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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랭커가 회귀하는 방법-11화 (12/201)

제11화

“앗. 보너스 게이트!”

이리나가 눈을 반짝였다.

“전 좋아요!”

“선오는?”

“저도 좋습니다.”

주선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안세인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윤도아 씨는 어때요? 혼자 S급 게이트 깨는 사람이라 내키지 않을 수 있긴 한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보너스 게이트.

다른 게이트들과는 다르게 보상의 내용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가끔은 다른 게이트에서 얻을 수 없는 보상을 주기도 했다.

게이트의 클리어 방식 또한 달랐다.

다른 게이트들은 몬스터와의 전투가 중심이지만 보너스 게이트는 각성자끼리의 경쟁이 기본으로 깔려있었다.

그래서 보너스 게이트에는 몇몇의 독특한 규칙들이 적용되기도 했다.

보너스 게이트 내부에서 입는 상처는 고통이 얕고, 게이트를 나오게 되면 모조리 사라진다.

만약 게이트 진행 중 죽게 되더라도 그 사람은 게이트의 밖으로 내보내질 뿐, 다른 게이트처럼 실제로 목숨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단, 그렇게 밖으로 나와진 각성자는 재입장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보너스 게이트가 각성자끼리의 대련장소가 되기도 했었고.’

위험부담은 없고 운이 좋으면 괜찮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곳.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입장할 수 있는 유일한 게이트였다.

하지만.

‘굳이 갈 필요가 있나?’

오늘은 회견에만 참석하는 일정뿐이었다. 게이트에 갈 생각은 없었다.

“음….”

역시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이리나가 칭얼거리듯 말했다.

“도아 언니, 같이 가면 안 돼요? 보너스 게이트라 그냥 잠깐 쉰다고 생각하구요, 네?”

그런 이리나를 보고 있자니 문득 회귀 전의 일이 떠올랐다.

회귀 전 이리나에게는 각성자의 정보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가호에 딸린 능력은 아니었다. 이리나의 가호와 특성은 치유 쪽. 다른 사람의 정보를 볼 수 있는 특성은 아니었다.

그런 이리나가 다른 각성자의 정보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시작의 날 얼마 후.

보너스 게이트에서 얻은 아이템인 여우 구슬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보너스 게이트의 위치가 바로 이 근처였다.

‘지금 가려는 곳이 그곳일지도.’

회귀 전에는 그냥 그러려니 했던 능력이었다. 박성현의 정보를 알아내는 데에는 크게 한몫했었지만, 사실 그 외적으로는 그닥 쓸모가 없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만약 내 가호의 정보를 이리나가 보게 된다면 내 목숨이 1개가 깎였다는 것도 알게 될 터.

나는 내 가호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각성자 등록을 할 때에도 가호의 정보를 쓰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리나한테는 미안하지만, 여우 구슬은 내가 챙겨야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가죠.”

내 대답에 이리나가 양손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우와! 도아 언니랑 게이트다!”

크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주선오 역시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안세인도 마찬가지.

호탕하게 웃은 안세인이 말했다.

“하하하. 좋아요. 그럼 바로 갈까요?”

* * *

보너스 게이트는 회견장 근처의 작은 공원에 있었다. 우리는 주선오의 차로 공원으로 이동했다.

차에서 내린 이리나가 신이 난 듯 폴짝폴짝 뛰었다. 그러더니 먼저 내린 안세인에게 달려가 팔짱을 끼었다.

“게이트 오랜만이네요!”

“하하. 오랜만은. 말일에 갔잖아?”

“어쨌든 작년이잖아요. 오늘 회견한다고 선오 오빠나 관장님이나 다 게이트 같이 안 돌아주고.”

이리나가 투덜거렸다.

마지막으로 차에서 내린 주선오가 차 문을 잠그고는 허리에 칼을 매었다.

주차장을 벗어나 공원의 작은 길을 따라 잠시 걷자 앞쪽에 게이트가 보였다.

보너스 게이트의 상징인 금빛 연기를 휘감은 게이트였다.

우리가 금빛 게이트의 앞에 서자 곧 게이트 중앙의 연기가 사라지더니 게이트의 안내문이 떠올랐다.

[보너스 게이트입니다.]

[게이트의 특성에 따라 독특한 규칙들이 적용됩니다.]

[게이트 안의 시간은 바깥의 시간과 동일하게 흐릅니다.]

[하지만 생체의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나는 그 안내문을 읽으며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어떤 게이트였는지 좀 들어둘 걸 그랬어.’

말이 많은 사람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는 회귀 전 옆에서 계속 쫑알거리는 이리나가 상당히 귀찮았다.

그래서 이리나의 이야기를 대충 흘려들었었는데 그게 지금 와서 아쉬울 줄이야.

‘지금 생각해봤자.’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접고는 안세인과 주선오, 이리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제가 먼저 들어가도 될까요?”

보너스 게이트라면 입장 순서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었다.

“그래요. 도아 씨가 먼저 들어가요.”

안세인이 흔쾌히 수락했다. 주선오와 이리나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보너스 게이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입장.”

내 말과 동시에 금빛 연기가 내 몸을 휘감았다.

* * *

[선택하십시오.]

[술래.]

[놀래.]

암흑 속에서 하얀 글자들이 떠올랐다.

‘술래? 놀래?’

보통 게이트는 어려운 것을 선택할수록 보상이 좋았다.

그렇다면 역시 술래를 잡는 놀래보다는 한 명인 술래가 더 어려울 터.

‘보상은 역시 최대로 받아야지.’

나는 별 망설임 없이 술래를 선택했다.

“술래.”

[술래를 선택하셨습니다.]

동시에 주변이 확 밝아졌다.

강한 빛에 나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곧 빛이 약해짐을 느끼고 조심스레 눈을 뜨자.

푸른 숲 속이었다.

지난 번 난쟁이의 술 숙성 창고가 있던 곳과 비슷한 느낌의 울창한 숲.

외투를 벗어 근처의 나무에 걸쳐두는데 나무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내려앉더니 물고 있던 종이봉투를 내 앞으로 떨어트렸다.

그것을 주워 살펴보니.

[이곳에서 받는 모든 피해는 실제 피해보다 약하며 게이트를 나갈 시 모두 회복됩니다.]

[사망할 경우 게이트의 밖으로 강제 이동되며, 재입장이 불가합니다.]

보너스 게이트의 규칙이 먼저 안내된 후.

[놀래는 술래의 증표를 빼앗아야 합니다.]

[술래 역시 놀래의 증표를 빼앗을 수 있습니다.]

[놀래가 술래의 증표를 얻거나, 술래가 모든 놀래의 증표를 얻으면 게임이 종료됩니다.]

게임에 대한 설명이 나타났다.

그와 함께 여우 머리 모양의 나무 뱃지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주워들었다.

‘술래의 증표.’

증표를 재킷에 달며 다시 한 번 종이를 살폈다.

게임을 끝내려면 내가 셋 중 하나에게 잡히거나 셋의 증표를 모두 빼앗으면 된다.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게임을 끝내는 법.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게이트를 클리어하려면 분명 다른 조건이 있을 터.

나는 천천히 숲을 걸으며 주변을 살폈다.

이 게이트의 보상은 여우 구슬.

내게 주어진 술래의 증표인 여우 뱃지를 보고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게이트 안에 여우가 있을 확률이 컸다.

‘여우야말로 진짜 술래.’

진짜 술래를 잡는 것이 이 게이트의 클리어 방법일 것이다.

그때 근처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혹시 세 각성자가 아니라면 진짜 술래인 여우일 테니까.

그쪽에서도 내 움직임 소리가 들렸는지, 곧 겁먹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 누구 있어요? 관장님? 언니? 오빠? 아, 진짜 무섭다고, 이런 거!”

이리나의 칭얼거리는 외침에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런 울창한 숲 속에 혼자 남겨져서 잔뜩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나는 이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앗, 도아 언니!”

나를 발견한 이리나가 금세 반가운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그러다가 내 재킷에 달린 여우 머리 뱃지를 보고는 멈칫했다.

“…아, 언니가 술래….”

이리나 역시 외투의 가슴팍에 하얀 가면 모양의 뱃지가 달려 있었다. 놀래의 증표였다.

내가 이리나에게 다가가려 하자 이리나가 황급히 양손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잠깐, 잠깐만요! 언니, 전 언니 뱃지 빼앗을 생각 없어요! 어차피 빼앗지도 못할 거고.”

그러더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신의 뱃지를 떼어내 내게 내밀었다.

“이거 드릴 테니까 같이 가면 안 돼요? 저 이런 데 무서워해서….”

이리나가 처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누가 보더라도 항복의 의사였지만 저런 태도에 방심할 수는 없었다.

이리나는 회귀 전 여우 구슬을 얻었던 각성자니까.

“좋아.”

나는 자리에 멈춰선 채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리나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는 이리나의 손에 들린 뱃지를 보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염력.’

훅!

가벼운 뱃지가 마나를 타고 이동해 내 손으로 빨려들듯 날아왔다.

나는 손안의 뱃지를 살짝 움켜쥐고는 씩 웃었다.

역시, 굉장히 유용한 스킬이었다.

“으잉?”

이리나가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그런 이리나에게 뱃지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그럼 가볼까?”

[술래가 놀래의 증표를 1개 빼앗았습니다.]

[남은 놀래의 증표 2개]

수풀 위로 알림글이 떠올랐다. 이리나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내게 터덜터덜 걸어왔다.

“뭐야, 언니 마법 쪽 특성이었어요? 알려진 게 없으니….”

피식 웃은 나는 이리나의 뱃지를 재킷 주머니에 넣은 후, 앞장서 걸었다.

나는 미리 이리나의 입을 막아뒀다.

말이 많은 게 거슬리기도 했지만, 재잘거리는 소리에 누군가 접근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낭패였으니까.

다행히 이리나는 내 말을 잘 따랐고, 잠시 후 근처에서 무언가의 움직임이 들려왔다.

나는 손짓으로 이리나를 멈춰 세우고는 나 혼자 발걸음을 옮겼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 곳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앞.

수풀과 나무들을 헤치며 조심히 이동하자, 앞쪽에 안세인의 모습이 보였다.

안세인 역시 재킷에 하얀 가면 뱃지를 달고 있었다.

안세인은 아직 내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

조금 전 이리나에게 했던 것처럼 염력으로 뱃지를 떼어내거나, 이대로 습격을 감행해 뱃지를 취할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지금 안세인의 특성 수준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는 일부러 기척을 내었고, 곧바로 안세인이 반응을 보였다.

몸을 홱 돌리며 양 주먹을 들어올린 안세인이 나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윤도아 씨.”

안세인의 주먹에 주무기인 너클은 끼워져 있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아무리 보너스 게이트라 피해량이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너클을 낀 주먹으로 맞게 되면 타격이 클 터였다.

안세인은 빠르게 내 재킷의 뱃지를 확인했다.

“보너스 게이트 규칙은 봤죠?”

“네.”

“그래도 윤도아 씨는 지금 무기가 없으니까, 나도 맨손으로.”

아무리 안세인이 맨손이라고 해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안세인은 각성 전까지 복싱 선수로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회귀 전보다야 훨씬 약하겠지만, 그래도 안세인의 주먹에 맞고 싶지는 않았다.

‘맞아줄 생각도 없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안세인에게 뛰어들었다.

안세인이 달려든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빠르게 안세인의 주먹을 피해냈다.

후욱!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에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곧바로 안세인의 반대쪽 주먹이 내게 꽂혀들었지만 나는 자세를 낮추며 바닥을 살폈다.

나무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에 안세인의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잽싸게 안세인의 그림자를 밟으며, 은밀한 고양이의 스킬을 발동했다.

‘그림자 밟기.’

훅!

눈앞에 안세인의 등이 나타났다.

안세인의 그림자를 밟고 스킬을 발동함으로써, 안세인의 사각지대인 뒤쪽으로 이동한 것이었다.

“!”

안세인의 어퍼컷이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곧바로 등 뒤의 내 기척을 눈치챘는지 몸을 돌리며 오른 주먹을 내질렀다.

나는 그런 안세인의 주먹을 피하며 오른쪽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적당한 힘을 주어 안세인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퍽!

사이비 광신도를 때렸을 때보다 더 쎈 강도였다.

보너스 게이트의 규칙이 적용되어 실제보다 약하게 느껴지겠지만, 보통 사람 같았으면 뼈가 조각났을 정도의 힘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안세인은 그걸 버텨냈다.

회귀 전부터 주먹과 맷집만큼은 따라갈 사람이 없는 각성자였다.

하지만 고통이 없지는 않을 터.

안세인이 주춤하는 사이 나는 빠르게 손을 뻗어 안세인의 뱃지를 뜯어냈다.

그리고는 그새 재정비를 마친 안세인이 내지르는 주먹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나는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손에 쥔 뱃지를 들어보였다.

“허.”

안세인이 기가 찬 웃음을 내뱉었다.

[술래가 놀래의 증표를 1개 빼앗았습니다.]

[남은 놀래의 증표 1개]

마침 증표를 빼앗았다는 알림글이 떠올랐고, 그것을 본 안세인은 양손의 주먹을 풀며 몸을 바로 세웠다.

“졌네요.”

안세인이 옆구리를 문지르며 말했다.

“나야 복싱을 했으니 그렇다 치지만, 도아 씨도 뭔가 운동을 했었어요? 몸놀림이 예사롭지가 않네.”

나는 안세인의 뱃지를 주머니에 넣으며 그냥 웃어 보였다.

역시 경험만큼 중요한 건 없다. 3년 동안 돌았던 게이트가 나를 이 정도로 성장시켰으니.

나는 대답 대신 안세인의 상태를 물었다.

“괜찮으세요?”

옆구리를 부여잡은 안세인이 가볍게 웃어 보였다.

“아프긴 하네. 내가 한 맷집 하는데, 여기서 이 정도면 밖에서 잘못 맞으면 뼈가 작살나겠는걸.”

“게이트 나가면 괜찮아질 거예요.”

안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나무 뒤에 숨어있던 이리나가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관장님도 뺏겼네요.”

“하하. 그래도 윤도아 씨 실력을 직접 보니까 훨씬 더 믿음이 가는걸.”

안세인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각성 기관 측은 내가 클리어를 했다는 사실만 알고 어떻게 클리어를 했는지, 내게 어떤 특성이 있는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이렇게도 확인을 한 것이 상당히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선오 오빠만 남았네.”

이리나가 말했다.

진짜 술래를 잡는 일이 남긴 했지만 일단은 주선오를 잡는 게 먼저였다.

“여기들 계세요.”

나는 이리나를 안세인에게 떼어놓은 후 마지막 남은 놀래인 주선오를 찾아 나섰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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