 다치게 할 일도 없어.’

-라는, 다짐.

감정을 말에 담아 표현하면, 그것은 더더욱 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고백한 이후, 마음이 더더욱 커져 간 건.

‘그래. 내가 그럴 리 없어. 절대.’

이건 결심이었다. 확신보다도 더욱 굳은.

그들이 마지막 전장으로, 마왕 소환지로 향하기 전날의 일이었다.

격렬하고 처절한 전투였다. 이미 게이트가 열리기 전의 1/10밖에 남지 않은 인류라도 살리기 위한.

그야말로 멸망만은 피하기 위한 발버둥.

그리고 그 마지막 전투는 인류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다.

사교도는 전멸했고.

소피아는 궁지에 몰렸다.

살아남은 전력은 이쪽이 우위였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미하일은 위화감을 느꼈다.

아직 파괴되기 전의 마왕 소환진에서.

그의 ‘눈’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읽는 힘이 소피아가 필사적으로 가려 놓은 것을 눈치챘다.

한발 늦었지만.

‘이건…… 마왕 소환진이 아니야.’

그렇게 오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력한 부정의 마력을 품고 있는 마법진.

진의 표면에 새겨진 마법은 마왕을 불러들여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눈속임이었다.

소피아가 타격을 입어 궁지에 몰리고 나자, 그리고 바로 곁에서 마법진을 파괴하기 위해 접근한 지금에서야.

겨우 제대로 읽어 낼 수 있었다.

‘소피아의 육체 그 자체가 진짜 마왕 소환진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 소피아를 죽인다 해도 소용없었다.

소환진 발동의 스위치 중 하나가 소피아의 죽음이니까.

‘지금 소피아를 죽여도 무조건 마왕 소환이 시작될 거야.’

그리고 소환진으로 가장하고 있는 마법진의 진짜 용도는 미하일을 더욱 경악하게 했다.

강력한 제압과 세뇌 마법이 새겨져 있었고, 또한 마왕의 매개체가 될 이를 지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마법진이 없어도 마왕 소환은 가능하지만, 마왕의 힘은 약해진다.

그리고, 마왕의 매개체로 지정한 대상은…….

으득. 미하일은 이를 악물었다.

눈앞에 선 여자, 금빛 아스트라를 휘두르는 안서나를 보았다.

‘마법진이 제압하고 세뇌하여 마왕 소환의 매개체로 삼으려는 대상은……, 안서나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서나가 물었다. 소피아를 몰아붙이면서.

“소환진 파괴에 얼마나 걸려?”

소피아는 피에 젖은 입술로 웃었다.

왜 저리 승리의 미소를 짓는지, 미하일은 알 수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그 자신만이 그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마법진을 파괴하는 순간. 서나가 마왕 소환의 매개체로 고정된다.’

이 자체가 덫이었다.

소피아는 패배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 자리에 인류 최강의 헌터인 서나가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도록.

그리고 소환진으로 가장한 마법진을 부수는 순간.

서나는 마왕의 매개체로 고정되게 된다.

그리고 소피아를 죽이면, 안서나를 매개체로 마왕이 소환되는 최악의 결과가 이루어지게 되는 거다.

눈앞에 얼마 전의 예지가 떠올랐다.

자신이 그녀의 등을 찌르는 모습.

어쩌면, 그런 미래가 오게 되는 이유는…….

이 순간, 그의 예지가 잔인한 미래를 알려 준다.

‘마왕 소환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소피아를 죽이든 죽이지 않든, 소환은 무조건 이루어져. 소피아를 죽이지 않아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발동하게 되어 있어.’

그렇다면 소환될 마왕의 힘을 줄이는 방법은…….

안서나를 죽이는 것.

다시 한 번 그녀가 물었다.

“아직 멀었어, 미하일?!”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날 믿고 기다려 줘, 서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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