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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7화 (8/201)

제7화

김지석은 초조한 마음으로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았다.

11시 30분.

붉은빛 게이트는 미등록 각성자 윤도아가 입장한 이후, 농구공만한 작은 구형으로 변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모습을 유지한 채 일렁이고 있었다.

“이사님, 커피요.”

김지석의 앞에 커피 한 잔이 내밀어졌다.

인사팀장 이수현이었다.

“아. 고마워요.”

김지석이 고개를 꾸벅이고는 커피를 받아들었다. 따뜻했다.

“얼마나 걸릴까요? 혼자서 S급이면 하루?”

이수현이 자신의 커피를 홀짝이며 물었다. 김지석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율동공원 게이트는 반나절도 안 돼서 닫혔습니다. 여긴 스킬 보상 게이트라 거기보다 난이도가 낮고요.”

김지석은 지금까지 나타났던 게이트의 대부분을 알고 있었다.

전국에서 넘어오는 게이트에 대한 정보들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김지석의 주된 일과였다.

“그래요? 근데 이게 진짜 혼자서도 가능한 건가? 사실 아까까지만 해도 안 나타날 줄 알았어요, 그 사람.”

이수현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김지석 역시 그 말에 동의했다.

“저도 괜히 시간 낭비하는 게 아닌가 싶긴 했습니다만.”

윤도아는 예고한 시간에 정확하게 나타나 게이트에 입장했다.

그 순간부터 김지석은 설렘과 초조함,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윤도아 씨가 이 게이트를 닫고 나온다면, 반드시 각성 기관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김지석과 이수현이 이 추운 날 종묘 앞에서 떨고 있는 이유였다.

주선오가 기관장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이 공표된다면 분명 사람들은 각성 기관에서 관심이 멀어질 것이다.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주선오였으니까.

그렇게 되면 각성 기관을 세계적으로 키우려는 김지석의 야심에 차질이 생기고 만다.

하지만 그 대신 윤도아가 기관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주선오가 있을 때보다 기관의 홍보 효과가 더 커질지도 모른다.

‘기필코 데려간다.’

김지석이 굳게 다짐했다.

그 순간.

우우웅——.

수축되었던 붉은 게이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

이수현이 놀라며 게이트를 바라봤다.

게이트의 변화를 눈치챈 김지석이 얼른 이수현의 팔을 뒤로 잡아끌었다.

아직까지 종묘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기자들과 구경꾼들 역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거 봐!”

“뭐, 뭐야?”

“설마 벌써 나오는 거야?”

작은 구형의 붉은 게이트는 윤도아가 입장하기 전처럼 점점 커졌다.

게이트의 확장과 동시에 사방으로 퍼져나가던 연기가 금세 하얗게 변했다.

“클리어…?”

하얀 연기는 클리어의 상징이었다. 김지석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빠, 빨리 준비해!”

“미친! 뭐 이렇게 빨리 나와?”

게이트를 클리어하는데 몇 시간은 걸릴 거라 생각해 장비들을 철수했던 기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하얀빛이 번쩍였다.

강렬한 빛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김지석의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뒤에서 밝게 비치는 하얀 빛이 사그라든 후에야, 김지석은 그 사람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윤도아!’

11시 40분.

윤도아가 40분 만에 S급 게이트를 클리어했다.

“세상에….”

옆에서 이수현의 넋 나간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문득 윤도아의 날카로운 눈빛이 김지석을 향했다.

순간 김지석은 흠칫 놀라며 들고 있던 커피잔을 놓치고 말았다.

“!”

윤도아가 떨어지던 커피잔을 가볍게 낚아채더니 그대로 멈춰 있는 김지석에게 건넸다.

“조심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김지석이 조심스럽게 커피잔을 받아들었다.

왠지 모를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킨 김지석이 고개를 돌리려는 윤도아를 붙잡았다.

“혹시….”

김지석이 말을 걸려는 찰나.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게이트를 클리어하신 거죠?”

“모래가 잔뜩 묻어 있으신데 게이트 안은 어디였습니까?”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됐다.

경찰들이 앞으로 나서려는 기자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윤도아가 작게 혀를 차더니 몸을 돌려 기자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입술 앞에 검지를 세워 보였다.

질문을 던지던 기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수그러들었다.

광장이 조용해지고 나서야, 윤도아가 입을 열었다.

“이미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윤도아라고 합니다. 전 공개한 적 없지만 다른 분들이 아주 친절히 공개해주셨더라고요.”

윤도아가 말을 멈추자 카메라의 셔터 소리만이 광장에 흩어졌다.

종묘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윤도아에게 향해있었다.

“전 커뮤니티에 올렸던 대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글이든 말이든 조심하세요. 안 좋은 소리 참아 넘길 만큼 성인군자 아닙니다.”

조금 낮아진 목소리에 몇몇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내 윤도아가 표정을 풀며 말했다.

“제 할 말은 끝. 이제 질문 받아요. 선착순 한 분.”

“세운 일보 강그린 기자입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기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려왔다.

“말씀하세요.”

“벌써 두 번째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셨는데, 앞으로 활동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강그린의 질문에 윤도아가 가볍게 대답했다.

“그건 아직 안 정했는데요.”

너무나도 간단한 대답에 강 기자를 포함한 모두가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김지석만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회다!’

주선오와 아직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기관으로 영입하기가 더욱 쉬워진다.

“그럼 끝.”

윤도아가 말을 마치고는 돌아섰다. 뒤에서 기자들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윤도아는 돌아보지 않았다.

김지석이 커피를 이수현에게 넘기더니 빠르게 윤도아에게 걸어갔다.

윤도아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김지석을 바라보았다.

김지석은 미리 꺼내둔 명함을 내밀며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윤도아 씨.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네요. 각성 기관 김지석 이사입니다. 잠시 이야기 가능하실까요?”

윤도아가 잠시 김지석의 손에 들린 명함을 바라보았다.

‘…왜 안 받지?’

순간 김지석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설마 거절인가?’

조심스레 윤도아의 눈치를 살폈지만, 윤도아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김지석의 손이 살짝 떨려올 때 쯤, 윤도아가 명함을 받아들었다.

“좋아요. 어차피 저도 각성자 등록은 해야 할 것 같으니 거기로 가죠.”

순간 긴장이 확 풀린 김지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금세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차로 모시겠습니다.”

* * *

역삼에 위치한 각성 기관으로 향하는 동안 윤도아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김지석과 이수현이 몇 번 말을 걸어봤지만 단답형의 대답만이 돌아오거나 심지어 대꾸가 없을 때도 있었다.

결국 차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맴돌았고 그 상태로 기관 건물 앞에 도착했다.

김지석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그럼 주차 좀 부탁할게요, 수현 씨.”

“넵!”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 기쁜지 이수현이 신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지석은 뒤에 서 있던 윤도아를 안내했다.

“이쪽입니다. 지금은 아직 규모가 작아서 한 층만 쓰고 있지만 조만간 크게 키울 예정이고요.”

윤도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간 김지석은 윤도아를 관장실로 안내했다.

똑똑.

“모셔왔습니다.”

“들어와요.”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지석이 문을 연 후 윤도아를 먼저 들여보냈다.

그리고는 빠르게 탕비실로 향해 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이사님! 저 사람 그 미등록 각성자 맞지요?”

탕비실을 따라 들어온 직원 한 명이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네, 맞습니다. 마침 잘 왔네요. 좀 도와주시겠어요?”

“네네. 와, 아까 실시간 방송 봤는데 진짜 굉장하던데요. 뉴스고 인터넷이고 커뮤니티고 다 난리 났어요.”

직원이 김지석을 도와 차를 타며 말했다.

“그렇죠? 진짜 대단한 분 같습니다.”

김지석이 게이트에서 막 나왔던 윤도아를 떠올렸다.

‘후광이 비치는 것 같이 절묘했었는데.’

김지석이 살짝 웃음을 띠었다.

“여기요, 이사님. 얼른 들어가 보세요. 잘 얘기해서 꼭 데려오셔야 해요!”

직원의 말에 김지석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는 준비된 차를 들고 관장실로 향했다.

“실례합니다.”

노크를 한 김지석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중앙의 소파에 임시기관장이자 세 번째 각성자인 안세인과 윤도아가 앉아있었다.

김지석이 찻잔을 둘의 앞에 내려놓고는 윤도아의 맞은편에 앉았다.

“고마워요.”

안세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윤도아 역시 김지석에게 고개를 꾸벅여보였다.

“그래서 하실 말씀이 뭔가요?”

윤도아가 안세인에게 물었다. 가볍게 차를 한 모금 마신 안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짐작할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윤도아 씨가 선오를 대신해서 각성 기관을 대표하는 각성자가 되어줬으면 합니다.”

역시 짐작하고 있었는지, 윤도아가 금세 되물었다.

“대가는요?”

안세인이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윤도아를 바라봤다.

“윤도아 씨가 원하는 건 뭐든지요.”

윤도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제가 뭘 요구할 줄 알고 그런 대답을 하세요?”

“물론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지원이겠지만요.”

김지석 역시 안세인의 말에 동의해 고개를 끄덕였다.

‘기관에 잡아둘 수만 있다면 뭘 못하겠어.’

돈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지원해줄 수 있다. 집이 필요하다면 집을 제공해줄 수도 있다.

“저한테 원하시는 건요?”

윤도아가 다시 물었다.

김지석이 살짝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윤도아의 시선이 김지석에게 향했다.

“이제 각성 기관은 정부 소속으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개인이 만든 단체였지만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판단했기에 각성 기관을 인수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정부에서는 가호자들에게 각성을 권유할 생각이고요.”

이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해둔 브리핑 내용이었다.

하지만 윤도아는 김지석의 말을 끊었다.

“결론만요.”

헛기침을 한 김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윤도아 씨가 저희와 함께 각성자들을 키워나갔으면 합니다.”

윤도아가 잠시 고개를 비틀었다.

“그러니까 가호자들 뒷바라지를 하라, 이건가요?”

“네? 아, 아니….”

김지석이 당황했다. 그에 반해 안세인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말아요. 뭐, 솔직히 말하면 가호자들은 윤도아 씨가 각성 기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각성 기관에 관심이 생기지 않겠어요?”

“뭐. 그렇겠죠.”

안세인이 탁자에 놓여있던 노트북을 열어 보였다.

[미등록 각성자 윤도아, 예고했던 S급 스킬 게이트 40분 만에 클리어.]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미정’이라 답해.]

[게이트 클리어 후 각성 기관으로 이동한 윤도아, 각성 기관에 소속될 것인가?]

[신예 각성자 윤도아를 영입하게 될 경우, 각성 기관의 향방은?]

탕비실에서 만난 직원의 말처럼 조금 전 종묘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기사들이 잔뜩 올라와있었다.

“벌써 각성 기관이 화두에 올랐죠? 커뮤니티는 더 심해요.”

안세인이 커뮤니티 창을 띄웠다.

-직접 가서 봤는데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

-기레기들 완전 꼼짝도 못 하던데? 좀 후련했다ㅋㅋㅋ

-각성 기관 소속되면 거기 가면 만날 수 있는 거임?

-나도 등록하러 가야겠네.

-게이트, 나도 같이 좀 데려가 줘라.

-그러게. 게이트 안에서 라이브 방송 좀 해줘, 누나.

대부분이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괜스레 자신이 뿌듯해진 김지석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정작 윤도아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안세인이 말했다.

“이 사람들의 기대처럼 정말 각성 기관에서 윤도아 씨가 이들의 각성을 도와준다면 굉장한 메리트겠지요? 이 이야기가 퍼지면 가호자들은 더 몰려올 테고요. 각성 기관은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겁니다.”

윤도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제가 할 일은 그게 다인가요?”

“일단은요. 물론 추가될 수도 있지만. 사실 윤도아 씨가 여기서 거절하더라도 나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요.”

안세인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김지석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긴장된 표정으로 윤도아를 바라봤다.

윤도아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알겠다고 했으면!’

김지석이 속으로 간절히 바랐지만.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윤도아의 말에 김지석이 급속도로 실망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본다는 건 아직 여지가 있다는 뜻.’

“좋아요. 대신 내일 안에는 결정을 해줬으면 좋겠네요.”

안세인이 말했다.

5일, 각성 기관이 정부로 넘어간다는 발표를 할 예정이다.

만약 윤도아가 기관과 함께하기로 결정을 내려주면 기관은 이를 함께 공표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연락드릴게요.”

윤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세인과 김지석 역시 윤도아를 따라 일어섰다.

“김 이사님이 안내 좀 해주세요.”

안세인이 김지석에게 말했다.

김지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윤도아를 데리고 관장실 밖으로 나왔다.

“각성자 등록은 지금 하시겠습니까?”

“그러죠.”

각성자 등록처로 이동하는 동안, 기관 안의 사람들이 윤도아를 흘끔거리며 수군거렸다.

김지석이 물었다.

“혹시 사진 갖고 계신 것 있으십니까? 등록증에 사진이 필요해서요.”

“없는데요.”

“아. 그럼 여기에서 찍을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김지석은 바로 작은 방으로 안내해 윤도아의 사진을 찍었다.

다시 밖으로 나온 김지석은 서류 세 장을 챙겨 의자에 앉은 윤도아에게 건넸다.

“간단한 서류 작성만 해주시면 됩니다.”

빠르게 서류를 살핀 윤도아가 서류를 작성해 김지석에게 넘겼다.

서류를 확인하던 김지석이 멈칫했다.

첫 장의 개인정보 일부분이 비어있었다.

“가호 부분을 안 적으셨습니다만….”

김지석의 물음에 윤도아가 팔짱을 낀 채 대답했다.

“네. 적기 싫어서요.”

윤도아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김지석은 잠시 망설였다.

가호는 등록 시에 꼭 필요한 정보였다.

그걸 알아야 이 각성자를 어떻게 활용할지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윤도아 씨라면 문제없겠지.’

이미 실력은 입증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김지석은 그냥 그대로 서류 등록을 진행했다.

“각성자 등록증은 2주 안에 발급될 겁니다. 나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윤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댁으로 가시나요?”

“네.”

“그럼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다행히 윤도아는 김지석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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