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게이트 안은 어두웠다.
시야가 익숙해지기 전에 먼저 반응한 건 후각이었다.
‘…술 냄새.’
공간 가득 술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익숙해진 시야로 가득 쌓인 나무통들이 보였다.
성인 남성도 가뿐히 들어갈 것 같은 크기의 오래된 나무통들이었다.
나는 들고 온 가방에서 옷 뭉텅이를 꺼내 들었다. 그 안에는 식칼이 들어 있었다.
회귀 전 사용하던 손에 익은 단검들이 없었기에 아쉬운 대로 가져온 것들이었다.
옷 뭉텅이는 다시 가방에 넣어 구석에 던져 놓았다.
게이트가 닫히면 외부에서 들어온 것들은 모조리 함께 내보내지기 때문에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외투 역시 벗어 가방 위에 걸쳐 두었다.
그리고 안을 둘러보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데.
퍽!
뭔가 묵직한 것이 차였다.
“켁!”
작은 덩어리가 데굴데굴 굴러가며 신음을 흘렸다.
‘몬스터?’
나는 식칼을 고쳐 잡으며 앞의 어둠을 경계했다.
“아이고, 아이고! 늙은이 죽네!”
가느다랗고 잔뜩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이트 안에서 말이 통하는 몬스터라면 둘 중 하나였다.
게이트의 안내자 역할, 혹은 아주 위험한 몬스터.
하지만 아직 시작의 날임을 감안한다면 후자의 몬스터가 나올리는 없었다.
안내자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독한 술 냄새가 훅 풍겨오는 것이, 아무래도 잔뜩 취한 채 쓰러져 자고 있던 모양이었다.
“술 약탈하러 왔으면 술만 가져가지 늙은이는 왜 팹니까? 아이고, 뼈 부러졌네, 이거! 치료비도 안 주고 죽어라 빚어놓은 술값도 안 주고!”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 속을 바라보자 작은 난쟁이가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난쟁이의 말 덕분에 나는 이 장소를 유추할 수 있었다.
‘난쟁이들의 술 숙성 창고.’
사람의 반절도 되지 않는 작은 덩치의 난쟁이들은 술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리고 가장 술을 잘 빚는 놈들이기도 했다.
‘할 일은 보호겠네.’
고블린 또한 술을 좋아하기에 난쟁이들의 술 창고를 자주 약탈한다. 지금 저 난쟁이는 나를 고블린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식칼을 거두며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술 약탈? 고블린들이 오는 모양이지?”
그제야 난쟁이가 바닥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에엥? 뭐야? 고블린이 아니잖아!”
난쟁이는 버럭 화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에잉, 쯧! 웬 인간이 들어와서는. 썩 꺼지지 못합니까?”
난쟁이가 공손하게 호통을 쳤다.
난쟁이들은 자신들을 제외한 모두에게 까칠한 놈들이라 누구에게나 저런 태도를 보였다.
처음 난쟁이와 마주쳤을 때는 짜증이 났었지만 몇 번 마주치고부터는 그러려니 했다.
“꺼질 길을 모르겠는데. 안내 좀 해줘 봐.”
내 말에 난쟁이가 잔뜩 구시렁대며 수염 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화악!
갑자기 쏟아진 빛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수염 속에서 꺼낸 것은 작은 호롱불이었다.
“따라오시죠, 인간!”
난쟁이가 외쳤다. 불빛에 비친 난쟁이는 희끗희끗한 수염을 풍성하게 기른 모습이었다.
나는 난쟁이의 뒤를 따랐다.
몇 발짝 떼었을까.
위쪽에서 쿵쿵거리는 발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쿵!
한둘이 아니었다.
“아, 아이고, 아이고! 진짜가 왔네, 진짜가 왔어!”
난쟁이가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술을 약탈하려는 고블린들이 나타났습니다.]
[몸을 숨겨 고블린들을 피하거나 고블린들을 제압하십시오. 0/30]
본격적인 퀘스트가 주어졌다. 퀘스트의 수행 결과는 게이트의 최종 보상에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선택지가 주어지는 경우, 어느 정도의 노력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보상이 달라졌다.
‘숨는 것보다는 몰살 보상이 더 좋지.’
게다가 그래야만 난쟁이들의 숨겨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숨어, 숨어야 해!”
난쟁이가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 했다.
나는 그런 난쟁이의 뒷덜미를 잡아 올렸다.
“으악! 이 인간 놈! 당장 놓으십시오! 숨어야 합니다!”
난쟁이가 힘껏 버둥거리며 외쳤다.
“숨긴 왜 숨어? 기껏해야 고블린들인데.”
내 말에 난쟁이가 기가 찬 한숨을 내쉬었다.
“하이고, 인간. 미치셨습니까? 기껏해야 고블린? 인간이 고블린을 잘 모르는 모양인데 그놈들이 얼마나 영악한지 압니까? 게다가 행동은 어찌나 또 빠른지!”
이 난쟁이는 나를 평범한 각성자 취급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꺼지시죠!”
난쟁이가 내게 대롱대롱 들린 채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다시 구시렁댔다.
“아니, 젠장. 꺼지지도 못하겠네. 나갈 길이라고는 저기뿐이니. 어쨌든 나는 살아야겠으니까 숨게 좀 놓으십시오!”
“내가 도와줄까?”
난쟁이가 빤히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허. 인간이 정말로 실성한 모양일세. 인간, 정신 차리십시오. 저놈들 보면 뭐 한 마리라도 제대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응.”
내 단호한 대답에 난쟁이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농담도 농담다워야 농담입니다, 인간. 참나. 인간이 한 마리라도 잡으면 제 손으로 술을 빚겠습니다, 아주.”
난쟁이의 눈빛에 무시가 가득했다.
‘난쟁이 손 술이라….’
끔찍했다. 맛도 없을 것 같았다.
“그건 됐고. 다른 걸 걸어봐.”
“뭘 자꾸 걸으랍니까? 말도 안 되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우리 자존심인 최상급 난쟁이 술을 걸고!”
난쟁이가 버럭 외쳤다.
‘최상급 난쟁이 술?’
눈이 번쩍 뜨였다.
분명 회귀 전 들은 적이 있었다.
최상급 난쟁이 술은 S급 아이템 중 하나였다.
일회용에 일시적인 효과이긴 했지만, 한 모금만 마셔도 일정 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를 두 배로 뻥튀기시켜주는 굉장한 효과를 지녔다.
하지만 그만큼 구하기가 어려웠고 그걸 구했던 사람도 딱 한 번밖에 얻지 못했다며 굉장히 아쉬워했었다.
‘그 술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나는 확답을 받기 위해 다시 한 번 물었다.
“그 말은 한 마리를 잡으면 최상급 난쟁이 술을 한 병 주겠다?”
답답한지 난쟁이가 가슴을 퍽퍽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준다, 줘! 한 마리 잡고 와서나 얘기하시죠, 인간!”
난쟁이의 말에 나는 씩 웃었다.
쿵, 쿵, 쿵!
발소리들이 아주 가까워졌다.
“아이고, 제발 이것 좀 놓으라고요! 인간은 안 숨어도 난 숨어야 한단 말입니다!”
이제 난쟁이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문까지 안내 좀 해줘. 그럼 놔줄게.”
“내려놔야 안내할 거 아닙니까!”
“말로 해.”
결국 난쟁이는 입을 꾹 다문 채 손짓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곧 눈 앞에 문이 나타났다.
“됐습니까? 이제 내려놓으시죠!”
하지만 난 난쟁이를 내려놓지 않았다.
“크르륵!”
문밖에서 고블린들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이고, 아이고, 제발 저 좀 내려주십시오, 인간!”
난쟁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문 아래쪽으로 새어드는 빛 사이로 고블린들의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내가 자신을 내려놓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는지 이제 난쟁이는 고블린을 욕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 고블린 새끼들아! 네놈들 때문에 나도 끝났다! 왜 하필 이럴 때 약탈을 와서는!”
나는 난쟁이를 든 상태로 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후, 문을 냅다 발로 걷어찼다.
쾅!
“흐어업!”
난쟁이가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문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밖, 지상으로 연결된 계단에 가득 차있는 고블린들이 보였다.
130cm의 작은 체구에 험악한 인상의 괴물들.
얇은 가죽 갑옷을 둘러 입고 단검과 손도끼 등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놈들은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아이고, 이 미친 인간이 일을 치네! 어쩌자고 저 문을 부숴서! 인간, 너 문 물어내십시오!”
대롱대롱 들려있는 주제에 아직도 말이 많았다.
나는 숙성 창고의 부서진 문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고블린들은 아직도 얼빠진 얼굴로 떨어져나간 문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손에 든 식칼을 가볍게 휘둘러 멍한 고블린 한 놈의 목을 베었다.
서걱.
쿵!
목을 베인 놈이 쓰러졌다.
바닥에 쓰러진 고블린과 내 손에 들린 피 묻은 식칼.
그 광경을 목격한 난쟁이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다.
“…….”
“술. 줄 거지?”
내가 웃으며 물었다. 난쟁이는 내 말에 대꾸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릴 뿐이었다.
“캬아아악!”
“크에엑!”
고블린들이 그제야 동료의 죽음을 인지하고 포효하기 시작했다.
“아, 아이고, 아이고! 제, 제발 저놈들 좀 죽여주십시오, 인간!”
난쟁이가 잽싸게 태도를 바꾸며 말했다. 나는 코웃음 쳤다.
“미친 인간이랄 때는 언제고?”
“아이고, 제가요? 제가 미친놈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제발, 저 놈들 좀 죽여달라고요!”
나는 내게 휘둘러지는 고블린의 칼을 슥 피하며 물었다.
“대가는?”
내 손에 들린 난쟁이가 비명을 지르다가 얼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예?”
“한 마리에 술 한 병이었잖아. 그럼 얘들 전부면?”
나는 고블린들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내며 놈들을 대강 살폈다.
퀘스트에서 말했던 고블린의 수는 30. 내가 한 놈의 목을 베었으니 남은 건 29마리였다.
“…그, 그런…. 그 정도까지는 안 됩니다!”
난쟁이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나도 그 정도까지는 못 들고 가. 대신 너희 무기고 구경 좀 할까?”
‘회귀 전 쓰던 무기도 거기서 얻었던 거였지.’
난쟁이들의 무기고는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전문적으로 무기를 만드는 놈들이기 때문에 무기고에 있는 것들은 A급 이상이다.
“예?”
난쟁이가 한껏 순수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모른 척하지 말고.”
“아, 아니, 그, 그건 제 소관이….”
난처하다는 듯 난쟁이가 말했다.
나 역시 쉽게 보여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하? 그럼 얘들 그냥 풀어놓을까?”
내가 숙성창고 안으로 물러섰다. 고블린들이 이때다 싶었는지 숙성창고로 발을 들였다.
“아이고, 아이고! 어쩌다 이런 미친 인간한테 걸려서는!”
난쟁이가 통곡했다. 나는 난쟁이에게 확실한 대답을 듣기 위해 난쟁이를 든 손을 앞으로 뻗었다.
“내가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나는 숨으면 그만이야. 대신 너는 쟤들한테 던져주고 숨을 거고.”
고블린들을 향해 난쟁이를 살살 흔들어 보이자, 놈들의 시선이 난쟁이에게 쏠렸다.
“으악! 아이고,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무기고 구경 하십시오!”
고블린 하나가 달려들었다. 나는 슬쩍 놈을 피한 후 발을 걸어 넘어트렸다.
그리고는 다시 난쟁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구경? 구경만 하면 뭐 해. 배만 아프지. 그중에 하나 넘겨.”
“…예?”
난쟁이가 또 모르는 척 되묻는다.
나는 들고 있던 난쟁이를 넘어진 고블린의 앞에 슬쩍 내려놓았다.
“캬악!”
난쟁이를 본 고블린이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악! 아이고, 알, 알겠으니까 이, 이놈 좀!”
난쟁이 역시 비명 섞인 대답을 던졌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 고블린의 뒷목에 식칼을 내리찍었다.
푹!
얼굴에 고블린의 피가 튀었다. 나는 난쟁이의 얼굴 앞으로 고개를 숙이며 씩 웃었다.
“약속한 거다?”
“히익!”
겁먹은 난쟁이가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고블린의 칼을 주워들고 본격적인 고블린 사냥에 나섰다.
고블린은 게이트 안에서 나타나는 몬스터 중에서는 하급 몬스터에 속했다.
하지만 괜히 난쟁이가 한 마리도 못 잡을 거라며 으름장을 놓은 게 아니었다.
고블린은 약삭빠른 놈들이다.
작은 체구를 이용한 빠른 움직임으로 상대를 현혹하기 때문에, 놈들을 처음 상대하는 사람이라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한 마리도 힘들었는데.’
달려드는 고블린들을 베어내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내 첫 게이트는 7년 후였기에 최하급인 C급이라도 지금의 S급보다 난이도가 높았다.
그래서 고블린 50마리를 처치하는 데 3일이나 걸렸다.
게다가 놈들의 현란한 움직임 때문에 다치기도 많이 다쳤었다.
하지만 잘 뜯어보면 놈들의 움직임은 거의 속임수였다. 대부분이 위협일 뿐 공격으로 이어지는 건 몇 없었다.
‘정작 본인들도 겁쟁이라는 거지.’
나는 칼을 찔러 들어오는 놈의 손목을 내리쳤다.
‘거기다 허점투성이.’
놈이 놓친 칼을 잡으며 다른 칼로 놈의 비어있는 목을 베었다.
더구나 놈들은 쪽수를 믿고 밀어붙이는 놈들이었다.
이렇게 한 놈씩 수를 줄이다 보면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기 마련.
“캬아악!”
어느새 놈들의 숫자가 10마리 이하로 줄었다.
겁먹은 놈들이 몸을 돌려 계단을 올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냥은 못 보내지. 난쟁이가 만든 무기를 얻어야 하니.’
나는 양손에 고블린의 칼을 들고 자세를 살짝 낮췄다가 바닥을 가볍게 박찼다.
부웅!
나는 순식간에 놈들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고양이 신의 가호에 속한 전용 스킬인 도약 덕분이었다.
도약은 한 번에 뛸 수 있는 거리를 평소의 수십 배 이상으로 늘려주었다.
이 정도 거리는 걷는 거나 다름없었다.
중간에 한 놈의 어깨 위로 내려선 나는 빠르게 놈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쓰러지는 놈의 어깨를 박차며 다시 도약했다.
후욱!
계단의 꼭대기, 놈들의 도주로에 가볍게 착지한 후. 양팔을 휘둘러 도망가려던 두 놈의 목을 베어냈다.
데굴데굴.
놈들의 목이 계단을 따라 굴러 떨어졌다.
나는 몸을 바로 세우며 계단 아래를 내려다봤다.
머리를 잃은 몸통들 역시 남은 네 놈의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캬….”
“…캬륵….”
놈들은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며 놈들을 거침없이 베어냈다.
그렇게 마지막 놈을 죽이자 내 앞의 바닥에 알림글이 떠올랐다.
[술을 약탈하려는 고블린들을 모두 제압했습니다. 30/30]
[게이트 클리어 보상이 상향됩니다.]
나는 알림글을 밟고 숙성 창고의 안으로 들어갔다. 입을 떡하니 벌린 채 나를 바라보는 난쟁이가 있었다.
나는 난쟁이의 앞에 쪼그려 앉아 양손에 있던 칼을 바닥에 세게 박아 넣었다.
콰직!
난쟁이가 커다래진 눈으로 바닥에 박힌 칼을 보더니. 다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내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