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나는 계단에 쓰러진 고블린의 시체들을 뒤적여 쓸 만 한 단검 두 개를 골라 챙겼다.
그리고 그때까지 멍하게 앉아 있던 난쟁이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숙성 창고의 위는 푸른 숲 속이었다. 인간을 위한 숲이 아니었기에 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살아있는 내비게이션이 없었더라면 나도 쉽게 무기고를 찾아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여기서 꺾으셔야 합니다. 아, 아니. 에잉, 지나쳤잖습니까! 다시 뒤로 가세요, 더, 더, 더! 그만! 아니 왜 또 더 뒤로 갑니까? 인간 말귀 못 알아듣습니까? 네. 여기요. 왼쪽!”
내비게이션이 조금 다혈질인 점이 아쉬울 뿐.
게다가 중간 중간 고블린들의 습격이 이어졌다.
고블린들은 숲에 숨기 딱 좋은 초록색 피부를 가졌다. 이놈들은 숲의 보호 아래에서는 혼자라도 자신감이 넘치는 놈들이었다.
그만큼 기습에 최적화되어서 가호자나 각성자들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칼에 찔리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귀찮다.’
하나하나 달려드는 놈들이 영 성가셨다. 꼭 파리가 주변에서 앵앵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난쟁이도 이 상황에 익숙해졌는지 처음처럼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고블린이 튀어나올 때만 놀라 아이고 소리만 연발할 뿐 계속해서 방향을 안내했다.
십여 분 정도 수풀을 헤치며 걸었을 때 앞쪽에 거대한 암벽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앞에 컨테이너 박스 같은 크기의 시커먼 무언가가 있었다.
“아이고! 저놈 저거 또 저기 앉아있네!”
난쟁이가 허공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검은 덩어리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알림이 떠올랐다.
[보스 몬스터인 그리폰이 나타났습니다.]
[그리폰을 제압하십시오. 0/1]
‘그리폰…!’
날 죽였던 오만의 그리폰이 떠올랐다.
눈앞의 검은 그리폰이 첫 번째 시험관과는 다른 놈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복수심에 눈빛에 살기가 담겼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인간?”
갑작스러운 분위기의 변화를 감지했는지 난쟁이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나는 난쟁이를 내려놓고 챙겨온 고블린의 칼들을 뽑아 들었다.
“잠, 잠깐만요, 인간! 설마 지금 저 그리폰을 죽이려는 겁니까?”
난쟁이가 후다닥 내 앞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그런데?”
내 눈빛에 난쟁이가 흠칫 놀라며 한발 물러섰다.
“아, 아니, 위, 위험합니다! 저놈은 고블린보다도 더 위험한 놈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미쳤더라도 저놈은 절대 못 이깁니다!”
난쟁이가 마구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냥 마을로 돌아서 무기고로 들어가면 됩니다. 굳이 저놈을 잡을 필요는 없단 말입니다.”
마을을 통해서 들어가는 건 회귀 전 무기고에 갔던 루트였다.
마을을 통해 무기고로 가려면 적어도 이틀 이상은 걸릴 터였다.
“물론 저놈이 저길 가로막고 있어서 우리도 상당히 피해를 많이 보고 있긴 하지만 저놈은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 일 납니다, 인간.”
난쟁이가 사뭇 진지해진 말투로 이야기했다.
확실히 초반 S급 던전의 최종 보스 치고는 난이도가 센 편이었다.
그리폰은 적어도 중급 이상의 몬스터였다.
“누가 큰일이 난다는 거야?”
내 물음에 난쟁이가 다시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넙니다, 너! 이 인간아! 너 걱정해서 지금 이야기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피식 웃고는 난쟁이를 발로 밀어냈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게 내 걱정이야. 비켜, 죽이게.”
“허! 아이고, 진짜 미친 인간일세, 저게! 그래, 가서 확 뒤져봐야 정신을 차리겠습니까? 그러면 술이고 무기고 안 줘도 되니 난 이득입니다!”
뒤에서 난쟁이의 쨍알거림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외침은 몸을 웅크리고 휴식을 취하던 그리폰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리폰이 웅크렸던 몸을 펼치며 일어섰다.
“흐익!”
난쟁이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풀숲을 헤치고 그리폰의 앞에 섰다.
하얀 독수리의 머리가 나를 발견했다.
“캬아아아아-!”
그리폰이 양 날개를 활짝 펼쳤다. 웅크리고 있을 때보다 세 배 이상은 커 보였다.
하지만 그래봤자 오만의 그리폰의 날개 한 쪽보다도 작은 크기였다.
‘귀여운 수준이네.’
나는 포효하는 그리폰을 보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놈에게 다가갔다.
그리폰이 이번에는 사자의 몸뚱이를 들어 올려 앞발로 땅을 세게 내리쳤다.
쿠웅!
흙먼지와 함께 바닥을 타고 큰 울림이 전해져왔다. 그리폰이 날개를 펄럭이며 바닥을 박찼다.
거센 바람이 일어 주변의 풀숲을 흔들었다.
“아이고! 늙은이 날아가네!”
뒤에서 난쟁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양 발에 힘을 주어 바람을 버텼다.
‘솔직히 이 짓은 나라서 가능한 거지.’
지금 시점에서 저런 놈에게 달려드는 가호자나 각성자가 있다면, 완벽한 자살 방법이라 생각하고 그의 명복을 빌어줬을 것이다.
다음 순간 놈은 떨어져 내리며 자를 짓밟으려 할 테니까.
“캬아아아!”
정점을 찍은 그리폰이 포효와 함께 내게 내리꽂혔다.
나 역시 그리폰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악! 인간 또 미친 짓 하네, 저거!”
난쟁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렇게 생각해도 할 말은 없었다.
내리꽂히는 그리폰의 다리 사이로 뛰어들 수 있는 인간은 몇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곳이야말로 놈의 빈틈.
쿠웅!
그리폰의 발이 땅에 부딪혔다.
나를 밟지 못했다는 것을 안 그리폰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나는 앞으로 몸을 굴려 놈의 뒷다리 사이로 빠져나갔다.
기다랗게 늘어진 꼬리를 지나쳐 완벽하게 놈의 뒤에 선 순간.
나는 도약했다.
훅!
순식간에 놈의 전신을 내려다볼 높이로 뛰어올랐다.
‘역시 작다.’
불과 몇 시간 전 보았던 오만의 그리폰의 등과는 너무나 달랐다.
나는 양손의 단검을 역수로 고쳐 쥔 후 놈의 허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푸학!
놈의 질긴 가죽이 꿰뚫렸고 한 아름은 가볍게 넘어설 두터운 몸통이 두 동강 났다.
“키아아아악!”
놈의 사자 몸뚱어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쿵!
묵직한 무게감이 땅을 흔들었다.
상체는 날개를 퍼덕이며 비명을 토해내고 있었다. 놈의 날개깃들이 주변에 흩어졌다.
난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상태로 놈에게 다가가 두 칼을 놈의 두개골에 박아 넣었다.
콱!
“케엑!”
크게 요동치던 날개가 곧 움직임을 멈췄다.
‘오만의 그리폰, 네 미래다.’
나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침을 퉤 뱉었다.
입안까지 스며든 그리폰의 피에 비릿함이 가득했지만 기분은 매우 상쾌했다.
오만의 그리폰을 이렇게 죽일 생각을 하니 전율이 일 정도였다.
[그리폰을 처치했습니다. 1/1]
[게이트 클리어 보상이 상향됩니다.]
[게이트를 클리어했습니다.]
[클리어 성적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게이트를 나가기 전 보상을 확인하십시오.]
알림 글들이 정신없이 떠올랐다.
“…인간….”
숨어있던 난쟁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반 토막 난 그리폰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쉽게….”
“말했잖아. 죽인다고. 이제 네 차례. 다시 안내해.”
손과 옷에 묻은 그리폰의 피들을 가볍게 털어내며 말했다.
“…허, 허허허.”
난쟁이가 실성이라도 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곧 정신을 차리고 암벽 앞에 서더니, 혈을 찌르듯 암벽의 군데군데를 더듬었다.
난쟁이들이 만든 문은 주변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비밀의 문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문을 찾아내는 것도 오직 난쟁이들만이 알고 있는 암호가 필요했다.
쿠구구구.
난쟁이의 동작에 반응한 암벽의 내부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난쟁이의 앞에 작은 열쇠구멍이 나타났다.
“열쇠는 있지?”
내 질문에 난쟁이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왕이 곧 열쇠입니다.”
“오? 너 왕이구나?”
내 물음에 난쟁이 왕은 풍성한 수염 속을 뒤적이다가 흠칫 놀랐다.
“…젠장. 이놈의 주둥이. 늙으니까 통제가 안 되네.”
잔뜩 구시렁거린 난쟁이가 수염 속을 계속 뒤적였다.
‘지난번에는 난쟁이 왕은 만나지 못했었는데.’
아무래도 난쟁이 왕의 조건은 술 숙성 창고에서 며칠을 버틸 수 있는지와 얼마나 까칠한 성격을 지녔는지인 듯했다.
왕이 수염 속에서 금빛 열쇠를 겨우 찾아냈다. 열쇠는 구멍에 정확히 맞아들었다.
철컥!
기분 좋은 쇠의 마찰음이 들렸다.
난쟁이 왕이 뒤쪽으로 물러나며 자신 있게 말했다.
“난쟁이들의 무기고입니다. 에헴. 이곳에 방문한 첫 번째 인간인 걸 영광으로 아십시오!”
쿠구구궁!
먼지가 일며 암벽의 틈새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쿠구궁!
곧 암벽의 움직임이 멈추고 입구가 드러났다.
화려함 따위는 없었다. 그냥 뻥 뚫린 커다란 구멍이 나타났을 뿐이었다.
나는 난쟁이 왕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곧 웅장한 크기의 무기고가 나타났다.
다 셀 수는 없지만 아마 수백 개는 될 것 같은 무기들이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칼, 창, 활, 도끼 등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였다.
‘묵혀두는 게 너무 아깝단 말이지.’
난쟁이들은 무기를 만들어 보관하기만 할 뿐 사용하지를 않았다.
속으로 혀를 내두르는데 난쟁이 왕이 으름장을 놓았다.
“딱 하나입니다, 딱 하나! 그 이상은 절대 안 됩니다!”
“알겠어.”
대충 대답한 나는 다른 무기들을 모두 지나치고 단검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전에도 그랬지만 탐나는 단검들이 매우 많았다.
‘그래도 역시 가져갈 건….’
나는 빠르게 단검들을 훑었다. 그리고 조금 동떨어진 곳에 놓인 평범해 보이는 단검을 발견했다.
‘찾았다.’
내가 그 단검을 잡자 나를 감시하듯 쫓아다니던 난쟁이 왕이 화들짝 놀랐다.
“…에엥? 설마 지금 그걸 선택하시겠다는 건 아니겠지요?”
“왜?”
내 되물음에 난쟁이가 당황해하며 내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 했다.
“아, 아니. 그건 너무 평범하지 않습니까? 그것보다 더 화려하고 멋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난쟁이의 말이 맞았다. 내가 들고 있는 단검은 정말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것이었다.
탁한 붉은색의 불꽃 문양이 새겨져 있는 까만 단검.
하지만.
난 씩 웃으며 단검을 뽑았다.
스릉.
난쟁이가 흠칫 놀랐다.
나는 예리하게 선 단검의 날을 바라봤다.
투명한 날 안에 갇힌 붉은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심연의 불꽃.’
회귀 전 사용하던 두 단검 중 하나이자, 난쟁이들이 금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심연의 불꽃이 담겨있는 단검이었다.
[EX급 아이템 심연의 불꽃.]
[사용 시 자상과 함께 화상을 입힙니다.]
[불꽃을 이용해 실제의 단검 길이보다 더 넓은 영역의 상처를 입힐 수 있습니다.]
최고 등급인 EX급의 아이템.
무려 속성 옵션이 붙어있고 불꽃을 이용한 날의 길이까지 조정할 수 있었다.
즉, 원한다면 단검이 아니라 불꽃의 장검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나는 방긋 미소를 띠며 단검을 다시 검집에 넣었다.
“이걸로 할래.”
“…예에?”
난쟁이 왕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 그걸로 말입니까…? 그, 그건, 저기….”
난쟁이가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단검을 챙겨든 후였다.
“…아이고. 저 인간이 저렇게 좋은 건 또 어떻게 알아봐서는…. 아이고, 아까워라!”
울먹이는 목소리로 난쟁이가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결국 체념한 듯 주변을 뒤적여 가죽 벨트를 하나 내밀었다.
“…어휴. 이거도 챙기십시오. 제 혼을 담아 만든 단검이니까 홀대받는 건 못 봅니다.”
사은품이 딸려왔다.
“네가 만들었다고?”
“예.”
왕이 뚱하게 대답했다.
‘솜씨가 좋은 놈이군.’
심연의 불꽃은 난쟁이들 중에서도 극소수의 대장장이만이 다룰 수 있는 불꽃이었다.
역시 폼으로 왕이 된 게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벨트를 허리에 매고 단검까지 고정시킨 후 만족스러운 얼굴로 왕을 바라봤다.
“그럼 이제 술 줘야지?”
내 말에 난쟁이는 축 처진 눈과 입, 어깨를 끌고 세상이라도 잃은 냥 터덜터덜 무기고를 나갔다.
나는 다시 난쟁이 내비게이션과 함께 숙성 창고로 돌아가 술 두 병을 받았다.
열 모금이나 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작은 유리병이었다.
투명한 병 안으로 술이 찰랑이는 것이 비추어 보였다.
‘이거 밖에 안 되네.’
내 표정이 겉으로 드러났는지, 아니면 찔렸는지 난쟁이 왕이 버럭 외쳤다.
“적은 거 아닙니다, 인간! 말했다시피 가치가 굉장한 술이라는 말입니다!”
‘…굉장한 술이긴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병을 챙겼다.
“그래, 알겠어. 근데 그리폰도 잡아줬으니 나한테 빚은 남은 거다?”
“뭐요?”
난쟁이가 기가 차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다가 세게 혀를 찼다.
“에잉, 쯧!”
난쟁이 왕이 잠시 팔짱을 낀 채 나를 쏘아보다가 퉁명스레 말했다.
“…우리 난쟁이들이 은혜를 모르는 족속들은 아닙니다. 혹 앞으로라도 난쟁이를 만나게 된다면 그걸 보여주십시오.”
난쟁이 왕이 내 허리에 있는 심연의 불꽃을 가리켰다.
“그걸 보여주는 인간이 있으면 도움을 주라 이야기해두겠습니다.”
그리폰 한 마리 잡아준 것이 생각보다 더 큰 혜택으로 돌아왔다.
‘잘하면 술을 끊임없이 조달할 수도 있겠는데?’
“그래. 고마워.”
나는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난쟁이는 영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건 그거고 어쨌든 나랑은 두 번 다시는 마주치지 맙시다, 인간! 늙은이를 대하는 태도가 영 글러먹은 인간이랑은 상종을 못하겠습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왕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네, 네. 다음에 또 봐.”
그 말에 기겁한 난쟁이가 내 손을 쳐내고는 후다닥 도망가 버렸다.
“이제 그만 꺼지십시오!”
나는 도망가는 난쟁이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 게이트를 닫을 시간이었다.
‘일단은 보상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확인해볼까.’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보상을 확인하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었다.
나는 한껏 부푼 기대감을 안고 클리어 보상을 확인했다.
“보상 확인.”
땅에 보상 목록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라…?’
그것들을 천천히 살펴보던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