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26. 메인 퀘스트 : 혼선 (02)
그야말로 찰나의 시간.
하지만 미하일의 두뇌 속에서는 영원보다 긴 시간이 흐른 것이기도 했다.
그동안 미하일은 자신의 분석과, 예상, 예지력까지 모조리 동원해서 찾아내려 했다.
어떤 수를 써서든 마왕 소환을 막을 방법을.
아니라면, 적어도…… 한 사람만이라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하지만 수백, 수천 가지의 가능성을 조합하여 내린 분석의 결과는 똑같았다.
단 두 개의 미래뿐.
‘안서나를 매개체로 마왕이 강림한다.’
혹은.
‘지금 안서나를 죽여서, 약화된 마왕이 강림한다.’
그리고 양쪽의 경우 모두, 최종 결과는 인류 멸망이었다. 다른 건 그에 걸리는 시간 정도.
다른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잔인하게도.
저도 모르게 입안을 다 짓씹었는지, 혀끝에 녹슨 쇠붙이의 맛이 달라붙었다.
두뇌가 한계를 넘어서 예지와 판단을 반복하다 보니, 지독한 열이 오를 지경이었다.
과부하가 걸려 의식이 희미해지려 하는 몸에, 마력으로 충격을 주어 의식을 강제로 깨웠다.
코피가 주르륵 흘렀지만 닦을 정신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노력했음에도, 다른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지독하게 암담한 끝 외에 아무것도 없을 듯 보이던 찰나.
그 영원으로 잡아 늘려 놓은 순간 속에서, ‘무언가’가 개입했다.
[비정상적인 시스템에 대한 개입 확인…….]
[위험도 *&^#@급 상황에 따른 한시적 예외 적용.]
[유저: ‘미하일 칼라닌’에 대해 관리자 권한을 제한적으로 승인합니다.]
시스템이었다.
모든 헌터들을 보조하던 존재.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한, 인류 전체의 방어체계.
그것이 미하일의 의식과 닿았고.
극히 예외적인 판단으로 미하일에게 시스템의 관리 권한을 넘겨준 것이다.
인류 모든 헌터들 중 그보다 많은 정보와 그에 걸맞은 분석력을 가진 이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시스템을 통해 새로 얻게 된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찰나의 순간, 미하일은 자신이 보던 세상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했다.
시스템 전체가 가진 정보에 비하면 이것조차 극히 일부일 텐데도.
시스템이 넘겨준 권한과 정보가 미하일의 능력과 합쳐지며, 드디어 단둘뿐이던 가능성에 세 번째가 나타났다.
‘이건!’
하지만 그건 그가 그려온 미래 중 손에 꼽힐 정도로 너무나도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길이었고.
이루어질 가능성 또한 세 갈래의 미래 중 가장 낮았다.
하지만.
하지만…….
미하일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는 자신의 피가 떨어진 마법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안서나를 마왕의 매개체로 지정하는 마법진을.
그리고 조금 전 시스템을 통해 얻은 정보와 능력으로 겨우 가능해진 일을 했다.
파아아앗---!!!
겉으로 보기에는, 이 마법진을 파괴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일 터였다.
소피아조차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한편 서나의 공격을 쳐내고, 서운이 일으킨 불꽃을 피해 움직이면서 소피아는 남몰래 웃었다.
더 재볼 것도 없이 확신한 것이다. 자신의 승리를.
하지만, 다음 순간.
“……?”
마법진은 파괴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가 수정되어 있었다.
마왕의 매개체 지정.
그 대상이 안서나에서 미하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소피아는 처음으로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리며 비명을 질렀다.
“너!!! 감히!!!”
마법진의 수정이 끝난 순간. 미하일은 그 위에 일정 시간이 지난 뒤 폭발하는 마법을 겹쳤다.
폭발까지의 시한은 겨우 몇 초.
하지만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아. 내가 본 것이 이 순간이었구나.’
미하일의 아스트라가 단검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고.
완전히 방심한 채로 드러난 안서나의 등에 칼을 꽂는 데에는.
푹!
“어?”
서나는 천천히 돌아보았다.
미하일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게 배반당한 그녀의 표정이 어떨지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러나, 눈을 피할 수도 없었다.
이 순간이, 그가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눈에 담을 수 있는 때가 될 테니까.
그래서 그는 보고 말았다.
분노와 고통마저도 잊은 채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서나의 얼굴을.
옆에서 안서운의 비명이 울렸다.
“서나야!!!”
그 목소리를 들으며, 미하일은 눈을 감았다.
예정되어 있던 폭발이 일어났고.
콰광--!
그의 계산대로 매개체의 지정이 바뀐 마법진이 파괴되며 발동했다.
강력한 마력의 그물이 그의 몸과 영혼을 옭아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과정은 이미 다 끝나 있었으니까.
지금 미하일의 손에는 아스트라가 남아 있지 않았다.
부상을 입은 서나의 상처에 꽂혀 있지도 않았다.
그 행방을 아는 것은 미하일뿐이었다.
‘제대로 서나의 영혼에 흡수되었구나. 다행이야.’
미하일의 아스트라에 담긴 건 그의 마력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 손으로 조각낸 영혼의 반절, 그리고 그것과 융합한 상태의 ‘맞춤형 시스템’.
제한적이긴 하지만 시스템의 관리자 권한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전달 과정에서 그가 가진 스킬과 아이템 등 몇몇 가치 있는 것들의 데이터도 함께 넘어갔다.
사실상 지금 미하일의 육체에 남겨진 건, 빈 껍데기에 가까웠다.
육체 전체와 영혼의 절반은 그렇게 말하기에는 너무 큰 대가였지만.
하지만, 충분한 것도 아니었다.
마왕 소환의 매개체로서 제대로 기능하기에는 말이다.
이대로라면 불완전한 매개체 때문에 소환된 마왕까지 약화되고 말 것이다.
미하일이 저지른 일을 다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계획의 실패를 직감한 소피아의 눈에 절망이 어렸다.
그 순간, 미하일은 남은 마력을 긁어모아 소피아의 목을 베었다.
자신의 계획이 마지막 단계에 완전히 망가진 충격으로, 소피아는 미처 저항하지 못했다.
서걱!
마왕 소환진을 발동시키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소피아의 몸이 소환진으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
미하일은 제 몸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강림하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그건 한 세계를 증오하는 악의였고.
살아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잡아먹기 위해 달려드는 굶주린 짐승이었다.
일개 인간의 정신으로는 다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존재라는 건 분명했다.
영혼과 육체가 잠식당하는 것을 느끼며, 그는 자신의 마력 회로와 영혼의 반쪽에 남겨둔 장치를 발동시켰다.
시스템과의 융합으로 만들 수 있었던 장치.
그것은 마왕의 존재를 이 세계에 잡아 두고, 봉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서나에게 보낸 것은…….
‘이 세계의 모든 영혼을 다른 차원으로 옮기고 형태를 바꾸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마법.’
이것은 서나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발동되도록 되어 있었다.
현재 지구에서의 삶과 똑같은 세계와 외모여서는 안 된다.
마왕은 이곳에 봉인하더라도, 언제 다시 풀려나 자신이 멸망시켜야 할 이들을 찾아내려 할지 모르므로.
그러니 이것만이 마왕을 피해 인류가 두 번째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세 가지 미래 중 유일하게 희망이 있는 길이었고.
가장 실현 가능성이 낮은 미래이기도 했다.
“부디…… 성공하기를…….”
그것이 미하일의 첫 번째 생 마지막 기억이었다.
***
미하일의 시도는 절반만 성공했다.
안서나가 마왕의 매개체가 되는 것을 막았고.
마왕을 약화시키고, 인류 전체의 영혼을 환생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소피아를 비롯한 사교도의 영혼 전체를 막아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가장 큰 실패는…….
소년은 어두운 방에 누워 자신의 자그마한 손을 올려다보았다.
꼬챙이처럼 마른 손.
마력 회로가 다 망가지고 영혼은 조각난 끔찍한 상태의 육체.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는 몸.
흐릿한 목소리가 한숨처럼 번졌다.
“왜… 어째서 나까지 다시 태어난 거지…….”
미하일은 알고 있었다.
한번 마왕의 매개체로 지정된 흔적은 그의 몸과 영혼 전체에 남아 있었다.
그는 사교도가 아니었으므로 부정의 마력이 없었고.
마왕이 아니므로 마왕의 마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영혼에 낙인처럼 새겨진 것은 그대로였던 것이다.
‘마왕의 매개체.’
이는 이 세계에서까지 다시 한번 마왕 소환이 가능하다는 의미였으며.
마왕 소환이 시작되면, 처음 지정되었던 그는 반드시 다시 마왕의 매개체로 기능하게 될 거라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그렇게 되기 전에…… 끝내야 해…….’
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소피아가 존재하는 한, 매개체인 자신의 존재가 없더라도 마왕 소환 자체는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의미 없이 죽어서는 안 된다.
유일하게 소피아를 대적할 수 있는 이.
그가 끔찍한 대가를 치러 가며 인류를 이 세계에서 두 번째 생을 얻게 하려던 이유.
‘서나야…….’
그녀가 필요했다.
그녀가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전생보다 훨씬 더 빠르게.
그래서 소피아와 사교도의 음모를 막아 낼 수 있도록.
이번에는 가족과 행복을 모두 지켜낼 수 있도록.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영혼 반쪽은 그녀의 안에 있었다.
그렇기에 다시금 그녀의 영혼과 연결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그저 느끼는 것만으로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었으므로.
태어난 지 겨우 1년여.
아직 깊이 잠든 그녀의 영혼을, 그가 깨웠다.
[의식 로딩 성공!]
[당신은 환생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